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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깨달은 분의 제자가 쓰신 글입니다.
홈페이지도 운영하고 계시니 과연 이 세상은 무엇이고
왜 사는가에 대한 진실을 찾고 있는 사람들은 가보시기 바랍니다
이 글은 기독교 믿는 분들이 항시 주장하시는 성경이 하나님말씀이기때문에
믿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입니다
그리고 한가지 더 말씀드리자면 기독교는 욕하시되
예수님에게는 절대 욕을 하시면 안된다는 겁니다
그 분은 세상에 진실한 가르침을 전하시다
미신과 거짓에 물든 사람들에게 십자가에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최고의 가르침을 몸으로 증거하셨습니다
그러니 예수님 욕은 그만들 하시고
진실했던 예수님의 말씀이 현재는 왜 변질됐는지 이해를 먼저 한 후
그 종교를 비판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예수님이 말씀하신 진실은 과연 무엇이였는가에 대한 이해를 하신다면
자기자신을 무지에서 타파할 수 있고 항상 깨어있는 좋은 자기자신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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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속에 있는 많은 경전들이 하나의 맥락으로 이어져 있는 이유는
성령에 의한 하느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지금 학자들에 의해 밝혀진 바에 의하면
지금의 성경은 신학적, 철학적으로 중요해서 남은 게 아니라
로마 콘스탄티누스대제가 로마통치를 위한 국교로 활용하기 위해
당시 다수파에 의해 주장되는 경전들만 모아 정치적으로 편집한 것임이 밝혀지고 있다.
예수님은 당시 유대교의 우상과 위선과 죄악 속에서
세상의 진실과 진리, 참된 인간의 길을 밝히고 짧은 생애를 마치고 돌아가신 후
예수님의 가르침은 제자들인 12사도에 의해 사명감을 갖고 전도되기 시작했다.
당시 예수님의 가르침은 그 당시 세상을 지배하던 전쟁과 폭력.
유대교의 위선과 무지, 인간의 탐욕과 사악함을 밝히고
세상의 진실과 진리, 인간의 길을 제시한 것이었지만
그 가르침의 시간이 너무 짧았기에 사후에 남은 제자들은 무엇을 가르칠 지 막막했다.
그 증거는 예수가 돌아가시는 현장에서 제일제자인 베드로가
닭이 울기 전 예수님을 세번이나 부정했던 사례에서도 잘 알 수 있다.
당시 예수의 제자가 된 자들은 어부나 창녀와 같은 하층민이었고
상류사회의 지식인들은 머리에 든 것이 많아 예수님의 순수한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따라서 뒤에 남은 제자들의 이해와 체험의 정도가 다 달랐기 때문에
그들이 세상에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방식도 다 달랐다.
당시만 해도 문자가 제대로 보급되어 있지 않는 상황으로
예수님의 가르침은 제자들의 기억 속에 저장되어 전해졌는데
이것이 수백년을 걸치면서 사도와 직계제자, 그리고 교부를 통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소아시아와 유럽전역으로 파급되면서 때와 장소에 따라 갖가지 형태로 변질되게 된다.
일반적인 주류는 유대교의 신앙과 같이하는 것이었다.
다수의 제자들은 어렸을 때부터 유대교의 영향력 속에 살아온 유대인들이었다.
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가르침의 시간이 짧았고 깊은 깨우침이 없었기 때문에
예수님에게서 받은 강한 감화력을 전통적으로 익숙했던 신앙적 방법으로 전하려 했다.
에비온파 같은 이들은 구약을 받아들여 할레와 안식일, 율법 등 을 문자 그대로 지키려 했으며
예수님을 하느님과 같이 신앙화하여 나중에는 하느님과 예수와 성령을 같은 절대자로 보는
삼위일체설을 주장하는 아타나시우스파로 발전하였다.
이러한 흐름은 당시 사회적 배경이었던 유대교의 영향력 속에 있던 대중들을
기독교화시키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예수님은 절대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앙으로 미신과 무지에 빠진 인간을 깨우고자 했으나
그 가르침은 제대로 밝혀지지 못하고 다시 영적 신앙의 흐름 속에 파묻히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신앙적 흐름 속에서도
마음이 맑고 깨우침이 큰 소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순수하게 지키고자 애썼다.
