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흔히들 로또라 부르는 첫 난자채취, 첫 이식에서 아이를 맞이하여 지금 14주차입니다. 자연임신이 안되었다는 점에서는 운이 없지만, 첫 이식에 성공했다는 점에서는 천운이 따른 아이러니한 상황이네요.
※환율은 모두 100엔=1000원으로 계산했습니다.
※여기서 적은 '확률'은 제가 병원에서 설명을 들었던 내용을 적은 것입니다.
0. 요약
바쁘신 분, 금액만 알고싶으신 분들을 위한 요약입니다. 저도 이렇게 표를 만들고 나서야 내 돈이 얼마나 들어갔는지 알았습니다... 어렴풋이 자기 부담이 한 40~50만엔쯤 되려나??? 했는데 이렇게 많이 썼을 줄이야....
1. 스크리닝 검사
남: 통원횟수 1회, 총 비용 31,200엔 (약 312,000원)
여: 통원횟수 3회, 총 비용 33,060엔 (약 330,600원)
기본적인 검사입니다. 남녀 공통으로 각종 전염병과 호르몬 검사를 하구요, 남자는 정액의 양과 활동성, 여자는 자궁과 난관 등등 장기? 초음파 검사 등을 합니다.
여자는, 생리주기에 따라 검사 가능 시기가 정해진 것들이 있어서 통원 횟수가 2회~4회 정도입니다.
2. 과배란 유도
여: 통원횟수 4회, 총 비용 157,230엔 (약 1,572,300원)
보통은 검사 후 타이밍 요법이나 인공수정을 시도하지만, 저는 그냥 시험관 직행의 경우를 쓰겠습니다.
갈 때마다 초음파 검사와 혈액(호르몬 수치) 검사를 하는데, 이것만도 벌써 회당 6500엔 정도. 과배란을 유도하는 주사제값이 총 131,310엔이었습니다.
저는 가장 약값이 많이 들지만 컨트롤이 가장 안정적이라는 안타고니스트법으로 과배란을 유도했는데, 주사제가 아닌 코에 뿌리는 약?으로 하면 좀 더 저렴해진다고 들었어요. 이 과정이 다들 가장 힘들다고 하는 "내 배에 주사놓기" 과정입니다.
3. 난자채취+수정+배양+동결
남: 통원횟수 1회(정액 제출용. 병원이 가까운면 안가도 됨)
여: 통원횟수 5회, 총 비용 540,440엔 (약 5,404,400원)
총 비용 중, 난자 채취 216,000엔, 배양비용 108,000엔, 국소마취비용 21,600엔, 미세수정비용 54,000엔, 동결비용 54,000엔 입니다.
그외는 검사비용 등등입니다. 난자 채취 전후로 난소나 자궁 상태를 확인하는 비용이죠.
*확률①: 만 29세 이하는 1회 채란으로 평균 15개, 30~34세 10개, 35세~39세 5개 정도의 난자를 채취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저는 총 8개의 난자를 채취했지만, 수정을 할 수 있는 난자는 5개였습니다. 딱 평균값...
*확률②: 수정할 수 있는 난자에 정자를 들이붓거나 현미경으로 꽂아주거나, 수정이 되는 확률은 70~80%라고 합니다.
저희는 수정을 시도한 5개 중, 3개가 수정되었습니다. 이 단계에서, 수정된 지 얼마 안된 신선한 수정란을 이식하기도 합니다. 저는 모두 동결하기로 해서 '배반포'까지 배양을 시켰습니다.
*확률③: 수정이 성공된 수정란이라해도 모두 배반포까지 성장하는 건 아닙니다. 대개 50% 정도만이 배반포가 된다고 합니다.
저희는 3개의 수정란 중, 단 한 개만이 동결가능한 배반포로 자라났습니다.
번외1. 자궁내 폴립 제거 수술
여: 통원횟수 3회, 총 비용 21,130엔 (약 211,300원)
자궁 내에 폴립이 있으면 착상률이 떨어진다고 해서, 이식하기 전에 제거 수술을 받았습니다. 이게 크게 도움이 되었던 게, 폴립 제거 수술을 받고 나면 착상률이 두 배로 높아진다고 합니다. 자궁 내막이 깨끗해져서 그렇기도 하지만, 내막이 상처를 입고 그걸 치유하려는 과정에서 착상이 더 잘된다고 하네요. 그래서 시험관을 여러번 해도 착상이 잘 안되는 경우에는 일부러 자궁 내막에 상처를 내고, 이식을 하는 시술도 있다고 합니다.
