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옆에서 전화기를 만지작거리다 말을 걸었다.
“여보, 내일이 어머니 칠순 생신인데...”
“알잖아. 연락하지마.”
아내는 긴 한숨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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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0년 전 비슷한 대화.
“여보, 어머니 생신 3월 26일 맞지?”
“아… 그런가? 그건 왜?”
“아니, 이번이 어머니 환갑이라... 조금 전에 전화드렸더니 화를 내시잖아.”
“하—내가 연락하지 말랬잖아.”
“아무리 그래도 환갑인데... 절대로 오지 말라고 그러시니... 용돈이라도 좀 준비해서 보내드려야 하잖아... 어휴—당신도 솔직히 너무해. 부모님 생신 챙길 생각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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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부모님은 생일을 챙기지 않는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내 외가 친척들 모두 생일을 챙기지 않는다.
생일 케잌이나 선물을 고사하고 미역국 조차 해먹지 않는다.
나는 부모님 결혼기념일은 알고 있어도 두 분 생신은 기억하지 못한다.
생일은 일년 365일 중 그저 흔한 하루일 뿐.
돌사진 하나 없는건 조금 아쉽긴 하지만...
뭐... 그래도 나만 없는게 아니니까.
나의 외가쪽 사촌들을 보면 내 한살 위 선희 누나부터 그 아래로는 돌사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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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사촌 중 큰이모의 막내딸인 선희 누나와 나는 특별히 가까웠다.
나이가 비슷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외할머니에게 받은 차별이 만든 동지애 때문이었다.
외할머니에게 누나와 나는 ‘외’손주들, 딸의 자식들이었다.
딸의 딸이었던 선희 누나에 대한 외할머니의 차별은 특히나 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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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여름방학이 되면 우리 외사촌들은 모두들 외가댁에 모였다.
썰물이 되어 만경강에 물이 빠지면 뻘에서 하던 물놀이.
대나무를 꺾어 농수로에서 하는 낚시.
외가댁 뒷편 야산에 올라가 구워 먹던 감자와 고구마.
논에서 잡은 개구리로 하는 달리기 경주.
내 삶에 그 시절 만큼 재미있던 시간이 또 있었을까.
하루는 밥을 남긴 선희 누나에게 외할머니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외가댁의 밥상머리 예절은 무척 엄격했다.
외가댁에 갈 때면 어머니는 어린 나에게 밥먹을 때 조심해야할 것들을 반복해서 알려주셨다.
반찬 투정하지 않는 것은 기본 중에 기본이었고,
어떤 일이 있어도 밥상 앞에서 울지 않기.
그리고 밥을 다먹으면 밥그릇에 물을 둘러 밥풀 하나 남김 없이 먹는 것까지.
그런데 누나가 밥을 절반도 먹지 않고 남겼으니...
외할머니의 불호령은 당연했다.
선희 누나는 서울집에 가고 싶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나는 울고 있는 누나를 대신해 외할머니에게 대들기 시작했다.
먹기 싫으면 남길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사촌 형들은 나를 안아서 마당으로 데리고 나왔고,
그날 나와 선희 누나는 하루 종일 밥을 먹지 못했다.
물론 형들이 몰래 간식거리를 가져다줘 굶지는 않았지만.
그 이후로도 외할머니가 선희 누나를 차별하는 일이 종종 있었고,
그럴 때마다 나는 아무말도 못하는 누나를 대신해서 외할머니에게 대들곤 했다.
그러면 외할머니는 나에게 애미를 닮아서 성깔이 보통이 아니라고 혀를 차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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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3이 되던 해 설날.
우리 외가 친척들은 외할머니가 계시는 외가댁으로 모였다.
명문대에 합격한 선희 누나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오갔다.
대학에 입학한 손주가 있으면 외할머니는 늘 세배돈으로 대학 입학금을 내주셨다.
우리 외사촌들은 그걸 ‘할머니 장학금’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선희 누나가 대학에 입학한 그 해에는 ‘할머니 장학금’이 없을 거라 했다.
1년 전부터 외할머니는 건강이 많이 안좋아지셨고,
결국 재산을 대부분 정리해 자식들에게 나누어 주셨다고 한다.
이런 사정을 몰랐던 나는 외할머니가 선희 누나를 특별히 미워해서 그런거라 오해했다.
차례를 마치고 모두 모여서 외할머니께 세배를 드렸다.
외삼촌과 숙모, 이모와 이모부 그리고 어머니와 아버지께서 모여 단체로 세배를 했고,
다음으로 손주들이 모여 세배를 했다.
외할머니는 손주들 한명 한명에게 덕담을 해주셨다.
선희 누나 차례.
외할머니는 누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짧게 대학간 것 축하한다고만 하셨다.
그 다음은 나.
“현규, 너도 올 한해 건강하고, 공부 열심히 해서 선희처럼 좋은 학교에 가야지.”
“노력할께요. 그런데 저는 공부 머리가 아니라서 대학에 갈 수 있으려나 모르겠어요. 하하. 할머니도 건강하세요. 저...... 그리고 하고 싶은 말이 하나 있는데...”
“응? 해봐.”
“할머니, 선희 누나 정말 좋은 대학교에 들어갔는데... 이제 누나 좀 예뻐해주세요.”
할머니의 표정은 굳어졌고, 나는 그대로 어머니에게 귀가 잡힌 채로 안방에서 끌려나왔다.
어머니는 나를 부엌으로 끌고 갔고, 어머니의 등짝 스메싱이 날라왔다.
