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겨울, 저는 주말마다 광화문으로 나가 촛불을 들었습니다.
특검이 난관에 봉착했을 때는 "특검 힘내라" 꽃바구니를 보내기도 했었지요.
제가 혹한의 날씨를 무릅쓰고, 때로는 아이들까지 대동하고 수개월간 주말을 광장에서 보냈던 건
아마도 세월호 아이들과 그 부모님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게 우는 것과 기도밖에 없다는 무력감과 부채의식에서
벗어나고 싶어서였을 겁니다.
전국에 생중계되다시피 한 세월호 침몰 장면을 TV에서 본 그 날 이후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언젠가 내 아이가, 내 아이의 아이가 또다른 세월호에 타게 될지도 모른다는,
그 날에 나는 또다른 팽목항에 주저앉아 저 부모들처럼 울부짖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내내 머릿속을 어지럽혔었거든요.
아마도 특검의 누구에게도 전달되지는 않을 거라고, 어쩌면 초라하게 길거리에 버려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굳이 내 돈 들여 특검에 꽃바구니까지 보냈던 건,
만신창이가 된 이 나라를 이 모양 이 꼴로 내 아이들에게 물려줄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특검이 포기하면 우리에겐 정말 희망이 없을 것 같았고,
그들이 지치거나 포기하지 않고 끝내는 이겨주기를 간절히 바라며
마음으로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누군가 알려줘야 한다는 절박함이
평소라면 엄두도 내지 못했을 행동도 주저없이 할 수 있게 만들었던 것 같아요.
당시 야당에서 활발히 활동하던 모 국회의원에게 생전 처음 자발적으로 정치후원금을 보내기도 했었으니까요.
서두에 굳이 이런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 것은 현 정권의 탄생에 나도 먼지만큼의 지분은 있다는
생뚱맞은 주장을 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다만, 저역시 이 정권의 탄생을 누구 못지 않게 간절하게 바랬던 사람들중의 하나이고,
그러므로 제가 지금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이 정권이 부디 국민과 함께 성공하기를 바라는 충정과
그리하여 내 아이들은 부디 나라다운 나라에서 살게 되기를 누구보다 고대하는 애끓는 모정의 발로일 뿐
이 정권의 정책을 공격하거나 흠집낼 의도는 눈꼽만큼도 없다는 점을 밝혀두기 위함입니다.
1. 입학시험 문제보다 더 어려운 입시제도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저는 고딩 아이를 둘이나 두고 있는 학부모지만, 여전히 입시제도에 대해서 무지합니다.
두 아이 모두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도 완전히 파악하긴 어려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아이들이 대학 진학을 하고 나면... 다시는 돌아보고 싶지도 않다고 진저리를 치며 깨끗이 잊어버리겠죠.
수시와 정시, 학종을 위시로 한 각종 전형은 물론,
등급이니, 표준편차니, 세특이니, 소논문이니 하는 디테일로 들어가면 어지러울 지경입니다.
입시설명회를 가봐도 각종 자료를 모아놓고 들여다봐도 도통 제 능력으로는 행간의 의미를 파악할 수 없는 지경이 되면
다른 학부모님들은 대체 어떻게 이 난해한 제도를 이해하고 계신 건지... 문득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나름 정상적인 대학교육 받고 번듯한 회사에서 20년 넘게 아무 문제 없이 사회생활하고 있는 제게도 이렇게 오리무중인데,
높으신 분들이 그렇게나 걱정해주시는 개천의 붕어나 개구리, 피라미들은
이 복잡다단한 제도를 이해하고 아이들을 준비시키는 데 과연 아무런 문제도 없는 걸까요?
2. 수능 절대평가 확대는 정시 폐지의 전초전?
앞으로 바뀌게 될 입시제도는 "수능 절대평가 확대"를 골자로 한다고 하더군요.
"과도한 경쟁을 완화하고 고교교육을 내실화하기 위해서" 라죠.
그런데요, 100점과 90점이 같은 등급을 받게 되면 경쟁이 완화되나요?
90점과 89점 사이에만 변별력을 부여하면 고교교육이 내실화된다구요?
어짜피 등급을 가르는 1점은 존재할 수 밖에 없는데,
때로는 10점보다 더 중요한 1점이 있더라는, 그 1점으로 내가 갈 학교가 달라지더라는 경험을 통해서
아이들에게 '인생은 역시 운빨'이라는 걸 일찌기 터득하도록 하는 게 과연 공정하고 교육적인 건가요?
도대체 누구에게 필요해서, 누구를 붙여주고 싶어서
100점 맞은 아이는 떨어지고 90점 맞은 아이는 붙을 수 있는 제도를 만들겠다는 겁니까?
