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를 도와주는 기계.’
정부 주관 경연대회에서 우수상품으로 선정된 기계 치고는 꽤나 으스스한 명칭이었다.
“이거 어디 쓸데나 있겠어요?”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가졌지만, 일단 우수상품으로 선정된 만큼 실용성에 대한 테스트를 받게 되었다. 소규모 연구소가 차려지고, 대대적으로 실험자를 모집했다.
‘임상실험 대상자를 모집합니다.’
필요한 것은 오로지 간단한 이력서와 복수를 할 대상에 대한 사연뿐이었다. 연구소에서 생각했던 것 보다, 많은 사람들이 실험에 응모했다. 무료봉사라도 좋으니, 제발 뽑아 달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연구소는 엄격한 과정을 거쳐 최초의 실험 대상을 선발했다. 이름은 이영호, 나이 28세의 취업준비생이었다.
이영호가 복수를 하고 싶은 대상은 이전에 다녔던 중소기업의 사장이었다. 그 사장은 사내커플이었던 이영호의 여자친구를 성폭행 했다. 그는 재판을 받았지만, 심신미약 및 정신병을 이유로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고 병원에 입원했다. 여자친구는 그 사실에 분노해 작년 겨울 자살을 했다. 사실상의 살인이었다.
실험 방법은 간단했다. 먼저 기계의 힘을 빌려 실험자의 상상력을 극대화 해 그가 원하는 복수를 할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복수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인간이 느끼는 허무함을 깨닫게 해 줌으로써 복수가 가지는 무의미함을 인식시키는 것이었다. 이 모든 과정을 거친 인간은 다시 원래의 평온함을 찾을 수 있다는 설계였다.
“자, 영호 씨의 사연은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연구소장이 이영호에게 말했다. 실험실에는 연구소장과 이영호, 연구원 등 총 네 명이 있었다.
“네.”
이영호가 짧게 대답했다. 그는 여자친구의 복수를 위해 할 수 있는 노력을 다 했다. 인터넷 청원부터 1인 시위, 서명운동까지 벌였지만, 결국 그에게 남은 것은 벌금과 접근금지 명령뿐이었다.
“이미 설명을 들으셨겠지만, 이 기계는 영호 씨의 복수를 도와 줄 겁니다.”
“네.”
“기계에 들어가면, 영호 씨가 상상하던 장면이 펼쳐질 겁니다. 거기서 영호 씨는 본인이 생각했던 복수를 이뤄 주시면 됩니다.”
소장이 이영호의 옆에 있는 기계를 보며 말했다. MRI처럼 누워서 사용하게끔 되어 있는 기계에는 뇌파를 측정하는데 사용하는 것 같은 장치가 달려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복수가 끝난 다음에 느끼는 감정을 잘 기억하는 겁니다. 그 감정이 복수에 대한 응어리를 해소해 줄 테니까요. 준비 되셨나요?”
“네.”
이영호가 기계 위에 올라가 눕자, 연구원 하나가 이영호의 머리에 뇌파를 측정하는 장치를 부착했다.
“자, 그럼 복수를 시작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영호가 기계 안으로 들어간 다음, 출구가 밀폐되었다.
“괜찮을까요?”
한 연구원이 소장에게 물었다.
“뭐가?”
“이영호 씨요. 흥분 수치가 너무 낮은 것 같은데….”
“그건 우리가 알 수 없는 거지. 아, 시작 됐다. 일단 화면에 집중 하자고.”
소장이 가리킨 화면에는 이영호의 상상이 영상으로 재생되고 있었다.
이영호는 눈을 뜨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익숙한 풍경이었다. 이영호가 있는 곳은 1년 전까지 자기가 다니던 회사의 사장실이었다. 그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죽은 여자친구가 성폭행을 당했던 곳도 사장의 사무실이었다. 손에 든 검은 방망이를 꼭 움켜쥔 채, 누가 들어오더라도 들키지 않도록 몸을 화초 뒤로 숨겼다. 잠시 후 누군가 말을 하며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사장실의 문이 열리고, 환자복을 입은 사람이 들어왔다. 사장이었다. 이영호는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것을 느꼈다. 가슴 한쪽이 뜨거워 지면서, 참을 수 없을 만큼의 분노가 끓어올랐다.
