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11년차다. 만으로 10년. 그런데 방송을 못한 지 5년이다.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나고, 2012년부터 생각해보니 너무 긴 시간 동안 방송을 못해서, 방송에 대한 생각을 버리려고 진짜 많이 노력했다. 언제 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니까 방송 말고 얼마든지 즐겁게 살 수 있다고, 목숨 걸 필요가 없다고, 그 생각을 수천 번 했다.
그런데 얼마 전에 본 영화 <라라랜드>에서 주인공이 연기를 정말 하고 싶어 해서 계속 오디션을 보는데 떨어지다가, 마지막 오디션에서 노래를 부른다. 가사를 보면 ‘열정만이 정답이야 Madness is the key'라고 나온다. 그걸 들으면서 너무 눈물이 났다. 예전에 방송에 대해 가졌던 그 열정이 떠올라 너무 너무 가슴이 뜨거워졌다. 난 내가 괜찮다고 생각했고, 방송을 못해도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장면을 보면서 ’아, 나는 안 되는구나. 어쩔 수 없구나. 진짜 하고 싶은 건 이 일이구나‘ 생각했다. 정말, 정말, 서글펐다” (손정은 아나운서)
사라졌다. TV에서 보던 익숙한 얼굴들이 하나, 둘 사라져갔다.
MBC 아나운서들은 단순히 마이크만 빼앗긴 게 아니었다. MBC 경영진은 이들을 철저하게 배척했고, 시청자의 앞에 서는 통로를 원천 봉쇄했다. 인간적인 모욕도 서슴지 않았다. 심지어 “넌 더 이상 아나운서가 아니”라고 주입시켰다.
MBC에서는 2012년 170일 파업 이후 문지애·오상진 등 11명의 아나운서들이 떠났다. 그리고 그 뒤에서, 강재형, 김범도, 김상호, 박경추, 변창립, 손정은, 신동진, 오승훈, 차미연, 최율미, 황선숙 등 11명의 아나운서들은 직무와 상관없는 곳으로 쫓겨났다. 법원의 ‘부당전보’ 확정 판결 후 아나운서국에 잠시 돌아온 적도 있었지만, 프로그램은 맡지 못한 채 얼마 안 있어 또 다시 다른 부서로 쫓겨났다.
그럼에도 이들은 시청자를 향해 “열심히, 끊임없이 저항했지만 부족했다면 죄송하다”고 말한다. <PD저널>은 최근 이들을 직접 만나 그동안 경영진이 자행한 일에 대한 ‘증언’을 들었다.
아나운서국 의도적 붕괴…“신동호 아나운서 국장 선에서 다 잘렸다”
“파업이 끝나고 돌아오니 방송을 하나도 못하게 했다. 그래서 1년 8개월 간 휴직을 했다. 돌아오니 여전히 방송을 할 수 없었다. 그러다 15분짜리 저녁 종합 라디오 뉴스를 하나 하게 됐다. 어느 날 나를 부르더니 ‘15분 뉴스는 안 된다. 3분 뉴스만 된다’고 하더라. 그래도 정말 즐겁게 했다. 그 사이 이런저런 방송을 포함해 내레이션, 라디오 DJ 등을 부탁받았는데 아나운서 국장에게만 들어가면 ‘킬’ 됐다. 처음에는 그게 위에서 내려지는 일인 줄 알았다. 그런데 얘기를 들어보니 아나운서 국장이 알아서 자르는 거였다. ‘무조건 안 된다, 다 안 된다’고 했다. 방송에 나가지 않는 공적인 자리의 사회를 보는 일도 안 된다고 했다.
그런데 또 어느 날 라디오뉴스 아나운서를 계약직으로 뽑았다. 그들은 라디오뉴스만 하는 사람들이었다. 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져서 한 달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앉아있었다. 딱 한 달 후 전보 발령을 받았다. 그날도 당연히 나에겐 아무 언질도 주지 않았고, 당일 아침에 아나운서 국장이 아무렇지 않게 내 인사를 받았다. 그러다 갑자기 오전 11시 즈음 사람들한테 전화와 문자가 오더라.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때 나와 차미연, 황선숙 선배가 발령이 났는데 한 명도 아나운서 국장 얼굴을 보지 못했다. 그냥 금요일에 짐을 싸서 월요일부터 사회공헌실로 출근하라고 통보받았다” (손정은 아나운서)
MBC 아나운서국은 ‘의도적으로’ 붕괴됐다. 11명의 아나운서가 나가는 동안, 경영진은 오히려 “나가면 고마워했다”고 이들은 증언한다. 수많은 선배 아나운서들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2년 계약직 아나운서들이 채우면서 선후배가 이뤄왔던 시스템은 무너졌다.
