27. 서울대학을 찾아간 사복 체포조
이정훈이 김영철과 운전면허 학원에 있을 때, 서대문 경찰서 기동타격대 사무실에서 최성식이 어딘가에 전화를 걸고 있다. 사무실 문을 노크하고 들어간 김용수가 최성식 옆에서 통화 내용을 듣고 있다.
“나야, 성식이!”
하는데 수화기 너머 상대편이 최성식이 잘 기억나지 않는 모양이다.
“고등학교 동창이고 경찰대 가서 전경 소대장하고 있는 최성식이야.”
자기소개를 장황하게 하자 그제야 저쪽에서 최성식이 누군지 알아챈다.
“미국 유학 간다는 얘기 들었다. 미국 가기 전에 고등학교 동문회 할까 하는데.”
최성식의 제안에 상대방이 바로 ‘시간 없다’라고 말하는게 수화기를 통해 김용수 귀에 들려온다.
“시간이 없다고.... 그런데 정훈이 알지? 전교 1등에 반장 정훈이도 나온다는데…….”
최성식이 이정훈의 이름을 팔자 상대방의 마음이 바뀌었다.
“그래, 내가 약속장소랑 날짜 잡아서 다시 전화할게, 잘 지내라~ 보고 싶다.”
최성식이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전화를 보고 쌍소리를 한다.
“시간없다는 새끼가 정훈이가 나온다니깐…….”
“소대장님, 통화한 사람이 우리 고등학교 동기, 서울 전학생 뺀질이?”
최성식이 귀찮다는 듯 고개만 끄덕인다.
“그나저나 미국 유학은 어떻게 가는 거야? 미국에 비행기 타고 가는 건 알겠는데…….”
“야! 김용수! 날도 더운데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빨리 장비 챙겨서 근무 나가!”
“나, 오늘 근무 없어요. 비번이에요. 외출 신고하러 왔어요”
김용수가 최성식에게 외출신고를 하고 경찰서 밖으로 나온다. 사복 체포조 복장을 벗으니 영락없이 김용수도 대학생 모습이다. 김용수가 지하철을 타고 2호선 서울대입구역에서 하차해서 출구로 걸어 나온다.
“여기가 서울대 역이니깐 바로 근처에 서울대가 있겠지.”
김용수가 사람들한테 서울대 방향을 물어보고 그쪽으로 열심히 걸어가는데 서울대학교가 보이지 않는다.
“아니 무슨 지하철역이 서울대역인데 20분을 걸어도 서울대학이 안 나와?!”
등과 가슴이 흥건히 땀에 젖어 고갯길을 넘어가는 김용수 눈앞에 마침내 서울대학교 교문이 보인다. 김용수가 에베레스트 산을 정복한 사람처럼 뿌듯함으로 서울대를 바라본다.
“아~ 저기가 바로 서울대구나.”
방학을 마치고 시작한 수업 첫 주라서 캠퍼스에 학생들이 많다. 학교 안으로 버스들이 지나가고 있다.
“우와~ 학교로 버스가 다 들어가네, 쫄린다, 쫄려.”
김용수가 지나가는 학생에게 뭔가를 물어보는데 지나가는 학생이 최지혜다.
“저어 말 좀 묻겠습니다. 법학과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나요?”
“저기 보이는 건물 뒤로 돌아가시면 법학과 건물이 보여요.”
“고맙습니다.”
치마에 구두를 신고 걸어가는 최지혜의 뒷모습을 보며 김용수가 괜히 흐뭇해한다.
“서울대 여학생 정말 예쁘고 착하고 친절하네. 저런 친구들만 있으면 데모도 안 하고 우리가 참 편할 텐데.”
