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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우크라이나는 중국에 건조중단된 어드미럴 쿠즈네초프급 2번함인 바랴그호를 팔렸고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중국은 구입을 거부했습니다. 당시 891프로젝트가 가동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891 프로젝트는 예상 스펙은 이미 바랴그호를 넘어서고 있었고 캐터필트가 장착되고 항공모함에서 이착륙이 가능한 고정익 조기경보기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들은 중국해군이 절실히 요구하는 항공모함에 꼭 들어가야 하는 필수적인 요소였습니다.
항공모함을 위해서 중국 항공 산업은 전래없는 야망을 가진채 방대한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2000년 중국 항공 우주 산업 박람회의 모습. 앞에 있는 두가지 모델중 하나는 미래의 J-20이 되며 아래의 미사일은 램재트 장거리 공대공 미사일인 PL-21입니다. 사람들 뒷편에 있는 조기경보기가 바로 중국이 개발하던 고정익 항공모함 조기경보기입니다.
중국해군 첫 항공모함 건조 프로젝트인 707 프로젝트는 중국 해군에 항공모함의 중요성을 알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여러면에서 특히 함재기 부문에서 큰 기술력 부족을 느끼며 결국 1988년 9월 공식적으로 취소되고 맙니다. 그러나 항공모함 보유의 꿈은 이대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국방 과학 기술 위원회와 과학 기술 위원회을 겸직하는 자문위원 4명은 항공모함 및 항공모함 기반 함재기 타당성 연구를 제안했고, 1989년 1월 공식 승인을 받으면서 코드네임 891 프로젝트가 시동을 걸었습니다. 동년 3월, 항공산업 개발 연구소는 항공모함 기반 함재기 하위 그룹에 공식 합류하였고 함재기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중국 해군은 저번의 교훈을 거울삼아 함재기 개발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고, 연구 및 개발을 전폭적으로 지원하였습니다. 그리고 항공 산업이 최대한 빨리 가시적인 함재기 개발의 성과가 있기를 바랬습니다. 이 시점에서 중국 항공 산업은 707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함재기 개발의 대한 어느정도 경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601 연구소는 기존의 J-8II을 함재기로 개발하는 프로그램을 611연구소는 역시 기존의 항공기인 J-7을 함재기로 개량하는 프로그램을 제안했습니다. 이 방식대로 진행한다면 이미 검증된 기술을 바탕으로한 안전하고 빠른 개발이 가능했지만 벌써 90년대를 가르키고 있는 이 시점에서 이들 함재기는 도저히 성능면에서 미래 가능성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새 기술을 쓴다는 것은 1989년 중국의 항공우주 기술력을 고려할때 엄청난 도박이였습니다. J-10도 당시에는 3개의 연구소들이 경쟁에서 611연구소가 승리해서 겨우 금속 뼈대로 된 프로토타입으로 제작하던 시절로 함재기 개발은 딜레마에 빠져들었습니다.
1989년 6월, 601 연구소 부소장인 리 천은 중국 해군 부사령관인 리 징에게 현재 진행사항을 보고했습니다. 여기서 601연구소는 지상 기지에 이착륙과 항공모함에서 이착륙은 요구하는 사항이 매우 다르며 특히 우리의 J-8을 함재기로 개조하려면 여러 가지 부분을 다시 재설계 혹은 보강 해야한다고 보고했습니다. 구체적으로 공압장비를 재조정하고 리프팅장비와 랜딩기어를 재설계해야 하며 구조를 보강해야하며 이들 작업은 매우 복잡하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 함재기를 현재 보통의 구형 육상 항공기를 개조하는식으로 진행하며 안되며 새 설계를 사용해야 한다고 보고했습니다.
결국 601연구소는 기존 J-8을 함재기로 개조하는 것을 접고 한창 성숙해지고 있던 J-13 기술을 이용하여 J-13을 새로운 새대 함재기로 개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J-13은 원래 기존의 J-6을 대체하기 위한 전투기 개발 프로그램에서 J-9와 경쟁 하기 위해서 개발되고 있던 평범한 날개를 가진 항공기였습니다. 항공기 생산 프로그램은 81년도에 취소됬으나 기술은 계속 개발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1984년 611연구소가 중국의 새 세대 항공기 개발 경쟁에서 승리했고 1986년에 코드10 프로그램으로 공식 승인됬습니다. (후에 J-10으로 발전.)
