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백마 탄 백수
작가 : 이대리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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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편 재방송
『그 강사 어떻게 생겼는데!』
『키도 좀 크고 얼굴도 예쁘게 생겼어. 그리고 엄마가 그 언니 너무 좋아해서 낼 우리 집에
서 같이 아침 먹기로 했는데. 몰라~ 흑흑!』
『이, 이름이 뭔데!』
『그건 왜 물어. 흑흑!』
『빨리 말해봐!』
『정보라.』
『뭐!! 정보라??』
된장! 내 인생은 왜 이렇게도 시트콤의 연속이냐!
이게 말이나 되는 상황이야!
잠깐, 침착하게 요점정리 해보자.
여우에게 잠시 뿅한 내가, 저 뇬을 나이트에서 100만원에 샀다. 돈이 없어서 납치를 당했고
운명할 뻔하다가 겨우 탈출에 성공하여 이번엔 내가 납치를 했다. 근데 저 뇬은 내 동생
미래와 같은 센터에서 일하는 재즈 강사이고, 우리 엄마가 좋아하는 뇬이며, 내일 우리
집에서 같이 식사를 하게 될 뇬이다.
그럼 이젠 어떡해야 하는 거냐?
어떡하긴 언능 튀어가서 풀어줘야지!
우앗! 미치겠다! 미치겠어!!
신발! 내가 납치 당할 때는 유치원 꼬마애 납치하듯이 쉽게 연행되고 그 뇬 납치할 때는 한
낮 골목에서 쪽팔린 혈투극 끝에 무슨 대통령이라도 납치하는 듯 요기조기 깔려있는 경찰들
피하느라 땀을 바가지로 쏟아 부어야 하고, 또 내가 납치됐을 때는 아무도 동정해주거나 걱
정해주는 사람도 없이 고문 받다가 탈출할 때는 목숨까지 걸어야 했는데 이 뇬은 공들여서
납치했더니 계획대로 복수도 못하고 라디오에선 난리가 나고 미래는 방방 뛰면서 울어대고
또 기껏 묶어두고 나서 한 시간도 안돼 다시 풀어줘야 하다니!
왜 나한테만 불리하게 돌아가냐고! 저번에 삼일동안 가지고 놀던 바퀴벌레가 도망갔을 때보
다 더 억울하다!
어두운 산 속을 다시 똥꼬 빠지게 부랴부랴 뛰어 올라갔다.
이번에도 오싹한 소름이 끼쳐 산 정상까지 한번도 안 쉬고 빛의 속도로 달려간 것이다.
온 몸이 꽁꽁 묶인 상태로 이 무서운 산길을 내려갔다 올라갔다 하려니 엄청 빡세다.
헥헥!
산 정상에 도착하니 나무에 꽁꽁 묶인 채로 잘 익은 벼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띵기리, 이렇게 묶여있는 날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설마, 아까 파묻히는 건 못 봤겠지?
슬그머니 그녀의 뒤로 돌아가서 껑충 뛰며 그녀 앞에 짠~ 하고 나타났다.
『짠~ 많이 기다렸지?』
자신의 구두를 내려보고 있다가 비스듬히 고개를 든다. 한쪽 머릿결이 그녀의 오른쪽 눈과
뺨을 살짝 가리고 있고 쓴웃음을 짓고 있다. 마치 길 잃은 숲 속에서 만난 불길한 느낌의
마녀처럼.
웁~! 그새 귀신의 혼이 점령했나! 메가톤급 살기가 품어진다.
『야, 야. 웃지마.』
『웁, 웁.』
『어유~ 그 동안 많이 답답했겠다.』
그녀의 입에 붙은 테이프를 띄어버리자, 가쁜 숨을 몰아 내쉰다.
『헉, 헉.』
거친 숨을 몰아쉬는 그녀의 입에서 김치볶음밥 비슷한 냄새가 난다.
오잉? 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밥풀때기들은 뭐냐?
『헉, 헉, 숨막혀 죽을 뻔했네.』
『숨막히다니. 코는 열어두고 갔잖아.』
『라이터 사러 간 놈이 왜 밧줄에 묶여서 올라왔냐?』
『실은 너한테 이벤트 하려고 장난 친 거야. 그래서 나도 이렇게 똑같이 온몸을 묶고 올라
왔잖아. 재밌지? 하핫!』
『씨퐁! 웃기고 있네! 넌 니가 판 무덤엔 왜 들어갔었냐!』
된장, 봤구나! 아, 쪽팔려!