4. 동결란 해동과 이식(호르몬 보충 요법)
여: 통원횟수 4회, 총 비용 198,240엔 (약 1,982,400원)
총 비용 중, 해동과 이식비용 108,000엔, 호르몬 보충용 약값 72,960엔 입니다. 그외는 검사비용 등등입니다.
이식을 하는 주기에는 임신확률을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해서 호르몬 보충요법을 합니다. 일본에서는 대부분의 여성들이 호르몬 보충요법을 하는 것 같아요. 저도 딱히 호르몬이 부족하지는 않다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보충을 하더라구요.
5. 임신확인과 호르몬 안정기(9주)까지
여: 통원횟수 5회, 총 비용 154,830엔 (약1,548,300원)
임신 확인만 되면 이제 바로 일반 병원으로 가는 게 아닌가 싶었는데, 호르몬 보충요법으로 임신이 된 경우, 9주~10주까지는 계속해서 호르몬을 보충해주어야 한다고 합니다. 여기에 들어간 약값만 64,040엔. 여전히 건강보험은 적용이 안됩니다.
*확률: 이건 글로 쓰는 것 보다 그래프가 보기 편할 것 같아서... 여성의 연령별 이식 1회당 임신률입니다.
제 만 나이로 보면 한 번의 이식으로 제가 임신할 수 있는 확률은 약 30% 정도. 흔히들 "로또"라 표현하지만 1/3의 확률이라면 로또보다는 훨씬 크죠. 제가 다닌 병원에서는 20대의 경우 대부분이 채란 1~2회, 30대도 채란 2~3회 안에 임신이 된다고 합니다. 그 이상 해도 안되는 경우는 무언가 다른 이상이 있는 것으로 생각해서 검사를 받게 되구요.
번외2. 교통비
제가 사는 지역은 의료면에서 질이 많이 떨어진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시험관 하는 곳이 두 곳인데 실적이 그리 좋지 못하다고 하구요. 그래서 고속버스로 왕복 5시간 거리의 병원에 다녔습니다. 그나마 고속버스를 타고 가면 왕복 5,200엔이지만, 신칸센을 이용하면 14,000엔 정도입니다. 맨위의 요약표에서는 모두 버스를 이용했다치고 계산했는데, 사실은 신칸센도 몇번 탔기 때문에 실제 교통비는 18만엔을 훌쩍 넘길 것으로 생각됩니다. 일본 교통비 정말 너무하다능...
번외3. 정부보조금
일본 전국적으로는 시술1회(난자채취~수정~동결~해동~이식) 당 15만엔이 정부보조금으로 나옵니다. 저처럼 '난자채취~수정~동결' 후 수술을 받는다거나 해서 잠시 시험관을 멈춘 후 '동결란 해동~이식' 과정을 이어서 할 경우 난자채취~동결을 1회로 보고 15만엔, 해동~이식을 별도 1회로 보아서 7만5천엔의 보조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다만, 사는 지역에 따라서 저같은 경우에도 난자채취~이식을 모두 합해 1회로 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보조금은 여성의 나이가 만 42세까지만 받을 수 있고, 일생에 총 6회까지 신청 가능합니다.
제가 사는 현은 감사하게도 전국공통 보조금에 더해 첫번째 시술에 15만엔을 지급합니다. 일생에 딱 한 번! 그리고 더더욱 감사하게도, 제가 사는 시에서는 1년도에 최대 10만엔까지 별도로 보조금을 지급합니다. 따라서 사는 지역에 따라서 15만엔밖에 못받을 수도 있었던 보조금을, 저는 1회차에 40만엔, 2회차에 7만5천엔을 받았습니다. 물론, 이것보다 더 주는 지자체도 있습니다. 가장 많이 주는 곳은, 연간 100만엔 한도로 전액 지원하기도 합니다.
임신 확률을 높이기 위해 노력한 것?
1. 운동
임신확률을 높이려면 자궁 내막을 두껍게 해야한다고 합니다(하지만 너무 두꺼우면 오래된 내막이 남아있는 것이라 오히려 좋지 않다고 하네요... 이건 의사샘이 알아서 판단해 주시겠죠). 저는 원래도 내막이 두꺼운 편이었지만, 혈액순환을 더 좋게 하기위해 가능한 매일 걷기를 의식적으로 했습니다. 헬스장에 가서 에어로빅도 하구요.
