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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대에게 드리는 꿈
13. 위기(1)
7월 24일 오후 6시, 경성부민관은 발 들일 틈도 없었다. 대의당이 주최한 분격대회인데도 박충금은 조선대표가 아닌 왜국의 대표로 ‘아세아 민족의 해방’이라는 연제로 열변을 토했다. 독립운동가들을 학살하려던 계획은 무산된 것이나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대의당은 크고 작은 집회를 이어나가는 중이었다. 총독부의 조종에 따라 결사항전의 의지를 연합국들에게 보여주려는 것이었다. 미친 열변들은 계속 이어졌다. 저녁 아홉 시쯤이었다.
‘콰쾅! 콰광!’
폭음과 함께 연단이 깨지면서 연설을 하고 있던 경무총감 고노에가 엎어지고, 단상에 앉아 있던 몇이 놀라 뒤로 자빠졌다. 부민관은 금세 아수라장이 됐다. 서로 먼저 빠져나가려다 넘어지고 밟혀서 다친 사람만도 40여 명이었다. 연단 바로 뒤에 앉아 있던 박가는 다친 데 하나 없이 말짱했다. 소란이 가라앉을 때까지 박가는 자신의 자리에 꼿꼿이 앉아 있었다. 그냥 앉아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를 뽀도독뽀도독 갈고 있었다.
소리에 비해 위력은 약했던 까닭에 심각한 부상을 입은 자들은 없었지만 돌연한 폭탄 세례의 범인을 잡기 위해 경찰과 헌병은 혈안이 되어 설치기 시작했다. 놀라기는 건국연맹 지도부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테러를 계속한다면 진짜 중대한 거사를 그르칠 위험이 있었다. 폭탄 테러를 한 사람을 빨리 찾으라는 지시가 청년단에 내려졌다.
청년단에서는 박가의 명령도 받고 있었다.
“야, 너희놈들이 찾아내!”
“우리가요?”
“내가 누구야? 누구를 찾는 일은 네놈들이 제일 빠르다는 걸 다른 놈들은 다 몰라도 나는 알아! 나 쓰다야, 쓰다 이치로!”
“......”
“경찰이나 헌병보다 먼저 찾아내. 고놈의 새끼들을 내 손으로 가죽을 벗기고 말겠어! 그리고 나, 이 쓰다 이치로 체면 좀 세워 줘, 이 새끼들아! 지난번 일부터 지금까지 이게 뭐냔 말이야, 이 새끼들아! 못 찾아내면 네놈의 새끼들을 다 죽이겠어!”
시불넘, 좆까는 소리하고 자빠졌네. 우리 대한민국 사람인데 잡으면 네놈한테 넘겨주겠냐? 정신 차려라, 새끼야! 모두들 속으로 욕을 해댔다.
대의당 사무실을 나오면서 남우현이 웃으며 말했다.
“저놈도 우리에게 도움이 될 때가 다 있구만.”
“형님, 그건 또 무슨 소리요?”
성질 급한 장태식이 다그쳤다.
“아, 저놈 덕분에 우리가 내놓고 그 사람들을 찾을 수 있게 됐으니 말이야.”
“그것도 그렇기는 하네.”
장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경성부민관 폭탄테러 거사를 해낸 사람들은 김성만, 정준화, 공만식이었다. 그들은 ‘산업전사’라는 미명 아래 왜국의 군수공장에 징용을 끌려갔다 돌아온 사람들이었다. 셋은 징용 당시 같은 공장에서 일했던 사람들로 왜놈들의 잔학성을 몸으로 체험하고 치를 떨면서 거기서부터 폭탄 테러를 위해서 은밀하게 제조기술을 익혀서 돌아온 것이었다. 그들은 왜국에서도 악명이 자자한 박가가 경성부민관에서 ‘아세아민족 분격대회’를 주최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지난번 대의당 발족식 때는 미처 알지 못해 실행에 옮기지 못한 것을 통분하고 있던 중이었다. 7월 중순까지 경성에서만 열 차례가 넘게 대의당이 주최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렸지만 모두 옥외집회였고, 계속해서 장소를 바꾸는 통에 기회를 잡을 수가 없었다. 집회에 필요한 집기들은 당일날 설치하는 것이 보통이어서 폭탄을 장치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박가놈을 죽이자! 경성부민관에서 대의당 주최 강연회가 있다는 말을 듣고 계획을 짜고, 수색의 군수공장에서 빼내온 것들로 시한폭탄을 만들어 전날 밤 부민관에 숨어 들어가 장치를 했던 것이다.
세 사람을 찾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틀 만에 서대문 단원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강성종과 마동주가 직접 나섰다. 아현 고개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세 사람의 거처가 있었다. 다른 단원들을 돌려보내고 둘은 그 집으로 들어갔다.
“계십니까?”
놀라지 않게 하려고 마동주가 최대한 정중하게 불렀다. 그러나 저쪽에서는 대답이 없었다.
