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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panic_97650
    작성자 : 마스터충달
    추천 : 38
    조회수 : 2500
    IP : 211.187.***.110
    댓글 : 7개
    등록시간 : 2018/01/09 01:41:12
    http://todayhumor.com/?panic_97650 모바일
    [단편] 귀(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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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나무 베던 날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다음 날. 엄마는 매일 화장했다. 손님 받지 않거나 밖에 나가지 않아도 화장했다. 그런데 감나무 베던 날에는 화장도 안 하고 머리도 안 빗었다. 한 번도 입지 않은 새하얀 속적삼에 속곳을 입고 종일 벽만 쳐다봤다. 배고파 엄마한테 밥 달라 했는데 엄마는 암말도 안 했다. 심심하고 배도 고파 광수네 놀러 갔다. 광수 애미가 광수 없다 그랬다. 댓돌에 광수가 자랑하는 고무신 있는데 집에 없다 그랬다. 그래서 돌아 나오는데 배가 너무 고팠다. 그래서 철쭉 따 먹고 있었는데 영감님이 지팡이로 때렸다.

      나는 영감님 싫다. 영감님 맨날 나만 보면 혼냈다. 다른 애들은 안 혼냈다. 정가리가 무슨 말인지 모르는데 정가리 하라 그랬다. 나는 엄마 말도 잘 듣고, 이도 꼬박꼬박 닦고, 반찬 투정도 안 하는데 애들하고 토끼 잡아 왔더니 정가리 안 했다고 지팡이로 막 때렸다. 다른 애들은 안 때렸다. 아저씨들은 영감님만 보면 어쩔 줄 몰라서 허리를 숙였다. 아줌마들은 영감님 지나가면 마당에 있다가도 부엌으로 도망갔다. 그런데 재작년에 싸전 아저씨가 이장님이 되었다. 이장님은 새마을 운동하라고 그랬다. 이장님이 사람들 집 고쳐주고 동네에 경운기도 가져왔다. 영감님 따라다니던 아저씨들이 이장님 따라다녔다. 박 씨 아저씨만 영감님 따라다녔다. 그래서 올 설에 박 씨 아저씨가 술 먹고 다른 아저씨들하고 싸웠다. 애미 애비도 없냐고 화냈다. 영감님은 그걸 보고 가만있었다. 영감님 속이 좁아서 그런다고 광수 애미가 흉봤다. 이장님이 박 씨 아저씨랑 술 먹고 화해했다. 다음날부터 박 씨 아저씨도 이장님 따라다녔다. 

      그래서 영감님 심통이 심해졌다. 예전에는 철쭉 따 먹어도 안 때렸다. 감나무 베던 날에는 때렸다. 나는 너무 아파서 도망쳤다. 마을 입구까지 도망쳤다. 거기에 사람들이 잔뜩 있었다. 아주 커다란 경운기도 있었다. 이상한 모자를 쓴 처음 보는 사람들이 씽씽 소리 나는 칼로 감나무를 잘랐다. 날 쫓아오던 영감님이 그걸 보고는 화냈다. 신님이 노하신다고 화냈다. 이장님이 어쩔 수 없다고 그랬다. 마을 앞에 도로 난다고 했다. 그래야 새마을 운동한다고 했다. 영감님이 지팡이로 이장님을 때렸다. 그걸 본 박 씨 아저씨가 영감님을 밀쳤다. 영감님이 뒤로 넘어졌다. 눈깔이 뒤집히고 입에서 침이 나왔다. 나는 무서워 집으로 도망쳤다. 

      엄마는 그때까지도 벽만 쳐다봤다. 나는 길 따라 다니며 철쭉 따 먹었다. 해 질 녘에 광수가 감자 삶아 줘서 그거 먹었다. 엄마도 배고플 것 같았다. 감자 가지고 집에 가보니 엄마는 아직도 벽만 쳐다봤다. 엄마 감자 먹어. 하고 부르자 엄마가 돌아봤다. 방에 들어오라고 했다. 사당 모신 방에는 절대 들어가면 안 된다고 엄마가 그랬는데. 엄마가 괜찮다고 그래서 들어갔다. 내가 자리에 앉자 엄마가 나를 향해 절했다. 내가 왜 그러냐고 물어도 엎드려서 일어나지 않았다. 엄마 줄 감자가 다 식어버렸다. 엄마가 일어나더니 미안하다고 그랬다. 감자는 안 먹겠다고 했다. 내가 먹어도 되냐고 하니깐 먹으라 했다. 감자가 식어서 맛이 없었다.

