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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panic_98447
    작성자 : 빛나는길
    추천 : 9
    조회수 : 1217
    IP : 118.129.***.30
    댓글 : 1개
    등록시간 : 2018/05/10 09:13:34
    http://todayhumor.com/?panic_98447 모바일
    <빽판혁명 04> 경찰의 불심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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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4.
     
    공장 안으로 들어온 내게 사장이 뭔가를 보여줬다.
    CD 음반이라고 알어?
    레코드판보다는 훨씬 작고 은빛 색깔인데 이건 진짜로 몰랐다. 처음 보는 거였다. 사장 말에 의하면 레코드판처럼 이 안에 노래가 담겨있다는 거였다.
    8군에 갔다가 하나 얻어 왔어
    들어보고 싶은데요?
    아직 못 들어, CD음반을 작동시킬 기기가 세운상가에 없어
    호기심어린 내게 사장이 지구 종말을 예언하듯 선언을 했다.
    8군 애들이 레코드판 시대가 끝날거래
    말도 안돼요, 레코드판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요?
    내가 정색을 하자 사장이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말을 이었다.
    사실 레코드판은 듣기가 너무 불편해, 판에 먼지 잘 묻지, 판에 기스만 살짝 나도 바늘이 틱틱거리며 넘어가지도 못하고 암튼 사람들은 편한 걸 원하잖아
    빽판 찍어서 먹고 사는 양반이 자기 장사에 기스나는, 흠집나는 발언을 하시다니.....
     
    오늘 업무가 끝나갔다. 내가 찍어낸 레인보우 빽판을 사장이 앨범 재킷에 집어넣어 바닥에 차곡차곡 쌓았다. 김장철, 양념을 버무린 배추가 빨간 고무대야 안에 쌓이는 모습과 흡사했다. 그 모습에 약간의 행복감이 밀려왔다. 수배당하고 나서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TV에서는 프로야구 중계가 끝나고 9시 뉴스를 했다. 아홉시를 알리는 시계소리에 맞춰 뉴스앵커가 늘 해대던 전두환 대통령께서는이라는 말대신 프로야구 결과를 제일 먼저 전했다.
    - OB 베어스의 김유동 선수가 삼성 라이온즈 이선희 투수를 상대로 역전 만루홈런을 쳐서 OB 베어스가 한국 프로야구 원년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뉴스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프로야구 소식이 끝나고 들려온 앵커의 다음 뉴스에 나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다.
    - 년말 년시를 앞두고 검찰은 불법복제 음반 단속을 대대적으로 실시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곧이어 눈에 익숙한 프레싱 기계, 라벨링 기계, 타자기 그리고 빽판들이 보였다. 경악스런 내 표정과는 달리 사장은 올 것이 왔다는 듯 덤덤하게 TV 화면만 응시하고 있었다.
    - 발본색원 일망타진을 목표로 검찰은 건전한 음반시장의 유통질서를 어지럽히는 불법음반을 제작 판매한 자는 적발 시 1년 이하 징역, 2천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고 .......
     
    뉴스가 끝났는데도 사장은 눈만 끔벅거리고 있었다. 그런 사장이 답답하게 보였다.
    사장님 몸을 피하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수배 중인 내가 지금 남 걱정할 처지가 아닌데 사장을 걱정했다. 갑자기 바깥이 소란스러워졌다. 수십 명이 동시에 이동하는 구둣발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후다닥 복도로 나가보니 경찰들이 고함을 지르며 사람들을 연행해 가고 있었다. 아까 봤던 업주가 잡혀가는 걸봐서 포르노 비디오 상영 사무실을 경찰이 급습한 것 같았다. 우리 공장도 안전하지 못할거라는 위기감이 피부로 전해왔다.
    일단 여기를 나가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내가 사장의 팔을 잡아끌자 사장은 원판 레코드판들을 배낭에 챙겨 넣었다. 나도 숨겨놨던 레닌의 번역문과 영문책자를 가방에 넣었다. 1층까지 내려가는 엘리베이터가 있었지만 그걸 탈 엄두가 안 났다. 그래서 컴컴한 세운상가 복도 계단을 통해 밑으로 내려갔다. 4층 계단에서 잠시 멈췄다. 내가 창문을 통해 밖의 상황을 살피는데 상가 정문 도로에는 전투경찰 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정문으로 내려가면 위험할 거 같아 다시 돌아가려는데 뒤에서 우리를 불러 세웠다. 21조 전투경찰들이었다. 그들 손에서 들려오는 무전기 소리에 그제서야 내가 수배자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 가방 안에는 국가보안법 위반인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 한글번역본과 책자가 숨죽이고 있었다.
     
    ! 가방 열어봐
    내 나이보다도 어려보이는 전경 하나가 사장과 나를 향해 반말을 지껄였다. 다른 전경 하나는 내 옆에 바짝 붙어 섰다. 침이 내 목울대를 넘어가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가방을 열었다. 전경의 손이 레닌의 책자를 꺼냈다. 그리고 책의 제목을 읽었다. 피가 바짝 말랐다. 호흡도 멈췄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처럼 지금 이 순간이 일 년처럼 느껴졌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아인슈타인이면 과학자?”
    검문 전경이 자기가 묻고 답하며 확신이 반반인 듯 내 얼굴을 쳐다봤다.
    ! 과학자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논문입니다
    내가 차분히 응대해줬다. ‘맞췄지하며 잘난 척 하듯 다른 전경에게 어깨를 으쓱했다. 다행이었다.
    그래도 아인슈타인이 누군지는 아는 놈이 검문을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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