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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배아줄기세포 연구일지> 2004년 2월 기사
2000년 08월 09일 황우석, 배반포단계 체세포 복제성공.
2000년 08월 30일 마리아생명공학연구소 박세필 박사팀, 배아줄기세포 국내 첫 배양 성공.
2001년 11월 22일 포천중문의대 차병원 정형민 교수팀, 쥐 배아줄기세포 이식 실험 성공.
2002년 03월 07일 마리아생명공학연구소 박세필 박사팀, '이종간 핵치환' 성공
2002년 07월 19일 마리아생명공학연구소 박세필 박사팀, 단성생식 배아줄기세포 실험 성공.
2002년 10월 31일 마리아생명공학연구소 박세필 박사팀, 인간배아줄기세포 쥐 이식 실험 성공.
2003년 01월 27일 마리아생명공학연구소 박세필 박사팀, 키메라 쥐 탄생 성공.
2004년 02월 12일 황우석 문신용 교수팀, 미국 피츠버그대 연구진과 공동으로 사람 난자로 배아줄기세포 배양.
http://media.daum.net/v/20040212012515355
<황우석 배아복제 연구·재판 일지> 2010년 12월 기사
1999년 02월 체세포 복제소 영롱이 탄생 발표
1999년 03월 복제 한우 진이 탄생 발표
2000년 08월 남성 체세포 복제해 배반포 단계까지 배양 성공 발표
2003년 12월 광우병 내성소, 무균 미니돼지 세계 최초 생산 발표
2004년 02월 체세포 복제배아로 `인간 배아줄기세포' 확립, 사이언스 발표.
2005년 01월 오염 사고 (*)
2005년 3월 15일 사이언스에 논문 제출.
2005년 05월 `환자 맞춤형 배아줄기세포' 확립, 사이언스 발표.
http://media.daum.net/v/20101216105315891
[ 공저자 ]
04년 사이언스 논문에 공저자로 올라간 이유가
생명윤리에 대한 기여 때문이라고 하던데요.
황우석 연구에 윤리적 문제 없다고 공언했고요.
근데 연구원 난자 증여, 난자 매매 문제가 터졌죠.
문제가 터진 뒤 황우석은 연구원이 난자 증여하면 안 된다는 걸 처음 들었다고 합니다.
헬싱키 선언도 처음 듣는다고 하고요.
박기영에게 생명윤리 자문 받았다면서요.
<박기영 보좌관 "황우석 교수 연구 문제 없어"> 2004년 5월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5&oid=002&aid=0000010946
"황 교수는 연구원이 <네이처>와 인터뷰를 했을 때에도
같은 연구진이 난자를 증여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고,
이 부분을 명시한 헬싱키 선언이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5&oid=036&aid=0000010320
황우석은 10인의 전문가로 구성된 윤리위원회가 있었음에도
식물학자 박기영에게 생명윤리 자문을 구하고, 기여를 했다며 논문 공저자로 올렸습니다.
박기영은 논문 무임승차에 대해 비판이 일자 생명윤리 자문역으로 기여했다고 변명합니다.
근데 황우석은 헬싱키 선언도 처음 듣는다고 합니다. 생명윤리 자문 해줬다면서요.
생명윤리 자문을 하긴 했는지, 과연 생명윤리 자문역이 있긴 있었는지 의문인 상황이죠.
그리고 문제가 터지자 자기는 비윤리적 난자 확보와는 무관하다고 발뺌을 합니다.
* 헬싱키 선언 : 세계의사회가 인체를 대상으로 한 의학연구에 있어서의 원칙을 규정한 윤리강령.
헬싱키 선언의 문제의 조항은 제23조이다.