『그. 그게.. 날씨가 좀 싸늘해서 땅속에 들어가 있으려고 동이한테 살짝 묻어달라고 한 거
야. 하핫!』
『지랄!』
웁! 지랄? 그런 용감무쌍한 육두문자를 감히 나에게 날리다니!
이걸 확 쥐어박을 수도 없고!
『무슨 사연인지는 모르겠지만, 빨리 풀어주기나 해.』
『나 먼저 풀어줘라. 그럼 너도 풀어줄게.』
『내가 그걸 어떻게 믿어! 먼저 풀어 줘.』
훙! 풀어주면 혼자 도망가려고?
미쳤냐! 내가 이 무서운 산을 또 혼자 내려가게!
『그럼, 나무에서만 풀어 줄 테니까 저 밑에까지 이러고 내려가자.』
『씨퐁, 알았으니까 빨리 풀기나 해. 팔 아파 죽겠다.』
그렇게 둘 다 몸이 묶인 상태로 산을 내려왔다.
아닌 밤중에 공동 묘지 길을 둘이서 꽁꽁 묶인 채로 산책하며 내려온 건 지구에선 처음
있는 일일 것이다.
만약 인터넷 유머란에 올라가면 하루사이에 조회 수 10만은 올릴 거대한 에피소드거리다.
도로까지 내려와서 우린 하늘땅 별땅 맹세를 한 다음, 서로의 몸을 풀어줬다.
『시퐁~ 이제야 살 것 같네. 답답해 죽는 줄 알았다.』
『답답했다고? 자루 속에서 갇혀있었던 난 어땠겠냐!』
『흥~, 너 솔직히 말해봐. 몸은 왜 묶여 있었고, 왜 지금 풀어 준건지. 무슨 시트콤 같은 사
연이라도 있냐?』
여우같은 뇬! 눈치가 빛보다 빠르구나.
『그래, 사실대로 말해줄게.』
어두운 비포장도로를 끝없이 걸으면서 모든 얘기를 낱낱이 파헤쳐 주었다.
그러자, 천둥에 개 놀라듯 하더니 놀란 토끼마냥 눈을 부릅뜨며 말한다.
『뭐? 너가 미래 오빠였어? 정말 세상 좁다.』
『나도 납치범이 내 동생이랑 같은 곳에 일하는 재즈강사 일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어
쩐지 나이트에서 끝내주게 추더라.』
『너 무덤까지 끌려온걸 보니 집에서 정말 쓸모 없는 인간이구나.』
『띵기리! 불난 집에다가 대형선풍기 돌리냐!』
『한대수 정말 아쉬워서 어떡하니. 시원하게 복수한번 하려고 했는데 일이 이렇게 꼬여버려
서. 푸호홋!』
신발! 좋아죽으려 하는구나.
아, 정말 분하고 분하다. 미래한테 전화하는 게 아니었는데!
『근데, 그때 깍두기랑 같이 날 죽일 생각이었냐?』
『총 맞았냐! 별 볼일 없는 백수 한 명 죽여서 뭐가 이득 된다고! 그러는 넌, 정말로 날 묻
을 생각이었냐?』
『칼 맞았냐! 그런 무시무시한 막노동을 하게!』
『너 왕년에 부상으로 곡예사의 꿈이 좌절되기라도 했니? 줄 잘 타더라~』
『그럼 계속 타게 냅두지 그걸 끊어버리냐! 그리고 넌, 어떻게 돌로 대굴빡을 찍어 기절시
킬 수가 있냐!』
『그냥 겁만 주려고 살짝 찍은 건데 니가 기절 한 거야.』
우아~ 무식한 여자. 내가 이런 여자한테 반했다는 게 정말 치가 떨린다. 앞으로 여자 고를
때 무늬보다 질을 중요시해야겠다.
『훙! 그 깍두기는 뭐냐?』
『건달이야. 그 오빠한테 빚진 게 있어서 우리 집에 잠깐 살고 있어.』
그랬군. 어쩐지 안 어울리더라.
근데, 그 깍두기한테 무슨 빚이 있기에 고릴라를 인간의 집에 거주하게 하냐.
『참, 내 지갑 내놔!』
『빨리도 생각하네. 자, 5만원은 내가 썼다.』
뭐? 내 한달 용돈인 5만원을 써버렸다고? 우아~ 뚜껑 올라간다!