차라리 원점수 그대로를 반영하거나, 굳이 그렇게 등급이 꼭 필요하다면 100점 만점에 100등급으로 나누어
같은 1점은 같은 비중으로 기능하도록 하는 게 그나마 제일 공정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은, 제 무지의 소치인 건가요?
수능이 전면 절대평가로 바뀌면 변별력이 약화되어 결국 수능은 자격고시로 전락할 것이고,
대학들은 우수한 학생을 확보하기 위해 또다른 시험(본고사)을 도입하거나
이미 70프로를 넘겼다는 수시 비중이 더욱 커지게 되어
결과적으로 정시는 없어지고 수시가 전면 확대되는 수순을 밟게 될 거라고도 하더군요.
그러니까... 수능 절대평가를 "단계적으로" 도입하겠다는 이낙연 총리의 말씀은
"단계적으로" 수능을 무력화하겠다는 말씀으로 이해하면 되는 건가요?
3. 수시, 학종은 공정한가?
학종이 확대되면서 지방 학생들의 대학진학 기회가 더 넓어졌다는 분석은 저도 몇번 본 적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건 단지 전국의 모든 4년제 대학을 통틀었을 때의 이야기라더군요.
지방역시 '인서울'이 가능한 건 전교에서 손꼽히는 학생들 그 중에서도 일부에 국한된 이야기이고,
지방 학교도 서울 학교와 마찬가지로 이 학생들을 '특별관리' 한다더군요.
지방에서도 여유있는 집 자제들은 서울 못지 않게 과외를 받는가 하면,
방학 때면 대치동으로 유학을 온다는 것도 공공연한 이야기고요.
그런 아이들 몇명 선심쓰듯 들러리로 내세워 지방 학생들의 대학 문호가 넓어졌다는 허울좋은 말로 현혹해 놓고
제2, 제3의 정유라 수십, 수백명 뽑아도 평범한 사람들은 알 수도 없고, 알아도 따져 물을 수도 없는 '깜깜이 전형'이
바로 수시고 학종 아니던가요?
로스쿨, 의전원 뿐만 아니라 학종도 '현대판 음서제'일 뿐이고,
이제 정시 폐지, 수시 전면 확대로 가면 비로소 개천용이 나올 수 있는 '사다리 뽀개기'가 일단락되는 거라는 말은
호사가들의 입바른 소리에 불과한 걸까요?
4. 수시, 학종은 교육적인가?
도입 초기 '취지면에서는 학종이 수능보다 교육적일 수도 있다'는 데 동의했던 교육 현장의 선생님들도
이제는 '기준이 모호하고 공정하지 않다'는 인식의 확산으로 인해
학종의 취지가 상당부분 훼손되어버렸다는 사실을 인정하신다고 하더군요.
우리 현실에 맞지 않는 옷이고, 적어도 지금으로서는 시기상조라는 거죠.
학생부가 소설이 되고, 자소서는 자소설이 된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학종은 입시제도라는 이름으로 학생부의 '위조'를 조장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기사를 읽고 가슴이 무너져 내립니다.
그게 내 아이와 내가 맞닥뜨린 현실이니까요.
학생부에 외부 스펙을 기재하지 못하니 내부 행사는 전교권 아이들에게 상을 몰아준다더군요.
입시에서 실적을 내기 위해서는 다른 학교 아이들과의 경쟁에서 비교우위를 점해야 하고,
그러니 학교 입장에서는 될 놈만 키워주고 밀어주는 '특별관리'를 할 수 밖에 없다는 거죠.
영재고 입시의 스펙이 된다는 중딩 과탐토는 200만원짜리 프로젝트라는 게 공공연한 이야기고,
대학 입시의 스펙이 되어줄 소논문과 에세이는 부르는 게 값이라고 하더군요.
가뜩이나 무시무시한 사교육비에 더해서 학종 컨설팅 학원의 살인적인 컨설팅 비용도 이제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었다죠?
도무지 평범한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스스로 준비할 수 있는 입시가 아니니까요.
이렇게 각종 편법과 변칙이 판을 치는 게 수시고, 학종인데,
수시가 더 공정하다고, 학종이 더 교육적이라고...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시는 겁니까?
제가 이 지난한 준비과정과 어마어마한 사교육비보다도 더 못견디겠는 건,
그 변칙과 편법의 과정을 아이와 공조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렇게 일찌감치 세상은 단 한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을 뿐더러
각종 편법과 변칙을 사용해야 승자가 될 수 있다는 현실을 일찌기 터득한 아이들만이
끝내는 살아남아 우리나라를 이끌어갈 동량이 된다는 겁니까?