지금 영지주의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 그들이 남기고 있는 내용들을 살펴보면
이치적으로 볼때 지금의 기독교보다 더욱 진실에 가까운 것을 볼 수 있다.
그들은 구약의 신을 잔인하고 복수심에 불타는 신으로 보고
창세기를 부정하며 구약의 신을 악의 창조자로 보았다.
그래서 제자들이 구약의 신을 섬기는 것을 보고
예수님이 하느님은 그런 존재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례를 든다.
구원은 구약의 미움과 복수의 신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빛과 진리를 다스리는 초월자에 의해 이루어지니
내부의 빛을 통해 깨어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형제자매여! 깨어나라. 너희들은 잠들어 있고 무지몽매하다.
지금은 너희들은 깨어날 때이다. 네 안의 주를 깨우고 빛을 깨워라.
이렇게 정신적 가치를 강조하다보니 물질을 악의 근원으로 보고
세속의 권력인 교회와 주교들을 껍데기와 같다고 보았다.
그리고 지옥에 대해서도 지금 기독교인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이 별도의 공간이 아니라
이 지구상에 천국과 지옥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사실은 이곳의 가르침과도 일치하는 것으로
세상의 진실에 눈을 뜬 자만이 볼 수 있는 사실인 것이다.
이러한 지옥의 고통을 전해듣고 베드로는 예수님에게
인자하신 하느님이 있는데 왜 죄인들이 저렇게 지옥에 갖혀 참혹한 고통을 받느냐고 묻자,
예수님은 죄인들 스스로 그렇게 만들었다고 했다.
여기에도 신이 아니라 스스로 행한 결과를 받는 인과법인 자업자득의 이치가 나타난다.
그리고 그들은 하느님만 절대자로 인정하고
그리스도를 피조물인 인간으로 보는 단일신론을 주장했다.
이러한 예수님의 가르침에 충실한 교파에는 이레네우스파, 영지주의파 등이 있고
단일신론을 주장한 아리우스파로 발전하였는데
AD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삼위일체설을 주장하는 아타나시우스파와 충돌하여 결국 이단으로 몰려 몰락하였다.
그러나 이 세상에 완전한 신은 창조주 하나님 한분이라는 단일신론은
예수가 말한 성경 속에 구절을 살펴보면 당연하다.
마가10장18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분 외에는 선한이가 없느니라.
요한13장16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자보다 크지 못하니,
마태23장9절,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말라 너희 아버지는 하나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자시니라,
눅22장42~43절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시기를 원하나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고 전지전능한 절대자 자신이라면
이런 기도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늘상 이야기했듯이 성자들은 인간의 몸을 지니고 사명을 가지고 이땅에 태어나신 분들로
수많은 생을 통해 자신의 영혼을 고양시켜 왔기에 이생에 영혼의 열매를 맺어
세상을 보고 참된 진리를 밝히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이 생에서 세상을 위한 축복으로 마지막 남은 자신의 모든 업을 지워버릴 때
완전한 영혼이 되어 가는 곳이 곧 창조주의 자리이니
결코 이 생에 태어난 성자들이 창조주와 동격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이처럼 예수님이 자신은 하나님이 아니고 아들이라고 성경 곳곳에서 분명하게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이 예수님을 신으로 모시게 된 것은 유대교의 배경 속에서 기독교가 성장했기 때문이다.
신에 대한 맹신에 익숙했던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회개하라는 충고를 받고
자신을 고치고 진리를 실천함으로써 복을 받기를 원하지 않고
행동은 고치지 않고 과거와 같이 신을 믿기만 하면 무조건 구원과 은총을 주는 신을 갈망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오늘날의 기독교는 과거 유대교의 절대신에 대한 맹신의 관념체계 속에
또 하나의 우상으로 예수님을 추가하는 종교를 만든 것이다.
