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 년 10월.
인천상륙작전의 성공 이후 UN군과 국군은 눈부신 진격속도로 압록강과 두만강에 도달한다.
김일성은 강계로 수도를 옮겨 최후의 저항을 준비하지만 UN군 사령관 맥아더는 북한의 마지막 숨통을 끊기 위해
미 해병 1사단을 원산에 상륙시켜 강계로 진격시킨다.
한편 미군과 CIA 의 첩보망에는 중국군이 참전했다는 정보가 계속 걸려들었고 실제 전투에서도 중국군 포로가
발생한다. 하지만 사령부는 소수의 중국군 자원병이 참전한 것으로 판단했고 규모는 3만명으로 추산했다.
그러나 그 순간 30 만명이 넘는 중국군 최정예 부대가 북한지역으로 이미 진입한 상태였고
UN군이 방심한 사이 중국군은 밤을 이용해 접근해서 포위망을 만든다.
당시 함경남도 장진호 지역.
미 해병대가 원산에서 출발해서 함경남도 장진호에 도착한 11월 2일.
갑작스럽게 사방에서 12 만명의 중국군이 달려든다.
미 해병대와 육군일부, 국군 일부가 뒤섞인 부대는 10 배 가까운 수의 중국군들에게 포위당해
부대가 조각조각 나뉘어졌고 사방에서 쏟아지는 공격에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이 곳 뿐 아니라 전선 곳곳에는 중국군의 기습이 이어졌고 미국 대통령은 사령부의 건의를 받아들여
북한지역에 대한 핵폭격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맥아더는 상황파악이 끝나자 전쟁을 공세에서 수세로 전환시켰고 동부전선의 부대는 함흥에 위치한 흥남부두로 집결하여
해군을 이용하여 퇴각할 것을 명령한다.
중국군(빨간선) 에게 사방에서 공격당하는 미 해병 1사단(파란선)
사령관의 명령에 따라 10 만명이 넘는 전선의 모든 부대는 흥남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중국군이 맹렬하게 공격해 들어오고 있었던 것.
이대로라면 흥남으로 철수하기도 전에 중국군에 둘러싸여 모든부대가 전멸당할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때, 최초에 기습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은채 장진호 지역에 고립된 미 해병대가
중국군의 포위에도 굴하지 않은채 저항을 포기하지 않고 반격을 계속한다.
당시 개마고원 한복판의 1000 미터가 넘는 고원지대인 장진호의 날씨는 말그대로 얼음지옥.
체감온도가 아닌 실제 온도가 영하 30 도 아래로 떨어졌고
부대원의 대부분이 동상환자가 되어버렸다. 기관총은 주기적으로 발사하지 않으면
완전히 얼어붙어 기능을 멈췄고 전투식량역시 얼음조각이 뒤섞여 있었기에 대부분의 부대원이
장염과 설사에 시달렸다.
당시 군의관의 회고에 따르면 그 곳의 상황은 이러했다.
"" 산자와 죽은자의 차이는 눈동자에 불빛을 비추면 반응하는지 여부가 유일했다. 모두가 사지가 마비된 상태였다. ""
장진호 전투 당시의 기록사진들.
미 해병대는 한달가까이 계속된 10 배가 넘는 중국군의 포위공격에도 굴하지 않고 반격을 계속 가했으며
사령부의 완전철수 명령이 떨어질때까지 중국군 최정에 9병단 12만명을 장진호에 묶어놓는다.
미 해병대가 장진호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버티는 동안 동부전선의 UN군 10 만명은 흥남으로 철수했고
이를 따른 10 만명에 가까운 피난민 역시 흥남부두로 안전하게 들어간다.
한달 동안 영하 30도가 넘는 눈밭에서 사투를 벌인 미 해병대는 12월 1일부터 부상자들을 모두 후송시켰고
쓰러진 전우를 버리고 가지 않는다는 해병대의 전통에 따라 전투에서 죽어간 전우들의 시신까지 최대한 수습하여
중국군의 포위를 뚫어내고 질서정연하게 퇴각한다.
12월 11일 모든 철수는 완료되었고
미 해병 1사단과 정면승부를 벌인 중국군 최정예 제 9병단은 소속 12개 사단 가운데 7개 사단이 격파당해
사실상 무력화되어 재편성에 들어간다.
1950 년 한반도 북부 장진호에서 한달간 벌어진 미 해병대의 장진호 전투는 미국 역사상 가장 고전한 전투이자
영웅적인 전투로 기록되었으며 이 전투 이후 미군에는 산악전 훈련센터가 건립되었고,
미 해군 이지스 순양함에 이 전투를 기념하여 이름을 붙인다.
CG-65 USS Chosin
(초신은 장진호의 일본식발음. 당시엔 일본어 지도밖에 없어서 이렇게 붙였다고 함.)
이후 장진호에서 살아남은 미 해병대원들은 초신 퓨(Chosin Few - 장진호에서 살아남은 소수 라는 의미)라는
단체를 결성하여 교류하며 지내게 된다.
한국전에서 미 해병 1사단은 북한의 장진호 부근에서 중국군 10개 사단에 포위되었지만 적 7개 사단을 격파하는
대승을 거두어 해병대의 위대한 전통을 세웠습니다.
2004 년 12월 7일. 진주만 피습 63주년 기념. 미국 대통령 조지 W 부시. 해병 1사단 방문연설.
그리고 미 해병대가 지켜낸 수십만의 사람들이 모여든 함흥의 흥남부두에서는 다시한번
영웅들의 기적이 시작된다.
2편, 기네스북에 등재된 한국인들의 이야기(in 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