심지어 이 모든 일들은 경영진에 줄 선 신동호 아나운서 국장, 최재혁 전 아나운서 국장(현 제주MBC 사장)이 자행한 일이었다. 현재 신동호 아나운서 국장은 최장수 아나운서 국장으로 자리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를 거쳐 어느덧 5년차다. 이전까지는 길어야 3년, 평균 2년 기간으로 돌아가는 자리였다.
부당전보를 당한 이들은 회사로부터 “넌 더 이상 아나운서가 아니”라는 말을 들어야했다. 전보 발령지의 부서장들은 이들을 아나운서로 대하지 말라는 지침을 받은 양 행동했다.
“한 아나운서는 모교 특강 섭외가 들어왔는데 위에서 ‘넌 지금 아나운서가 아니니까 아나운서국에 있는 아나운서를 보내라’고 했다더라. 본인 정체성을 위에서 부정시키는 거다. 한번은 <무한도전> 장학금 수여식이 있었는데 손정은 아나운서가 나에게 사회 부탁을 했다. ‘너가 제일 잘할 텐데 너가 하지 그러느냐’고 했더니, 위에서 ‘아나운서가 해야 한다’고 했다더라” (허일후 아나운서)
부당전보를 당하지 않았다고 해서 아나운서국에 남아있는 아나운서들이 탄압을 받지 않은 건 아니었다. 아나운서국에 있는 허일후 아나운서는 암묵적으로 TV 출연이 불가능해진 지 오래됐다. 오로지 목소리만 방송에 나간다.
“섭외 요청이 들어왔는데 (위에서) 까이기를 50번까지 세고 말았다. 제작진은 나를 찾는데, 위에서 깐 게 그 이상이라는 거다. 한 제작진은 나를 섭외하려고 했더니 윗선으로부터 ‘알면서 왜 그러냐’는 이야기까지 들었다고 하더라” (허일후 아나운서)
방송 대신 이들이 맡은 일은 주조업무, 영업 등이었다. 현재 이들은 여러 부서를 거쳐 주조정실, 사회공헌실, 라디오심의부, 뉴미디어뉴스편집부, 라디오편성사업부 등에 뿔뿔이 흩어져있다.
특히 365일 24시간 MBC 방송이 제대로 송출되고 있는지 확인하는 주조업무는 야간, 일간을 교대하며 근무하는 곳이기 때문에 체력적으로 힘이 드는 일이다. 2012년 파업 이전까지는 기술과 지원자들 위주로, 길어야 1년 정도 순환 근무하는 부서였다.
그러나 입사 31년차 강재형 아나운서는 지금 5년 째 주조 업무를 보고 있다.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아나운서 1호’ 주조업무자가 됐다. 강재형 아나운서는 아나운서국에 있을 당시 MBC <우리말나들이>를 탄생시키고, 국립국어원 말다듬기위원회 위원을 역임하는 등 우리말 바로서기에 앞장서왔던 아나운서였다.
“노동자에게 해고는 살인이라고 한다. 아나운서에게 마이크를 빼앗는 게 해고가 아니고 무엇인가. 그들은 심지어 웃으면서 이런 일들을 자행했다” (강재형 아나운서)
탄압은 ‘치졸하게’…“언론탄압 넘어 인간모욕”
MBC 경영진은 단순히 부당전보만 행한 것이 아니라 ‘치졸하게’ 개개인을 탄압했다. 전보 발령을 내릴 때는 고의적으로 거주하는 지역과 반대되고 더 먼 곳으로 배치했다. 집이 일산이면 용인으로 발령이 났고, 양재에 거주하는 사람은 일산으로 보냈다.