그외 클리멘트와 오리겐 같은 이들은 기독교와 스토아철학, 헬라철학과 결합하여
신학과 철학의 융합으로 중세 기독교철학의 기초를 닦았으며
엘카이파같은 이들은 이러한 동방철학에 유대교와 기독교를 융합하고 모세의 율법을 강조하여 이슬람의 발생원인이 되었고
페르샤의 귀족의 아들인 마니는 조로아스터교, 불교, 기독교를 통합한 마니교를 창시해
해탈을 통해 구원을 얻으라고 했으며 스스로를 보혜사(은혜로 지켜주는 스승)라 했다
이러한 다양한 흐름 속에 갖가지 경전들이 만들어 졌는데
현재 남아있는 것만 해도 초기 신약이 수록된 희랍어 사본이 약 5천여개,
번역 사본들이 약 1만개, 교부들의 인용문도 수천에 이르고 있다.
AD 325년 로마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제국의 통치를 위한 통치이념으로
기독교를 활용할 결심을 가지면서 니케아 종교회의를 소집하여
다수파인 삼위일체론을 주장하는 아타나시우스파를 정통으로 결정하고
소수파인 단일신론을 주장하는 아리우스파를 이단으로 추방한다.
이때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오늘날의 성경과 삼위일체설이 채택되고
단일신론과 외경이라 불리는 경전들이 이단을 추방된 것은 신학적 교리적으로 중요해서가 아니라
로마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국론통일의 필요성에 의해 강제적으로 개최된 자리로
당시 소집된 주교들의 다수결에 의해 채택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리하여 다양한 기독교의 흐름이 니케아 종교회의를 계기로 통일되어
오늘날 기독교의 모태와 성경 초안이 만들어지게 된다.
그리하여 당시 소수파의 경전으로 현재 외경이라고 불리는
마리아복음, 베드로 복음, 베드로계시록, 베드로행전, 요한행전, 도마행전,
안드레아행전, 에비온복음, 니고데모 복음서 등이 성경에서 빠지게 된 것이다.
그러니 어찌 성경이 하느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한 경전이라고 하겠는가?
오늘날 전해지지 않는 이들 경전에는 현 기독교가 감추고자 했던
예수의 어렸을 때의 모습과 마리아와의 관계 등 생생한 모습들이 많이 나타나 있다.
이렇게 하여 진실을 밝히고 세상의 이치를 깨우쳐 사람들을 바르게 이끌고
실천에 이르게 하려는 예수님의 성자로서의 가르침을 사라지고
기독교는 다시 유대교와 같이 구약의 신을 섬기는 종교로 변하게 되었으며
진리를 밝히던 평범한 스승이던 예수가 신의 자리에 올라서서
섬김을 받는 우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구약 속에는 다음과 같은 잔인하고 파괴적인 복수의 하나님이 나온다.[여호수아 11장 8~12절]
여호와께서 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신고로 그들을 격파하고
큰 시돈과 미스르봇 마임까지 쫓고 동편에서는 미스바 골짜기까지 쫓아가서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고 쳐죽이고
여호수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행하여 그들의 말 뒷발의 힘줄을 끊고 불로 그 병거를 살랐더라
하솔은 본래 그 모든 나라의 머리였더니 그때에 여호수아가 돌아와서 하솔을 취하고 그 왕을 칼날로 쳐 죽이고
그 가운데 모든 사람을 칼날로 쳐서 진멸하여 호흡있는 자는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고 또 불로 하솔을 살랐으며
여호수아가 그 왕들의 모든 성읍과 그 모든 왕을 취하여 칼날로 쳐서 진멸하여
여호와의 종 모세의 명한 것과 같이 하였으되
이와 같이 잔인한 하느님은 이스라엘에게 싸움을 시키고
상대민족을 모두 전멸시키고 모든 생명을 진멸하라고 한다.
노인네도 죽이고 아녀자도 죽이고 애기들도 죽이고 짐승까지도 전멸시킨다
이러한 잔인한 하느님은 이미 예수님의 뜻과 다르기에
이미 과거에 영지주의자들이 부정한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성경 속에 포함된 하느님의 말은 선하고 자비로운 창조주 하느님이 아니라
유대민족에 대한 집착을 가진 원한많고 편파적인 민족신인 것이다.
그러니 성경 말씀을 반드시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장담할 수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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