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살면서 경험한 무속인과의 경험들을 쓰는 작성자입니다.
지난 글에 제가 글을 오해의 소지가 있게쓴 점 먼저 사과드려요.ㅜㅅㅜ
그래서 그 부분에대한 해명과 설명을 글 시작전에 먼저 적어보려고 합니다.
에피소드 16.
[하루는 절에가서 스님이랑 불기를 닦으며 대청소를하던날이었어요.
점심에 뭐먹고싶냐고 하셔서 짜장면을 시켜달랫죠( 스님은 안드셧는데 생각해보니 짜장면에 고기가ㅠㅠ)
같이 온 단무지 양파 김치를 먼저뜯고 맛잇게 저는 짜장면을먹고 스님은 밥이랑 단무지 양파 김치를 반찬으로 드셨어요.]
이부분에서 댓글을 남겨주셨어요.
(닉언죄) 난왜이모냥 님께서
-절에도 배달이 되는구나 짜장이.. 오신채인 양파를 드시는 것도 그렇고 오늘은 갸우뚱 한 내용이 많네요. 탈모를 고치는 것도 그렇고 ^ㅡ^
첫번째, 절에 짜장면이 배달된 이유.
작성자는 시골동네에서 살았어요.
에피소드 2에 보시면
[(당시 작성자 집이 지방이엇습니다. 지방으로이사갓어요ㅠ시골시골!)] 이라는 부분이 있슴당.
시골이라 누구네집 수저가 몇개고 애들이름이 뭐인지까지 다 알고있어요.
그래서 스님이 짜장면집에전화해서 '구너구가 절에 불기닦는거 도와주러왔는데 고생해서 짜장면 사주려고한다. 배달 되냐'고 물으셨고 중국집에서 배달해준거랍니당.
중국집 사장님이 저를 예뻐하셔서 며느리라고 부르셨는데 무튼 그만큼 서로 잘알아서 절에서 짜장면 시킨다고 이상해 할 사장님은 아니세요.
그리고 중국집에서 절까지 도로도 잘 닦여있고 배달 가능한거리였어요.
절이라하면 아주 시골 산구석에 있으시라 생각해서 배달이 불가능하셨을거라고 생각될수도 있다는점, 또 스님들이 짜장면을 안먹기에 배달에대한 의문점이 생길수있다고 충분히 이해가되는데 제가 설명을 제대로 안해드렸네요ㅜ
두번째, 양파
[같이 온 단무지 양파 김치를 먼저뜯고 맛잇게 저는 짜장면을먹고 스님은 밥이랑 단무지 양파 김치를 반찬으로 드셨어요.]
요부분인데요, 스님이 짜장면 안드시는 이유를 고기때문이라는걸 나중에야 알아챈것처럼 양파를 안드신것도 나중에야 알아챘어요.
당시 반찬배달이
이렇게 오는거라 저렇게 적었는데, 당연히 양파는 안드셨고 단무지랑 김치만 드셨어요. 김치 양파 단무지가 담긴 접시를 가져가셔 드셨다고 표현하면서 저는 맛있는거 먹지만 스님은 반찬이 너무 빈약했음을 강조하고 싶었던거였는데ㅜㅜ
중국집 반찬이라고 표현해도 될걸 굳이 저렇게적어서 오해의 여지를 드렸네요 죄송합니다ㅜ
세번째, 탈모
에피소드 17에 보시면
[제 이야기에 줄곧 등장하시는 김쌤이라는 분은 침술을 하실줄 아는분이세요.
굉장히 많은것들을 고치셨는데 입이완전히돌아가서 오년동안 고생햇던분을 3개월 꾸준히치료해주셔서 얼굴모양도 완전 다시돌아왔고, 탈모때문에걱정이돈 동네삼촌 머리가 풍성해지는 기적도 보았죠. ]
이라고 제가 적어놨는데, 이 탈모에관한 설명을 드리고자합니다.
탈모때문에 걱정이던 동네삼촌은 에피소드 9에나온 결혼못하는 삼촌들이 있는 제친구 혜민이네 삼촌중 막내삼촌이에요.
원래 두피가 그냥 다 보일만큼 머리숱이 별로 없는 분이셔서 동네 애들이랑 대머리삼촌이라고 놀렸어요.
그러다 대머리삼촌이 결혼을 할뻔하다가 못하게되시면서 스트레스로 갑자기 머리가 엄청 빠지셨어요.
스트레스로 오는 탈모였죠. 그래서 김쌤한테 부탁드려서 침도맞고 보약도 지어먹고 해서 더이상 빠지는걸 멈추고 원래있던머리만큼 다시 머리가 풍성해지는 기적을 봤습니다.
(탈모관련 에피소드에대해서는 다시 혜민이하고 연락해서 그때 대머리삼촌 머리카락이 급성 탈모로 마구 빠지다가 어떻게 치료했는지에대해 얘기했어요. 확실히 여자분과 헤어진거 때문에 생긴 스트레스로 갑자기 생긴 탈모가 맞았구요, 유전은 아니래요. 유전이었음 절대로 못고쳤을 거에요.)
