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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현대 사학의 전개 과정에 대해서 간단하게 글을 씁니다.
한국 근현대 사학은 반제국주의와 반봉건주의의 의식을 확립하면서
중세론적 윤리사관에서 벗어나고 종교와 정치로부터 학문으로의 독립을 추구합니다.
또한 이전 왕조사관에서 민족과 민중으로 주체를 옮기려는 시도도합니다.
또한 인과관계와 문헌실증주의를 추구합니다.
이 사관의 배경에는 식민사관이 있는데,
식민사관에 물들거나 이를 극복하는 방향을 가집니다,.
이러한 근대사학의 최초의 사서는 박은식의 한국통사로 볼수 있습니다.
근대 사학에는 크게 3가지 학파가 있는데
먼저
신채호 박은식을 중심으로 한 민족주의 사학입니다.
신채호 선생의 경우
역사학을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여기고 역사의 핵심을 민족의식의 성쇠에 두었으며 아와 비아의 투쟁의 기록이라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또한 전통사학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통해 사료비판에 공을 들였고, 근대적 방법론을 수용했습니다.
박은식의 경우
국민의 민족적 자각을 사상적으로 뒷받침해주는 한국사과능 ㄹ제시하는 공을 세웠습니다.
특히, 이 민족주의 사학은 식민사관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비판했습니다.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속이 다 후련하죠.
하지만 한계도 분명히 있습니다.
먼저 민족관념을 지나치게 강조했다는 것
대외투쟁사나 영웅사관의 강조로 최소한의 보편성을 결여해 고립이 우려되었다는 것
역사발전에 대한 개념을 정립하지 않고 결여된 것
낭가사상이나 국혼, 얼 같은 관념성에 치우쳐있다는 것입니다.
이 이념은 남북한이 모두 해방후 계승하게 됩니다.
다음 학파는 백남운 등의 사회경제사학인데요
이는 쉽게 맑시즘의 유물사관을 수용한 것입니다.
한국사를 보편적 발전론에 입각해서 설명하고자 했고
식민사관과 민족사관을 전부 특수한 목적을 가진 사관이라며 비판했습니다.
이 학파의 공로로는
세계사와 관련해서 한국사의 체계화를 최초로 시도했으며
정치사나 투쟁사에서 벗어나 사회사나 경제사등을 개척했다는 것입니다.
한계로는
유럽사가 중심인 유물사관을 한국사에 기계적으로 적용하기에 무리가 있었음에도 이를 적용했다는 것
한국사의 특수성을 배제했다는 것
일원론적 역사법칙은 타당성이 결여되었다는 것 등을 들수 있습니다.
마지막 학파는
이병도, 이상백, 손진태 등이 진단학회를 중심으로 추구한 실증주의 사학입니다.
이 학파는
순수학문으로써의 사학을 표방해서
민족주의 식민사학 사회경제 사학에 거리를 두었습니다.
일정한 사관에 집착하지 않고 구체적 연구를 통한 역사를 지향했습니다,
그리고 문헌실증이라는 귀납적인 연구 방법을 중시했습니다.
실증주의학파의 공로는
역사학의 학문적 깊이를 깊이고, 과학적 논리성을 확보했다는 것입니다.
한계점으로는
실증은 역사학의 기초조건에 불과한데, 여기서 더 발전하지 않았다는 것과
사관이 빈곤해서 사관 위에서 역사에 대한 일반적 의미를 추구하는 작업에 소극적이었다는 것.
그리고 식민사학에 정면으로 대항하지 않고, 거리를 두는 정도에 머물렀다는 것입니다.
실증주의 사학은 남한의 현재 아카데미즘 사학의 주류를 이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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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강단사학이 비판 받는 것이 식민사학의 내용을 그대로 두고 한국사를 축소 왜곡해서 가르친다는 것입니다만
실증주의 학파가 민족사관처럼 식민사학을 통렬하게 비판하지는 않았지만
거리를 두고 극복하려는 시도를 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 중에 하나고요.
또 현재 소위 강단사학은 실증주의사학과 민족주의 사학이 융합된 형태로 해방후에 식민사관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또한
현재 비판 받는 통설이라는 것은 당시에 나온 유물과 문헌적 고증에 따라 최대한의 타당한 학설입니다.
더 많은 유물이 발굴되거나 새로운 문헌사료가 등장하거나
유물을 고증하는 기술이 발달되 기존 유물을 재해석할수 있다면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것입니다.
흔히들 강단사학을 비판하면서 식민사관의 찌질이들 같은 이미지를 생각하시는데
강단사학에서 손가락 빨고 있지는 않습니다.
엄연히 식민사관의 잔재를 극복하기 위해 노략하고 있고, 지금도 수많은 교수님들과 사학자선배님들이
잠을 설쳐가며 연구하고 있는 곳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륙삼국설이니 뭐니를 부정한다고 매국노니 식민사학이니 친일이니 하는 소리가 역겹기만 합니다.
제가 누누히 말하지만
하나의 학설이 재대로 뼈대를 갖추려면
문헌과 유물이 맞아야합니다.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거해서 대륙에 삼국이 있었을 가능성과 환단고기가 실제일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합니다.
하지만 아직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유물이 거의 없거나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a라는 책에 기록된 내용이 비슷한 시기의 비슷한 내용을 다룬 b,c등의 책에 없다면 이또한 깊게 고민해야지 넙죽 적용해서는 안되는 일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이것은 사학이 아니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역게에 계시는 몇몇 분들이 주장하시는 바는 어렵지 않게 확인 할수 있습니다만
일이 이렇게 되버린데는 상호간의 공존이나 토론을 통한 발전없이
반대 = 친일 식민적 강단사학
추천 = 진정한 한국인 식의 이분법적 구조에서 탈피 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사학이라는 학문은 유물과 기록이 일치하고 그 내용을 뒷받침할 증거가 충분해야지만이 재대로된 학설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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