“흥분 수치가 조금씩 올라가고 있네요.”
“다행이군. 계속 영상을 보자고.”
소장과 연구원이 다시 영상으로 눈을 돌렸다.
“최학길 이 십새끼야!”
이영호가 화초 뒤에서 뛰어 나와 들고 있던 방망이로 사장을 내려쳤다.
“누, 누구….”
방망이가 박살나며, 사장은 뒤 돌아볼 틈도 없이 자리에 쓰러졌다. 이영호는 사장실의 문을 잠그고, 쓰러진 그를 붙잡아 마구 때렸다. 주먹으로도 때리고, 발로도 때리고, 때릴 수 있는 것은 다 잡아서 때렸다.
“안에 누구야? 나오지 못해?”
밖에서 누군가 들어오려는 듯 문을 걷어차는 소리가 들렸다.
“너 이 십새끼…, 너 때문에….”
이영호는 이미 축 늘어진 사장을 때리며 오열했다. 생각했던 것에 비해 너무나도 허무한 복수였다. 밖에서 문을 걷어차는 소리가 더 거세지고, 곧이어 직원들이 우루루 쏟아져 들어왔다. 이영호는 끝까지 사장의 멱살을 잡은 채 숨을 가쁘게 쉬었다. 그리고 경찰에게 잡혀 재판 받는 과정이 진행되었다. 하지만 어딘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이영호의 머릿속을 계속 떠다녔다.
다음 순간, 눈을 뜨니 이영호는 다시 연구실로 돌아와 있었다.
“어…, 여, 여긴….”
그는 여전히 가쁜 숨을 내몰아 쉬고 있었다. 자신의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 듯 기계에서 일어나 주변을 돌아보았다.
연구소장과 연구원들이 얼굴의 땀을 닦아주며 이영호를 지켜보고 있었다.
“괜찮으세요?”
소장이 물을 건넸다.
이영호는 아직 여러 가지 감정이 섞여 있는 듯 머리를 흔들었다.
“마음은 좀 편해 지셨나요?”
소장의 다음 질문에 이영호는 겨우 정신을 차렸다.
“아…, 네. 아, 아뇨. 그게 조금….”
“조금?”
“그게…, 너무 순식간에 끝나서 뭐가 뭔지 솔직히 잘…. 그리고 조금 모자란 것 같아요.”
“모자라다구요?”
이영호의 답변에 연구소장과 연구원의 표정에 실망이 떠올랐다.
“음…, 조금 더 자세히 봐야겠지만 이영호 씨는 충분히 시뮬레이션 속에서 복수를 하셨어요. 그리고 거기에서 허무감도 느끼셨구요. 그런데도 부족하다는 말씀이시죠?”
“네.”
“어떤 점이 부족하게 느껴지셨나요?”
이영호는 다시 한 번 상황을 떠올렸다.
자신이 상상하던 복수가 과연 그런 모습이었을까?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 여자친구가 받았던 고통에 비하면 너무 약한 것 같아요.”
“본인이 원하는 최고 상황에 도달하지 못했다, 이 말인가요?”
“네. 혹시….”
“혹시?”
“상황을 좀 다르게 바꿀 수 있을까요?”
이영호의 이야기에 옆에서 듣고 있던 연구원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말해 보세요.”
이영호는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을 이야기 했다.
“하지만 그건 윤리적으로 좀 문제가….”
이야기를 들은 연구원들은 난색을 표했지만, 결국 소장이 밀어붙이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따르게 되었다.
“위험하지 않을까요?”
이영호가 다시 기계에 들어가자, 점검을 하던 연구원 하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쩔 수 없지. 본인이 만족할만한 복수를 해야 거기서 허무감을 느끼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는데, 일단 해 봐야 아는 거지.”