법과대학 건물 쪽으로 걸어가던 김용수가 대자보를 발견하고 그냥 지나가려다가 오늘은 자기도 대학생인 기분이라 걸음을 멈춘다. 그리고 학생들 틈에 끼여서 대자보 내용을 읽고 있다. 올해 개최되는 아시안게임 개최 때문에 서울 변두리 지역의 빈민가들이 계속 철거된다는 소식이다. 철거 지역에 투입된 철거반원들이 술을 마시고 저지른 폭력에 부상당한 철거민들의 사진도 같이 게재되어 있다. 그걸 보고 있던 김용수의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여수지역 변두리 빈민가에 살았던 김용수도 중학교 때 집이 철거당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 가난한 사람들은 인간도 아니냐…….”
김용수가 혼자 중얼거리다가 깜짝 놀란다.
“어라? 내가 왜 이러는 거야? 정신 차려라. 김용수”
김용수가 자기 얼굴을 툭툭 친다.
김용수가 법학과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간다. 조교가 그 안에 있다.
“실례합니다, 저어 법학과 이정훈 학생 좀 만나러 왔습니다.”
“정훈이요? 어디서 오셨어요?”
“정훈이랑 저랑 고향 여수 친구입니다. 고등학교 동기예요. 좀 불러 주시겠어요?”
“저도 정훈이가 지금 어디 있는지 몰라요. 여기 연락처 남겨놓으면 정훈이한테 전달할게요.”
조교가 메모지와 볼펜을 김용수에게 건네준다.
“정훈이가 제 연락처는 알고 있고요. 제 이름을 적어놓을게요. 그리고 전칠성이라는 친구도 정훈이를 보고 싶다고 전해주세요.”
촌스러운 김용수의 행동에 조교가 빙긋이 웃는다.
“그나저나 정훈이가 언제 판사가 될까요?”
“그야 곧 되겠죠.”
“우리 정훈이가 우리 고등학교에서 제일 공부 잘한 애에요. 여기 메모 꼭 좀 전달해주세요.”
김용수가 습관적으로 거수경례를 조교에게 하고 나간다. 그런 김용수의 행동에 조교가 ‘저 친구 도대체 누구지?’하는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최지혜가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다. 이때 몇몇 학생들이 나타나 유인물을 한 장씩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 그러다가 최지혜와 눈이 마주친다. 순간적으로 그 학생이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가 표정이 바뀐다. 그리고 내려놓으려던 유인물을 최지혜에게 주지 않고 도로 가져간다. 최지혜도 잠시 무안했지만 이내 덤덤하게 다시 책을 본다.
곧이어 교내 시위가 벌어졌다. 탈춤반 학생들이 북과 꽹과리를 쳐대며 캠퍼스에 시위 분위기를 띄운다.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학생들이 도서관 유리창을 통해 시위하는 걸 구경하는데, 최지혜는 책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법학과 사무실을 나와서 정문으로 가는 길을 못 찾아 헤매고 있던 김용수가 물어물어 가까스로 정문 근처에 왔는데 바로 시위대와 만났다. 교문을 막고 있던 전투경찰들이 최루탄을 발사한다. 그러자 시위대가 흩어진다. 그러나 김용수는 얼떨결에 머리 위에서 터진 최루탄의
분말액을 그대로 머리부터 뒤집어써서 주저앉는다. 학생들을 체포하기 위해 달려온 사복 체포조가 혼자 도망가지 않고 콜록대고 있는 김용수를 낚아챈다. 때리기 시작한다. 김용수가 그제야 상황을 알아차리고 이들에게 소리친다.
“야, 이거 놔! 그만해 새끼들아!”
“뭐야, 이 새끼.”
“같은 식구야!”
김용수의 같은 식구라는 외침에 사복 체포조들의 구타가 멈춘다.
“살살 좀 때려라! 서울대 애들 이렇게 맞으면 뒤지겠다.”
김용수가 불평 아닌 불평을 이들에게 한다.
“우리 * 망원인가 봐.”
사복 체포조들이 수군거리며 김용수를 풀어준다. 혼자 남아 재채기에 콧물까지 흘리면서도 김용수 얼굴이 밝다.
“나를 망원, 프락치로 아네, 내가 학생처럼 생겼나? 그것도 서울대 학생.”
* 망원: 경찰이나 정보기관이 운동권에 심은 프락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