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가 중화권과의 교류에 도움이 된다고요 ? by 허행민
나날이 중화권과의 교류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특히 저의 경우에는 이곳 중국에 얹혀 사는 처지이고 지금 당장 귀국하면 이렇다 하게 내밀만한 것도 없고 굶어죽기에 딱 좋은 처지이기 때문에 중국이라는 나라가 더욱 소중합니다. 더욱이 이곳에서 중국여자랑 결혼해서 늙어 죽기로 작심했으니 더욱 그러합니다.
언제가 아버님께서 나를 향해 흐뭇한 미소를 지으시며 요즘 중국어열풍이 불고 있다고 말씀하시던 일을 기억합니다. 그 말씀을 듣고는 다소 씁쓸한 기분이 들긴 했지만, 그래도 모처럼 당신께서 기분 좋아하시는 것을 방해하고 싶진 않아서 그냥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렸습니다. 중국어열풍은 저에게는 극심한 경쟁의 심화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후레쉬하고, 막강한 중국어실력으로 무장했고, 거기에 신세대답게 영어까지 유창하게 구사하고, 신입사원이라 월급도 저보다 더 적게 줘도 되는 참신한 인력이 쏟아져 나온다면 저 같이 나이는 나이대로 먹고, 아직 장가도 가지 않고, 중국어실력도 버벅되고, 거기에 잉굴리쉬는 하급품이면서 경력 때문에 월급을 더 줘야만 하는 인간들은 바로 퇴출감입니다.
하지만, 정작 썰렁하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나라의 쏠림현상입니다. 저의 은사님께서 "만두집현상"이라고 명명하신 바로 그거... 이거 좋다 싶으면, 우 ~ 저거 좋다 싶으면, 또 우 ~ 아마 대한민국만큼 이 지구상에서 공급과잉인 나라도 드물 것입니다. 그러니 중국어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지요.
이게 과연 바람직한 현상인가 ? 중국이 워낙 큰 시장인데다, 바로 우리 옆에 있고, 세계 최대의 생산기지로 부상한 만큼 중국어열풍 역시 불가피한 측면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타의 국가들을 도외시하는 것은 우리 한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고질병 중에 고질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미국을 "서양"으로 착각해 왔고, 인도와 말레이시아, 태국을 단지 후진국으로 착각해 왔었고, 유럽을 복지병에 취한 나태한 무리들의 나라로 착각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러시아와 남미, 아프리카에 대해서는 아예 관심도 없고... 그래서 우리에게 무슨 이익이 돌아왔습니까 ?
지금까지 우리는 미국하고 일본 밖에 모르고 살아왔다고 해도 너무 오버스러운 생각일까요 ? 최근이 중국이 하나 추가되었지요.
획일성도 문제이지만 제가 더 걸고넘어지고 싶은 것은 획일적으로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그 나라들에 대해서 도대체 얼마만큼이나 제대로 이해를 하고 있는가, 그리고 제대로 이해하려고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가 입니다. 저 자신 포함해서 그렇게 후한 점수를 주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미국을 좋아하든, 안 하든간에 말입니다.(좋아하는 이는 환상, 그 자체로 보고, 싫어하는 이는 혐오하는 것 같군요. 저는 후자...)
중국에 대해서도 예외는 아닌 것 같군요. 최근에는 고구려사 문제까지 겹치니 중국에 대한 증오심도 증폭되는 것 같습니다.
중국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를 하고 있는지 저로 하여금 회의심을 품게 하는 기사를 하나 접해 여기에 올립니다. 아울러 왜 제가 왜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서도 덧붙입니다.