“계시는 줄 알고 있습니다. 문을 열어보시지요. 우리도 선생님들과 같은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래도 대답이 없었다.
“여기에 있으면 위험합니다. 우리와 같이 가셔야 됩니다.”
그러자 슬며시 문이 열렸다. 둘이 다가가자 셋이 한꺼번에 튀어나왔다. 그러나 둘에게 순식간에 한 대씩 얻어맞고 다시 방으로 떠밀려 들어갔다.
방에 들어선 강성종이 손가락을 입에 갖다대 조용히 하라고 표시를 했다. 셋은 겁에 질려 구석에서 웅크리고 있었다.
“미안합니다. 조용하게 일을 끝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일이었으니 이해를 하십시오.”
마동주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도 셋은 믿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그들은 밀정들이 그럴듯한 말로 연극을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할 수 없군요. 그러면 여운형 선생님은 아시죠? 그분에게 가십시다. 어차피 왜놈들에게 잡혔다고 생각하고 우리와 같이 가시면 안 됩니까.”
그들은 밤이 되기를 기다려 임창식의 도장에서 여운형을 만났다. 그제서야 셋은 믿는 눈치였다. 여운형이 셋의 손을 잡았다.
셋은 군수공장에 다니는 연맹원으로부터 재료를 공급받아 폭탄을 만드는 일에 착수했다. 작전에 필요한 것은 투척용 폭탄이었다. 그 일에는 십여 명이 함께 하게 됐다.
“이 새끼들아, 네놈들은 뭐하는 새끼들이야?”
청년단 간부들을 모아놓고 박가는 책상을 발로 차며 분통을 터트렸다. 독립운동가 학살을 위한 예비검속도 유야무야되는 중이었고 자신이 연사로 나선 아세아민족 분격대회마저 폭탄 세례로 엉망이 돼 버린 것이었다. 박가의 화를 더욱 돋구는 것은 며칠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범인은 오리무중이라는 사실이었다.
장태식을 비롯한 청년단원들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머리를 숙이고 가만히 있었다. 그러나 속으로는 갖은 욕을 다 하고 있었다. 똥이 무서워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생각 같아서는 한방 먹여 버렸으면 속이 시원할 것 같았지만 거사를 위해서는 참아야 했다.
“너희들은 뭐하는 새끼들이냐고 이 새끼들아! 그런 새끼들 하나 못 찾고?”
“우리가 어디 순사들이오? 그 새끼들이 어디로 내빼 버렸는지 통 알 수가 없는데 우리더러 어쩌란 말이오? 그리고 욕은 좀 빼고 이야기합시다. 우리도 다 귓구녕 뚫렸으니까!”
장이 더는 참지 못하고 내질러 버렸다. 그리고는 벌써 후회하고 있었다. 이래서는 안되는데. 최대한 고분고분해야 되는데. 이놈의 급한 성질이 문제라니까.
“뭐라고 이 새끼야!”
박가가 금방이라도 메다꽂을 듯이 장의 멱살을 잡았다. 그러나 어쩌지는 못했다. 젊은 시절에는 왜국에서도 알아주는 주먹이었으나 이제는 늙은 것이었다. 더군다나 상대는 조선에서 첫째 둘째 간다는 주먹이 아닌가. 어떻게 했다가는 오히려 자신이 눈 깜짝할 사이에 어디가 부러져도 부러져야 할 판이었다. 그 서슬에도 장은 이왕 이렇게 된 것, 싶어서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거기다 더해서 잡아먹을 듯이 박가를 노려보기까지 하고 있었다. 박가가 멱살 쥔 손에 있는대로 힘을 주었다. 장은 손을 들어 멱살잡은 박가의 팔을 지그시 감아 비틀었다. 박가는 팔이 부러질 것처럼 아팠다. 그래도 체면에 아프다는 소리는 할 수 없었다. 박가는 두 팔을 장에게 잡힌 채 씩씩거리며 장을 노려보다가 팔을 거칠게 빼내고 제자리에 가서 앉았다.
박가는 장을 노려보며 생각을 공굴리기 시작했다. 생각할수록 지금까지 진행되어 온 일련의 일들에 수상한 냄새가 났다. 이중형에게서 들은 이야기도 떠올랐다. 이가가 거느리고 있던 밀정 셋이 종로 패거리에게 한꺼번에 맞아 죽었다고 했다. 뭔가 큰 것을 그놈들끼리 먹으려다 당한 것 같다고, 분명 계획적인 살인일 거라고도 했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그렇게 쉽게 죽냐는 것이었다. 그것도 세 놈이 한꺼번에. 그러니 왜놈강도 사건들이 종로 패거리의 짓이라는 것이었다. 그런 상관관계 속에서 세 밀정이 죽은 게 분명하다고 했다. 경무국은 단순한 폭행치사로 결론 내렸지만 아니라면 그 사건들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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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님들요, 추석 잘 쇠셨기를 바랍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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