연구소장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다시 이영호의 상상이 화면에 재생되었다.
이번에는 어두컴컴한 방이었다.
이영호는 아까 전의 복수를 곰곰이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여자친구가 받았던 고통에 비하면 약한 것 같다.’
이번에야 말로 천천히, 그 고통을 다 되돌려 주겠다고 결심했다. 자신을 향해 소리치는 사장과 그 옆에서 떨고 있는 딸을 보며 이영호는 웃음을 지었다.
“너 이새끼야. 니가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아?”
“사, 살려 주세요….”
이영호는 사장 앞으로 다가가 그의 뺨을 때렸다. 사장은 분노에 찬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지만, 두 손, 두 발이 모두 묶여 있어 저항을 할 수 없었다.
“자기 상황을 잘 모르나 본데.”
칼을 꺼내 옆에서 떨고 있는 사장 딸의 옷을 찢었다.
“왜…, 왜 이러세요.”
“왜 이러긴. 니 아빠가 잘못한 걸 그대로 돌려주려고 그러지.”
옆에서 사장이 뭐라고 소리를 지르든, 이영호는 그 딸에 집중했다. 속옷을 벗기고 억지로 물건을 집어넣어 강간했다. 한 번으로 만족하지 않고, 보란 듯이 몇 번이고 희롱했다.
“제발 한 번만 봐주게…. 어떻게 내 앞에서 이럴 수가 있는가….”
“제발…, 제발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사장이 용서를 빌면 빌수록 이영호는 더욱 악독해졌다. 그가 더 분노하고 좌절하고 슬퍼하도록 온 힘을 다해서 딸을 욕보였다. 고통스러워하는 그의 목소리를 들으니, 방금 전과는 다른 만족감이 마음속에 스며들었다. 몇 번을 들어도 질리지 않는 비명소리에, 마음 속에서 환호를 질렀다.
영상을 지켜보던 연구소장과 연구원은 이영호의 상태를 유심히 관찰했다. 시작은 방금 전과 비슷했지만, 이영호의 흥분은 절정에 달한 것 같았다.
“이제 슬슬 다른 상황을 부여 할까요?”
“그렇게 해야지.”
버튼을 누르자 영상에서 경찰의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이미 포위되었다는 상투적인 대사가 들리자, 이영호의 흥분 수치가 떨어졌다. 원하던 결과였다. 연구진은 만면에 웃음을 띠었다. 충분한 만족을 이끌어 냈으니 남은 것은 이영호가 깨어나면 어떤지를 관찰하는 것이었다.
“잠깐.”
영상을 빨리 재생하려는 연구원의 손을 소장이 잡았다. 영상을 보니 이영호가 집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얼마나 마음이 아팠겠냐고….”
그렇게 말하며 불을 지르는 그의 표정에는 지독한 좌절감이 묻어 있었다.
예상했던 반응과는 전혀 다른 감정이었다.
“실험 중지 해.”
기계를 끄자 안에서 누워있던 이영호가 천천히 나왔다. 몸 전체가 땀범벅이었을 뿐만 아니라, 이번에는 눈물까지 흘리고 있었다.
연구원들이 수건과 음료수를 줬지만, 그는 계속 허공을 응시한 채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실험은 중지되고 그가 느낀 감상은 그가 진정 된 다음에 듣는 것으로 일정이 변경되었다. 하지만 연구소장과 연구원들은 이영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다. 그가 사장과 그 일가족을 살해하고 집에 불을 내 자살했기 때문이었다.
연구소장은 그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을 떠올렸다.
‘얼마나 마음이 아팠겠냐고….’
이영호는 복수의 희열과 허무함 외에 다른 감정을 느낀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했던 것이다. 그것은 여자 친구에 대한 슬픔이었을까? 확실한 것은 알 수 없었다. 이후 실험이 중지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실험에 다시는 정부 지원이 투자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