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이 자라는 인형?
<일본 홋카이도의 만념사라는 절에 마치 불상처럼 재단에 모셔져 있는 기쿠코 인형(Okiku Doll)>
다이쇼 7년(1918) 8월 15일, 당시 홋카이도에 거주하던 18세의 스즈키 나가요시는
삿포로에서 개최되고 있던 다이쇼 박람회를 구경하고 오면서 자신이 끔찍이 생각하는
동생 기쿠코(당시 3세)에게 줄 선물로 기모노를 입은 단발머리의 일본인형을 사게 되었습니다.
기쿠코는 이 선물에 매우 기뻐했으며 매일 같이 인형과 노는 것은
물론, 잘 때도 함께 이불을 덮고 잘 정도로 인형을 마음에 들어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해의 1월 24일, 감기가 악화하여 폐렴으로 3월 24일 안타깝게도
어린 나이에 죽게 된 기쿠코로 인해 비관에 잠긴 나가요시는 유골과 인형을 불단에 함께
제사 지내면서 생전의 기쿠코를 그리며 아침저녁으로 경배하다시피 하기에 이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인형의 머리카락이 조금씩 자라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단발이었던 머리카락은
어깨에 닿을 정도로 성장하자 가족들은 기쿠코의 영혼이 인형 속으로 들어갔다고 믿게 됩니다.
그 후, 쇼와 13년(1938) 나가요시는 가라후토(사할린 섬)로 이주하게 되어
기쿠코의 유골과 인형을 함께 홋카이도 쿠리사와쵸에 있는 만념사라는 절에
맡기게 되었고 종전 후, 고향으로 돌아와 곧바로 만념사를 방문했던 나가요시는
한층 더 머리카락이 자라있는 인형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상과 같은 이야기가 머리카락이 자라는 인형, 일명 기쿠코 인형에 대한 가장 정석적인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여러 가지 살이 붙은 체 갖가지 이야기들을 포함하게 되는 커다란 이야기가 됩니다)
그렇다면 이 일본의 대표적인 괴담의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요?
<일본 전역은 물론 한국에도 방송을 통해 널리 알려진 기쿠코 인형>
일본 제일의 심령 연구자로 알려진 코이케 타케히코는 '현대 괴기 해체 신서'라는
책을 통해 1962년 8월 6일 호의 '주간 여성 자신'에서 기쿠코 인형 전설이 탄생하기
전에 이미 이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쇼와 33년(1958) 3월 3일 36세의 광부였던 스즈키 스케시치 씨가 절에 인형을 맡기며,
'나의 딸입니다, 귀여워해 주세요'라는 수수께끼의 말을 남기고는 먼 혼슈로
객지벌이를 하러 가서는 돌아오지 않는 일이 있었습니다.
한편, 구석에 방치된 체 잊혔던 인형은 3년째의 여름에 주지 스님인 이마가와 히토시(59) 씨의
꿈에 이틀 연속으로 '딸 키요코의 머리카락을 잘라 주세요'라는 소리가 들려 인형을 확인해보자
본래 귀까지 밖에 오지 않았던 단발이 귀를 넘어 허리 근처까지 자라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을 보면 현재 유포되는 기쿠코 인형의 전설과는 설정에서 다소 차이가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이야기의 연대는 다이쇼 시대가 아니었으며, 만념사에 인형을 맡긴 해는
쇼와 13년(1938)이 아닌 쇼와 33년(1958)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죽은 여자아이의 이름은 기쿠코가 아닌 키요코였으며 당연히
이 기사에는 '기쿠코 인형'이라는 말은 일절 나와 있지 않습니다.
또, 만념사에 인형을 맡기러 온 것은 오빠로 알려진 스즈키 나가요시가 아닌
아버지였던 스케시치 씨였으며
나가요시가 종전 후에 절을 다시 찾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최초의 이야기에선 꿈을 통해 주지 스님인
이마가와 히토시 씨가
인형의 머리카락이 성장하고 있음을 최초로 발견하게 됩니다.
이 최초의 머리카락이 자라는 인형 이야기는 1968년 발행된 '영 레이디'
7월 15일 호에
홋카이도 방송의 마부치 유타카 기자가 '기쿠코 인형'으로
소개했으며,
흥미롭게도 위의 '주간 여성 자신'의 기사를 썼던 것도
같은 사람인 마부치 유타카의 기사였습니다.
