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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panic_97639
    작성자 : 크리스마스
    추천 : 32
    조회수 : 4032
    IP : 124.57.***.61
    댓글 : 13개
    등록시간 : 2018/01/08 02:55:14
    http://todayhumor.com/?panic_97639 모바일
    (엽편) 저승사자의 실수
    옵션
    • 창작글
     
    201818일 새벽 19분 영미는 자신의 자취방에서 죽었다. 사인은 심장마비. 오랜만에 출판사에서 인세를 받은 기념으로 보일러를 켰는데, 이렇게 빨리 죽다니 왠지 억울했다.
    조금만 더 있게 해달라고 애원했지만, 저승사자는 시간이 없다며 영미를 재촉했다. 집을 나와 매일 버스를 타는 익숙한 정류장에 도착하자, 어슴푸레한 어둠 속에서 버스 한 대가 도착했다. 버스는 영미와 저승사자를 태우자마자 출발했다.
    버스 안에는 이미 몇 사람이 타고 있었다. 태어 난지 얼마 안 된 것 같은 아기도 있었고, 환자복을 입은 할머니도 있었다.
    영미가 자리에 앉자, 저승사자가 그 옆에 조용히 따라 앉았다.
    가만히 창문을 바라보고 있자니, 버스는 어느새 영미가 알고 있는 곳이 아닌 지하세계로 들어와 있었다.
    터널 같은 곳을 계속 보고 있자니 지루해서, 저승사자를 보았다. 검은 넥타이를 맨 저승사자는 손에 서류를 들고 이것저것 확인하고 있었다. 그중에는 영미의 서류도 있었다.
     
    , 저 이영미 아닌데.”
     
    저승사자는 헛소리 하지 말라는 표정을 짓고는 다시 서류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영미는 낡은 잠바를 뒤적거렸다. 동전 몇 개 밖에 들지 않은 지갑에서 주민등록증을 찾아 저승사자에게 보여주었다.
     
    자 봐요. 저 이영미 아니에요. 서영미에요.”
     
    저승사자는 가지고 있던 서류와 주민등록증을 이리저리 대조해 보았다.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영미에게 주민등록증을 건네 준 다음 미안하다고 말했다.
     
    미안 합니다, 옆집 아가씨를 데려 왔어야 하는데 잘못 데리고 온 것 같아요.”
     
    영미는 기가 막혀 할 말을 잊어버렸다.
     
    이거 놔요. 나 내릴 거에요.”
     
    아니, 잠깐만 제 말 좀 들어 보세요.”
     
    저승사자는 내리겠다고 소리치는 영미를 붙잡아 자리에 다시 앉혔다.
     
    지금 이 차는 저승으로 들어가는 차라 여기서 걸어가면 하루 종일 걸어도 원래 있던 곳으로 갈 수 없어요.”
     
    그럼 어쩌란 말이에요?”
     
    아침에 지상으로 돌아가는 차가 있어요. 그걸 탈 때 까지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그리고 제가 실수 했으니, 조용히만 계셔 주신다면 차가 오기 전까지 저승 구경도 시켜 드릴게요.”
     
    화가 났지만, 저승 구경이라는 말에 영미는 솔깃했다. 여기서 저승 구경을 하고 다시 지상으로 가면, 그 이야기를 써서 부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알겠어요. 대신 아침이 되면 보내 주시는 거에요?”
     
    저승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버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터널을 빠져 나왔다. 커다란 건물이 보이고, 그 주변으로 수많은 버스와 사람들이 보였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사람의 수였다.
    버스는 영미와 다른 승객들을 내려 주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할머니와 아이는 각각 담당 저승사자의 안내를 따라 줄을 서기 시작했다.
     
    저 줄은 뭐에요?”
     
    여기서 심사업무를 해요. 나이, 성별, 국적, 종교 뭐, 여러 가지 기준에 따라서 갈리죠.”
     
    그런 것도 구별하나요?”
     
