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은 "중국의 힘은 문명에서 나온다"는 말로 운을 뗐다. 중국의 문명이 서양 보다 뒤떨어져 있는 것으로 인식되는 측면이 있으나 실제론 정반대라는 것이다. 도올은 "중국 문명은 고대 문명 중에서 가장 마지막에 번창했고, 찬란하고 경이로운 인간 중심의 문명을 확립한 부분을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16세기까지만 해도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는 중국의 베이징이었다. 당시 베이징(北京)의 인구는 60만 명. 파리(20만 명) 런던(5만 명) 등 서유럽의 대표 도시를 크게 능가했다. 1420년에 완공된 쯔진청(紫禁城)은 세계 최고 수준이 어떤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중국 문명은 이렇게 일찌감치 서구를 앞섰다. 중국은 19세기 아편전쟁에서 패하면서 서구 열강에 무릎을 꿇었으나, 적어도 그 이전까지 중국의 문명과 문화는 단연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당나라 시대(7~10세기) 수도 시안(西安ㆍ당시 장안)은 세계에 문호를 개방한 국제도시 같은 곳이었다. 서쪽에서 실크로드를 따라 이방인들이 대거 몰려들었다. 한국과 일본에서도 시안을 찾았음은 물론이다. 당나라는 포용성이 뛰어났다. 불교 이슬람교 기독교 등 세계의 여러 종교가 전파돼 꽃을 활짝 피우기도 했다. 당시 시안의 인구는 무려 100만 명이었고, 외국인 거주자만 5만 명이 넘었다.
서양 학자들은 중국 문명을 평가하는 데 인색하지만, 11세기부터 16세기까지의 중국은 서유럽의 콧대를 꺾어놓고도 남을 정도였다. 특히 청나라 시대(17~20세기 초) 수도였던 베이징은 세계의 학문과 지식이 집합한 곳이었다고 도올은 평가했다. 도올은 이런 탄탄한 문명이 21세기 들어 중국의 '빅2'진입을 가능하게 한 밑바탕이 됐다고 설명했다.
나 같은 사상가가 나와야 돼요(웃음). 경제 특구처럼 사상 특구를 만들어서 중국 젊은이들이
자유롭게 토론하고 시진핑에게 조언을 할 수 있어야죠. 그렇지 않으면 부패 세력이 언제
시진핑을 다시 공격할 지 모릅니다. 시진핑이 다음 후계자를 잘 선택해서 20년 안정적으로 간다면
인류사에 새로운 운명이 열릴 거라고 봅니다.”
-너무 중국 중심의 인식이 아닌가 하는 비판도 있습니다. “(웃으며)우리는 초이스가 없어요.
약소국의 운명이죠. 우리는 단군 이래 최초로 지난 10년 간 중국을 깔보며 지낼 수 있었어요.
그리고 그동안 중국은 어마어마하게 성장을 했습니다. 내가 70년도에 하버드대학에 있을 때만 해도
중국 유학생은 아프리카 피그미국에서 온 사람들 취급을 받았어요.
현실은 시진핑은 다음 후계자가 아니라 1인 독재 준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