『그리고 로또복권 한 장 있는 거 내가 빼갔다. 백수주제에 너무 원대한 꿈을 갖고 살면 안
되잖아. 근데, 번호가 그게 뭐냐? 1, 10, 20, 30, 40, 45?』
허걱! 나의 유일한 희망을 빼가다니!
『100만원에서 10만원은 깔 테니까 90만원만 갚아라.』
이건 또 무슨 오밤중에 끓는 물 마시고 벽치는 소리냐! 기껏 풀어줬더니 빼 갈 거 다 빼가
고 돈까지 갚으라고? 물에 빠진 놈 기껏 건져놨더니 싸대귀 맞는 꼴이구나.
『좋다! 이제 납치도 1:1 셈셈이고, 돈은 로또복권으로 퉁 칠 테니 아무 것도 없었던 일로
하자!』
『싫어. 90만원 갚어.』
『그거 이래봬도 100억 당첨될 번호야!』
『난 분명 싫다고 말했어.』
어휴~ 죽일뇬! 벼룩의 간에 만리장성을 쌓지 그러냐!
훙! 내가 그 돈을 갚나봐라! 내 목에 작두를 들이대도 안 갚는다!
티격티격 신경전을 벌이면서 시내까지 나왔다.
근데, 생각해보니 집에 갈 차비가 없다.
여기서 집까지는 거리가 좀 멀어서 걸어가려면 팔을 만 번 정도는 흔들고 발자국을 이만 개
정도는 찍어내야 할 것이다.
지금 그럴 힘이 어딨냐. 좀 비굴하지만 돈 좀 꺼봐야겠다.
『천 원 짜리 한 세 장정도 있냐?』
『무슨 뜻이냐?』
띨빡! 말을 조금 돌렸더니 이해를 못하는구나.
『3천 원만 빌려줘라.』
『뭐? 벼룩도 낯짝이 있지, 빚진 놈이 할 소리냐?』
『그럼 오늘 너 대신 미래가 일해줬으니까 일당 내놔라.』
『허, 그게 멍청한 오빠 탓이지, 내 탓이냐!』
멍청한 오빠? 아후~! 분노게이지가 만땅을 채우는구나.
확 핸드백 들고 튀어버릴까?
됐다. 그럴 힘도 없다.
『그, 그럼 합승할 테니 적당한 곳에 좀 내려줘라.』
갈수록 목소리가 작아져야 하는 이 비굴함. 단돈 삼천 원에 내 멋진 카리스마를 팔아야하는
이 현실. 아, 서글프다.
『버스 타고 갈 거야.』
켁~!
『아후~! 치사빤쓰한 뇬! 내가 그냥 걸어간다. 걸어가!』
『백수주제에 너무 편하게 살려고 하지 마라. 열심히 돈버는 사람들도 차비 아끼려고 버스
타고 다닌다.』
신발! 이제는 훈계까지 하는구나.
밧줄 찾아서 다시 묶어버리고 싶다.
『너! 내일 우리 집 와서 나 아는 척 하지 말고 조용히 밥 먹다 사라져라. 그리고 앞으론
절대 마주치지 말자.』
『걱정하지 마라! 내가 백수랑 마주쳐서 뭐하냐?』
『나도 마찬가지야! 이중인격자 같은 뇬은 두 번 다시 보기도 싫다.』
『어쭈? 너처럼 능력 없는 놈은 한 줄로 세우면 보이지도 않는 거 알기나 하니?』
『어쭈구리! 너처럼 여우같은 뇬은 한 트럭을 줘도 트럭만 갖고 버림당하는 거 아냐?』
『니쪽 보고 오줌도 안 쌀 테니 걱정 마라.』
『니가 꼬추 달렸냐? 조준하게?』
『시퐁~! 변태같은 놈!』
『신발~! 여우같은 뇬!』
순간, 그녀가 길바닥에 노숙하고 있는 깡통을 발로 힘껏 차버렸다.
근데 그 깡통이 포물선을 그리며 슈웅~ 날아가더니 길거리에서 씩씩하게 군가를 부르며 의
기투합중인 해병대의 닭벼슬 머리통을 정통으로 강타했다.
허걱~!
깡통에 맞은 해병대 한 명이 고개를 삐그덕삐그덕 젖히더니 우리 쪽으로 다가온다.
웃! 엄청난 살기가 느껴진다.