이들은 전보 발령 소식을 미리 듣지도 못하고, 평소처럼 출근하면 당일 날 ‘통보’ 받기 일쑤였다. 새로 발령 난 부서에서는 일부러 일을 주지 않을 때도 많았다. 이들은 “마치 수용소 같았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일이 없었다. 회사의 지침이 그랬나보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위에서 지시를 내렸는지 매일 자기 업무를 작성하라고 시켰다. 출근하면 전화로 출근했다고 보고하고, 다섯 시 반이 되면 이메일로 그날 자신이 한 일을 보고서를 작성해서 제출한다. 여섯 시에 퇴근할 때도 전화해서 보고한다. 그 부서를 떠날 때까지 그걸 계속했다. 일을 하건 안 하건, 내가 그날 뭘 했는지를 보고서에 적는 거다.
(지역 지사로 갔을 때) 김재철 친위대였던 사람이 새로운 지사장으로 왔는데, 내가 여기 왜 오게 됐는지를 몰랐나보다. 나에게 부천국제영화제 방송 담당 일을 맡겼다. 후문에 의하면, 그 일 때문에 위에서 문책을 당했다고 하더라” (김상호 아나운서)
“발령 사유를 물어보면 가르쳐주지 않는다. 신동호 아나운서 국장은 정확한 워딩으로 ‘우린 그런 거를 가르쳐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신동진 아나운서)
일부 아나운서들은 저성과자라는 이유로 ‘교육발령’을 받았다. MBC 구성원들이 과거 삼청교육대를 빗대 ‘신천교육대’라고 일컫는 곳이다. 이들은 이곳에서 ‘시간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우리는 이 분야 전문가들인데, 한곳에 모아놓고 들으나마나한 강의를 듣게 한다. 이건 그냥 기록을 남기기 위한, 해고 수순을 밟기 위한 절차였다. 예를 들면 나 같은 경우는 한국생산성본부에 보내져서 일반 사무직이 배우는 교육을 받았다. 모멸감을 주려는 거다. 저성과자라고 가서 교육을 받는데, 오죽하면 교육을 받던 중 한국능률협회에서 나에게 스카우트 제의를 하기도 했다” (김범도 아나운서)
“모든 일을 혼자 감수하고 감내해야 한다. 울화가 치밀어서 화병도 난다. 쌓이고 쌓이면서 그렇게 됐다” (신동진 아나운서)
파업에 참여했던 다른 직군도 마찬가지지만, 아나운서들은 특히 더 승진에서 철저히 배제됐다. 새로운 부서에 가서 아무리 일을 열심히 해도 고과 최저등급을 뜻하는 ‘R등급’이 찍혔다. 혹은 일을 아예 주지 않고 ‘일을 안했으니 R등급’이라고 통보했다. 김상호 아나운서는 아직도 13년차 후배와 똑같은 ‘차장 대우’에 머물러있다. 최율미 아나운서는 세 번 연속 ‘R등급’을 받고 ‘정직’ 징계를 당했다.
이들은 이 모든 게 해고를 위한 수순이었다고 말한다. MBC 사규에는 ‘최근 3년간의 업적평가에서 3회 이상 I등급(2016년 이전의 R등급 포함)을 받은 자는 인사위원회에 징계를 회부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신입 아나운서 채용? “노조 선봉대를 뽑으려고 하느냐”
많은 사람들은 궁금해 한다. 도대체 왜 MBC 경영진은 이들을 탄압할까. 시청자에게 사랑받는 아나운서들을 방송에 나오지 못하게 하는 게 MBC를 위한 일일까.