    저승사자는 줄서는 곳 대신 다른 문으로 안내했다.
     
    , 고객서비스 같은 거죠. 아무래도 영혼들은 저승이 처음이라 불안하니까, 살아생전 최대한 익숙한 모습을 보여주는 게 좋거든요.”
     
    그렇구나.”
     
    이야기를 들으면서 걷다보니 수십 개의 문이 있는 방에 도착해 있었다.
     
    여긴 어디죠?”
     
    저승사자는 시계를 한 번 보고서는 이야기 했다.
     
    이제 여기서 가 보고 싶은 곳으로 갈 수 있어요. 천국이든 지옥이든,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명계든, 육도윤회를 거치든, . 아무튼요. 어디를 구경하고 싶으신가요?”
     
    전부 다 볼 수 있는 건가요?”
     
    아뇨. 시간이 없으니 두 군데 정도만 볼 수 있겠네요.”
     
    영미는 저승사자의 말에 잠시 고민했다.
     
    혹시, 사람이나 동물도 볼 수도 있나요?”
     
    가능하죠. 아직 여기에 있다면 말이지만요.”
     
    문득 영미는 죽은 전 남자친구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졌다. 바람둥이였던 영미의 전 남자친구는 유부녀를 잘못 건드렸다가, 남편에게 칼을 맞아 죽었다. 왠지 전 남자친구의 비참한 모습을 본다면, 지금 쓰고 있는 로맨스 소설의 복수극을 정말 생생하게 그려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별로 좋은 생각 같지는 않은데요.”
     
    저승사자가 말렸지만, 영미의 고집은 완강했다.
     
    , 굳이 원하신다면.”
     
    저승사자는 수많은 문들 중 한 곳에 서서 비밀번호를 눌렀다. 문이 열리고 안쪽에서 자그마한 동자 하나가 걸어 나왔다. 저승사자는 동자에게 이리저리 사정을 설명한 뒤, 영미에게 들어오라고 손짓을 했다.
    영미가 저승사자를 따라 들어가니 고급 레스토랑이 나왔다. 영미로써는 꿈도 꾸지 못할 비싼 레스토랑의 안쪽에, 남자친구와 어떤 여자가 앉아 있었다. 한 눈에 봐도 비싸 보이는 옷을 입은 여자와 영미의 전 남자친구는 즐겁게 웃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갑자기 자신이 입고 있는 싸구려 잠바가 부끄러워졌다. 남자친구는 여자와 가벼운 이야기부터 시작해 둘만의 농밀한 이야기까지 끊임없이 쏟아냈다. 여자 역시 남자친구를 유혹하듯 가슴에 손을 갖다 댔다, 치마를 들었다 올렸다 했다.
    자신은 이런 장면을 보러 들어 온 것이 아닌데, 후회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당장이라도 이 방에서 나가고 싶은 마음에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출구는 보이지 않았다. 저승사자는 영미의 행동에 아랑곳하지 않고 남자친구와 여자를 보고 있었다.
    둘은 어느새 식사를 하다 말고 붙어 앉은 채 진한 키스를 나누고 있었다. 여자가 남자친구의 지퍼를 열면서 신음소리를 냈다. 남자친구의 손이 여자의 드레스를 따라 가슴에 닿는 순간 갑자기 큰 비명소리가 들렸다.
     
    , , 뭐야. 너 누구야?”
     
    남자친구의 비명이었다. 영미가 돌아보니 여자는 온데간데없고, 남자친구는 다른 남자 품에 안겨 있었다. 갑자기 나타난 다른 남자는 품에서 칼을 꺼내더니, 영미의 전 남자친구를 인정사정없이 찌르기 시작했다.
     
    꺄악.”
     