1989년, 601연구소는 그동안 버려져 있던 J-13 프로그램을 다시 재가동시켰습니다. YF-16에 패배했지만 다시 F/A-18로 부활한 YF-17 처럼 이런 사례에 성공사례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였습니다. 함재기용 J-13은 이전에 개발되던 J-13과 번호만 같은뿐 매우 달라진 항공기였습니다. 함재기로 사용하기 위해 설계를 근본적으로 갈아엎었습니다. 단발의 단좌, 멀티롤 기체로 동체-날개 혼합 디자인을 새로 채택했고 F/A-18 호넷과 유사한 공기 흡입구 설계로 교체했습니다. 캐터필트 이륙과 착함용 어레스팅 기어에 맞게 랜딩기어도 재설계됬습니다. 특히 멀티롤은 함재기 J-13에 가장 중요한 점이였습니다.
함재기용으로 재설계된 랜딩기어
날개 역시 함재기에 맞게 접을 수 있도록 재 설계 됬습니다.
J-13은 2발의 공대함 미사일과 2발의 공대공 미사일, 2개의 연료탱크를 탑재할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611연구소는 전래없는 어려움에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다른 3개의 연구소와의 경쟁에서 J-10이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함재기 개발은 여전히 어려운 과제였습니다. 승리에도 불구하고 항공산업의 관심은 82 프로젝트(八二工程, J-8 프로그램입니다. 당시 J-8은 중국이 자체 설계로 처음 만든 항공기라서 여러 문제가 나타나 이를 해결하고 개량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에 있었고 J-10관심은 승리한게 맞나 했을 정도로 관심이 적었습니다. J-10은 출발점부터 차원이 다른 새세대 항공기 였으며 덕분에 이를 자신감 있게 추진해줄 높으신분이 없다는게 그 이유였습니다.
1989년 12월, 중국 항공 우주국은 베이징에서 항공모함 기반 함재기 시연 프로그램을 개최했습니다. 아직 J-13은 초기단계였기에 601연구소는 J-8II 기반 함재기와 611연구소는 J-7 기반 함재기를 선보였습니다. 평가 후, 이들 연구소의 프로그램은 각각 하나씩 강점이 있다고 평가됬습니다. 회의 후 601연구소는 접이식 날개 부문을 611연구소는 함재기용 랜딩기어 개발을 담당하기로 결정됬습니다.
함재기형 J-7. 여러 곳에서 설계를 변경했습니다.
이렇게 결정 후 601연구소는 함재기형 J-13 진척도를 빨리하기 위해서 당시 오리지날 J-13과 경쟁했던 611연구소의 J-9 설계와 초기 연구단계인 오리기반 설계의 일부를 참고하였습니다. 결국 두 기체가 경쟁한지 10여년만에 둘 사이의 유사점이 생기는 인상적인 사례로 남게되었습니다. 이 설계의 채용으로 전체적으로 레이더 반사면적이 감소하면서 특히 J-13의 동체 가장자리부문의 레이더 반사 면적이 준스텔스 전투기급으로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그동안 603연구소는 항공모함용 고정익 조기경보기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두개의 터보프룹 엔진과 이중 수직 꼬리날개를 가진 조기경보기를 제안했습니다.
603 연구소의 함공모함용 고정익 조기경보기.
조선산업 역시 캐터필트 탑재된 항공모함 건조를 위한 예비 기술 개발 단계를 진행하며 여러 성과를 이뤘고 1995년 중국 해군은 현재 진행상황을 긍정적으로 보고 야심차게 항공모함 건조를 위한 보고서를 중앙에 공식 제출했습니다. 그러나 중국 지도부는 당시 항공모함 건조는 시기상조라고 생각했고 보고서는 거절 당했습니다. 그것이 891 프로젝트의 마지막였습니다. 891프로젝트는 결국 갑작스럽게 중단되었고 95년형(九五) 항공모함도 예비 조사단계에서 중단되었습니다.
그러나 601 프로젝트 이후 85 및 95 항공모함 보유 5개년 사전 연구 계획은 결코 가치 없는 헛된 일이 아니였습니다. 어째든 진행하면서 진척된 기술적 사항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으며 여기서 참가한 수많은 연구진과 기술진 개개인에게도 소중한 경험이자 중국 해군과 조선산업 그리고 항공 산업 전체에 항공모함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항공모함 보유 프로젝트는 048 프로그램으로 이어집니다.
참고 자료 : "华羽杂记-中国航空秘密计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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