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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보는 친구 나도 있다
#1. 시작
내가 아무리 힘이 좋아도 그렇지 엄마는 나한테 이 무거운걸...
투덜대며 양손에 들린 짐을 흘깃 본다.
검은 비닐봉지에 담긴 플라스틱 김치 통 들이 야무지게 매달려있다.
엊그제 끝낸 김장으로 넘쳐나는 김치들을 엄마의 오더로 이모네에 배달을 가는 길이다.
집에 들어 서 가방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양 손에 김치통이 들려졌다. 15세 꽃다운 소녀임에도 엄마는 항상 아들 대신이라며 쌀을 사러 갈때도, 소파 위치를 옮길 때도 힘을 쓰는 것은 언제나 내 몫이었다.
한 쪽에 족히 10kg는 되지 않을까?
“꼬르륵-”
다이어트 하려고 부실하게 먹고 남긴 점심 탓에 뱃속이 죽는 소릴 한다.
아 빨리 이 무거운 김치들을 이모에게 건네주고 집에 가서 밥을 먹자!
발걸음은 어느새 이모네 아파트 앞 인도에 닿았다. 이대로 경비실이 붙어있는 아파트 입구 계단까지 몇 걸음.. 이제 조금만... 조금만 더 가면..!!
어둠속에 빛을 본 듯 간절한 걸음걸음을 딛어 내는 찰나,
“콰-앙!!!!!!”
삐용삐용삐용삐용삐용삐용---
뭔가가 아파트 입구 바로 앞에 주차된 차 위로 떨어졌고 요란한 차량 도난 경보음이 울려댔다.
“학생 괜찮아????”
누군지 모를 아저씨가 다가와 옷깃으로 얼굴을 가려 품에 얼굴을 묻어주었다.
“구급차--!! 구급차 불러요-!”
또한 누구인지 모를 사람의 외침과, 순식간에 부산해지는 주변의 발걸음 소리와 말소리들.
“어머 어머, 얘! 어서 들어가!”
“꺄-악!”
“어떡해, 웬일이야!”
‘어...’
여전히 양손 가득 무거운 김치 통을 든 채, 미동조차 못하고 모르는 아저씨의 품안에서 옴쭉 달싹 못하던 나는 방금 내가 목격한 상황이 무엇이었는지 이제야 인지하며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15세의 가을, 이모네 집에 김치를 가져다주러 가던 길에 코앞에서 투신 자살자를 목격하고 만 것이다.
그때부터였다. 낮이건 밤이건 이전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2. 변화
“너 언어장애냐?”
“풉- 야 말 좀 해봐.”
“하.. 하지마.”
성적은 다소 낮아도 평범하기 그지없던 나는 그 날 이후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로 말을 더듬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지능이 낮아진 듯, 조리 있는 언어 구사는커녕 일상 언어를 주고 받는일 조차 힘겨워져 학교 친구들에게 놀림과 조롱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나를 힘들게 하는 것.
“으... 가.... 저.. 저리..가...”
잠자리에만 들면 여지없이 나타나는 가위였다.
오늘도 시작이다. 내 방의 문을 닫고 잠자리에 들었 건만, 끼-익 하는 소리를 내며 열리는 내 방 문과 문 옆에 자리한 침대에서 바로 보이지 않도록 뭔가가 기어서 들어오는 소리.
스윽-스윽-
겨우겨우 방 문 턱을 지나 방안에 들어온 그 것은 내게 등을 보인 채 서서히 일어서려 한다.
어깨를 구불대며 엎드려 무릎을 앞으로 구부리고 고개를 들어내는 순간, 기적처럼 손가락 끝을 움직여 잠에서 깨어났다.
“하..”
원체 무던한 성격의 소유자였던 나는 이제 그 가위도 익숙해져 간다는 듯한 느낌으로 한 숨을 쉰다. 웃풍이 들어 공기가 차가운 내 방은 겨울바람이 스며들어와 코끝이 시리다. 가위 눌리며 깨어나려 어찌나 힘을 썼던지 목구멍도 따끔한 감이 느껴졌다.
“물...”
엄마가 아까 끓여둔 보리차가 생각났다. 주전자 안에 그대로 두어 아직 따뜻하리라. 그 물을 달게 한 컵 마시고 잠에 들면 오늘은 더 이상 가위마저 눌리지 않을 듯한 기분에 그대로 주방으로 나섰다. 그리고 이 행동이 훗날 깜깜한 곳에서는 절대로 불을 켜기 전엔 움직이지 않는다는 철칙을 만들게 했다.