이 조항은 "시험 수행에 대한 동의를 얻을 때 의사는 피험자가 자기에게 어떤 기대를 거는 관계가 아닌지,
또는 강제된 상황에서 이뤄진 것은 아닌지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면서 "만일 그런 경우라면 연구에 참여하지 않고
피험자와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연구에 대한 모든 정보를 알고 있는 의사가
(피시험자의) 동의를 얻도록 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5&oid=001&aid=0001157675
"이미 당시는 10인의 전문가로 구성된 (황 교수도 포함된)
윤리위원회가 존재하고 있는 상황이었는데도 왜 굳이
생명윤리에 문외한인 박 보좌관에게 자문을 구했는지 납득이 안 가는 일"
"이번 2005년 연구에는 H대학의 한 교수가 생명윤리 문제에 대한 자문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번에는 그 교수의 이름은 빠져 있다"
"이런 정황을 고려하면 생명윤리 문제에 대한 자문 때문에
박 보좌관을 넣었다는 황 교수나 박 보좌관의 해명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2005년 8월)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2&aid=0000020603
<황우석 교수 '사퇴'에도 박기영 보좌관은 '버티기'?> 2005년 11월
시민단체, "난자 매매와 연구원 난자 사용 등이 사실로 밝혀진 이상 박기영 보과관은 즉각 사퇴해야 한다"
박기영 보좌관, "정확히 말하면 연구 윤리를 조언했으며 내용에 대해서는 일일이 답변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박 보좌관이 '연구 윤리'에 대해서 조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황우석 교수는 '헬싱키 선언'이 무엇인지도 최근에야 안 것으로 밝혀졌다.
생명윤리학계 관계자, "도대체 무슨 연구 윤리를 조언했다는 것인지 궁금할 따름"
"박 보좌관은 '헬싱키 선언'이 무엇인지 알았는지 궁금하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5&oid=002&aid=0000022436
<[‘황우석 회견 후폭풍’] 박기영 靑보좌관 책임론> 2005년 11월
박 보좌관은 그동안 “내 역할은 논문의 생명 윤리를 조언하는 일이었다”
“황 교수의 연구에 윤리적 문제가 없었다”고 공개 석상에서 여러 차례 강조.
그러나 박 보좌관은 최근 윤리 문제가 불거지자
“나는 비윤리적 난자 확보 과정과 무관하다”
“황 교수에게 물어봐야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0&aid=0000325645
"그는 '무임승차'가 아니냐는 첫 비판에 윤리적 자문으로 기여했다고 변명하더니
이제는 자신은 비윤리적 난자 확보와는 무관하다고 발뺌하고 있다" (2005년 11월)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5&oid=002&aid=0000022412
[ 보고 누락 ]
05년 1월 9일 줄기세포 오염사고에 대해 노통에게 보고를 하지 않았습니다.
오염사고로부터 불과 3개월만에 11개 줄기세포를 확립했다며
05년 3월 15일 사이언스에 논문을 제출하는데 대해
의구심을 가지거나 확인하지 않은 점 또한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박기영 "황교수로부터 오염사고 보고받아"> 2005년 12월
"노대통령에겐 보고 안해"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1&aid=0001176547
<문제 알고도 ‘쉬쉬’…대통령에 보고 안해> 2005년 12월 18일
박 보좌관은 17일 최인호 부대변인을 통해 지난 (2005년) 1월 9일
배아줄기세포 오염사실을 황 교수로부터 보고받은 정부 당국자는 자신이라고 밝히고 나서며,
“실험실 대체공간을 찾는 데 협조했다”고 말했다.
박보좌관은 그러나 사실상 논문진위 논란의 시발점이 된
줄기세포의 감염사실을 노대통령 등 청와대에 공식적으로 보고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그동안 3백억원이 넘는 예산을 황교수 연구에 지원한 것을 감안하면
보고 누락은 정책운영과 점검에 심각한 허점을 드러낸 것이다.
또 황교수의 논문이 줄기세포 감염후 불과 2개월 만에 제출된 것을 감안하면,
논문의 하자를 청와대가 미리 감지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2005년 12월)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32&aid=0000155318
<황우석 교수 특별우표 나왔다> 2005년 2월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5&oid=011&aid=0000069979
<황우석 교수 최고과학자 1호로 선정> 2005년 3월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9&aid=0000022020
<황교수 논문 사이언스 표지논문 채택> 2005년 5월 23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5&oid=052&aid=0000078486
[ 과장 보고 ]
MBC PD수첩 취재 들어오자 강압 취재와 협박으로
연구원들이 연구를 못 한다고 노통에게 보고합니다.
실제는 공개된 카페에서 취재하는 등
협박 강압이 있기 힘든 환경이었고요.
생명윤리 관련하여 공격받으니
취재윤리 쪽으로 프레임을 전환하려 시도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덕분에 노통은 박기영 말만 듣고 위 내용에 대해 글을 썼다가 남우새 사고 공격 받았죠.