      감자를 다 먹고 잠들었다. 광수네 암탉이 우는 소리에 깼다. 엄마가 팔다리를 쭉 펴고 나를 내려다보며 빙글빙글 돌았다. 나는 엄마 발가락을 붙잡았다. 미끈하고 축축한 것이 손에 묻었다. 시큼한 냄새가 났다. 냄새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엄마가 눈앞에서 점점 멀어졌다. 누리한 방 벽도 점점 멀어졌다. 고개를 돌려 문고리로 손을 뻗었는데, 문고리가 점점 멀어져 닿지 않았다. 보이는 게 죄다 점점 멀어졌다. 나는 아랫목에 기어들어 갈 때처럼 어둡고 따뜻한 곳으로 떨어졌다. 몸이 뜨거웠다. 옛날에 얼굴에 꽃이 피었을 때처럼. 나는 겨우 기어서 방을 나왔다. 신발을 신어야 하는데 어지러워서 못 했다. 밭매러 가는 광수 애비가 보였다.

      광수네 애비는 꽉 막혔다. 도통 말을 들어먹질 않는다. 내가 큰일 났다고 손이 온다고 그랬는데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다. 이년이 미쳤냐고 꿀밤까지 때렸다. 지신이 묶고 감나무로 겨우 밟아놓았는데 그걸 풀어준 거야말로 미친 거 아닌가? 나는 답답해서 미치고 팔딱 뛸 것 같았다. 소리를 빽빽 질러서 힘이 하나도 없었다. 광수네 아저씨가 내 뺨따구를 때렸다. 나는 낙엽처럼 흙바닥에 뒹굴었다. 왼뺨에 불이 난 것 같았다. 불길이 뺨을 타고 가슴으로 내려와 온몸으로 퍼졌다. 몸이 열을 가누지 못했다. 입이랑 코로 시꺼먼 피를 뿜었다. 손톱 아래가 시뻘겋게 물들었다. 아랫배가 부글거리고 다리 사이로 피떡이 흘렀다. 광수네 집에서 비명이 들렸다.

      광수 애비가 괭이를 내팽개치고 집으로 뛰 들갔다. 나도 따라갔다. 걸을 때마다 흙바닥에 시꺼먼 피가 묻었다. 광수 애미가 솥에다 물을 끓였다. 펄펄 끓는 물이 솥 밖으로 넘쳐 흘렀다. 솥 안에는 광수 머리가 둥둥 떠 있다. 옆에는 목 없는 광수가 부뚜막에 엎어졌다. 광수 애비가 부엌 앞에서 무릎 꿇었다.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 비명도 신음도 아닌 이상한 소리를 내었다. 서방님 몸보신해야지. 내 금방 고아 드릴게. 오늘은 힘 좀 써보쇼잉. 광수 애미가 요망한 콧소리를 내었다. 광수 애비가 손에 닥치는 대로 무언가 쥐어 광수 애미를 후려갈겼다. 쓰러진 광수 애미 위에 올라타 계속 머리를 두들겼다. 무언가 쪼개지는 소리가 나더니 광수 애미 얼굴이 뭉개졌다. 광수 애비는 으아아 함성을 지르고는 부엌칼을 들어 그대로 목에 찔러 넣었다. 나는 그 꼴을 보고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한참 웃으며 길을 걷다가 싸전 앞에서 발을 멈췄다. 박 씨가 이장에게 고래고래 소리쳤다. 영감님 이대로 못 일어나면 나는 어찌 되능교? 이장은 박 씨에게 등 돌리고 쳐다보지도 않았다. 나보고 어쩌란 말인감? 글게 노인네를 치긴 왜 쳐. 박 씨가 이장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졌다. 성님. 그게 무슨 말이여라? 내가 언제 영감님을 때렸어라? 그냥 살짝 밀었던 거요. 이장이 발을 휘휘 저어 박 씨를 떨쳤다. 나는 모르네. 순사가 알아서 하겄지. 주저앉은 박 씨 어깨가 부들거렸다. 내 가만있을 줄 아쇼? 내 모를 줄 아쇼? 성님 새마을 운동한답시고 뒤로 챙겨 먹는 거 모를 줄 아쇼? 그제서야 이장이 뒤돌아 박 씨를 마주했다. 이놈이 미쳤나. 지금 다 죽자 이 말이가? 그 돈 네도 먹었자네. 박 씨가 벌떡 일어섰다. 하모. 같이 죽자.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장이 박 씨를 걷어찼다. 박 씨가 돼지 염통처럼 데구르르 굴렀다. 쓰러진 박 씨 얼굴 위로 이장의 발길질이 쏟아졌다. 얻어맞던 박 씨가 이장 발을 낚아챘다. 발이 묶인 이장이 균형을 잃고 넘어졌다. 박 씨가 쓰러진 이장의 목을 졸랐다. 이장은 날개 떼인 잠자리처럼 바둥거렸다. 그러다 두 손으로 박 씨 얼굴을 부여잡고 엄지로 눈구멍을 후볐다. 박 씨는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목 조르는 손을 놓지 않았다. 이장의 고개가 맥없이 돌아갔다. 몸은 축 늘어졌으나 옹이구멍에 박힌 엄지는 빠지지 않았다. 박 씨는 그것도 모르는지 계속 비명을 지르며 시체의 목을 졸랐다. 나는 크게 웃음을 터뜨리고 박 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박씨를 뒤로하고 싸전을 빙 돌아 개천가를 거닐었다. 아래로부터 흘러나온 피가 실개천을 붉게 물들였다. 흥이 돋아 저절로 노래가 나왔다. 대머리야 올라가라. 대머리야 올라가라. 실개천을 따라 상류로 올라가면 산을 등지고 냇가를 앞에 둔 목 좋은 곳에 으리으리한 기와집이 보인다. 비록 세월의 풍파에 색이 바랬지만, 그게 오히려 운치를 더했다. 나는 커다란 대문 앞에 서서 엣헴 헛기침을 하고. 이리 오너라. 굵직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하지만 아무 대답도 없었다. 나는 다시. 이리 오너라. 외치고는 킥킥 웃음이 터져버렸다. 육중한 대문을 살짝 밀어보았다. 끼이이익. 음산한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으리으리한 대갓집에 개미 새끼 한 마리 돌아다니지 않았다. 마당을 따라 걷다 보니 마루에 사람들이 보였다. 노인부터 아이까지 굴비라도 엮은 듯 가지런히 대들보에 목을 매었다. 그중에 영감은 없었다.