방에서 나와 거실을 가로 질러 주방으로 직행한 나는 식탁위에 컵과 나란히 있는 주전자를 보고 컵에 물을 따랐다. 기분 좋은 정도의 온기를 전해 주는 컵을 쥔 손에 안도하며 벌컥 이며 물을 들이켰다.
“벌컥 벌컥”
“슥-”
‘??’
물을 한 컵 다 비운 후 나는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벌컥 이는 중간 분명히 뭔가 슥-하고 스치는 듯한 소리를 들은 것이다.
순간 가위속의 귀신이 떠올라 목덜미에 소름이 돋아 나왔지만, 설마... 어딘가 열려진 틈 안으로 바람이 커튼을 미는 소리겠지. 애써 내 몸이 보내는 경고를 무시하며 물 한컵을 더 마시려고 주전자를 들어 컵을 본다.
“아아아아아악-”
“땡그렁”
“A야! 왜그래”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을 치자 안방에서 주무시던 아빠가 제일 먼저 달려 나오셨다.
“도둑이야? 뭐야, 왜 그래?”
엄마도 달려 나오셔선 두리번거리며 나를 끌어다 안는다.
“흐어엉-”
두려움과 설움이 북받쳐 눈물부터 터져 나왔다. 나는 분명히 보고야 만 것이다.
매일 밤 가위 속에 나를 찾아 기어오던 머리가 터진 남자를. 물을 따르려 내려간 시선에서 내 발치가 보였고 내게 닿으려는 듯 힘겹게 뻗어오는 창백한 손을.
#3. 이상하지 않아
엉엉 울며 엄마품에 안겨 이야기를 해 보지만,
“발, 내 발, 귀신, 손, 파란 손, 그, 그, 아저..아저씨”
큰 충격으로 인해 심리적 요인으로 말을 더듬게 된 거라며 언어교정학원을 다니던 나로선 그 순간 표현할 길이라곤 큰 소리로 우는 것이 전부였다. 열심히 설명하려 해 보아도 같은 단어들의 나열뿐인 나를 안쓰럽다는 듯 바라보시며 오늘은 안방에서 함께 자자 침대 가운데 자리를 내어 주셨다.
그리고 엄마는 내가 그 때 많이 놀라서 헛것을 보는 거라며 토닥여 주셨다. 여장부 타입 이신 엄마가 그 시절만큼은 부드럽고 다정한 엄마셨다. 지금 같으면 절대 택도 없는 이야기다.
그리고 허약해진 기를 보충해야 한다며 이것저것 한약에 보약에 어릴 때 이후로 나가지 않던 성당에도 엄마 손에 이끌려 다니게 되었고, 엄마 끼리 알고 지내던 학교 친구들에게 까지도 이 일이 알려지며 소문은 살이 붙었다.
“야 너 정신병 생겼다며?”
“너 귀신 본다며?”
“진짜냐? 거짓말 하는거지?”
“쟤 언어교정도 받으러 다닌대 ㅋㅋㅋ”
“뚝-“
내 자리를 둘러싸 앉아 낄낄대던 아이들이 조용해 졌다. 내가 연필 허리를 한 손으로 부러뜨렸기 때문이다.
“나, 나, 정신, 안 이상. 해. 나, 고칠..거야.”
“야... 가, 가자..”
“미친X은 힘이 세다더니..”
일순 조용해 졌던 아이들은 다시 저들끼리 수군대며 자리를 떴다.
‘그래, 나는 이상하지 않다. 나는 단지 많이 놀란 것뿐이야. 곧 다시 예전처럼 건강해 질 것이다.’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을 뿐 머릿속 생각은 전과 같았던 나는 특유의 무던함으로 마음을 다 잡는다.
그리고 학교 친구들의 괴롭힘과 놀림을 오로지 튼튼한 체력 하나만으로 버티며 힘겨운 중학 생활을 마치게 된다.
그리고 그 때는 몰랐었다. 그 때부터 이미, 미심쩍은 일들이 곧잘 일어나고 보여 왔던 것을.
후에, 아 나는 이런가 보다 받아들이게 된 후에야 생각해 보니 그건 사람이 아니었나 보다- 하는 쯤으로 넘기게 되는 셀 수 없이 많은 일들. 하나하나 차근히 풀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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