<靑, '황우석 논란'에 개입했다 하루만에 발 빼나?> 2005년 11월
노무현 대통령 "과학기술보좌관이 MBC <PD수첩>에서 난자기증 문제를 취재하는데,
그 과정에서 기자들의 태도가 위압적이고 협박까지 하는 경우가 있다는 보고를 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2&aid=0000022477
* 당시 노통 글 전문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42244
<박기영 보좌관, 대통령에 '과장보고' 의혹> 2005년 11월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47&aid=0000073996
<노대통령 뒤에 숨은 박기영 보좌관?> 2005년 12월
그는 한번도 나서서 대통령에게 쏟아지는 비난을 막아서지 않았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2&aid=0000022644
<박기영 보좌관, 스스로 떠나라> 2006년 1월 17일
둘째, 그는 2005년 1월 황 교수가 줄기세포 오염사고를 전했는데도 대통령에게 이를 보고하지 않았다.
3개월 만에 맞춤형 줄기세포 11개를 배양했다고 했을 때도 과학자로서 최소한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보좌능력을 의심받아 마땅하다.
셋째, 대통령의 눈을 가렸다.
연구원 난자 기증의혹에 대해 ‘사실과 다르다’고 했고,
논문조작 혐의가 드러나자 취재윤리 쪽으로 관심을 돌렸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28&aid=0000142284
[ 가장 강력한 후원자 ]
<박기영 "황우석 연구 검증은 내 역할 아니었다...지금은 줄기세포 없다고 생각">
'황우석 사태' 책임론 전면 부인 "황우석에게 연구비 해준 것 없다"
"연구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는 역할은 내게 주어지지 않았다" (2017년 8월)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366&aid=0000379113
"구국의 심정으로 최근 우리나라의 과학기술경쟁력을 분석하여 책으로 발간했다"고 말했다.
그는 "일할 기회를 주신다면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으며 일로써 보답하고 싶다"며
자진해서 사퇴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9466986
박기영 중심으로 황우석 특별지원팀 구성됐고
황우석 가장 강력한 후원자 소리까지 들으며
최고 과학자 제도 등 300억 넘게 지원했던 키맨이잖습니까.
그런데 지금와서 하는 말은 당시는 황우석이 워낙 잘나가서 사방에서 연구비가 몰려든 거라는 등,
'진위 여부를 확인하는 역할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등 뜨악한 말들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공직을 맡을 수 없을테니) 정책 공부 할 일이 없어졌다는 건
감투를 씌워주지 않으면 정책 공부 할 일이 없다는 박기영식 구국인 거죠.
박기영 "도운 것은 아니고 그냥 연구과제를 신청해서 된 것이다" (2017년 8월)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366&aid=0000379113
<박기영 2005년에는 "황우석 지원, 청와대가 주도했다" 자랑>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5&oid=296&aid=0000032782
"다른 지원 사업 예산까지 끌어다가 황우석 당시 박사에게 지원"
"그 당시에는 내가 이렇게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고
자랑하는 글까지 직접 써서 청와대 소식지에 발표까지"
http://www.tbs.seoul.kr/news/bunya.do?method=daum_html2&typ_800=12&seq_800=10233529
"박기영 보좌관의 이름은 세계 최초의 인간배아 줄기세포 배양으로
세계적 찬사를 받은 서울대 황우석 교수의 개발팀 명단에도 들어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5&oid=030&aid=0000062169
<황우석 뒤에 14명 '브레인' 있었다..인간줄기세포 복제 어떻게 나왔나> 2004년 2월
2001년 부터 본격 연구에 들어갔다. 배아줄기복제 연구에 필요한 각 영역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둔 학자 가운데 평소 가까웠던 인물들을 참여시켰다.
