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신 고모부가 해준 이야기 하나 풀겠습니다.
고모부께선 함경북도 원산 주변 어딘가가 고향이십니다.
(오래 전 이야기라 정확히 기억이 안 나네요.)
항상 하시는 말씀이 저에게
'어느 놈이고 간에 원산에 들어가려면 내 땅을 지나지 않고는 어림도 없었다. ' 라고 하실 만큼 부자였다고 합니다.
인성도 좋으셔서 북한정권이 설립되고 지주들을 숙청하는 시기에도 지역 주민들이 도와줘서 땅만 반환하는 데에 그쳤고
지역 공산당 (고모부께서는 쌀집 셋째놈이라고 하십니다.) 이 이런저런 편의를 봐주었다고 합니다.
그런 고모부가 어렸을 때 유독 마을에서 소나 닭, 개가 자주 없어지고
그 주변에 하얗고 고운 털이 발견되어 혹 백호가 산에 사는 게 아닌가 해서 일본순사에게 토벌을 요청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본순사 몇 명이랑 사냥꾼, 인근 일본군대에서 온 군인들 이렇게 해서
한 달간 이산 저산을 돌며 사냥을 했고 멧돼지랑 곰, 호랑이 2마리를 잡았다고 합니다.
마을에선 호랑이가 잡혔다는 소식에 기뻐 잔치를 열었고
고모부도 고기를 잔뜩 드시고는 배가 불러 고모부의 아버지가 있는 곳에 갔는데
마을 어르신이랑 사냥꾼 대표. 그리고 고모부의 아버지가 무언가 진지한 이야기를 하고 계시더랍니다.
그 당시에는 너무 졸려서 제대로 말을 듣지는 못했는데
"잡은 범이 그 범이 아니다." 라는 이야기와
"발견된 하얀털 역시 백호라 하기에는 너무 길고 곱다. 호랑이가 아닌 범이다."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고 합니다.
그로부터 얼마 뒤 고모부는 고모부와 사냥을 다니던 삼촌과 함께 우시장에서 소 한 마리를 사서 마을로 돌아가는 중이었답니다.
늦은밤 길을 오르면서 달구지에 탄 고모부는 보름달을 바라보다 잠이 솔솔 와 잠깐 잠이 들었다고 합니다.
얼마나 잠들었을까?
삼촌이 고모부를 깨워서 일어나보니 삼촌의 얼굴이 파랗다 못해 새하얗게 질려있었고
손과 발은 덜덜 떨면서 사냥할 때 쓰던 총을 꽉쥐고 있었다고 합니다.
겁에 질린 삼촌의 모습에 왜 그러시냐고 물으니 삼촌이 황급히 손으로 고모부의 입을 막으며 하는 말씀이
"조용히 하라. 큰소리 내면 너랑 나랑 살아서 못 돌아간다 조용히 해라."
그러시면서 연신 고개를 돌려 주변을 확인하시고 있었다고 합니다.
젊었을 적에는 홀로 산에 들어가 호랑이 곰도 곧잘 잡으시던 삼촌의 겁먹은 모습에
막 사춘기에 접어들던 고모부도 무언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입을 꽉 다물고 달구지 위에 얌전히 앉아있었답니다.
삼촌은 총을 장전하고는 여전히 달구지 주변을 맴돌며 주변을 살피고 있었고
우시장에서 사온 소 역시도 무언가로부터 공포를 느꼈는지 똥 오줌을 지렸다고 합니다.
얼마큼 시간이 또 흘러 어느새 잠이 들었던 고모부가 격한 움직임에 눈을 떠보니
삼촌이 자신을 업고서는 미친 듯이 마을로 뛰어가고 있었고,
반대편에서는 고모부의 아버지가 마을 사람들과 함께 횃불을 들고 달려오셨다고 합니다.
삼촌은 고모부를 아버지에게 넘기면서 "소는 도저히 가져올 수가 없었다." 고 하셨고
아버지는 "사람이 살아서 왔음 됐지, 소야 또 사면 되는 거 아닌가? 혹 오면서 강씨는 못 봤나?" 라고 물으셨고
삼촌은 고모부를 바라보더니 애부터 재우고 이야기하자고 하셨답니다.
몇 년이 흘러 고모부가 성인이 되었을 무렵 오랜만에 삼촌이 집에 오셨기에 그 날의 일을 물어봤더니,
삼촌이 한숨을 깊게 내쉬시곤 곰방대에 담뱃불을 붙여 한모금 깊게 마시고 내뱉기를 수차례하시더니,
"그 날 산길을 다 올라가서는 소가 힘들어 하는 거 같고 너도 곤히 자고 있기에 잠시 쉬기로 하고
곰방대에 불을 붙여 담배를 피기 시작했지.