제가 저번 썰 9편을 쓸때 조금 경황없고 바빠서 설명을 너무 허술하게쓰고 오해의 여지를 많이 남겼네요ㅜㅜ 죄송합니다 여러분.
실수하고나니 마음이 디게 무겁네요ㅠㅠ
글 재밌게 읽어주셔서 항상 감사했는데 저렇게 말도안될부분(?)이 나오니 ‘작성자 뻥치는거 아니야?’하고 의구심이 들었을 수 도 있을거라 그부분에 너무 죄송하네요ㅜㅜ
(눙물ㅠ)
그리고 저번 글에 달렸던 댓글중 대댓못단 댓글좀 가져왔어요.
Q. 혹씨 권씨세요...? 권자 쓰다가 오카나면 구너구 되더라구요 ㅎㅎ
A. 권씨 아니에욧 ㅎㅎ 제 닉넴의 비밀은 저 혼자 영원히 간직하는걸로…. ☆
Q. 이런 글 보면 결혼할 때나 연애할 때 수호신이나 같이 있는 존재들이 연애 대상에 대해 말을 하는 지가 궁금합니다.
A. 항상 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비슷한 경험이 있어요. 제가 대1때 만나던 남친을 한번 집에 휴가겸 놀러 데리고 간적이 있었는데, 그때 김쌤을 뵜어요.
김쌤은 저한테 ‘저 친구랑은 금방 헤어질거야. 마음 이미 많이준거 알지만, 인연이 아니라하더라도 너무 속상해 말았으면 좋겠구나.’ 하신적이 있는데 나중에 여쭤보니 할아버지가 나쁜놈인데 나쁜놈인줄도 모르고 만난다며 탐탁치 않아하셨다고 해요.
근데… 진짜 나쁜놈이 맞았고, 그런줄도모르고 혼자 엄청 좋아해서 저만상처받고 끝났다능…..…. ☆
(그런 눈물의 이야기… 또륵…)
자 그럼 이 시리즈의 마지막 이야기들을 풀어볼까 합니다.
글 시작하기 전에 미리 말씀드립니다!
비 과학적인 무속 신앙에대한 이야기를 할것이기 때문에 불편하신분은 뒤로가기 부탁드려요.
그리고 저는 신기가 없어서 관련질문하셨을때 대답드릴수 있는게 거의 없을거에요ㅜㅜ
본인의 사연을 읍소하시며 연락처를 부탁하거나, '무속인이 이렇게 하라는데 어떡할까요?' 등의 댓글은 답변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냥 심심풀이 이야기보따리 하나 열어봤다고 생각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고럼 오늘의 에피소드를 시작하겠습니당
오타와 띄어쓰기는 양해부탁드려요오
18.
고등학교 다닐때의 이야깁니다.
겨울방학이라 딱히 할일도 없었던 저는 김쌤과 한참 역사에대한 얘기를 하고있었어요.
당시에 제가 서점에갔다가 표지가 예뻐서 덕혜옹주라는 책을 사서 읽고있어서 근현대사에 대한 얘기가 주제가 되었죠.
(대화는 기승전일본개객ㄱ끼 이었어요.)
김쌤은 ‘업보’에 대한 얘기를 해주셨어요.
개개인의 삶이 후에 인생에 영향을 미치는것을 주로 업보라고 하지만 개개인이 뭉쳐 민족이되어 민족의 삶이 후에 남을 그 민족들의 후손들에게도 영향을 미칠수 있다는 내용이었어요.
그러면서 김쌤은 “구너구야. 너 스스로가 좋은사람으로 살며 좋은 인생을 사는것도 중요하지만 너의 후대에 살 이들을 위한 일들도 했으면 좋겠구나. 적어도 남에게 고통이 될 일들을 하지 않아야 너 또한 고통받지 않는단다. 머지않아 일본은 또 벌을 받을거야. 당시 조선이었던 우리나라의 선대 조상들이 일본인들로 부터 받았던 고통을 다른 방식으로 우리 조상에게 고통을 줬던 일본인들의 후대들이 분명히 받을거란다. 계속 받아오고 있지만 이번에는 크게 받을거야. 신께서 매우 노여워 하시기 때문이야.”
신이 주시는 고통이라..
제 종교가 불교이고 업보를 믿기도 하지만 어떤식으로 일본이 벌을 받을지는 알 수 없었어요.
그리고 그사람들이 사실은 잘못한게 아닌데 왜 선대의 잘못으로 연좌제처럼 벌을 받아야하는지 되물었어요.