5. 학생과 학부모가 원하는 건 수시확대가 아니라 "정시확대"
아이가 제도권 교육에 편입된 10여년 전부터 만성적으로 막연한 불안감에 시달리긴 했지만,
제 아무리 똑똑한 아이들도 혼자 힘으로는 준비하지 못하는 게 수시고 학종이라는 걸 확실히 알게 된 건
아이가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난 후의 일입니다.
누구나 가고 싶어하는 좋은 대학에 가려면 중학교 졸업전에 고등학교 과정을 끝내야 한다고 하더군요.
내신 시험은 단 한번의 실수로 학교 등급이 갈리는 전쟁이니까요.
아, 우리 아이들은 이미 고딩이니... 아이들 표현을 빌자면 "이번 생엔 망했군요."
중간고사 첫날 수학시험에서 실수를 했다며 의기소침한 아이에게
그래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보자고, 과정도 결과 못지 않게 중요한 거라고... 식상한 멘트를 건네보지만,
저도 못믿는 그 말을 아이가 믿어줄 거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기말고사에서도 크게 만회를 못했다며, 아무래도 정시로 방향을 돌려야 할 것 같다는 아이에게
정시 올인의 리스크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현재도 수시 모집이 70프로가 넘는다는데, 30프로를 믿고 70프로의 기회를 포기할 수는 없으니까요.
지금도 이런데... 수능 절대평가가 확대되고, 수시 학종이 더 확대되면, 급기야 정시가 폐지되면,
내신이나 생기부 관리에 흠집이 생기는 순간 아이들에겐 유일한 탈출구마저 닫히고 마는 겁니다.
희망을 잃은 아이들에게 학교는 지옥이 되겠죠. 뭐 지금도 지옥이 아닌 건 아니지만...
6. 수능절평보다는 차라리 "내신절평"을
고등학생인 제 아이는 정말 절대평가가 상대평가보다 더 교육적이고, 더 공정하다고 생각한다면
차라리 수능보다는 내신을 절대평가로 바꿔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묻더군요.
내신은 3년 내내 0.01점으로 등급이 갈리는데,
매 학기 2번씩 치르는 시험에 온갖 잡다한 수행, 팀과제에 비교과까지
고딩 교실은 이미 경쟁을 넘어 전쟁터가 된지 오래라며...
학창시절의 추억은 먼나라 이야기일 뿐이고,
같은 학년 친구들이 모조리 경쟁자이니 학창시절 우정은 개뿔,
페어플레이도 과정의 중요성도 배우지 못하고
세상에 나서기도 전에 단 한번의 실수로 체념과 포기부터 배우는 건
정시, 즉 수능보다는 수시, 즉 학종으로 대별되는 내신때문이라는 거죠.
현실이 이렇게 처참하니, 입시제도를 바꾸는 데 있어서
제발 당사자인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의견에 귀를 좀 기울여달라고 호소하는 건데,
광화문 1번지에도 "수시 50, 정시 50"의 청원이 올라와 많은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었다던데,
당사자들의 의견 따위, 그런 청원 따위는 그저 소통을 가장한 요식행위에 불과했던 건가요?
7. 내겐 너무 잔인한 학종
학종으로 아이를 원하는 대학에 보낸 지인은 "한마디로 학종은 시간낭비이고,
학종의 폐해는 공정한가 혹은 교육적인가 여부가 아니라 오히려 쓸 데 없는 잉여장치라는 데 있다"고 하더군요.
현실은 그냥 정시로도 대학을 갈만한 아이들이 다른 종목에서 불필요하게 다시 또한번 겨루고 나서 학종으로 대학을 간다는 거죠.
보통은 모의고사 전교등수가 그대로 내신 등수로 나오게 마련이고, 결과적으로 대학도 그 순서대로 가게 된다고 합니다.
어짜피 수능으로 목표대학에 갈 수 있는 아이들이 그 실력 미리 마련해놓고
거기에 더해서 학생부에 매진해서 그대로 줄줄이 들어간다는 거죠.
문제는 학종 준비기간중 아이들은 비정상적으로 힘들고 학교생활만 분망 번잡할 뿐
이런 수행과정에서 얻는 자질의 향상 같은 건 전혀 없더라는 겁니다.
즉, 결과는 매한가지인데, 정시 시대였으면 좀 더 원만하고 여유있게 보냈을 학창시절을
필요 이상으로 치열하게 부대끼며 보내야 했다고 안타까워 하시더군요.
