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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저는 OOO입니다.
추운 날씨 잘 지내고 계신지 걱정이 되서 편지 드립니다.
저는 배려해주신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 중략-
세상 모든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가치관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각자의 호불호 역시 극명하게 나타나곤 하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물론 나는 지금에 와서는 보통 사람과는 다른 어떤 모습을 보일지도 모른다고 비로소 인지하고 있습니다.
저의 어린 시절은 행복하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것은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수치화 하는 것은 의미 없을지 모르겠지만, 저의 행복도는 10점 만점에 1에 가까웠습니다.
아버지는 국회의원으로 집에 들어오는 날이 거의 없었고, 어머니께서는 원활하지 않은 부부생활의 스트레스를 저에게 푸시려는 것인지 제가 읽고 쓰기 시작할 때부터 집, 아니 제 방에서 한발짝도 못나가게 하신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루는 제가 처음 듣는 속담의 받아쓰기를 틀렸다고 저를 때리시곤 하셨죠. 저는 아직도 그 속담을 기억합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 저는 이 속담을 지렁이도 발브면 꿈틀한다 라고 썼다고 종아리 20대를 맞았었죠. 그 당시에 저는 4살이었습니다.
어머니의 극성적인 가르침은 저에 대한 애정이라 생각하며 견딜 수 있었지만, 아버지의 행동은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맨 정신으로 들어오시는 날이 없었고 저를 매일 때리고 혼내셨습니다. 4살 때 틀린 속담조차 기억하는 제 머리로도 왜 맞았던 것인지 도저히 기억나지 않습니다. 머리를 너무 많이 맞아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버지는 지지율이 떨어지거나 지역주민에게 악담을 들으시면 앞에서는 부처같은 얼굴을 하시다가 집에 들어오자마자 저를 때리곤 하셨습니다. 차라리 선거운동 하실때는 때리지 않으셔서 좋았습니다. 가장 기뻤던 날은 아버지가 재선에 성공하셨던 날입니다. 슬프게도 그 좋았던 기억은 한번뿐이었다는 게 문제겠지요.
경제적으로 부족했었다는 둥의 거짓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그런 것은 어린시절의 인격형성에 부분적인 문제일 뿐이지요. 되려 저는 어쩌면 이러한 특수한 환경으로 말미암아 이런 잘못된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커가면서 이러한 분위기 속에 곪을 대로 곪은 제 성격은 엇나가기 시작했고, 고교 시절부터 우울증과 비슷한 증세를 경험하였으나 집안의 극구 반대로 병원에 가보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증세가 한참 악화되었으나 치료를 한번도 받지 못하고 저는 대학생활을 시작하였고, 본격적으로 알코올이라는 것을 배우게 되면서, 저의 정신병은 심해져 갔습니다.
그날 있었던 일 역시 저는 전혀 기억하지 못합니다. 부모님 몰래 우울증 치료를 위해 인터넷으로 구매한 약들과 알코올이 섞이면 어떤 문제가 일어나는지 전혀 저는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살해한 성매매 여성도 안타깝게 저는 어떤식으로 만났는지 기억이 없습니다. 정말 죄송하게 생각하고 ...
-중략-
아래 의사 소견서등등을 첨부합니다.
부디 제가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선처를 부탁드립니다.
“ 이정도면 될거 같네. ”
“ 의원님, 고생하셨습니다. ”
“ 그.. 이거 이 판사에게 검토 받고, 아, 갈 때 음료수 한박스 가져가고. 내 차 트렁크에 있으니 ”
“ 예 알겠습니다 의원님. ”
“ 그.. 아들놈 입단속 시키고. 가면서 사식 하나 넣어주고 ”
“ 예 알겠습니다 의원님. ”
“ 이미 2년후 특사나오는 거로 합의 봤으니 그냥 군대 갔다온다 생각하라고 하고. 생각난김에 교도소장한테 연락 한번 해야겠네. ”
“ 예 알겠습니다 의원님. 또 시키실 일 있으신지.”
“ 그거 하고 퇴근하고. 내일 시장하고 점심약속 있으니까 11시쯤 오고. ”
“ 예 알겠습니다 의원님 ”
-탁
“ 참 피곤하구만. 아들놈 때문에. ”
죄송합니다. 댓글 작성은 회원만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