'한자 까막눈' 취직 꿈 깨! 대기업, 한자시험 앞다퉈 도입 중화권 무역 파트너 명함도 못 읽어서야 비즈니스 되겠나 굴지의 한 대기업 경영지원실 임원은 새 팀원 한 명을 뽑기 위해 사내 각부에서 '똑똑하다'고 정평이 난 신입 직원 10명을 불러 한자 테스트를 실시했다가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신입사원들은 모두 명문대 출신들이어서 기대가 컸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주식(株式)'이나 '회사(會社)' '고객(顧客)' '창의(創意)' 등 기업에서 늘 쓰는 한자를 써보라고 했더니 절반 이상을 맞힌 직원이 한 명도 없었어요." 이 임원은 "빵점 답안지도 수두룩했고, '株'(주)를 거꾸로 朱木으로 그리는(?) 사원도 있었다"고 혀를 찼다. 삼성, 20점 가산 컴퓨터 세대 신입사원들의 한자(漢字) 실력이 형편없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기업들에 초비상이 걸렸다. 중국과 동남아 등 범(汎)중화권의 교역비중이 우리나라 전체 교역의 30%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한자를 몰라서는 제대로 비즈니스하기 힘들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무역협회 김재철(金在哲) 회장은 "파트너 명함도 못 읽는데 무슨 비즈니스가 되겠느냐"고 개탄했다. 이 때문에 전경련과 무역협회 등 경제5단체는 19만여 회원사들에 신입사원 채용 때 한자시험을 보도록 권고했고, 실제 금호·SK그룹에 이어 삼성·현대차그룹·현대중공업·대우종합기계 등 주요 대기업들이 올해부터 한자시험을 속속 도입 중이다. 삼성그룹은 하반기에 IMF 이후 첫 그룹 공채를 실시하면서 한자능력 검증 자격증 소지자(3급)에게 가산점(20점)을 주기로 했다. 1~2점차에 당락(當落)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20점의 가산점은 합격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수준이다. 삼성그룹은 작년 이건희(李健熙) 회장이 직접 "중국을 이해하려면 '한자 문화'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주문하며, 한자 시험 도입을 준비했다는 후문이다. 현대중공업도 올 초부터 면접기간 중에 한자시험을 별도로 치르고 있다. 한자능력검증 시험 4급 수준의 문제를 골라 고득점자에게 가산점을 주는 방식이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중고교 수준의 문제인데도, 점수는 100점 만점에 평균 30점 수준"이라며 "이래서는 조선 분야 기본 용어조차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또 현대·기아차그룹과 한화그룹·현대상사·조흥은행 등도 한자시험 도입을 추진 중이다. 대기업 76% "찬성" SK·금호그룹은 10여년 전부터 한자시험을 실시하고 있다. 최종현(崔鍾賢) SK회장, 박성용(朴晟容) 금호명예회장 시절 때 이미 '중국 비즈니스에 대비해야 한다'며 한자시험을 도입했다. 특히 금호그룹은 입사 후 한자 능력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승진도 안 된다. 기업의 한자시험 도입은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채용전문업체 인크루트가 최근 주요 대기업 145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76.6%(111개사)가 '입사 때 한자시험을 보는 방안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
이 글을 쓰면서 우리 회사 직원 중에 최고참인 Miss Zhang에게 당 기사에서 인용된 네 단어에 대해서 물어봤습니다. 앞에 주식, 회사에 대해서는 알고, 고객에 대해서는 매장 같은 곳에서 몇 번 본 적이 있고, 창의는 일상적으로 쓰는 말이라고 합니다.
주식, 회사에 대해서는 전에 일본사람들과 관계된 일을 했고, 지금은 한국회사에 있기 때문에 안다고 합니다. 하지만, 주식, 회사라는 단어는 중국에서는 안 쓰는 단어라고 합니다. 당연하지요. 회사를 중국에서는 공사(公司), 주식은 고분(股分)이라고 하니까요. 고객이라는 말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드물고 객후(客后)라는 말을 쓴답니다. 완전하게 일치하는 것은 창의밖에 없다는군요.
이것은 단지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불란서(佛蘭西)와 독일(獨逸)을 코앞에 디미니까 헤멥니다. 당연하지요. 이것은 일본어이니까... 우리가 일본어를 빌려다 썼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아예 한국어로 굳어버린 것입니다. (물론 미국과 영국은 중국어 그대로입니다.)
우리가 자꾸 착각하는 것 중에 하나가 한자는 곧 중국어라는 인식입니다. 우리가 아는 한자는 두 가지의 한자입니다. 하나는 고문, 중국이나 우리나라의 역대 문필가들이 문학작품을 쓸 때 사용한 중국의 고대문자이고, 또 하나는 일본어입니다. 고문은 우리나라에서 한문시간에나 접할 수 있는 그야말로 옛 글이 되어버렸고, 일상적으로 가장 친숙한 것은 한글로 표기되는 일본어일 것입니다. 이러한 일본어는 지천에 깔려 있습니다. 아마 일제시대부터 70년대까지의 도입된 모든 서구의 문물은 일본어의 한글표기일 것입니다.
바로 그 기간에 우리 대한민국은 중국과의 교류가 단절되어 있었지요. 따라서 우리는 중국의 용어(또한 북한의 용어)를 접할 기회가 없었지요. 바로 이 점이 한자는 곧 중국어가 될 수 없는 이유라고 봅니다.
모든 문물을 일본을 통해서 접함으로써 일본어가 한글로 굳어졌으니...
물론 중국어와 일본어가 겹치지 않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상당부분에 겹칩니다. 비교적 최근에 활성화된 것일수록 - 예를 들어 무역, IT, 전자, 경제분야 - 일상에서 쓰이는 추상명사 같은 경우에는 겹치는 부분이 많습니다.
하지만, 중국에 오는 것은 단지 생활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비즈니스를 하기 위해서 오는 것입니다. 따라서 좀더 깊숙하고 세밀한 부분으로 들어가야만 합니다. 상용한자 1,800자가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는지... 게다가 그것들은 단어가 아닌, 단지 단어일 뿐이고 한자로 표기된 일본단어(우리가 그 뜻을 익히 알고 있는)를 읽자는 취지인데... 게다가 한자라는 것은 시각적인 면만을 고려한 것입니다. 회사일이라는 것이 항상 Face-to-Face로만 이루어질까요 ? 태반이 전화로 대화가 이루어집니다. 발음은 어떻게 할 생각인지 ?