"도무지 왜 이런 짓을 해야 하는지 납득도 안되고, 한다고 될지 확신도 없는 그런 안개속 길을
낭떠러지인지 자갈밭인지도 모르고 걸어갔더랬죠.
그 지옥같은 불확실성에 아이는 늘 푸념하고 엄마는 마땅히 반론할 말도 없이
그저 세상이 원래 합리적이지 않다는 비교육적인 말만 반복하며 견뎌내야 했어요."
이 땅의 모든 고등학생들이 이렇게 잔인할 정도로 처참한 학창시절을 보내고 있다는 겁니다.
그 아이들의 부모들이, 그 가정들이 각각 수년간에 걸쳐서 암흑같은 시기를 견뎌내고 있다는 겁니다.
이게 무슨 국가적인 낭비고 불행이란 말입니까?
아, 예외는 있겠네요.
그럴 줄 미리 알고, 이 지옥같은 학종을 금쪽같은 내 새끼들에게 시킬 수 없어서
특목고로 유학으로 우회로를 확보해두신 높으신 분들께는 강 건너 불구경쯤 되시겠네요.
8. 우리는 무엇때문에 정시를 지키려고 하나?
제가 정시를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내 아이에게 정시가 더 유리한 제도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사실 어쩌면 제 아이들에겐 학종이 더 유리할지도 모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정시를 고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그게 내 아이에게 더 유리한 제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라,
이 미친 교육환경에서, 그나마 정시가... 적어도 수시보다는 "공정"한 제도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3년 내내 피를 말리며 준비해야 하는 수시보다,
그러다 한 발만 삐끗해도 돌이킬 방법이 없는 외줄타기 수시보다,
패자부활전의 기회를 절대 용납하지 않는 수시보다,
그러니 중학교부터 아니 초등학교부터 달려야 한다는 수시보다,
각종 변칙과 꼼수가 판을 치는 비교과를 아이와 공조해서 준비해야 하는 수시보다,
그렇게 3년을 준비해서 붙어도 왜 붙었는지, 떨어져도 왜 떨어졌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수시보다,
그나마 정시가 아이들에게 더 '공정'하고, 더 '인간적'이고, 더 '교육적'인 제도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정시는, 부모와 사교육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아이들도 최소한 도전은 해볼 수 있으니까요.
적어도 합격한 아이들이 왜 합격했는지, 탈락한 아이들이 왜 탈락했는지 알 수는 있으니까요.
뒤늦게 공부할 마음 먹은 아이들에게도 패자부활전의 기회는 열어줄 수 있으니까요.
형편 어려운 아이가 혹은 만학도가 명문대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앞으로는 더 듣기 어렵게 되겠지요.
비록 제 아이에게는 필요 없을지라도,
용이 되고 싶어하는 개천의 아이들을 위한 사다리 하나쯤은 남겨두는 게
인위적인 결과의 공정함이 아니라 기회의 공정함을 보장해주는 게
더 건강하고 더 정의로운 사회가 될 수 있는 길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9. 입시제도에 '당사자'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는 이유
입시제도에 정작 당사자의 여론이 잘 반영되지 않는 이유는 "공론화될 세력이 부족해서" 라는군요.
현실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입시생이나 그 부모들은 발등에 떨어진 불 끄기에 급급하기도 할 뿐더러
향후 바뀌게 될 입시제도의 영향권에서는 벗어나게 되니 굳이 적극적으로 나서려 하지 않고,
이미 입시를 치른 학부모는 즉각적으로 관심을 잃거나 입시라는 말만 들어도 멀미가 날 정도로 지쳐있고,
바뀔 입시제도의 직접적인 대상이 될 중딩이나 초고 부모들은 아직 입시제도를 잘 모르기도 하고,
앞으로 바뀔 제도는 더 모르겠고, 그게 내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는 도무지 감도 안 잡히니 목소리를 내기가 어렵고
아직 먼 세대는 그보다 더 다급한 다른 문제들을 챙기느라 신경 쓸 여력이 없으니
늘 그 수에서 열세에 놓일 수 밖에 없다는 거죠.
문제는... 그 틈새에서 학생이나 학부모의 고통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세력들이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는 거고,
더 큰 문제는... 닥치면 이미 늦는다는 겁니다.
고딩인 아이를 둘이나 두고 있으면서도 입시제도에 무지한 제가 이런 말하긴 좀 찔리지만,
바뀔 입시제도의 직접적인 당사자가 될 중딩과 초딩은 물론 그 이하의 자녀를 두신 분들도
부디 교육문제, 입시제도에 대한 관심을 내려놓지 마시길요.