바로 이 2번째 소개에서 마부치 기자는 최초의 기사에는 없던 광부
스즈키
스케시치 씨의
가족사를 그럴듯한 이야기로 꾸며 넣었으며
죽은 여자아이의
이름이 키요코(
?子-깨끗하다는 뜻을 가짐)에서
기쿠코(
菊子-국화의 아이라는
뜻을 가짐)로 바뀌었고 3월 3일에서
3월 24일로 기일이 바뀌었으며,
이후 더욱 살이 붙으며 1970년
'홋카이도 신문' 8월 15일 자를 통해 지금의 기쿠코 인형 전설이 탄생하게 됩니다.
이렇듯 우여곡절 끝에 지금의 기쿠코 인형 전설이 탄생하게 되었지만,
실제로 인형의 머리카락이 자랐다고 하는 것은 도대체 어찌 된 영문일까요?
<한국에는 '기꾸 인형', '오키코 인형'으로 불리며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덧붙여진 채로 이야기가 퍼져 있다>
비록 현재 인형의 머리카락이 성장을 멈춘 지 오래지만 실제로
이 인형의 머리카락이 자랐다는 것은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이 기쿠코 인형은 일본인형 중에서 '이치마츠 인형'으로 불리는 것으로,
전쟁 전까지는 일반적으로 실제 사람의 모발로 머리카락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실제 모발의 경우, 뽑고 나서도 조금씩 성장하는 일이 있어 합성섬유나
비단실을 이용해 인형의 머리카락 만들기 전에는 인형을 완성해도 곧장 출하하지
않고 조금 머리카락이 성장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고르지 않게 자란 머리카락들을
단발머리로 가지런히 자르고 나서 출하했었다고 합니다.
<현재도 일본의 자국인형을 대표하는 이치마츠 전통 인형>
또, 습기와 당시 인형의 접착물에 사용되었던 콘드로이틴에는 모발의
성장을
재촉하는 성분이 있었으며
실제로 인간의 머리카락은
사후에도 반년까지나 계속해서 조금씩 성장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가정도 당시 기쿠코 인형의 머리카락이 모근이 존재하는
모발로
만들었다는 전제가 성립할 때만 성립될 수 있다는 약점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2002년 마코토 야마모토 히로시가 저술한 책에서는 일반적으로 시판되는
아이들의 장난감과는 다르게 일본인형이나 하와이 근처에서 파는 싸구려 인형의
식모 방법은(머리카락을 만드는), 만약 인형의 머리카락을 10cm의 길이로 하고 싶으면
그 2배 이상인 25cm 정도로 머리카락을 만들어 중앙에 실로 고리를 묶은 뒤 그 고리의 부분을
인형의 머리에 비워둔 구멍에 심어 고정하는 식으로 모발을 만드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쉽게 말해 실제 20cm 이상의 머리카락이 반으로 접혀
10cm로 보이는 한쪽 면의 머리카락 두 가닥이 생기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식모 방법은, 인형의 두상에 고정된 접착 방식이 본래 엉성한 탓에
인형의 머리를
어루만지거나 머리카락을 빗으로 빗기면 머리카락의 중앙 부분을
묶어주고 있던 고리에서
자꾸 빠져나가 결과적으로 고르지 않게 성장한 것처럼
보이는 머리카락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하나의 머리카락이 두 가닥의 머리카락으로 된 '반 접기'는 마찰에 의해 그 고정이 쉽게 풀리기도 한다>
이 이론대로라면 기쿠코 인형의 모발이 옆머리만 불규칙적으로 성장한 모습이 설명되며
당시 일본인형은 대부분 반 접기 방법을 많이 사용했지만, 혹시 기쿠코 인형은
직접 심는 방법을 사용했을 수도 있으므로 우리는 또 다른 가정을 알아볼 필요도 있습니다.
이 마지막 가정은 아스카 아키오가 저술한 'The 초능력', 'The 초능력 2'라는 책에서 밝힌
머리카락을 펴는 기능을 하는 파마액에 포함된 성분이 일본인형의 머리카락을 염색하는
도료에도 포함되어 있으며, 기쿠코 인형도 머리카락의 탈색을 막기 위해 이 염료를 사용해
1년에 2회 빗으로 머리카락을 빗겨주고 있었다는 정보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결론을 내리자면 아마 위의 가정 중, 혹은 몇 가지 요소가 함께 작용해
인형과 관련된 '드라마'가 첨가되어 만들어진 이야기기가 후에 전설로
불리게 되는 기쿠코 인형 괴담의 진실은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물론, 당시 기쿠코 인형이 정말로 짧은 단발이었다면
이러한 가정들은 모두 무용지물이 되겠지만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