    영미는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며 눈을 가렸다. 곧이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자, 영미는 떨리는 손을 내리며 눈을 떴다. 방금 보았던 남자는 온데간데없고 전 남자친구와 여자가 다시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둘 사이의 진한 장면이 이어지고, 어느새 나타난 남자가 남자친구를 칼로 마구 찔렀다. 계속 되풀이 되는 과정 속에서 영미는 남자친구의 표정이 점점 핼쑥해 지는 것을 느꼈다.
    짝짝 하는 박수소리와 함께 잠시 레스토랑이 어두워 졌다. 그리고 처음 도착했던 방으로 다시 나왔다.
     
    기본적으로 죄를 치른다는 것은 저런 거에요. 자신의 잘못을 계속 반복해서 보여주는 거죠. 느낄 수는 있지만, 바꿀 수는 없죠.”
     
    .”
     
    영미는 갑자기 기분이 나빠졌다. 자기가 저질렀던 수많은 잘못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럼 다음에는 어디로 갈까요? 보통 지옥을 많이 보고 싶어 하던데.”
     
    아뇨.”
     
    영미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물론, 보고 싶긴 했지만 지상으로 돌아간 뒤 그 내용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시간이 얼마 없으니 빨리 정해야 해요.”
     
    뽀삐. 뽀삐가 보고 싶어요.”
     
    저승사자는 그건 또 누구 이름이냐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뽀삐는 영미가 어릴 적부터 키웠던 강아지 이름이었다.
    저승사자는 아까 전처럼 문 앞으로 다가가 비밀번호를 눌렀다. 문이 열리면서 이번에는 동자 대신 작은 말티즈 한 마리가 문 앞으로 마중을 나왔다. 얼마 전에 죽은 뽀삐였다.
     
    뽀삐야!”
     
    영미는 뽀삐의 이름을 부르면서 문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뽀삐 역시 영미를 알아보는 듯 꼬리를 흔 들며 깡충깡충 뛰고 있었다.
    눈을 뜨자 뽀삐와 함께 넓은 초원에 있었다. 그곳에서 뽀삐는 친구들과 마음껏 달리며 즐겁게 놀고 있었다.
     
    뽀삐야.”
     
    뽀삐는 스무 살에 뇌수막염에 걸려 죽었다. 강아지로서는 천수를 누린 것이었지만 뽀삐가 발작하고 링거를 꽂고 있는 모습은 영미로서 참기 힘든 기억이었다.
    뽀삐는 친구들을 데려와 영미에게 소개시켜 주듯 같이 뛰어 놀았다. 강아지들 말고도 고양이, , 돼지 등 다양한 동물이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뽀삐의 행복한 모습에 눈물이 흘렀다. 뽀삐가 영미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듯 고개를 꾸벅 숙였다.
    다시 짝짝 하는 박수소리와 함께 어둠이 찾아 왔다. 눈을 뜨자 역시 아까 서 있었던 문이 많은 방이었다.
    영미는 눈물을 흘리면서 저승사자를 따라 처음 내렸던 곳까지 되돌아 왔다. 저 멀리 바깥으로 나가는 버스가 출발 준비를 하는 것이 보였다.
    영미는 저승사자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버스를 향해 뛰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손목이 잡혀 움직일 수 없었다. 뒤를 돌아보니 저승사자가 영미의 손을 잡고 있었다. 출발 준비를 마친 버스는 지상을 향해 경적 소리를 울리며 출발했다.
     
    뭐 하는 거에요 지금? 버스 출발하잖아요. 이 손 놓지 못해요?”
     
    영미가 소리를 지르며 손을 흔들었지만, 저승사자는 영미의 손을 놓아 주지 않았다. 대신 품에서 작은 모래시계를 하나 꺼내 영미에게 보여 주었다. 위쪽에 남은 모래가 거의 없는 모래시계였다.
     
    아까 설명 드리는 것을 깜빡 했는데, 저승에서의 1초는 지상에서의 하루와 같이 계산 되거든요.”
     
    저승사자는 그렇게 말하며 씨익 웃었다.
     
    , 그럼 줄을 서러 가 보실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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