2. 웃기
이식 후, 매일 코미디 등을 보고 많이 웃은 여성의 임신률이 그렇지 않은 여성들보다 높다는 걸 보고, 일부러 매일매일 시트콤 등등 웃긴 영상을 많이 찾아봤습니다. 남편에게도 이 논문 얘기를 했더니 평소의 3배 이상으로 애교를 떨어서 저를 많이 웃게해줬구요.
3. 회유하기
매일 아랫배를 쓰다듬으며 "아가... 네가 이번에 엄마 뱃속에서 자라주면... 엄마가 식기세척기를 살 수가 있어!! 엄마는 설거지가 세상에서 제일 싫단다... 엄마가 편하면 너도 편하겠지?? 그니까 꼭 이번에 보자..."라고 회유했습니다.
4. 영양제
남들 다 먹는다는 오메가3, 비타민C/D/E 먹고 엄마가 보내주신 익모초도 먹었어요. 임신준비용으로 엽산도 먹구요. 근데 의사 선생님들이 그러더라구요. 한약, 뜸, 침, 마사지, 영양제 등등에 현혹되지 말라구요. 안하는 것보다야 낫겠지... 라는 마음으로 시도한다면 말리지는 않지만, 그걸로 임신되었다고 하는 사람들은 그걸 안했어도 임신이 되었을 사람들이라고. 저도 그냥 안먹는 것보다야 낫겠지(엽산빼고)란 마음으로 먹었습니다.
남편분들께 부탁드리고 싶은 것
과정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시험관 시술은 대부분 여성에게만 부담이 가는 시술입니다. 저희 남편도 병원에 가야했던 건 딱 두번이었구요. 교통비가 워낙 비싸서 데리고 다닐 생각도 안들었기에 저 혼자 다녔어요. 제가 나이가 많아 임신이 안되나~ 하는 생각에 우울하기도 했구요. 그 때 남편이 할 수 있는 건 절 웃게 해주고 감싸주는 것이었습니다.
타이밍에서 실패했을 때는 "미안해, 내가 길치라, 내 정자들도 길을 못찾아서 임신이 안되나봐...", 채취한 난자 5개 중 3개밖에 수정이 안되었을 때는 "미안해, 내 정자들이 그렇게 벽을 뚫으려고 노오력들을 안해서... 도전 정신이 없나봐...", 수정란 3개 중 배반포로 성장한 게 1개 밖에 없을 때는 "미안해, 내 정자들이 게을러 터져서 그래..."라고 농담이지만 다 자기탓이라고 말해줬어요. 아기가 안생겨도 둘이 알콩달콩 살면 좋고 생기면 생기는대로 셋이서 잘 살자고도 해주구요. 물론 단 하나밖에 없던 동결란으로 임신 양성판정을 받았을 때는 "거봐!! 내 정자들이 좀 게으르긴 해도, 한다면 하는 애들이야!"라고 뿌듯해하기도 했지만요.
아내분들 몸도 힘들지만 마음이 더 힘들어요. 내가 못나서...라는 죄책감과, 이대로 아이가 안생기면 어쩌나하는 불안감을 함께 나눠주세요...
마지막으로
자연임신이든 시험관이든, 노력한다고 다 되면 아기때문에 맘아프신 분들 없겠죠. 마음 편하게 가지면 생긴다지만, 그럼 아이를 바라도 못만나는 사람들은 마음도 편하게 못먹어서 그런건가요...
저도 운좋게 시험관 한 번에 아이를 얻었지만, 그 전에 타이밍이며 인공수정이며 1년 반 정도 노력한 끝에 아이를 뱃속에 얻고 보니,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하나하나 다 기적이구나 싶습니다. 평범한 아이 한 명이 사실 세상 모든 기적의 모음같아요.
글이 좀 길어졌는데, 제가 이 글을 쓴 가장 큰 이유는 혹시 지금 시험관을 고민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생각보다 확률이 그리 낮지 않으니 하루라도 빨리 시도해보시라고 권해드리고 싶어서에요. 10월부터 한국에서는 건강보험 적용도 받으니까요.(한국의 시술비용과 보조금을 잘 몰라서 어느정도 금액이 될 지는 모르겠지만...) 부디 아이를 원하시는 모든 분들께 행복한 소식이 오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