뱁새 눈 사복 체포조의 째진 말 한마디에 김철수씨는 버스바닥이 자신의 머리를 끌어당기는 중력처럼 대가리를 박았다.
“지금부터 갖고 있는 소지품을 다 꺼내놓는다. 실시!”
중고등학교 다닐 때 뒷골목에서 불량배에게 ‘뒤져서 나오면 1원에 한 대씩’이라는 깡패들 기본 수칙 발언을 오랜만에 듣는 기분이다. 그러나 그때처럼 김철수씨의 행동은 잽싸다. 한 대라도 덜 맞기 위해서다. 그런데 시위 현장에서 체포된 남녀 대학생들은 행동이 굼뜨다. 굼뜬게 아니라 일부러 느린 행동으로 반항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과 달리 순수 시민 김철수씨는 불순한 늪에서 벗어나기 위해 호주머니 안에 있는 내용물을 제일 먼저 꺼내 놓는다. 땀에 젖은 1만원짜리 지폐 한 장, 담배 한갑에 라이터가 꺼내진다. 학생들의 소지품을 일일이 보고 있던 사복체포조 한명이 김철수씨의 일회용 싸구려 라이터를 보더니
“너, 이 새끼 화염병 던졌지?”
하고 김철수씨를 몰아 세운다
“화... 화염병이라뇨?”
“여기 증거가 있잖아. 라이터!”
사복체포조가 라이터를 들어 올린다. 중학생 때 불량배에게 삥을 뜯기다가 뒷주머니에 들어있던 천원짜리 지폐 한 장을 생각하지 못해 1원에 곱하기 법칙으로 뒤지게 맞은 그 날이 떠올랐다. 그날의 악몽을 피하기 위해 김철수씨는 부리나케 담배를 보여주며 막내동생 뻘인 사복체포조에게 깍듯한 답변을 한다.
“담배피려고 갖고 다닌 건데요”
사복 체포조가 약간 늙수그레한 김철수씨의 얼굴을 보고 담배를 압수하듯 갖고 간다. 그나마 다행이다. 담배 삥뜻기는 거로...... 그러고보니 얼마전 경찰 발표에 의하면 가두 시위 적극 가담자 중에서 화염병 투척자는 엄중처벌한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었다.
전투경찰버스 안에서 화염병 투척자, 각목 휘두는 자, 그리고 유인물을 살포한 자들은 적극 가담자로 분류됐다. 단순히 지나가다가 붙들려온 자들은 선처를 이제 기다리고 있다. 이 중에 한명 최대한 순박한 표정을 짓고 있는 김철수씨에게 천상의 메시지가 들려온다.
“거기 아저씨 같은 분! 나가세요”
김철수씨는 사복체포조의 갑작스런 존대어에 마치 군대 제대할 때 감동의 물결이 눈 쪽으로 휘몰려가며 눈물을 왈칵 쏟을 뻔했다. 앞쪽의 적극 가담자 학생들을 밀치면서 떳떳하게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이 가방 누구거야?”
라는 전경 소대장의 말에 김철수씨가 걸음을 멈춘다.
“이거 주인 없어?”
전경 소대장이 들고 있는 가방은 김철수씨가 잃어버린 가방이다. 김철수씨는 달아나려던 행운이 다시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텔레파시를 느꼈다. 아~ 저 가방을 다시 찾다니.... 하늘이 점지해준 신춘문예 당선은 따놓고 오버해서 나가는 김에 노벨 문학상까지 가능한 소설 원고가 들어있는 가방이다.
“제 껀데요”
뒤돌아서서 김철수씨가 손을 들었다. 전투경찰 소대장이 가방을 건네주려다가 가방을 열어본다. 그리고 그 안에서 김철수씨가 평소 메모해뒀던 소설 스토리, 소재거리 등이 적혀있는 수첩을 뒤져보며 김철수씨에게 묻는다
“이거 당신거 진짜 맞어?”
“네, 맞습니다. 양지 다이어리고요 맨 뒤에 보면 김철수라고 주인 이름 쓰여져 있습니다”
김철수씨가 역시 수첩 맨 뒷장에 자기 이름을 써놓은 걸 다행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라? 이게 뭐야?”
수첩을 넘기던 전경 소대장의 양미간이 좁혀지며 목소리 끝이 갈라진다. 그러면서 수첩에 김철수씨가 어저께 써놓은 메모를 소리내어 읽는다
“전혀 예상치 못한 공격으로 마지막 순간에 뒤집어 버리지 못하면 실패한다. 반전?”
반전이라는 단어가 전경 소대장 입에서 튀어 나올 때, 밖에서 대학생 시위대의 함성과 함께 노래 소리가 멀리서부터 들려오기 시작한다.
- 제국의 발톱이 이 강토 이 산하를 할퀴고 간 상처에 성조기만 나부겨 민족의 생존이 핵폭풍 전야에 섰다 반전 반핵 양키 고홈!
밖에서 부르는 시위 학생들의 반전, 반핵 양키 고홈! 운동가요에 왜 <반전>이 있는거지? 김철수씨가 미스테리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전경 소대장이 들고있던 가방으로 김철수씨의 머리를 후려친다.
“이 새끼가 진짜 주동(시위 주동자)이네 , 뭐? 예상치 못한 공격으로 뒤집어 버리지 못하면 실패한다. 그러면서 반전! 글씨를 진하게 칠해놨네. 야! 본부에 무전때려 큰 고기 하나 낚았다고”
전경 소대장의 지시에 부하 무전병이 찰리, 부라보 어쩌고 저쩌고를 무전기에 씨부리고 있다. 반전 반핵 양키 고홈을 외치는 시위대 구호가 김철수씨 소설의 반전을 불순하게 포장시켜 버린 것이다.
“그 반전은 그러니깐 전쟁에 반대한다는 반전이 아니라 그러니깐 한문으로 이렇게.....”
하면서 자기 손바닥에 반전 한자를 써보려는 김철수씨가 역시 전쟁할 때 전자를 한자로 못쓰고 더듬거리자 전경 소대장의 워커발이 이번엔 가슴에 날아와 꽂혔다. 뒤로 벌커덩 몸이 뒤집혀 넘어가는 김철수씨의 오늘 하루는 분명 실패다. 신춘문예 응모 소설 당선을 꿈꾸며 버스에서 조용히 석방되려던 김철수씨는 마지막에 더럽게 뒤집혔다. 확실히 반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