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으로 찍은 문제들이 운 좋게 맞아 의학대에 들어갔고 이후 몇번의 유급과 퇴학위기를 버티다 간신히 시골 어느 동네에 조그만 병원을 낸 지 어느덧 30년. 그나마 광산촌으로 이름을 날리던 순간부터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가 노인들과 몇몇 어린 아이들이 전부인 현재까지 조말복씨가 내린 가장 큰 처방은 '감기약' 이었다. 그나마도 바깥으로 멀리 나가기 힘들어 하는 연로한 분들에게 내린 처방이었을 뿐 대부분은 거리가 있더라도 더 시설이 좋고 처방이 빠른 읍내 병원으로 향했다. 조말복씨는 그래도 크게 불만이 없었다. 의사라는 직업에 혹해 결혼했다 실망하고 도망간 아내가 있을 지라도, 도시로 나가겠다며 떠난 아들들과 의사 아들 키워놨더니 쓸모도 없다며 한탄하던 부모가 자신을 힘들게 할 지라도, 그것들을 뺀다면 꽤 잔잔하게 흘러가는 인생이 나쁘지 않았다.
그랬던 조말복씨의 인생에 커다란 돌덩이가 날아온 것은 어느 평일 낮 오후였다.
"선생님, 저 잠깐 점심 먹고 올게요!"
인건비를 줄 돈도 딱히 존재하지 않아 낮은 시급도 괜찮다며 찾아온 조무사 한명만을 부리는, 안 그래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는 병원은 해가 지지 않았음에도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까지 풍겼다. 점심 시간 무렵이 되자 조무사 일을 하는 C양은 식사를 하고 오겠다며 밖으로 나갔다. 최근 들어 식사량이 많이 줄어든 조말복씨는 점심을 거르고 나름대로 꾸려진 진료실 의자에 앉아 평소처럼 신문을 보고 있었다.
"에이,기껏 믿고 투자했는데 똥값 되게 생겼네,똥값..."
최근 들어 없는 재산을 몰아넣은 주식이 폭락할 기미를 보여 영 걱정되는 나날이었다. 그 순간 바깥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나잇대에 비해 나름 청각이 예민한 조말복씨는 그것을 어렵지 않게 잡아냈다. 터벅거리는 소리는 노인이나 젊은 아이들의 발걸음 소리가 아니었다. 그나마 몇 없는 환자들의 발소리를 대강 기억하고 있던 덕에 어렵지 않게 추측이 가능했다.
똑똑-
"의사 선생님 계십니까?"
"네, 들어오십시오."
처음 들어보는 낯선 남자의 목소리였다. 조말복씨는 일단 신문을 접고 점잖은 척 헛기침을 했다. 괜히 처음 보는 사람에게 한가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곧 문이 열리자 드러난 모습은 역시나 낯선 남자의 모습이었다. 검은 코트를 입고 주변의 과장스럽게 두리번거리는 남자는 왠지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문을 닫고 조말복씨의 앞에 앉은 남자는 조용히, 누가 들을 새라 조심스레 속삭였다.
"선생님, 다른 건 묻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혹시, 분리 수술 가능 하십니까?"
"네?"
"쉿! 조용히 말해 주십시오. 잘못하면 깨어나니까요."
"아니 그게 무슨..."
남자가 코트 안을 잠시 살피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돈은 달라 하시는 만큼 드리겠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것이 돈 밖에 더 없거든요. 대신 완벽한 분리 수술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대형 병원은 제 신상이 밝혀져 실험 대상이 될 수도 있어 돌고 돌다 여기까지 오게 된 겁니다."
"조금 더 쉽게 말씀 해보시는게,"
"아니, 뭐야?이게 뭐야!"
남자가 낭패라는 듯 이마를 싸매었다. 분명 또 다른 목소리가 남자의 코트 안에서 들려왔다. 조말복씨는 당황스럽다는 듯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가 결국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단추를 풀고 코트를 벗었다.
"...으아아아아악!!!"
그리고 마주한 광경에 조말복씨는 태어난 이래 가장 큰 비명을 질렀다.
"뭐야, 여긴!!호세 이 자식, 또 우릴 떼어내려고 하고 있어! 어쩐지 우리한테 술을 퍼먹이더니!!"
왼쪽 가슴에 달린 중년 남성의 얼굴이 말했다.
"어머머, 호세야!내가 널 그렇게 키웠니?"
이번에는 오른쪽 가슴에 달린 중년 여성.
"형...형이 어떻게 우리에게 이래...?"
그리고 이번에는 복부에 달린 앳된 얼굴이 말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이 사람들은 저희 부모님과 제 동생입니다. 당황스러운건 아시겠지만 제발 떼어내 주십시오. 저도 살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 자식이!!네가 먼저 우릴 보고 싶다고 네 몸 안으로 불러들였잖냐!!"
"아버지, 저는 이렇게 될 줄 몰랐어요. 그리고 제 몸이 아니라 인형 안으로 불러들였던 거라고요!!하지만 강령술 주술이 잘못될 줄은..."
"형...우리 버리지마...제발, 돌아가기 싫다고..."
"아가, 호세야.네가 우리에게 어떻게 이래?우리가 너 하나 지키자고 다 죽고 그랬는데?"
갑자기 심장께가 욱씬거리다 숨이 턱 하고 막히는 느낌에 조말복씨는 거칠게 숨을 내쉬다 쇳소리를 내며 바닥에 쓰러졌다. 점점 무언가가 가슴을 옥죄는 듯 통증이 느껴지며 몸 안으로 들어오는 산소가 줄어들고 있었다. 한 사람의 몸에 세개의 얼굴이 붙어있는 괴상한 모습을 한 남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코트를 여미고 진료실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 모습을 마지막으로 조말복씨는 정신을 잃고야 말았다.
"이름 조말복, 나이는 57세...여기 시골에서 병원한지 30년 됐고 가족들하고 떨어져서 혼자 사는 중...딱히 특별해 보이는 건 없는데?"
형사 A가 동료 형사 B에게 받아온 자료들을 읽어보며 갸우뚱거렸다. 사건 하나가 인계되었다는 말을 듣고 조그만 시골 병원으로 향하니 보인 것은 끔찍할 정도로 놀란 표정을 지으며 굳어버린 어느 남성의 시신이었다. 무엇을 보고 그런 표정을 지은 것 인지는 알 수 없었다. 때 마침 다가온 B가 A를 불렀다.
"조무사 얘기로는 점심을 먹고 왔는데 피해자가 사망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럼 그 점심을 먹고 오는 사이에 사망했다는 말이군..."
"국과수에 감식을 맡겨봐야 되겠지만 조무사 말에 따르면 일단은 심장에 따로 문제가 있는건 없었고 주변을 살펴보니 돈이나 기타 패물들도 그대로 인 것 같습니다."
"뭐?그럼 그냥 단순 발작 아닌가? 아니, 돈을 훔치러 온 도둑이라도 마주쳐서 이유 모를 심장 발작이라도 일으켰단 소리라고?"
"더 조사를 해봐야 될 것 같습니다만 피해자 나이가 나이인지라 급성 심장마비도 고려를 해봐야 합니다. 일단 가족들에게 연락은 해뒀는데 오면 따로 조사를 더 진행..."
적어도 그들로써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죽음이었다. 대체 왜 죽은 것인지, 짐작조차 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