얼마나 지났을까?? 멀리서 약초꾼 강씨가 달려오는 게 보이는 거야.
옷도 엉망이고 망태는 어디다 잊어버렸는지 보이지 않고 한쪽 신도 보이지 않고
몸도 엉망이 돼서는 나를 부르며 도와달라고 살려달라고 하는데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생겼다고 생각하고서는 달구지에 놓인 총을 꺼내 장전하고 돌아서니 강씨가 온데간데 없는 거야.
그 잠깐 사이에 말이다...... 그래서 총을 들고 달구지 주변을 보는데.... 그래..... 그 날은 보름달이 떴었지 암.....
바닥에 그림자가 있어 올려다보니 강씨가 나무 위에 덜렁거리며 매달려 있었고
그런 강씨 위에 새하얀 게 파란 안광을 비추며 날 보고 있더구나.
그래...확실히 날보고 있었어. 그 순간 든 생각이 가만히 있으면 죽는다 였어.
그래서 급히 총을 겨누었지.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몰라.
식은땀이 흘러 눈에 들어가 잠깐 눈을 깜박였다가 다시 보니 그게 없었졌어, 강씨랑 같이.......
그래서 널 깨웠는데 그 놈의 시선이 느껴졌어.... 진득하게 말이야.
마치 호랑이가 먹이감을 바라보던 눈빛.... 아니 그거보다 더했지.
그래서 말하려던 너의 입을 막고 다시 총을 쥐고 달구지 주변을 빙빙 돌았어.
어디서 올 지 몰라서 말이야. 다행히 천으로 달구지를 덮어서 그게 널 못 봤지 싶다.
한참을 그렇게 있다보니 이러다가 너랑 나 둘다 죽지 싶더구나.
그래서 소를 풀어 반대쪽으로 뛰어가게 하고는 널 업고 냅따 뛰었지.
한참을 내려가는데 뒤에서 소 울음소리가 크게 몇 번 울리더니 사그라지는데 본능적으로 놈이 내쪽으로 올거란 생각이 들더구나.
그래서 더 힘주어 달렸지.
산중턱을 지나 산을 얼추 빠져나올 때가 돼가는데 뒤에서 강씨 목소리가 들리는 거야!!!
애절한 목소리..... 그 목소리가 너무나.....애절하고.......애절했어.
그 목소리를 듣고서야 내가 본 게 범이라는 걸 알았지, 애절한 목소리였지만 뒤돌아볼 엄두가 나지 않더구나.....
난 이산 저산 다니며 산군을 잡았으니 벌 받아도 할말 없지만 넌 아니잖니, 그래서 이 악물고 달렸지.
강씨 목소리가 잠잠해지니 곧 낙엽 밟는 소리가 사사삭하고 뒤에서 들리는데
점점 가까워지더니 이윽고 그 소리가 옆에서 들리는 거야.
그땐 이젠 틀렸구나 싶었는데 다행히 너의 아버지가 사람들을 데려와서 살았지.
다음 날 어떻게 사람들을 데리고 나왔냐고 물어보니 네 아버지가 하는 말이,
저녁에 마루에 서서 산을 보는데 웬 파란 불빛이 일렁이면서 움직이고 있더란다.
도깨비불도 아닌 것이 마을로 내려오기에 이상하다 싶어 하인들이랑 횃불을 켜고 마을을 한 바퀴 도는데
약초꾼 강씨 아내가 허겁지겁 달려오더니 범이 집에 와 애를 잡아갔고 강씨가 낫을 들고 뒤따라 갔다고 하더구나.
그래서 네 아버지가 마을 사람들을 모아 산을 오르다가 나를 만난게지.
마을 사람들이 이산 저산 돌아다니며 강씨랑 강씨네 아들을 찾으러 다녔는데 찾은 건 강씨 뿐이었어.
계곡 돌무더기에 널부러져 있었는데 하반신은 못 찾았어...... 강씨네 아들이랑....
그 뒤로 그 산으로 향하는 길을 막고는 다들 돌아서 갔지. 한동안 범이 산에서 돌아다니던 게 보였어, 밤에 말이다."
이 말을 끝으로 삼촌은 입을 굳게 다무셨다고 합니다.
그 이후 삼촌도 돌아가시고 조용하다가 6.25 전쟁이 터졌고,
원산에 주둔하던 부대 일부가 고모부와 마을 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 산에 들어갔고
며칠 뒤 야심한 밤에 총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더니 그 다음 날 아침 군인들이 서둘러 떠났다고 합니다.
그 이후에는 고모부도 이곳에선 더이상 힘들어서 못 살거 같아 흥남에서 배타고 부산으로 넘어오셨다고 합니다.
출처 공포 게시판 글라라J님
다 읽고 끝에를 보니 글라라J님인데 이거 글라라J님이 쓰신건가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