하지만 MBC 경영진에게 ‘MBC를 위한 일’은 안중에 없어진 지 오래다. 이들은 아나운서가 ‘시청자에게 사랑받기 때문에’ 더 철저히 배척하고 있다. 그들이 사람들 앞에 설수록, 파업으로 사라지게 될 빈자리가 더 커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파업이나 제작거부를 하면 제일 먼저 얼굴이 사라진다. 회사에서는 그게 싫고, 그래서 우리 자리를 바꿔야 했던 거다. 자리를 지키고 앉아서 멀쩡한 척 할 수 있었던 사람들로...아나운서들이 철저히 배제된 건 그 이유가 제일 큰 것 같다” (최율미 아나운서)
“실제로 정규직 신입 아나운서 채용을 요청했더니, 모 고위인사가 임원회의에서 ‘노조의 선봉대를 뽑으려고 하느냐’는 발언을 했다고 한다” (허일후 아나운서)
“정치적 이념을 떠나 상식적인 동료애를 이야기해도 부당전보 됐다. 막내 아나운서인 오승훈 아나운서는 선배가 부당전보된 것에 대해 정말 예의 있게 ‘안타깝다’고 말했을 뿐인데 부당전보 당했다. 이건 언론자유를 탄압하는 걸 넘어서서 인간으로서도 용서받을 수 없는 일 아닌가” (김범도 아나운서)
MBC는 고의적으로 언론인으로서의 아나운서가 자리 잡는 시스템, ‘스타 아나운서’가 탄생하는 시스템을 무너뜨렸다. 특히 아나운서 ‘선후배’ 조직이 무너지는 사이 언론인으로서 역할을 하던 아나운서의 자리는 점점 사라져갔다. 계약직 아나운서들이 절대적 능력이 부족하다기보다, 그들을 키워줄 선배와 시스템이 무너져 내렸다는 것이다.
이들은 뉴스마저 계약직 아나운서들이 맡게 된 상황을 토로하며. ‘언론인’으로서의 아나운서가 사라지는 것에 대해 깊게 탄식했다.
“본래 MBC 아나운서로 들어온다는 건 언론인이자 방송인으로 들어오는 건데, 언론인의 역할을 삭제시킨 상태에서 계약직 아나운서들이 들어온다. 그래서 기존의 선후배 관계도 형성될 수 없고, MBC의 전통도 지켜지지 못하고 있다. 학교 방송국에서도 이렇게 하면 욕을 먹는다. 그런데 지상파 방송사에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라디오뉴스 아나운서를 계약직으로 뽑는 건, 언론사이기를 포기한 거다” (김범도 아나운서)
“요즘 아침뉴스에 투입된 아나운서들은 계약직으로 들어온 사람들이다, 기능으로 보면 기본은 하는 친구들이다. 그런데 그게 과연 MBC의 아나운서로서 하는 것인가, 기능인으로서 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꼭 신입 아나운서, 20년차 아나운서가 해야 할 일이 정해져 있다는 건 아니지만 방송은 자동응답메시지가 아니지 않나. 그런데 그 사다리가 없어졌다. 하루는 송출실에서 방송을 보다가 문장 하나를 고쳐줬더니, 감동을 받으며 고마워했다. 지금껏 그렇게 프로그램을 모니터하고 지적해준 사람이 없었던 거다.
기자가 취재를 하고 출고하면 위에 데스크가 보고, 데스크가 보낸 걸 편집부에서 오케이하면 뉴스가 된다. 그걸 아나운서와 앵커가 보고 내 호흡에 맞게 다듬고, 사실 확인을 다시 한다. 그런데 파업 이후에는 기사에 비문도 너무 많고, 무슨 의미인지를 몰라서 고치고 또 고치다가 안돼서 뺀 기사도 있었다. 소위 ‘시용 기자’가 들어온 이후다. 취재를 못하니까 기사를 못 쓴다. 그걸 그나마 아나운서들이 수정했는데, 아나운서도 계약직으로 뽑은 후 무너졌다. 타부서이기 때문에 얘기를 안 하다가, 한번은 데스크를 찾아서 문자를 보냈다. ‘너가 출고한 그 기사 이상하지 않느냐’고. 무슨 일이냐고 놀라더니 나중에 죄송하다고 하더라. 데스크도 자기가 어떤 기사를 데스킹했는지 모르는 거다. 기자는 데스킹을 안 하고, 아나운서 국장은 사람을 키우고 투입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강재형 아나운서)
그럼에도, MBC를 떠날 수 없는 이유
혹자는 아나운서들은 그래도 ‘프리랜서’로 떠날 수 있지 않느냐는 말을 쉽게 던지기도 한다. “왜 그 꼴을 당하면서” MBC에 남아있느냐고 물어오기도 한다. 이들이 MBC를 떠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당장은 아니겠지만, 내가 MBC에 있는 동안 내가 알았던 MBC, 내가 알았던 아나운서 식구들의 분위기를 요만큼이라고 살려놓고 가고 싶다. 지금 애들은 ‘선배, 우리가 옛날엔 안 그랬었다고 하는데 예전엔 대체 어땠어요?’라고 한다더라. 그래서 버티고 있다. 언젠가는 우리가 같이 돌아와서, 그냥 창가에 앉아있더라도 선배로서 ‘이건 이렇단다’ 하고 말할 사람이 필요하지 않을까” (강재형 아나운서)
