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p> <p> 그대에게 드리는 꿈</p> <p> <br></p> <p> 9. 귀향(10)</p> <p> <br></p> <p> <br></p> <p> 매타작을 당한 박가들은 장태식 앞에 무릎이 꿇려졌다.</p> <p> “이 ㅇㅇ놈들이 왜놈들 똥꼬를 빨아?”</p> <p> “......”</p> <p> “이 족 같은 ㅇㅇ들아, 내가 누구 아들인지 알지? 니들은 오늘 임자 만난 줄 알어!” </p> <p> 무쇠주먹에 한 대씩 더 맞은 박가들은 정신이 아득했다.</p> <p> “내가 분명히 약속한다! 지금부터 거짓말하는 놈은 여기서 바로 죽는다! 바른대로 말하는 놈은 살려 준다!”</p> <p> 몇 명이 달려들어 정가와 김가를 따로따로 끌고 갔다. 며칠 이중형이를 지켜봐서 짐작은 갔지만 확실하게 알아야 했던 것이다.</p> <p> 장이 박가에게 목소리를 한껏 낮추었다.</p> <p> “무슨 말인지 알지?”</p> <p> “예.”</p> <p> “어떤 족 같은 ㅇㅇ야, 니들에게 우리 감시하라고 시킨 ㅇㅇ가?”</p> <p> “......”</p> <p>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던 박가는 볼이 떨어져 나가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장이 따귀를 때린 것이었다.</p> <p> “이 ㅇㅇ놈이 거짓말 깔려고 대가리 굴리고 있었지?”</p> <p> “아닙니다요! 아닙니다요!”</p> <p> “좋아! 다시 말해 봐! 근데 저 새끼들하고 말이 틀려도 죽는다!”</p> <p> “......”</p> <p> 박가는 또 번갯불을 봐야 했다. 정가와 김가가 어떻게 말할지 알 수가 없으니 망설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장이 박가의 멱살을 잡았다. 금방 숨이 막혀 죽을 것만 같았다.</p> <p> “이 ㅇㅇ놈이 여기서 죽여달란 말이지?”</p> <p> “아닙니다요, 아닙니다요! 켁켁! 이중형이가 시켰습니다요! 켁켁!”</p> <p> “정말이지?”</p> <p> “예!”</p> <p> 박가들은 대질신문(?)을 당했다.</p> <p> “이 ㅇㅇ야, 네가 우리끼리만 하자고 그랬잖아? 이중형이가 시키는대로만 했으면 이럴 일도 없는데 뭐한다고 욕심은 부려가지고...... 우리 이제 죽게 생겼잖아, ㅇㅇ야아!”</p> <p> 김가가 울부짖는데도 박가는 아무 말도 못했다.</p> <p> 장은 셋만 제거하면 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강성종에게서 지시받은 게 있었던 것이다.</p> <p> “이 ㅇㅇ들아, 니들 안 죽일 거니까 걱정하지 마라. 우리가 왜 같은 동포를 죽이겠냐? 니들 예상대로 우리 큰일 꾸미고 있어. 곧 왜놈들 다 쓸어버릴 거야. 우리나라가 해방이 될 거라구. 그때까지 니들은 좀 숨어 있으면 돼!”</p> <p> “형님, 고맙습니다요!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요!”</p> <p> “형니임!”</p> <p> “형니임!”</p> <p> 생각지도 못한 장의 말에 박가들은 진심으로 감격하는 척했다. 우미관 근처로 다시 끌려간 셋은 자갈이 물리고 결박당한 채 어느 방에 갇혔다. 청년 둘이 그들을 지켰다.</p> <p> 다음날 오후 늦게 다른 청년 둘이 술과 안주를 푸짐하게 가져왔다. 아침부터는 결박도 풀어 줬고 끼니도 챙겨 줬다. 감시는 받고 있었지만 큰 불편은 없었다. 너무 잘해줘서 고마울 지경이었다. 그래도 박가들은 서로 눈빛을 주고 받으며 호시탐탐 도망갈 기회만 노리고 있는 중이었다. 경무국에 알리기만 하면 팔자 고치는 건 시간문제였던 것이다.</p> <p> “자, 한 잔해!”</p> <p> 빙 둘러앉았다.</p> <p> “이 ㅇㅇ들은 내일 아침에 평양으로 보낼 거래. 거기서 시킬 일이 있다네.”</p> <p> 술과 안주를 가져온 청년의 말이었다. 정말로 죽이지는 않겠구나, 생각한 박가들은 크게 안심했다. 도망갈 기회만 잡으면 되는 것이었다.</p> <p> 모두 신이 나서 먹고 마셨다. 그러나 그것은 박가들의 착각이었다. 