“넌 지금 나이가 몇 살인데 아직까지 그런 철 없는 소리를 하는거야!”
“사실이잖아! 할머니가 선희 누나 미워하는거! 다 아는거 엄마만 모르는거야?”
“어휴! 너는! 도대체!”
한숨은 내쉬던 어머니는 낮은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선희 누나가 어릴 때부터 하는 짓이나 얼굴 생김새가 둘째 이모를 꼭 빼어 닮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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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둘째 이모를 본 적이 없다.
내가 태어나기 1년 전 쯤.
외할머니의 환갑 잔치가 있었다고 한다.
요즘이야 나이 60이면 노인 축에 끼지도 못하고, 환갑에 크게 잔치하는 일이 드물지만...
그 시절 환갑은 중요한 경조사 중 하나였다.
특히나 시골 마을의 유지였던 외가댁.
외삼촌과 큰이모는 외할머니의 환갑 잔치를 무척 신경써서 준비했다고 한다.
나의 어머니는 4남매 중 막내딸이다.
큰이모, 외삼촌, 둘째 이모, 그리고 어머니.
외할머니 환갑 잔치 당시.
둘째 이모는 연탄 가스 사고의 후유증으로 몸과 마음이 온전치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외할머니는 환갑 잔치를 앞두고 둘째 이모를 무척 보고싶어하셨다고.
그리고 외할머니의 생신 하루 전.
늦은 밤 외삼촌은 둘째 이모부에게서 연락을 받았단다.
밤기차를 타고 오던 중 화장실에 간다고 객실을 나선 둘째 이모가 사라졌다고.
이튿날 새벽 외삼촌은 둘째 이모를 찾으러 대전으로 갔고,
첫째 이모와 어머니가 동네 사람들과 함께 외할머니의 환갑 잔치를 치뤘다고 한다.
둘째 이모는 실종되고 이틀이 지나서야 기찻길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요즘은 문을 열고 운행하는 기차가 없지만,
그 시절에는 기차의 객실칸 사이, 타고 내리는 곳에 문이 아예 없었다.
그래서 달리는 기차에서 실족으로 인한 사고가 없지 않았다고.
당신 생신에 딸의 제사상을 챙기셔야 했던 외할머니.
그 이후로 외가쪽에서는 아무도 생일을 챙기지 않았다고 한다.
외할머니는 딸이 죽은 줄도 모르고 잔치상을 받고 즐거워했다는 죄책감에 돌아가시는 날까지 괴로워하셨다고 한다.
지금 돌이켜보면 외할머니 살아생전에 나는 외할머니께서 웃는 모습을 본 기억이 없다. 단 한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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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재수를 한 끝에 서울에 있는 대학에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
대학 입학을 앞두고 있던 1997년 설날.
손주들에게 세배를 받으신 외할머니는 나의 차례가 되어 말씀하셨다.
“현규, 너는 특별히 졸업할 때까지 이 할미가 학비를 내줄란다.”
“정말요? 할머니. 하하. 감사합니다.”
“대신 이 할미랑 약속 하나 하자.”
“무슨 약속이요?”
“데모하는데 안가기로.”
“하하. 할머니, 80년대도 아니고 요즘 데모가 어디 있어요?”
“없기는. 여름에 선희네 학교에서 데모한다고 뉴스에 난리도 아니더라. 선희 걱정이 되서 내가 그때 두다리 뻗고 잠을 못잤다. 특히 너는 니 엄마 닮아서 성깔이 보통이 아니야. 그러니 이 할미가 걱정이 안되게 생겼냐?”
옆에 있던 어머니가 한마디 했다.
“아유 어머니, 현규가 지 할머니가 만만하니까 성깔 부리는 거지. 나한테는 고분고분해요.”
외할머니는 실눈을 뜨고 어머니를 바라보며 말했다.
“예끼. 니년 이겨먹을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되겠냐? 응?”
외할머니의 말에 우리 친척들은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외할머니는 내가 졸업할 때까지 등록금을 내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셨다.
나는 군복무 중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어야 했다.
외할머니 장례를 마치고 부모님은 나를 군 부대까지 데려다 주셨다.
차에서 어머니는 나에게 외할머니에 대한 오해를 풀라며 이야기를 하나 해주셨다.
“너... 할머니가 이모들이랑 외손주들 차별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할머니가 원래부터 그런건 아니었어.”
“그게 무슨 말이야?”
“네 둘째 이모가 사고로 그렇게 가고나서... 할머니가 그렇게 변한거야.”
어머니는 고개를 돌려 반대편 창밖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그런데 엄마는 네 할머니 이해해. 그리고... 할머니가 정말로 딸자식들 차별 했으면 니 엄마가 가만히 있을 사람 같니?”
“그건 그렇긴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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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머니께서 돌아가시고 2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지난번 외할머니 기일을 며칠 앞두고 나는 꿈을 하나 꿨고,
이렇게 외할머니에게 보내는 이야기를 쓰고 있다.
나는 원래 꿈을 잘 안꾸는 편인데...
그날은 꿈이 무척 생생했다.
꿈에... 외할머니와 선희 누나는 서로를 마주보고 앉아있었다.
그리고 외할머니는 두손으로 누나의 얼굴을 어루만지고 계셨다.
그렇게 둘은 한참 동안... 아무런 말도 없이 서로를 하염없이 바라보고만 있었다.
외할머니의 미소가 담긴 얼굴.
그게 내가 처음 본 웃고 있는 외할머니의 모습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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