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모니터 뒤에 있는 한 남징어입니다. 육아게시판에 이런 글을 올리게 되어 우선 마음이 아픕니다.
점점 더 살기가 어려워지는 까닭에,
세상과 다른 사람들에 대한 혐오가 더 늘어나는 것 같아서 또 씁쓸하구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읽을 수 있게 추천해주시길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1. '맘충'이라는 단어
최근에 맘충이라는 인터넷 용어가 오유에서 쓰여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몇몇 게시물에서 알 수 있다시피,
우리 주위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쉽게 해를 끼치는 맘들에 대한 분노로 비롯됩니다. '자기 애만 챙기고'
다른 사람들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식의 사람들. 배려도 없고 개념이 없는 이기적인 사람들 말이지요.
그러나 우리 모두 알고 있다시피 이런 종류의 사람들은 굳이 '맘'으로 특정짓지 않아도 주위에 많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아빠충도 있구요 그랜드맘충도 있고 그랜드파충도 있죠. 그러나 이 단어 뭔가 우리에게 많은
불편함을 줍니다. 왜일까요?
2. '맘충'이 우리에게 불편함을 주는 이유
이 단어에는 '편견'이 담겨져 있습니다. 가령 예를 들어볼게요.
한 오유인이 엘레베이터 타려고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갑자기 유모차에 아이를 태운 엄마가
자기들 먼저 타겠다고 새치기를 합니다. 순간 한 오유인은 이게 뭔가 싶습니다. 그래도 뭐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엘레베이터에 낑기려는 순간, 새치기한 엄마가 이야기를 합니다. "너무 좁으면 애가 불편해할 수 있으니까
다음에 타주세요." 배려가 강요가 아니지만 이건 뭔가 잘못된 것 같습니다. 오유인은 생각합니다.
"참 저런 사람이 다 있나;;" 그 오유인은 화가 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같은 일을 겪은 같은 시간의 다른 오유인은
그 엄마를 보고 생각을 합니다. "또 저 맘충;;" 그리고 이 둘은 결국 다음 엘레베이터를 타기로 하고 기다립니다.
여러분들, 두 사람의 반응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아시겠나요?
첫번째 사람의 경우 타인에게 불편함을 준 엄마를 '저런 사람'이라는 한 개인으로 보았습니다.
때문에 차별적 시선이 들어가 있지 않아요. 그러나 두번째 사람의 경우 같은 일을 행한 엄마에게 '맘충'이라는 단어로,
특정 집단 내에서 한 개인을 규정짓고 있습니다. 차별이 들어가 있는 것이죠. 전자의 경우는 폭력적이지 않습니다.
그냥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이 자기 생각만 강요하는 한 '개인'에 대해 화가 좀 났을 뿐이죠. 그러나 후자의
경우는 '맘'이라는 '집단'으로 한 개인을 특정짓고, 그 개인을 다시 '충'이라는 단어로 멸시했습니다.
어떤 집단을 가리키는 단어가 '충'이라는 혐오 단어와 결합이 되면, 그 집단 내의 아무런 연고가 없는 개인들마저
같은 욕을 먹게됩니다. 쉽게 말해 사람들은 다소 몰상식한 행동을 하는 엄마들을 보고 먼저 '저 맘충'이라는
단어를 의식적/무의식적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헤이트 스피치가 내면화 되는 것이죠. 섬세한 오유분들은
이 부분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게 됩니다.
3. '맘충'이 쓰여져서는 안되는 이유
오유에는 올바른 사고를 하려고 노력하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기본적으로 새누리당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고, 강자의 횡포에 대해 분노를 합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의 시선, 그게 오유분들의 정체성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또한 여성에 대한 차별에 대해서도 민감한 분들이 많습니다. 통계자료만 보아도 남성과 여성의 임금격차가
심한 나라가 한국입니다. 많은 나라에서 성차별의 척도를 가늠하는데 기업에서의 임금지표를 사용합니다. 그래서
노르웨이에선 법적으로 40%이상 여성 고용을 의무화하고 있어요. 스위스는 불과 50~60년 전만하더라도 여성에게
참정권이라는 게 없었습니다. 이 부분은 스위스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나라가 마찬가지였습니다. 한국도 이를 피해갈 수
없었고 특히나 조선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가부장제가 이를 가로막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안타깝지만 역사가 그러했죠.
굳이 이 이야기를 꺼내는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왜냐면 '맘'은 기본적으로 '여성'이고 그와 동시에 '한국에서의' 맘은
사회적 약자층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독일, 스위스 외 북유럽 등 대부분의 나라에선 남성과 여성이 육아를 공동으로 책임지는
경우가 많고 그게 국가의 복지에 의해 사회적으로 보장됩니다. 그러나 한국은 기본적으로 복지가 열악하고, 그와 동시에
육아책임은 여성이 부담하는 비율이 현격이 많습니다. 열악한 육아 혜택, 여성에 대한 차별, 그리고 육아의 역할을 담당하는
대부분의 엄마들.