내 아이는 아직 어리니 입시제도는 그 사이에 또 달라지겠지,
내 아이 입시때는 그래도 좀 안정이 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신다면... 아마 오산일 겁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다가, 지금 이렇게 호되게 당하고 있으니까요.
10. 촛불 들고 광장에 나섰던 그 마음으로
유수의 언론사 간부들이 대기업 사장에게 무더기로 자녀의 취업 등을 청탁했다는 어처구니 없는 기사를 보고도
유독 대학입시만은 한 점 티 없이 백옥처럼 깨끗하고 정의로울 거라고 믿으라는 겁니까?
붙어도 왜 붙었는지, 떨어져도 왜 떨어졌는지 모른다는 '깜깜이 전형'에도 유사한 청탁이 난무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은
이 대목에선 차라리 합리적인 거 아닐까요?
짐짓 아름다운 말로 개천을 걱정해주는 척 하던 유명 인사들이
뒤로는 자기 아이가 행여 개천에 한 발이라도 디디게 될세라 철저하게 대비해온 표리부동으로 온국민 뒤통수를 치는 시대인지라
정치권에게 입시제도 개편의 진짜 목적은 '교육'이 아니라 '정치'일 뿐이라는 일갈이 귀에 꽂힙니다.
수년전 전 국민을 경악시켰던 교육부 고위관료의 "개돼지" 발언이 어쩌면 한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이 시대 사회지도층 사이에서는 이미 암암리에 유통되어온 공공연한 인식의 단면이고,
노련하지 못한 혹은 재수가 없었던 그 관료가 속내를 들킨 일종의 사고였을 수 있다는 지점에 이르면 등골이 서늘해집니다.
정유라의 입시부정으로 촉발된 국정농단 사태로 대통령이 탄핵되는 전대미문의 사건을 겪으며
수많은 혹한의 나날에 촛불 들고 광장을 지켰던 시민들의 염원으로 탄생한 이 정권에서
수십, 수백명의 제 2, 제 3의 정유라가 나와도 속수무책인,
"카더라"만 무성한 '깜깜이 전형'인 수시 학종 확대 운운하는 꼴을 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내추럴 본 드래곤인 본인 자녀들은 일찌감치 안전한 곳에 대피시켜둔 높으신 분들이
마치 카르텔이라도 형성한 것처럼 비슷비슷한 미사여구로 대중을 현혹하면서
워너비 개천용들의 마지막 희망인 교육 사다리를 걷어차려고 이렇게나 교묘하고 집요한 시도를 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이게 나라냐"라는 말을 다시 내 입에 담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이런 꼴을 보려고 내가, 우리가 촛불을 든 게 아닙니다.
이런 꼴을 보려고 내 아이들이, 우리 아이들이 고사리 손에 촛불 들고 광장을 지켰던 게 아닙니다.
내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현대판 음서제'가 판을 치는 불공정하고 부조리한 사회가 아니라
용이 되고 싶은 개천의 붕어와 개구리를 위한 사다리쯤은 언제나 준비되어 있고,
패자부활전의 기회쯤은 너그러이 허용하는 건강하고 정의로운 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저는, 비록 내 아이들에게는 무용지물일이지라도,
언젠가 개천에서 벗어나 구름 위 다른 세상으로 가고 싶다는 붕어와 개구리, 가재의 사다리를 지키기 위해서,
미꾸라지, 메기, 피라미가 피터지게 싸우며 편법과 꼼수를 배우고 체념과 포기를 학습하지 않아도 되는 입시제도를 위해서라면,
다시 촛불을 들 용의가 있습니다.
모두가 용이 될 필요가 없다는 건 우리도 압니다.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몰라서 이러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용이 되고 싶은 누군가는 용이 될 수 있어야 하고,
개천을 따뜻하고 살기좋은 곳으로 만드는 건 사다리 걷어차기와 별개로 추진되어야 하는 일이라는 겁니다.
지금은 비록 피터지는 개천이지만 언젠가 따뜻하고 살기좋은 개천이 될 거라며 느긋하게 기다릴만큼
개천의 상황이 한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고기들더러 오손도손 사이좋고 행복하게 살라 하기에 개천은 아직도 너무 춥고 너무 험하거든요.
개천에 발을 담가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시겠지만...
개천이 따뜻해지면... 그래서 살기좋은 개천이 되면... 정말 그런 날이 오기만 한다면...
붕어와 개구리도 힘들게 사다리로 올라가 용이 되려고 애쓰지 않고
가족, 친구들과 함께 개천을 지키고 가꾸며 오손도손 살게 될 테지요.
사다리는 그때 치워도 늦지 않다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