“나는 그나마 멋있었던 MBC를 다녀본 마지막 세대다. 나는 보았고, 후배들은 보지 못한 엘도라도를 기억하기 때문에, 적어도 후배들에게 ‘MBC는 원래 이런 곳이었어’ 하고 한번은 보여주고 싶은 욕구가 크다” (허일후 아나운서)
“입사할 땐 최고의 회사였고, 아나운서들이 가장 들어오고 싶어 하는 방송사가 MBC였다. 어떤 사람들은 MBC만 시험 본다고 할 정도로. 그런 회사를 15년 다녔는데 나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MBC 아나운서실은 분위기가 굉장히 좋았다. 가족 같았고, 매일 같이 있고,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MBC 특유의 문화가 있었다. 다시 돌아가서 선후배들과 함께 그렇게 생활하고 싶다는 게 가장 크다. 함부로 나가지 못 한다” (신동진 아나운서)
“지금 좀 놀랐다. 다 같은 생각이었구나...같은 생각으로 버틴 것 같다. 11년 전 처음 들어왔을 때, 너무나 찬란했던 영광스러운 MBC를 잊지 못하고 짝사랑하는 것처럼. 그때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다. 이분들이 회사에 계신다면 그래도 가능하다. 희망이 있다. 많은 사람이 나가고 망가졌지만, 그래도 이 구성원들이 남아있는 한 우리는 다시 행복한 MBC를 다닐 수 있다” (손정은 아나운서)
시청자에게 하고 싶은 말…“죄송하다”
많은 사람들이 MBC 구성원들을 향해 “정권이 바뀌니 이제야 나서는 게 아니냐”고 냉소 섞인 말을 하기도 한다. 이런 시청자들에게 MBC 아나운서들은 “안에서 진짜 열심히 싸웠다”며 “그럼에도 MBC를 지키지 못해 죄송하다”고 말한다.
아나운서국에서도 경영진에 ‘충성한’ 사람들은 1년 단위로 승진을 했다. 2012년 파업 중간에 노조를 탈퇴해 <뉴스데스크> 앵커를 맡았던 배현진 아나운서는 국내 ‘최장수’ 앵커 기록을 눈앞에 두고 있다. 부당전보 아나운서들도 보직을 미끼로 노조 탈퇴를 강요받았었다. 그러나 이들은 전보를 당하면서도 신념을 잃지 않았고, 때로는 강하게 저항했다.
“되게 열심히 하긴 했다. 계속 두드려 맞고 깨져서 그렇지, 안에서 진짜 열심히 싸웠다. ‘이제 와서 왜 그러냐’고 물어보시는데, 밟던 발이 조금 사라져서 상대적으로 싸우는 게 보이기 시작한 거지, 우리는 꾸준히 했다. 부족했다고 한다면, 그 지점은 정말 죄송하다. 안 싸우진 않았는데, 우리가 졌고 처참할 정도로 당했다. 아직까지도 밟혀있지만, 밟혀서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 응원해 달라” (허일후 아나운서)
“죄송하다. 우리가 사랑을 많이 받은 집단이고, 특히 MBC 아나운서들이 정말 사랑을 많이 받았는데 MBC가 이렇게 망가지도록 지키지 못한 건 잘못한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쫓겨나 있다는 이유로 매일매일 투쟁하지 않은 것도 죄송하다. 그래도 한 MBC 기자가 ‘지금까지 신념을 바꾸지 않고 지켜왔으면 그게 투사다’라고 말하더라. 우리가 매일매일 피켓 시위를 하진 않았지만, 다 변심하지 않고 지켜왔다.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 MBC 문제에 관심을 가져주시면 정말 감사하겠다” (신동진 아나운서)
“어쨌든 현실이, MBC 내부 상황을 차치하고 겉으로 드러난 방송만 보면 개판인 건 맞지 않나. 우리는 했는데 힘에 부쳤고, 이 지경이 된 걸 돌려놓고 있지 못하니까 죄송하다” (강재형 아나운서)
“우리가 만약 다시 돌아가면, 정말 신입사원처럼 초심의 마음을 가지고 할 거다. 우리가 다 사장이 돼야 한다. ‘이 MBC의 주인이다’ 생각하고 정신 바짝 차리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게 정말 맞는 것 같다. 우리 개개인이 최선을 다한다면 언젠가 시청자들이 알아주시지 않을까. 자랑스러운 그때로 다시 돌아가겠다” (손정은 아나운서)
