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임청각은 일제강점기 전(全) 가산을 처분하고 만주로 망명해 신흥무관학교를 세우고, 무장 독립운동의 토대를 만든 석주 이상룡 선생의 본가"라며 "무려 아홉 분의 독립투사를 배출한 독립운동의 산실이고, 대한민국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상징하는 공간"이라고 소개했다.
문 대통령은 "그에 대한 보복으로 일제는 그 집을 관통하도록 철도를 놓았다. 아흔 아홉 칸 대저택이었던 임청각은 지금도 반 토막이 난 모습 그대로다. 이상룡 선생의 손자, 손녀는 해방 후 대한민국에서 고아원 생활을 하기도 했다"면서 "임청각 모습이 바로 우리가 되돌아봐야 할 대한민국의 현실"이라고 임청각 등 독립운동 유적지 발굴 의지를 다졌다.
임청각은 특히 대한민국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1858∼1932) 선생의 생가로, 석주 선생을 비롯해 두 동생과 아들(동구 이준형), 손자(소파 이병화), 조카 등 독립운동가 9명을 배출한 고성 이씨 가문의 '종택'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석주선생과 동구, 소파 3대가 모두 독립운동가로 서훈을 받았다.
석주 선생은 누구보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경제적 풍요와 종손으로서의 권위를 보장받은 사람이었지만,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일제의 국권침탈에 대항해 독립운동에 일생을 바친 실천적 지성으로 평가받는다.
석주 선생은 국내에서 의병투쟁과 애국계몽운동을 이끌어었지만 그 방식으로는 도저히 일제를 이기기 어렵다는 판단 하에 경술국치 이듬해인 1911년1월 식솔들을 이끌고 임청각을 떠나 기약없는 만주 망명길에 올라 독립운동에 여생을 바쳤다.
일제에게 독립운동 성지나 다름없는 임청각은 눈엣가시였다. 문 대통령이 경축사에서 밝힌대로 일제는 "불령선인(不逞鮮人·불온하고 불량한 조선 사람이라는 뜻)이 다수 출생한 집"이라며 임청각의 정기를 끊기 위해 마당 한가운데로 중앙선 철길을 내고 행랑채와 부속건물 등 50여 칸을 철거했다.
석주 선생이 서간도에서 독립단체 통합노력에 주력하다가 1932년 유명을 달리하자 가문도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석주 선생의 손부 허은(1907∼1997)여사 슬하 7남매 중 장남은 일본강점기 경찰에 끌려가 고문 후유증으로 숨졌고 둘째와 셋째, 넷째는 실종되거나 사고로 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