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주가 지난 후,
허강배와 상필이 회사에 나타났다. 강릉에서 서울까지 진짜로 걸어온 거였다. 조직원들은 경악했고 더 큰 경악은 6개월 후 , 상필이 성철파의 보스로 등극한 거였다. 차멀미로 조직생활 부적응 자가 초고속 승진을 하며 조직을 하나하나 장악해나갔다. 물론 거기엔 허강배의 절대적인 후원 , 빽(Back)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자가용 대신 지하철을 이용해 출퇴근하는 상필의 모습이 어느 신문기자에게 포착됐다. 검소한 청년 실업가로 포장되면서 모 정치권에서 국회의원으로 영입하려 한다는 여의도 찌라시까지 나돌았다.
상필이 보스가 된 후, 처음으로 룸살롱에 갔다. 이 업소 사장 겸 오브리 밴드 마스터는 예전에 팝송신청을 했던 상필의 관자놀이를 찔렀던 녀석이다. 내일, 새 출발을 하려는 상필은 어제의 일들은 다 잊었다. 상필이 오브리 밴드 마스터에게 예의를 갖춰 부탁을 했다.
“오늘은 제가 기타를 칠 테니 밴드 마스터는 보스가 되어 보시죠?”
‘이러시면 안 됩니다’ 면서 손을 연신 흔들어대는 밴드 마스터에게 팁까지 두둑히 챙겨줬다. 밴드 마스터가 이게 웬 떡이냐? 싶은 액션으로 조폭두목처럼 소파에 앉았다. 그 옆에는 호스티스 2명이 합석했다. 상필은 밴드 마스터의 ‘반짝이 무대 의상’을 걸치고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노래방 기계에서 ‘원더풀 투나잇’ 노래 반주가 시작됐다.
상필이 눈을 감았다. 보스가 된 후로는 차멀미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걷거나 지하철을 탔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찰, 정치인, 공무원 등에 로비해야하는 구역질나는 생존방식에 결심을 했다. 이 노래가 끝나면 조직생활을 청산하고 고향 보길도에 가서 허강배와 함께 ‘걷기여행 트래킹 사업’을 하기로 했다.
영혼의 흐느낌으로 기타를 치고 있는데 벌컥, 문이 열렸다. 감히 성철파 보스가 있는 룸에 노크도 없이 등장한 무례한 놈들 2명의 손에는 사시미 칼이 들려있었다. 호스티스들을 끼고 거만하게 술을 마시고 있는 밴드 마스터를 보고 한명이 소리쳤다
“저 새끼 제껴”
눈을 감고 연주에 몰입, 심취해 있는 상필에게 이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조만간 펼쳐질 사태를 전광석처럼 판단한 밴드 마스터가 ‘보스는 저 사람’이라고 검지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하지만 이 행동은 명을 재촉하는 손가락질 욕인 퍽유(Fuck You)로 비춰졌고 밴드마스터를 향해 다가오는 사시미 칼날에는 청테이프 6cm가 감겨있지 않았다. 이것은 찔림을 당할 상대에 대해 어떤 예의도 차리지 않고 법적 최고형까지 각오한 행위였다. 밴드 마스터의 검지 손가락이 제일 먼저 댕강 날아가고 호스티스들이 질러대는 비명도 무아지경에 빠진 상필의 귀를 열지 못했다. 오늘 밤은 황홀한 밤, 원더풀 투나잇(Wonderful Tonight) 이었다. 일말의 자비심도 없이 작업을 끝낸 자들은 도망을 쳤고 호스티스들은 피범벅된 바닥을 벌벌 떨며 기어서 나갔다.
기타연주가 끝났다. 기타 줄의 미세한 진동도 멈췄다. 상필의 입에 물려있던 담배의 길게 늘어진 재가 떨어져 내렸다. 이 담뱃재는 사이키델릭한 조명 불빛에 나비들이 나빌레라 춤을 추듯 내려와 바닥에 흩어졌다. 세상은 참 고요했다. 그제서야 상필이 감았던 눈을 뜬다
-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