청년들은 안주는 먹었으나 술은 거의 마시지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미 취한 셋은 청년들이 권하는 대로 먹고, 마셨다.</p> <p> “자아, 형님이 얘네들 오입이나 한 번 시켜주라니까 덕분에 우리도 원님 덕에 나발이나 불러 가자고!”</p> <p> 앞의 청년이 술과 안주가 동이 나자 혀 꼬인 소리로 희소식(?)을 전했다. 박가들은 웬 떡이냐, 싶었다. 죽는 줄로만 알았다가 오입까지 하게 된 것이었다.</p> <p> 바깥은 제법 어두워져 있었다. 걷는 내내 청년들은 혀 꼬부라진 소리로 장태식을 향해 욕을 해대고 있었다.</p> <p> “ㅇㅇ, 속옷도 나더러 빨으래!”</p> <p> “야, 그건 아무것도 아니야. 난 태식이 그 새끼가 술 쳐먹고 토한 것도 닦았어!”</p> <p> 청년들의 불만은 끝이 없었다. 사창가로 향하는 길에 우미관 앞에 이르자 청년 하나가 역시 혀 꼬부라진 소리로 박가들에게 주문했다.</p> <p> “에이, ㅇㅇ! 니들이 우리 대신 ‘장태식이 이 ㅇㅇㅇ야!’ 하고 속 션하게 고함 한 번 질러주라!” </p> <p> 박가들은 취중에도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지만 이미 ‘오입’에 마음이 쏠려 있어 시키는 대로 하고 말았다.</p> <p> “장태식이 이 ㅇㅇㅇ야!”</p> <p> “에이, 목청이 그래 가지고 우리 속이 풀리겠어? 이번에는 우리도 목소리를 보탤 테니까 진짜 크게 한 번 질러봐!"</p> <p> “장태식이 이 ㅇㅇㅇ야아!”</p> <p> 주문대로 있는 힘을 다해 고함을 질렀다. 청년들의 목소리가 훨씬 더 컸다. </p> <p> 아니나 다를까 덩치가 산만한 청년 하나가 득달같이 우미관에서 튀어나왔다. 덩치도 덩치지만 힘이 항우장사라 별명이 ‘황소’인 권택관이었다. 박가들이 뭔가 잘못된 걸 깨닫고 둘러봤을 땐 같이 있던 청년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p> <p> “이 ㅇㅇ들이 술을 똥구멍으로 처먹었나, 간뎅이가 처부었나? ㅇㅇㅇ들이 어디 우리 형님을?”</p> <p> 속았다는 것을 깨달을 시간도 없이 박가들은 권의 주먹에 나가떨어졌다. 그리고 황소의 힘으로 내리꽂는 주먹 한 방씩을 배에 맞고 피똥을 싸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황천으로 떠나고 말았다.</p> <p> 더하고 뺄 것도 없었다. 어제 낮에 박가들이 수표교 근처에서 빨래하는 아녀자들을 희롱하는 것을 장태식이 우연히 보고 꾸짖어서 보냈다는 것이었다.</p> <p> “그런데 그 미친 ㅇㅇ들이 그랬다고 기분이 나빴던가 술을 처먹고 찾아와서 그 지랄을 하는데 내 아우들이 가만 있겠소? 가만 있으면 내 아우들이 아니지.”</p> <p> 다음날 아침, 우미관으로 들이닥친 형사들에게 장이 하는 말이었다.</p> <p> “어제 낮에 저 사람들을 때리지는 않았는가?”</p> <p> “아니, 생각을 해보쇼! 내가 주먹을 썼다면 그 새끼들이 저녁에 그렇게 찾아왔겠소? 뒈졌거나 병원에 있지!”</p> <p> “그 여자들은 누군지 아는가?”</p> <p> “세상 천지가 여자들인데 내가 어찌 알겠소.”</p> <p> “죽은 사람들은 누군지 아는가?”</p> <p> “어느 동네 골목 깡패겠지. 내가 그것까지 알아야 되오?“</p> <p> “그렇다고 사람을 죽이나?”</p> <p> “설마 죽이려고 죽였겠소? 워낙 쎄게 나오니까 쎈놈들인가 싶어서 붙어서 싸웠는데 뒈지고 만 거지. 그놈인들 그렇게 약한 놈들인줄 알았겠소?”</p> <p> “이제 어떻게 할 건가?”</p> <p> “어떻게 하긴 뭘? 그놈들 죽인 놈은 토껴 버렸는데? 아녀자 희롱하는 거 말린 게 죄라면 나를 처넣으시오!”</p> <p> 형사들과 장이 나눈 대화였다. 죽은 셋이 밀정이라는 말은 형사들도 끝내 하지 않았고, 장도 죽이려고 작정하고 죽인 것이라는 말은 할 필요가 없었다. 부검도 하지 않았다. 맞아 죽은 것이 확실한 데다, 피똥을 엄청 싸고 죽었으니 제대로 맞아서 죽었다는 것은 의사가 아니어도 알 일이었다. 어쨌거나 죽인 자는 도망을 가버렸고, 죽은 자들은 말이 없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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