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4호.
요즘엔 잠을 자도 개운하지가 않았다. 몇 달 전부터 계속되어왔던 불면증 덕이었다. 병원
에도 몇 번 가보았지만 스트레스라는 말만으로 불면증의 원인을 단정지었다.
몇 마디의 상담과 몇 개의 알약. 그게 다였다.
나는 요 며칠째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해 충혈된 눈을 비비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내 경험으
로 잠이 오지 않을 때, 억지로 자려하면 더 피곤한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젠장.”
담배 한개피를 꺼내 입에 물었다. 잠을 잘 수 없으니 담배라도 피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았
다.
“라이터, 젠장, 라이터를 어디 뒀더라.”
나는 몇 번 머리를 두드리자 라이터를 양복 안주머니에 넣어뒀다는 것을 기억했다. 일어나
기 귀찮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3시 35분.’
라이터를 꺼내들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오늘도 잠을 자기는 그른 것 같다. 만일을 대비해
서 초저녁에 침대에 누웠건만, 벌써 새벽 3시 반이라니…….
“후우…….”
담배연기가 길게 뿜어져 나왔다. 니코틴이 폐 속으로 깊게 박히는 것을 느끼며 피곤이 약
간이라도 사라지는 것 같았다.
“내가 이래서 담배를 끊을 수 없다니까.”
담배라도 없었다면 난 이미 죽은지 오래되었을 것이다.
대학 때부터 8년간 사겨왔던 애인이 그렇게 끊으라고 했을때도, 끊지 않았던 버텨왔던게
생각해보면 내 인생에서 유일한 현명한 선택이었다.
다섯 달간 3시간 이상 자본 날들이 손에 꼽을 정도였으니…….
“현경아…….”
새삼스레 옛 생각을 떠올리니 떠나보낸 그녀 생각도 났다. 벌써 2년이라,
“쳇, 피곤하니 궁상까지 떨고있냐 재진아.”
나는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고는 다시 시계를 봤다.
03:39분.
‘차가운 새벽공기를 쐬면 조금 나아질지도…….’
새벽공기를 맞으며 피곤을 조금 날려버리는 것도 좋은 생각일 것 같았다. 나는 억지로 기
지개를 펴며 현관문으로 걸어갔다.
다다닥.
“으응?”
그때 문밖에서 누군가 뛰어다니는 소리가 들렸다. 신문 배달원인가? 문을 열고 통로 쪽을
보니 옆집의 신문 투입구에 신문이 반쯤 나와 있었다.
“요즘 신문 배달은 이렇게 일찍부터 하는가 보군.”
나는 약간은 놀라면서도 더 이상의 관심은 두지 않았다. 왜냐하면 새벽 공기가 예상외로
달콤했기 때문이다. 새벽 공기가 이렇게 좋았던가? 나는 새벽에 밖에 나오는 것도 나쁘지
만은 않다고 생각하며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확실히 담배 연기보다는 신선했다. 담배보다는…….
“쳇.”
담배를 생각하니 또 그녀가 떠올랐다. 봄의 햇살처럼 밝았던 그녀. 대학시절부터 언제나
내 뒤를 졸졸 따라왔던 현경…….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보고싶다고 해도 볼 수 없었다. 그녀는 이미 이 세상에 없으니. 나를
떠나가버린지 이미 오래전이었으니.
눈가에 약간이지만 이슬이 맺혔다. 궁상맞아도 이렇게 궁상맞을 수 있을까. 나는 고개를
흔들며 애써 생각을 지워버렸다.
“킁, 그나저나 오늘은 오지게도 날씨가 좋네. 후.”
확실하게 새벽공기가 효과가 있는 듯했다. 이 상태로 침대에 누우면 바로 잠이 들것만 같
았다. 나는 오랜만에 입가에 웃음을 지으며 현관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응?”
소리가 났다. 이상한 소리다. 처음 듣는 소리. 나는 반사적으로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손잡이는 반쯤 돌아가 있었다. 이상한 소리다……. 이상한……,
“어?”
얼굴?
왜, 여기에…….
왜 얼굴이, 누구지? 여자? 여자인가?“
순간 얼굴에 물방울들이 튀었다. 그 차가움이 흐렸던 정신을 날카롭게 찔렀다.
“어?”
여기가 몇 층이었지?
손잡이를 잡았던 나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시간은 03:46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댓글 분란 또는 분쟁 때문에 전체 댓글이 블라인드 처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