박기영 순천대 교수(청와대 정보과학기술보좌관)는
황 교수의 인간 배아줄기세포의 복제와 관련한 생명윤리 문제에 대해 조언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15&aid=0000686066
<황우석 인간배아 복제 연구논문 ‘사이언스’ 표지에 실려> 2004년 3월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5&oid=028&aid=0000050347
<박 보좌관 "황우석 교수 연구 문제없다" "공저자로 들어간 것도 떳떳"> 2004년 5월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5&oid=002&aid=0000010946
<盧대통령,황우석 교수팀에 훈·포장> 2004년 6월
박기영 정보과학기술 보좌관은 “외국에서 우리나라가
과학기술 혁신을 첫 번째 국정과제로 한 것을 자세히 보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5&aid=0000166246
박기영 청와대 정보과학기술보좌관은
"인간 배아세포 복제에 성공한 황우석 교수팀에 대해
정부가 적극적인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2004년 8월)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96&aid=0000001908
정부는 황 교수의 연구활동 지원을 위해
박기영 청와대 정보과학기술보좌관을 중심으로 특별지원팀을 구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4년 8월)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1&aid=0000009341
정부는 청와대 정보과학기술보좌관실을 중심으로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최고과학자 국가관리 방안’ 프로그램을 마련,
지난 8월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고한 데 이어 내년 중 시행할 방침
정부는 ‘최고과학자’ 후보로 우선 황우석 서울대 교수를 사실상 내정,
내년 황 교수에게 265억원을 지원할 예정 (2004년 10월)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11&aid=0000053248
황우석 : 순천대 박기영 교수께서는 수년 전부터 우리 연구팀의 한 축이 되어
우리를 이끌어주신 분으로 이 연구의 초반부터 막중한 역할을 해주었다. (2004년 10월)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22&aid=0000057067
박기영 청와대 정보과학기술보좌관은 "우리 대표부가 UN에서 치료 목적의 배아복제에 대한 필요성을 강조하며
세계 여론을 주도해 UN을 움직였다"고 평가했다. (2004년 10월)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5&oid=009&aid=0000402026
<한국 ITㆍBT 10년앞 내다보는 모임 `황-금-박-쥐`> 2004년 11월
배아복제 금지 논란을 벌인 UN에 우리 대표단을 급파해 여론을 돌려놓자 는 생각도 여기에서 나왔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5&oid=009&aid=0000402679
박기영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은 "황 교수의 경우는 내년 초 시행되는 최고과학자 프로그램을 통해
특허비까지 포괄적으로 지원하는 방안을 수립하고 있다"고 말했다. (2004년 12월)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5&oid=001&aid=0000866017
박기영 청와대 정보과학기술보좌관은 황교수의 연구성과를 발전시키기 위해
국제 공동연구 그룹 구성을 모색하고 있다며 재원 마련을 위해 다각적인 방안을 모색할 계획 (2005년 5월)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96&aid=0000018222
박기영 정보과기보좌관 "황우석 교수 연구성과는 한국의 자부심" (2005년 5월 27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5&oid=030&aid=0000106304
정부는 이날 박기영 청와대 정보과학기술보좌관 주재로
과기부, 복지부, 외교부, 특허청 등 관계부처가 참석한 가운데
‘황우석 교수 연구지원 종합대책 회의’를 갖고
황교수의 연구팀을 서울대와 별도로 독립적인 연구센터로 만드는 한편
올해 10억원의 연구비를 추가 지원키로 했다.
이로써 황교수는 올해 연구시설 지원 예산 2백45억원과 연구비 30억원 등
총 2백75억원을 지원받게 된다. (2005년 5월)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5&oid=032&aid=0000123505
<盧 과기정책 ‘과외교사’ 靑입성> 2004년 1월
"신임 박기영 정보과학기술보좌관(차관급)은 ...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후보 시절부터 과학기술분야 조언을 해온"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32&aid=0000051097
<‘황우석 쾌거’ 숨은 조역 박기영 청와대 보좌관> 2005년 5월
노무현 후보 과학기술 정책참모와 대통령직 인수위원을 거쳐 노 대통령의 ‘과학기술 과외교사’로 일하고 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5&oid=005&aid=0000206482
"박기영 보좌관은 노 대통령의 '과학기술 과외교사'" (2005년 12월)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47&aid=0000074233
<黃교수 돕는 朴청와대 보좌관 "큰일 낼 거란 확신 있었다">
황우석 교수가 나타나는 공식 행사에 자주 함께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박기영 청와대 정보과학 기술 보좌관(47)이다.
한 연구자를 위해 정부 관계자들이 모여 지원대책을 논의하기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다소 파격적인 이 회의를 주도한 주인공도 바로 박 보좌관이다.
참여정부에 참여하기 전부터 황 교수와 인연을 맺어온 박 보좌관은
청와대 정보과학기술보좌관으로 부임한 이후 황 교수 지원에 발 벗고 나선 것.