채팅으로 하면 된다고요 ? 아래 한글, MS Word에서 한자 입력 안 해봤어요 ? 해당 음을 달고, 한자Key를 치고, 그 다음에 원하는 문자를 고르는 식입니다. 중국어의 경우에는 중국인들이 일반적으로 쓰는 지능ABC라는 프로그램이 있고, 우리 같은 외국인들이 일반적으로 쓰는 것은 마이크로소프트의 Global IME인데, 그마저도 중국어발음을 알파벳으로 표기해서 해당되는 글자를 선택하는 식입니다. 아래 한글의 중국어입력도 마찬가지로 중국어발음을 알파벳으로 입력해서 글자를 선택하는 식입니다.
화상채팅으로 하자...? 그거 참 재밌겠습니다. 컴퓨터에 설치된 카메라 앞에 커다란 칠판을 갖다 놓고 긁은 매직으로, 그것도 중국인들에게는 생소한 일본어를 정성스럽게 칠판에 쓰는 모습이란...
명함조차 제대로 못 읽는다 ? 동양권 회사들의 공통적인 특징. 앞에는 자기네 나라말, 뒤에는 영어... 외국파트너회에게 줄 명함에 영어조차 새겨놓지 않는 회사... 그런 회사가 과연 거래할 만한 가치가 있는 회사일지.... 뒷면에 영어는 아무 생각없이 새겨놓는 것인지...
그리고 파트너는 매일같이 만납니까 ? 어쩌다 한번 만나는 것입니다. 그 어쩌다 한번의 만남을 위해 1,800글자에 열정을 쏟아 부어야 한다니... 문서를 한자로 작성한다 ? 저들에게 생소하기 짝이 없거나 아예 뜻도 알 수 없는 일본어를 사용한다고요 ! 차라리 일본어를 배우지... 그게 되려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웬만한 공문서는 영어로 작성하고, 중국어로 작성해야 하면 아예 직원들한테 맡겨 버립니다. (단, 거래처들이 한국회사가 많아서 한글로 작성할 때가 압도적으로 많지요)
비즈니스는 신중에 신중을 기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특히, 중화권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심지어 홍콩같이 선진화된 곳에 대한 인식도 그리 신통치 않은 것 같던데... 상용한자 1,800자로 한번 도전하신다 ? 돈키호테같은 발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풍차를 향해 돌격하는 돈키호테...
전문가를 양성하는 것이 더 바람직합니다. 무언가 좀더 조직적인 차원에서 전문가를 양성해야만 합니다. 저번에 할 말을 하는 신문에서 중국이 "선택"과 "집중"을 한다고 하던데... 저는 그 기사를 읽으면서 고교평균화 폐지를 은근히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싶더군요. 하지만, 이제는 제가 그 말을 도용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합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선택과 집중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전문가의 양성입니다. 영어면 영어, 일어면 일어, 중국어면 중국어해서리... 법률이면 법률, 경제면 경제, 문화면 문화 하는 식으로 해서 전문가를 양성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실제로 이 곳에 중국의 한국회사들은 조선족 직원들을 많이 채용하지만, 그들에게서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당연하지요. 조선족 직원들은 그나마 의사소통이 조금 된다 뿐이지(그나마 그들이 구사하는 말은 한국어가 아니라 조선어임) 그들이 법률, 경제, 산업, 문화 등에 대한 전문가들은 결코 아닙니다. 그나마 중국용어가 한국용어와 다르거나 생소한 점이 너무 많아 애를 먹고 있어요. 최근에 한글에 영어단어들의 도입이 확산되는 추세라 이와 같은 애로사항은 더욱 심화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너무 편향되어 있습니다. 독일어, 러시아어, 스페인어, 아랍어, 펀자브어에 대한 인력양성이 너무나도 시급합니다. 독일어는 동유럽에서 강세고, 러시아는 나날이 강대해지고 있습니다. 이번에 유코스 회장 호도로예프스키를 족친 것에 대해서 미국이 저토록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이는 까닭은 러시아에서 민중의 지지를 한 몸에 받는 강력한 정권(푸틴)이 떠오르고 있는 것이 두 눈에 확연히 보이기 때문입니다. 스페인어, 남미국가들이 스페인어 씁니다. 남미도 슬슬 물이 오르려고 합니다. 아랍어, 10억이 사용합니다. 펀자브어, 요즘 인도 잘 나갑니다.
제가 앞서 말씀드린 다른 나라의 말들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말이든 배우면 똑 ! 소리나게 하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실력이거든요. 그리고 외국어라면 무엇보다도 영어를 똑 ! 소리나게 하시길... 요즘 중국도 서점에 가면 온 천하에 잉굴리쉬거든요. 영어라면 일본인들만큼이나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사람들이 바로 이 사람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