맞아요. 한국사회에서 엄마들은 사회복지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가부장적인 가정들에 의해 육아의 책임을 담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비단 육아 뿐만이 아니라 집안일을 거의 부담하죠.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거에요. '맘'은 사회적 약자에요. 보통 사회적 약자의 범주에 들어가는 경우는 백인중심사회의
타인종(흑인 등), 장애인, 성소수자, 여성, 이주민 노동자 등이 있습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언어폭력.먼저 말씀드렸던 많은 오유분들의 정체성과 멀어집니다.
쉽게 말해 '맘충'은 '니그로'와 같은 헤이트 스피치입니다.
4. 헤이트 스피치를 쓰지 말자?
베오베에 올라온 글을 읽었습니다. '맘충'을 쓰지 말라고 하면 '개독'이나 '색누리당' 다 쓰지 말아야 하는 거 아니냐.
'오유인의 이중잣대 쩐다. 이건 되고 저건 안된다니.' 여러분들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맘이 기독교인과 새누리당 의원과 동일한가. 그렇지 않습니다. 새누리당은 약자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강자입니다.
한국에서의 기독교 집단(저는 훌륭한 많은 기독교인들을 보아 왔습니다만)은 이명박 정권 때도 마찬가지었고,
지금까지도 큰 권력을 가지고 있는 집단이에요. 그리고 한국의 기형적인 특성탓에 굉장히 보수화된 기독교적 특성이
정치권과 많은 결탁을 하고 이득을 취합니다.
강자에 대한 헤이트 스피치는 풍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약자에 대한 헤이트 스피치는 폭력이될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볼게요. 흑인은 역사적으로 너무 큰 차별을 받아왔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종차별에 대해 굉장히 민감하죠.
흑인을 두고 한 백인이 니그로라고 이야기하면 그 백인 살아남지 못합니다. '백인'은 기본적으로 사회 기득권 중심에
있는 계층이고 그러한 계층이 흑인에게 니그로라 하면 그것은 폭력입니다. 쉽게 말해 강자가 약자에게 행한 헤이트
스피치는 폭력이죠. 그러나 반대의 경우는 어떨까요.
한 흑인이 백인들을 바닐라라고 지칭합니다. 굉장히 저급한 용어죠. 그러나 이 경우 강자에 대한 약자의 저항으로
볼 여지가 있습니다. 이러한 단어를 또 특정 개인에게 쓴다면 그 백인에게는 굉장한 모욕이지만, '백인'이라는 집단에
대해 말을 한다면 명백히 니그로라고 차별받고 있는 '흑인'들의 저항적 발언이라고 볼 여지가 있는 것입니다.
강자에 대한 스피치는 그래서 너그럽게 용인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권위'를 무너뜨리고 '약자'의 해방을 가능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약자에 대한 스피치는 굉장히 조심스러워야 합니다. 그것은 쉽게 '차별'과 '폭력'으로 이어지기 때문이죠.
오유분들 얼마 전에 베오베에 올라온 글 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JTBC 썰전 프로그램 도중)
강자에 대한 약자의 폭력과 약자에 대한 강자의 폭력은 다른 관점에서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새누리당을 색누리당이나 개누리당으로 표현해도 괜찮습니다. 새누리당은 약자를 억압하는 강자, 즉 뱀이거든요.
그러나 맘을 맘충이라고 표현하면 안됩니다. 한국에서의 '맘'은 사회적 약자 계층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5. 정리
살기가 각박해진 것 같습니다. 그만큼 또 주위에 개념없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겠죠.
일베라는 사이트에는 기본적으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모욕과 조롱을 통해 강자의 입장을 점유하고 싶어하는 저질들이 많습니다.
사실 본인들도 취약층에 속할텐데 말이죠. 그리고 조롱은, 조롱할 수 있다는 권력을 가져다 주거든요. 그게 큰 힘인 겁니다.
이 부분이 오유분들이 배려의 개념이 없는 맘으로부터 받은 스트레스를 '조롱'으로 풀면서 해소할 수 있는 이유 중의 하나이구요.
그러나 개인의 문제는 개인에게 국한시켜야 합니다. 몰상식한 사람이 있을 뿐, 거기에 일반화시킬 여지가 있는 용어는 지양해야 합니다.
이러한 조롱은 절대 사회적 약자에게 가해져선 안됩니다. 그리고 '맘'은, 주위를 둘러보지 않아도 바로 우리 집에 있잖아요.
'새누리당'이나 '한국 기독교인들' '일베'는 그 특정 집단을 선택할 수 있는 선택권이 있습니다. 그러나 '맘'은 선택할 수 없어요.
아이를 낳지 않으면 맘이 안될 수 있겠죠. 그러나 아이를 낳지 말라니.. 아이러니하죠.
선택할 수 없는 맘에게 맘충이라는 단어를 붙인다면, 그건 혐오가 만연해지는 사회에 밥 한 숟가락이 아니라 아궁이 한 솥을
놓는 격이 될 겁니다. 언어의 파급력은 그만큼 쎄거든요. 강자의 폭력에 민감해지는 것, 그게 성숙한 시민이 되는 길이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