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전, 내가 고등학생일 무렵 이야기다.
6월 초였다.
홋카이도는 장마도 내리지 않는 곳이다.
우리 학교는 월말 문화제를 앞두고 이런저런 준비로 분주했다.
나는 축제를 정말 좋아하는 탓에, 반과 학년에서 모두 실행위원에 뽑혔고,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매일 서류를 제출하고, 밤까지 늦게 남아 실행위원인 친구들과 학교 근처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작업을 하곤 했다.
그날도 밤 9시쯤이 되어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몇시에 돌아올건지 확인전화일 거라 생각하고 받았지만 아니었다.
같이 살고 있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청천벽력 같은 말이 날아들었다.
그것도 사고사였다.
그날따라 바람이 강했는데, 국도에서 자전거를 타다 그만 바람에 휘말려 덤프트럭 뒷바퀴로 빨려들어가셨단다.
나중에 알았지만, 온몸 수십군데 뼈가 부러지고 안구가 파열된데다 뇌까지 다치셨다고 한다.
그렇게 큰 부상을 입고도 할머니는 즉사한 게 아니었다.
뇌사판정이 나와서 가족들이 연명치료를 포기했단다.
사고사 뒤 장례를 치루는 건 만만치 않은 일이라, 나도 축제 준비하던 걸 다른 사람에게 인계하느라 엄청 바빴다.
장례식 준비다 뭐다 해서 한 사흘 정도는 제대로 잠도 못 잤으니.
여러가지로 노도와 같은 나날이 지나갔다.
슬프다던가 이런저런 생각은 들었지만, 바로 앞으로 다가왔던 축제와 중간고사가 이어져, 한달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축제도 끝나고 잠시 지나자 할머니의 49재가 돌아왔다.
우리 집에는 꽤 많은 친척들이 찾아와 법회를 올리게 되었다.
스님이 불단에서 염불을 올린다.
나는 멍하니 상복을 입은 친척들의 등을 바라보다, 앞에 걸린 할머니의 영정으로 시선을 옮겼다.
문득 몇달 전 할머니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어느날 아침, 식사를 하는데 할머니가 이상한 꿈을 꿨다는 말을 꺼냈던 적이 있다.
[친척들이 집에 잔뜩 와 있지 뭐니. 눈앞에는 L씨 부부가 서 있고 말이야. 도대체 무슨 일 때문에 다들 왔던 걸까?]
나는 곧바로 주변을 돌아봤다.
할머니 말대로, 영정 바로 앞에 L씨 부부가 앉아 있었다.
딱 할머니 영정이 내려다보는 위치에.
어쩐지 나는 할머니가 자신의 49재를 미리 내다봤다는 걸 느꼈다.
안 좋은 예감이라고 해야할까, 할머니는 자신의 미래를 내다봤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