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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panic_97684
    작성자 : 달과그림자
    추천 : 36
    조회수 : 4032
    IP : 116.124.***.159
    댓글 : 4개
    등록시간 : 2018/01/11 12:47:42
    http://todayhumor.com/?panic_97684 모바일
    마법의 난로를 사세요!
    옵션
    • 창작글
     거렁뱅이로 보이는 거지가 큰 마을에 들어왔다. 마을 사람들은 좋지 못한 시선을 보냈지만, 구걸을 하지 않자 이내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런데 장이 열리던 날 그 거지가 자리를 잡고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이었다. 

    -마법의 난로를 사세요!

    어느 큰 마을에서 외친 내용은 길거리 모두의 관심을 끌었다. 길거리에 있던 많은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듣고 그가 손에 쥐고 있는 휴대용 난로를 보았다.

    -에이, 아무리 봐도 그냥 낡은 난로인데 어떻게 이게 마법의 난로가 된단 말이오?

     사람들은 코웃음쳤다. 모든 마법이 떠난 시대에, 그런 허풍을 태연히 늘어놓는 사람이 있다니.

    -물론,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을겁니다. 하지만 이 난로는 꺼지지 않는 마법의 난로입니다. 절 보십시오. 이런 누더기를 걸치고도 이 겨울에 팔다리 떨어진 곳 없이 잘 있지 않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다. 방앗간 주인, 푸줏간 주인, 농부, 학자 너나 할 것 없이.

    -마법의 난로라고?
    -네, 할아버지. 절대 꺼지지 않는 난로라고 해서 다들 구경 중이에요.
    -다들 시끄러워진 것이 저것 때문이었구먼.

     그 자리에는 늙은 수집가도 있었다. 부축하고 있는 손자에게 물었다.

    -얘야, 얘야. 내가 눈이 멀어 보이지 않으니 궁금하구나. 난로를 파는 사람은 부유해보이더냐?

    손자는 파는 사람을 다시 한 번 힐끗 보고서는 대답했다.

    -아니요, 할아버지! 난로를 파는 사람은 누더기를 걸치고 있어요!

     늙은 수집가는 턱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얘야, 얘야. 내가 가는 귀를 먹어 잘 들리지 않아 저 사람의 목소리마저 들리지 않는구나. 그렇다면 난로를 파는 사람은 젊은이더냐? 

    손자는 난로를 파는 사람을 다시 한 번 보았다.

    -잘 안보여요, 할아버지.

     손자는 좋은 눈으로 난로를 파는 사람을 구석구석 살폈지만, 도무지 난로를 파는 사람이 젊은 사람인지 늙은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결국 손자는 파는 사람의 약한 목소리로 짐작했다.

    -아마 늙은 사람인 것 같아요.

    -뭐? 얼굴이 젊더냐?

    -아니오, 할아버지. 저 사람은 누더기로 온몸을 너무 꽁꽁 싸매고 있어서 보이지 않아요.

     늙은 수집가는 혀를 쯧, 하며 뒤로 돌아섰다.

    -별 볼일 없는 물건이야. 집으로 돌아가자꾸나. 뒤도 돌아보지 말거라.

     손자는 늙은 수집가의 말에 따라 손을 잡고 천천히 집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뒤를 돌아보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마법의'라는 말은 누구든지 돌아보게 하는 마법이 있었다. 손자가 돌아보았을 때, 사람들은 저마다 그 난로를 사기 위해 아우성이었다.

     그 때였다.

    -여기 신기한 난로가 있다고?
     
    -예, 나으리. 저기 마법의 난로를 팔고 있다고 합니다.

     잔뜩 거드름을 피우는 듯한 영주의 목소리였다. 늙은 수집가는 그 목소리를 듣고 번개를 맞은 사람처럼 멈춰섰다.

    -에이, 별로 귀해보이진 않는데? 그냥 낡은 난로잖아.

     손자는 멈춰선 늙은 수집가를 재촉했다. 

    -할아버지, 어서 집에 가요.

     늙은 수집가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돌아가자.

     손자는 불안한 마음으로 맞장구쳤다.

    -네, 어서 집으로 돌아가요.

    -집이 아니다.

     손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늙은 수집가는 절뚝이며 목소리가 나는 쪽-난로를 파는 자의 앞으로 가서 섰다.

    -난로를 얼마에 파시겠소?

    -여기가 누구 앞이라고 감히!

     영주의 가신이 늙은 수집가를 밀치며 역정을 냈다. 손자는 죄송하다 연신 말하며 고개를 꾸벅 숙이면서 늙은 수집가를 부축하며 다시 집으로 데려가려고 했다.

    -할아버지, 어서 집에 가요.

     늙은 수집가는 완고하게 움직이지 않고 그저 난로를 파는 이에게 물을 뿐이었다.

    -얼마에 파시겠소?

     손자는 화난 듯한 영주의 얼굴과 영주의 가신의 얼굴을 연신 살피며 늙은 수집가의 팔을 끌었다. 

    -제발, 할아버지. 내가 혼자 남게지게 두지 마세요.

     영주에게는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손자가 속삭여도 늙은 수집가는 막무가내였다. 영주의 눈썹이 올라가는 것을 보며 손자는 늙은 수집가의 팔뚝을 세게 꼬집었다.