      "만섭아. 만섭아. 게 있느냐?"
      나는 마루에 올라섰다. 나무 바닥이 흘러나온 피를 빨아들였다. 
      "만섭아. 만섭아. 어디 있니?"
      안방으로 들어서려다 무언가 이상하여 돌아서 사랑방으로 들어갔다. 영감은 그곳에 반듯하게 누워있었다. 하긴 이미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영감을 뭣 하러 안방에 누이겠는가. 쓰지도 않는 사랑방에 두었다 죽으면 묫자리에 처박으면 그만이지. 
      "안 그러냐 만섭아?"
      영감은 아무 대답도 미동도 하지 못했다. 이따금 눈만 껌뻑일 뿐이었다. 나는 영감 입술에 입맞췄다. 영감의 동공이 격하게 흔들렸다. 하긴 너는 그저 벌벌 떠는 것 외에는 어찌할 도리가 없겠지. 네 잘못은 어리석은 선조를 둔 것일 뿐. 공자니 주자니 백날 공부해봤자 내 앞에서 아무 소용도 없는 것을. 차라리 석가를 따르는 게 낫지. 
      "안 그러냐 만섭아?"
      영감은 눈을 껌벅였다.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의사 표현이었다. 
      "네놈이 이 천한 몸뚱어리를 아낀 것을 내가 안다. 어린 몸으로 나를 받아내느라 여러모로 성치 않았는데. 그걸 어르고 달래느라 고생이 많았다."
      입술이 닿은 곳부터 영감이 잿빛으로 타들어 갔다.
      "너만은 혼을 뺏지 않고 보내주마. 재는 재로. 흙은 흙으로. 평범한 길로 보내주마."
      영감이 눈물을 흘렸다. 
      "가는 길에 옛날이야기 하나 해주마. 옛날 너희 마을에 마라(魔羅)가 한 마리 놀러 왔다. 개천은 붉게 물들고, 가축은 죽어 나갔지. 삼정승을 다 지냈다는 네놈 선조는 결국 평소에 그리 천대하던 불씨의 종자를 불렀다. 그 중놈은 대단했지. 밀법뿐 아니라 도술도 능했다. 결국, 나를 가두고 나무를 심고 매년 지신에게 소 한 마리를 바치라 했지. 근데 네놈 선조는 그 소 한 마리 값이 아까웠던 게야. 이 으리으리한 집을 지은 놈이. 그래서 소 대신에 사람을 바쳤다. 용하다는 무당 딸년을 사와 억지로 신을 받게 했지. 그다음은 별로 어렵지 않았어. 부모 잃은 고아나 노비의 사생아는 마르지 않으니까. 그렇게 버려진 아이를 무당의 자식 삼아 신을 이었다. 그것도 이 아이가 마지막이구나."
      이야기가 끝날 즈음 영감의 몸은 다 타버려 새하얀 재만 남았다.

      나는 마당으로 나와 물을 길었다. 무명에 물을 적셔 몸을 정갈히 닦았다. 깨끗이 빨아 잘 개어놓은 옷을 꺼내 입고, 부인이 아꼈을 비단신을 신었다. 어디로 갈까? 어쨌거나 내가 가는 곳마다 피바람이 불겠지. 나는 서산으로 넘어가는 해를 등지고 아무도 없는 마을을 떠났다. 피 냄새를 맡은 까마귀 떼가 머리 위를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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