『씨방! 대한민국 해병대 뒤통수에 돌팔매질을 한 것이 누구냐!』
그러자, 그녀가 잽싸게 내 뒤로 숨더니 능청을 떤다.
『것 봐 자기야. 하지 말라고 했잖아.』
뚜압! 이 뇬 봐라!
이건 무슨 닭먹고 오리발 내미는 돌발행동이냐!
날 두 번 죽이려고 작정했구나!
『야! 너가 찼잖아!』
『해병대 세 명쯤이야 손가락으로도 상대할 수 있다며 폼 낼 땐 언제고. 너 그러고 보니 겁
쟁이구나! 흥! 우리 이제 그만 만나!』
그러면서 자연스레 이 지옥 같은 분위기에서 돌파구를 찾아 빠져나간다.
허걱! 나보다 더 위기모면능력이 뛰어나구나!
『야, 야! 같이 가!』
그녀를 뒤따라가려고 하는데 해병대가 나의 멱살을 잡더니 기중기처럼 내 몸을 번쩍 들어올
려 자기 앞으로 쿵 내려놓는다.
『이 씨방놈! 지 애인을 팔아먹으려 하네!』
갑자기 해병대 전우들이 내 주위를 둘러싼다.
윽! 저 뇬 때문에 누명쓰고서 먼지 쌓이도록 얻어터질 것 같다.
얼굴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기 시작한다.
마귀할멈 같은 뇬! 윙크 한번 하고는 버스에 올라탄다.
헌병의 총이라도 빼앗아서 시원하게 갈겨주고 싶다.
그나저나 이 비극의 무대를 어떻게 벗어나냐.
된장, 이렇게 꼬여버린 거 눈에는 눈! 이에는 이다!
『아, 증말 오늘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안되겠네. 니들 몇 기야!!』
눈알을 1cm 내밀고서 얼굴에 혈류량을 높이며 하늘에 닿을 듯한 톤으로 외쳐댔다.
이것은 일생일대의 모험 극이었다.
제발 먹혀라, 먹혀. 안 먹히면 바로 삐오~삐오~다.
『구, 구백 오십기인데...요.』
앗! 방금 전까지만 해도 기세 당당하던 우락부락한 해병대넘들이 주춤거리는 표정이 보인
다.
나이수! 먹혔다!
이럴 때일수록 더욱 강하게 나가야한다.
넘의 정강이를 힘껏 내리 까며 목청을 키우고 말했다.
『이런 밀가루 반죽거리에 조미료도 안 되는 짬밥같으니라고! 너와 나 사이에 짬밥이면 북
한동포 10만명이 먹고도 남을 양이야! 알아!!』
『필승!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쉬어!』
앗싸~! 분위기 역전시켰다.
『빠진 넘들! 술 처먹었으면 귀신이나 잡으러 갈 것이지, 남들 앞에서 해병대 들어오지 말
라고 cf광고 하냐!』
『죄송합니다. 선배님.』
『모두들 바닥으로 엎드린다. 실시!』
내 말이 끝나자 모두들 0.1초만에 엎드려 자세를 취한다.
하핫! 짜식들 정말 시킨다고 하네. 이거 재밌어지는데.
『요즘 해병대 넘들 정신상태가 썩어빠졌어! 부대에서 그따위 정신으로 훈련받나!』
이야~ 내가 말하고서도 내가 놀랐다. 그 어느 조교보다 폼 나는구나.
『아닙니다~!』
『자, 하나 하면 내려가고 둘 하면 올라온다. 하나!』
모두들 군말 없이 내가 시키는 대로 팔을 굽혀 상체를 바닥에 붙인다.
하핫! 오락보다 재밌구나. 세 번만 더 하고 가자.
『둘! 하나! 둘! 하나! 둘! 모두 일어난다!』
헉! 일렬횡대로 일어선 그들에 얼굴에 피어오른 혈기를 보니 잘못 건드리면 바로 폭발할 다
이너마이트 같다. 빨리 보내야겠다.
『싸가지 밥통에 말아먹을 넘들! 10초 내에 해산한다! 실시!』
그러자, 한 넘이 묵직한 말투로 터프하게 말한다.
『선배님, 저희들이 오랜만에 휴가를 나와 기분 좋아서 그러는데 선후배가 함께 군가 한번
부르고 헤어지고 싶습니다.』
웁스! 내가 해병대 군가를 어떻게 아냐.
애국가도 다 못 외웠는데.