    -이것은 꼭 내가 사야겠소!

     늙은 수집가는 세게 꼬집혔음에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영혼이 팔린 사람처럼 말할 뿐이었다. 손자는 늙은 수집가의 귀에 비명을 지르듯이 속삭였다.

    -아버지 어머니도 할아버지 수집품을 지키다 죽었잖아요! 제발! 제발 돌아가요! 목숨보다 소중한 게 어디있다고 그러는 거에요!

     늙은 수집가는 손자를 구경꾼들 사이로 밀쳤다. 늙은 노인에게서 어떻게 그런 힘이 나올까 의심스러운 정도로 센 힘이었다. 구경꾼들은 숨을 죽이며 늙은 수집가를 보았다. 그들의 눈에, 또 손자의 눈에 그는 죽고 싶어서 돌이킬 수 없이 환장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구경꾼들은 손자마저 휘말리지 않게 손자를 단단히 붙들었다.

    -이 난로는 내가 사야하오.

     영주는 한 번 콧웃음 치더니 늙은 수집가를 구둣발로 걷어찼다. 늙은 수집가는 흙먼지를 일으키며 나동그라졌다.

    -부탁입니다. 제가 사게 해주십시오. 자식과 딸 같은 며느리 다 잃고 손주 하나 남은 이 늙은이의 소원입니다......

     늙은 수집가는 아랑곳하지 않고 더듬어 가다가 영주의 발에 매달렸다. 영주는 당황해하다가 가신을 불러 떼어내라며 소리를 높였고 가신은 더 아랑곳하지 않고 늙은 수집가를 걷어찼다. 그러나 눈이 붓고, 피멍이 들고, 피를 입에서 질질 흘리며 이빨이 나가도록 늙은 수집가는 떨어지지 않았다. 손자는 영주의 심기를 거슬러 마지막 혈육까지 잃게 될까봐 어떻게 하지도 못하고 손을 깨물며 눈물만 줄줄 흘렸다.

    -얼마인가?

    영주의 말에, 난로를 든 거지가 대답했다.

    -받게.

    영주는 금붙이 하나를 거지에게 던져주었고 거지는 눈에 띄게 기뻐하며 난로를 영주에게 넘겨주었다.

    -내 오늘은 기분이 좋으니 죽이지는 않으마.

     그 말만을 내뱉고 영주는 성으로 돌아갔다. 가신은 침을 퉤 늙은 수집가에게 뱉고서 영주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갔다.

     늙은 수집가는 그 뒷모습을 한참동안이나,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까지, 더 보이지 않게 된 이후로도 해가 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밤이 되어서야 할아버지를 데려올 수 있었던 손자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늙은 수집가에게 소리질렀다.

    -할아버지, 미쳤어요? 

    -얘야.

    -할아버지가 옆 마을에 갔을 때 할아버지 수집품을 지키다가 아빠 엄마도 죽었어요. 그놈의 수집품이 뭐라고 그렇게 해요? 할아버지 목숨보다 그게 그만큼 소중했어요?

     손자는 눈물을 떨구며 씩씩대었다. 그러나 늙은 수집가는 지나치게 평온한 얼굴이었다.

    -나는 귀가 먹지 않았단다.

     늙은 수집가는 이상한 대답을 하며 껄껄 웃었다. 그리고 찬장에서 술을 꺼내며 서재로 들어가며 다시 알아듣지 못할 소리를 했다.

    -그리고 목숨보다 소중한 수집품은 없지만 모든 아비들에게는 목숨보다 소중한 것이 있는 법이다.

     손자는 서재에서 밤새 들려오는 웃음소리에 잠을 못 이루며 생각했다.

    -할아버지는 미쳤어.

     손자는 난로에 눈이 돌아간 것처럼, 영혼이라도 팔린 것처럼 집착하던 늙은 수집가의 모습을 떠올리며 몸서리치다가 마침내 결정했다. 동이 트는 대로 집을 나가겠다고.

     손자는 짐을 싸기 시작했다. 얼마 싸지도 않았건만 다 싸자마자 까마귀가 울고 흐린 창문 건너편으로 컴컴한 하늘에 붉은 것이 번지는 것이, 태양이 터오는 것이 보였다. 

     손자는 집을 나와 한 번 뒤돌아보고, 문을 닫았다. 닫은 문으로도 늙은 수집가의 웃는지 우는지 모를듯한 웃음소리가 계속 들렸다.

    -어?

     손자는 문득 위화감을 느꼈다. 막 동이 튼 것치고는 지나치게 적막이 없었다. 사람들은 물동이를 이고  어딘가로 급하게 달려가고 있었다. 손자는 사람들이 가는 방향을 보았다. 동이 터오고 있다고 생각한 방향이었다.

     영주의 성이 활활, 커다랗게 타오르고 있었다. 멀리서 까마귀 소리라고 생각했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마법의 난로를 사세요!

     옆 마을에, 마법의 난로를 파는 이가 나타났다. 그러나 난로를 꼭 쥔 그의 피부가 물집으로 가득한 것을 보고는, 아무도 마법의 난로를 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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