박 보좌관이 황우석 교수의 가장 강력한 후원자라는 주변의 평가도 이런 배경에서 나온 말이다. (2005년 5월 31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9&aid=0000442762
정부 지원금 총 685억, 민간까지 합하면 1천억
정부 지원결정액 : 과기부 360억 + 정통부 43억 + 교육부 4억 + 경기도 215억.
불발된 2006년도 지원계획 : 과기부 정통부 65억 + 보건복지부 40억 + 외교통상부 100억.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5&oid=005&aid=0000229685
http://www.hani.co.kr/arti/society/health/122857.html
"1998~2005년 말까지 과학기술부, 교육인적자원부, 경기도 등이 지원한 연구비는 모두 6백23억원이다.
이중 시설비 5백10억원 등을 빼면 황교수가 개인적으로 집행한 순수 연구비는 1백13억5천만원가량 된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5&oid=032&aid=0000158845
황우석 정부 '연구비' 지원 합계 102억 : 2001년 25억, 2002년 9억, 2003년 14억, 2004년 15억, 2005년 30억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5&oid=020&aid=0000332713
[ 폴리페서 ]
<朴보좌관 "황교수에게 2억5천만원 받았다" 시인> 2006년 1월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1000만원을 받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연구비 지원`을 축소하려 했던 것이 아니냐는 비난도.
황 교수가 연구책임자인 과제의 위탁과제 수행.
(1) 2001년 12월부터 2004년 11월까지 연 5000만원씩 3년간 1억5000만원.
위탁과제명 '형질전환을 통한 광우병 내성소 개발의 사회적 영향 평가'
(2) 2003년6월부터 2004년5월까지 1년간 총 1억원.
위탁과제명 '바이오 장기의 윤리적 고찰 및 산업적 발전방안 연구'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18&aid=0000348187
"총연구비가 6억9800만원인데, 이 가운데 14.3%인 1억원이 박 교수가 맡은 세부과제에 배정"
"미국에서도 본과제 예산 가운데 5~7% 정도를 ‘윤리적·법적·사회적 영향’ 연구에 배정"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5&oid=028&aid=0000142396
"저에게 꿈이 있었습니다.
과학자가 정부에 들어갔다가 나와도 정치교수가 되지 않는 꿈입니다.
다시 연구 현장에서 전공을 열심히 공부하는
그런 정책과 과학 연구를 넘나들 수 있는 정책광이 되고 싶었습니다" (사퇴의 글)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9470100
"한가지 사실은 더 이상 과학기술정책을 공부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사실이다" (현대판 화형 글)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5&aid=0001017346
01년 노연(盧硏.노무현과 함께하는 연구자) 환경문제 담당
01년 경실련 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
02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2분과 위원
03년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미래전략분과위원장
03년 국가과학기술위원회 민간수석간사
04년 01월 청와대 과학기술정책보좌관
05년 01월 23일 사퇴
06년 12월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
07년 황조근정훈장
11년 민주통합당 전남도당위원장
12년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신청, 탈락
12년 문재인 후보 싱크탱크 담쟁이포럼 참여
16년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신청, 23번
공천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3&aid=0003303908
노연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5&oid=030&aid=0000062169
캠프 공약/정책 참여(12년)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4&oid=030&aid=00021881692003년 8월 :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하는
과학기술 관련 정책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국가과학기술위원회(국과위) 조직 개편.
새로 ‘민간수석간사제’를 도입, 박기영 순천대 교수를 임명.
'과학기술자문회의' 위상강화.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김태유 '정보과학기술보좌관'을 사무총장으로 하고
주요 R&D부처 장관 등 위원수를 대폭 확대.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5&oid=030&aid=0000039894
<盧대통령“취임후 가장 기쁜 날”> 2005년 6월 기사
황우석, 2003년 12월 노무현 대통령 내외가 비밀리에 연구실을 방문, 격려했었다는 뒷 얘기를 소개.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5&oid=089&aid=0000033252
"노무현 대통령은 서울대병원 임상 의학연구소를 방문해
장기 제공용 무균 돼지와 광우병 내성 소 연구개발 현장을 시찰" (2003년 12월 기사)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5&oid=057&aid=0000001466
2004년 1월 : 김태유 정보과학기술보좌관 전격 교체.
신임 '정보과학기술보좌관'에는 박기영 순천대 생명과학 교수가 임명.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5&oid=052&aid=0000025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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