『임마! 너희들끼리 불러!』
『선배님과 전우애도 나눌 겸 같이 해병가인 묵사발가 한번 부르고 싶습니다.』
묵사발가? 그건 또 뭐냐?
잘못하다간 묵사발나겠구나.
『임마! 내 짬밥에 그걸 아직도 기억하고 있겠냐!』
『근데, 선배님은 어느 부대 나오셨습니까?』
헉! FBI요원도 아닌 공익근무요원이었던 나에게 육군 복무신조보다 어려운 질문을 날리다니.
순간, 예전에 해병대도 아닌 넘이 해병대 팔아먹다 걸려 칼부림 났다던 뉴스가 생각난다.
대충 마무리 짓고 빠져나가던가 해야지 시간 끌다간 뼈도 못 추릴 것 같다.
『그냥 좀 빡센 부대 나왔어! 난 바빠서 먼저 간다. 수고해라!』
그들의 등을 한번 토닥여주고서 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모두들 날 둘러싸며 길을 막더니 험
악한 표정을 지으며 또박또박하게 한마디 한마디에 힘을 실어 말한다.
『선배님! 묵사발가를 꼭 같이 부르고 싶습니다!』
된장! 유관순도 울고 갈 장기적인 고집불통이구나!
아무래도 순순히 보내줄 것 같진 않은데 대충 따라하는 척하다가 빠져나가야겠다.
『좋다! 묵사발가를 시작한다. 하낫, 둘, 셋!』
나의 구령이 끝나자 모두들 씩씩하게 반동을 찍으며 군가를 불러댄다.
저 넓은 바다 한가운데 우뚝 서있는 그 사람은 누구인가 해병대라네 ♬♩♪~~
해병대 가는 곳에 묵사발 있고 해병대 가는 곳에 승리가 기다린다 ♬♩♪~~
고무보트 둘러매고 어디로 가나 성난 파도 넘고 넘어 수색하러가지 ♬♩♪~~
해병대 가는 곳에 묵사발 있고 해병대 가는 곳에 승리가 기다린다 ♬♩♪~~
나도 이들에게 둘러싸여 묵사발가를 적당한 입놀림으로 립싱크해댔다.
그 어느 가수도 흉내낼 수 없는 고도의 립싱크였다.
다행히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하핫! 이 노래 부르니까 예전 생각이 나는구나. 짜식들, 그럼 수고해라.』
『필승~!』
『그래! 필승~!』
멋지게 거수경례를 하고서 박력 있는 모습으로 그 자리에서 빠져 나왔다.
휴~ 죽을 고비를 턱걸이하듯이 겨우 넘겼다.
사악한 뇬! 날 호랑이 굴속에 던져두고 도망을 가?
괘씸하고 분하고 열 받아 염통이 부르르르 진동을 한다.
내가 그 뇬을 왜 풀어줬을까??
뒷일 생각하지 말고서 한 14박15일 정도는 묶어뒀어야 하는 건데.
아, 생각하면 할수록 분통터지고 억울하구나.
그리고 뭐? 납치범이 낼 우리 집에서 식사를 하게 된다고??
훙! 목구녕에 밥이 잘도 넘어가겠다.
좋다! 내일 홈그라운드인 안방스타디움에서 정식으로 한번 붙어보자. 죽었어.
기진맥진한 상태로 집에 들어오니 아들 묻어두고 온 집안 권력자들은 태평하게 잠이나 자고
있다.
아무리 가진 것 없고 머리에 든 것 없고 말썽만 피우는 못난 망아지라 쳐도, 자식새끼 공동
묘지에 갇혀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잠이 온단 말인가!
아~, 이해가 안가고 분한 게 한 두 개가 아니다.
요즘 들어 왜 이렇게 살기가 싫어질까.
태양은 안 보이고 계속해서 먹구름만 보이는구나.
내일은 오늘을 잊은 채 새로운 해가 뜰까?
뜨면 뭐하냐!
납치범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우리 집에 와서 식사를 하게 될 테고, 아들 묻으려고 했던
집안 권력자들은 또다시 못 잡아먹어 아우성일텐데.
나중에 성공하면 꼭 백수의 날을 만들던지 해야겠다.
잠이나 자자~ 한 대수. [( ̄. ̄)]zZ
컷~!
나누어 줄수록 더욱 풍요로운 따뜻한 말 한마디가 용기를 주고 사랑을 전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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