“그동안 떠돌아다니고, 저성과를 받고, 그러면서 동료들을 본 소감은 MBC에 정말 훌륭한 기자, PD, 아나운서가 아직 많다는 거다. 이 사람들이 저마다의 빛깔로 끝까지 싸우고, 계속 투쟁을 통해 성장했다. 시청자 분들은 그동안 힘들고 고통스러웠겠지만 이런 사람들이 돌아와서 시청자들이 기대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도록 우리도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다. 기대해 달라” (김범도 아나운서)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자동으로 이들의 사정이 나아지지는 않았다. 이들은 현 경영진이 “전혀 변한 것이 없다”고 말한다. 오히려 “패잔병이 불 지르고 가듯” 행동한다고 토로한다. 최근에도 목소리를 내는 기자, PD, 아나운서들에 대한 징계가 어김없이 내려졌다. (▷관련기사 ‘징계, 징계, 징계…MBC 또 ‘무더기 징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당하기 직전, 지난 3월 지금의 김장겸 MBC 사장이 새로 취임했기 때문이다. 임기가 3년이다. 박근혜 정권에서 임명한 MBC 대주주이자 관리·감독 기구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들이 그를 사장으로 선임했다. 방문진 이사진 역시 여전히 임기를 1년 여 남겨두고 있다.
다만 MBC 구성원들은 조금 더 힘을 내보고 있다. 김민식 PD는 홀로 “김장겸은 물러나라”고 외치며 징계 대상이 됐지만, 이제는 결코 혼자 외치지 않는다. 물론 그럼에도 이들을 탄압해온 경영진이 스스로 물러날 거라 기대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서 이들은 더 시청자, 국민의 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부정한 대통령을 파면시킨 우리의 힘이, MBC 아나운서들을 우리의 곁으로 돌려놓을 수 있다.
MBC 아나운서 부당전보 현황
변창립(84사번) 대기발령-신천교육발령-아나운서국 발령(13.04.09 부당전보 가처분 신청 승소)-심의실(13.12.10~현재)
강재형(87사번) 정직 3개월-신천교육발령-아나운서국 발령(13.04.09 부당전보 가처분 신청 승소)-주조정실MD(13.12.10~현재)
황선숙(87사번) TV심의부(16.3.11~현재)
최율미(92사번) 대기발령-신천교육발령-용인 드라미아-아나운서국 발령(13.04.09 부당전보 가처분 신청 승소)-심의실-정직 1개월(인사고과 'R등급' 저평가자)-심의실
김범도(94사번) 경인지사 인천총국-신천교육발령-용인 드라미아-사회공헌실-아나운서국 발령(13.04.09 부당전보 가처분 신청 승소)-신사업개발센터(15.10.27~17.07.03)-아나운서국 복귀(17.07.03 전보발령 무효확인 승소)
김상호(94사번) 경인지사 수원총국-신천교육발령-아나운서국 발령(13.04.09 부당전보 가처분 신청 승소)-경인지사-경인지사 수원총국-주조정실MD(15.3.23~현재)
신동진(96사번) 사회공헌실-아나운서국 발령(13.04.09 부당전보 가처분 신청 승소)-뉴미디어 뉴스편집부(13.12.10~현재)
박경추(97사번) 대기발령-신천교육발령-아나운서국 발령(13.04.09 부당전보 가처분 신청 승소)-라디오국(14.10.31~현재)
차미연(00사번) 경인지사 문화사업제작센터(16.03.11~현재)
손정은(06사번) 사회공헌실(16.03.11~현재)
오승훈(11사번) 매체전략국(15.06.09~현재)
* 허일후(06사번) 미래전략실-아나운서국 발령(13.04.09 부당전보 가처분 신청 승소)
이혜승 기자
[email protected] MBC를 박사모로부터 꼭 되돌려 받았으면 합니다.
배현진, 신동호 같은 못되먹은 적폐들 혼을 내줘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