김쌤음 “본인들이 과거에 했던 잘못들을 역사에 기재하지않고 사실이아니라 부정하고 그 일로 아직도 슬픈 우리민족에게 사과하지 않는 것 모두가 벌을 받을만한 이유가 된단다. 그럼 지도자들의 잘못이지 일반인들은 아무 죄도 없다고 생각할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렇지 않단다. 평범한 국민들도 관심을갖고 제대로된 역사관을 가진 지도자를 계속 뽑아왔다면 상황이 변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정 반대의 상황이야. 일본국민들이 정치에 관심도 없고 문제의식도 없기 때문에 우경화가 계속되는것이고 한국에 망언을 퍼붓거나 역사를 왜곡하는 일들도 점점 심해질거야. 독일국민들과 비교해봤을때도 태도가 전혀다르지. 일반국민들은 죄가 없다 라는말은 일부 맞는것같지만 전혀 틀린 말이기도 하단다.”
그렇게 한참 역사에대한 얘기를 했어요.
둘 다 수다쟁이라서 얘기하다보면 시간가는줄 모르고 한참을 떠들어요.
그리고 일본이 머지않아 받을 그 ‘벌’이라는 거에대해서는 자연스럽게 잊어버리게 됐죠
그렇게 평소같은 날들이 지나고 개학을 했어요.
개학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정신이 없을때였는데 김쌤이 갑자기 아부지 한테 전화를 하셨대요.
혹시 일본으로 갈 일이 있냐, 주변에 일본에 있는 사람이 있냐, 를 캐물으시고는 일본에 625때 난리는 난리도 아닐 난리가 곧 날성싶으니 사촌의 팔촌의 사돈이라도 다 전화해서 한국으로 들어오라고 시키셨대요.
그래서 그때 김쌤과 근현대사 얘기하면서 업보얘기를 하며 일본이 곧 벌을 또 받을거란얘기가 떠올랐어요.
당시 사촌오빠가 출장으로 잠시 일본에갔었는데 돌아올날이 다음날이라서 크게는 신경쓰지않고있었어요.
혹시 무슨일이 있을까 싶어서 오빠한테 전화도 해봤는데 별일없이 한국에 잘 도착했다고 했어요.
그리고 1주일 뒤, 일이 터졌습니다.
일본 대지진이요.
뉴스로 소식을 듣고 등에 소름이 쫙 끼쳤어요.
‘벌 받는다더니…. 진짜였어…..’
대지진 희생자분들 생각하면 당연히 마음이 아파요.
그런데.. 정말 그 업보로 저들이 지진의 고통을 계속 받는거라면, 우리한테 나쁜짓해놓고 반성도안하고 사과도 안하고 앞으로도 할생각이 전혀 없어보이는데 그럼 지진도 계속 나려나 싶어요.
물론 중학교 과학시간에 지층이 힘을받아 단층이 생기는 과정이 지진임은 알고있습니다!
그래도 업보의 힘이라는게 존재 하긴 하는구나….
하며 앞으로 나쁜짓 안하고 착하고 좋은일만해야겠다고 또 다시 다짐했던 일이었어요.
19.
이 이야기는 쓸까 말까 고민을 참 많이했는데…
그래도 김쌤과 함께 인연을 맺고 그 이후에 일어난 일들중 가장 컸던일이라… 적어봐요.
제 에피소드에 계속 꾸준히 나오시는 김쌤은 운동권 출신이에요.
그래서 정치적인 대화를 나눌땐 항상 열띤 모습으로 말씀을 하세요.
김쌤과 저는 대통령선거 또는 국회의원 선거가 있을때 누가 당선될까, 같이 오징어 뜯어먹으면서 저희집에서 같이 시청하곤 했어요.(주로 저희 아부지랑 셋이 앉아서 같이 티비봤어요)
김쌤의 적중률은 백퍼센트였어요.
한번도 틀린적이 없으셔서 저희 아부지가 항상 내기에 지셔서 맥주는 꼭 아부지가 사오셨어요.
그런데 18대 대통령 선거때는 저희집에 오시지 않았어요.
바쁘셔서 이번엔 못오신다고는 하셨지만 저는 왠지모르게 불안했고, 제 불안함도 적중률 100퍼센트로 저희 가족이 지지하던 지지자가 낙선했어요.
당시 저는 수험생 시절이 막 끝나서 학교가도 아무것도 할 일이 없을 때였는데, 학교에서 도착해서 교실에 친구들끼리 얼굴보자마자 오열했던 일이 생각나네요…
각 교과시간마다 선생님이 들어오긴 하셨지만 선거결과에 너무 힘들어하는 저희모습을 보시고는 뭐라 말씀도 잘 못건네시고 그랬어요..
독자분들도 예상하셨겠지만 김쌤은 결과를 미리 알고계셨어요.
김쌤이 선거 전에 꿈을 꾸셨는데 우리나라에 극야(오랫동안 해가 뜨지 않고 밤만 계속되는 현상)가 생겨 해가며칠을 뜨지 않는 꿈이었대요.
(해몽은 따로 안해드려도 어떤것일지 다들 아시리라 생각이 듭니다….)
휴….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저는 대학에 입학해 일년을 신입생으로 열심히 살았습니다.
김쌤은 옆에서 조잘대는 제가 없어 심심하다고 가끔 전화를 하셨지만, 수다쟁이가 없어 조용히 기도하러 산에 많이 다니신다고 했어요.
예년보다 기도가시는 날이 잦아지고 체류기간은 길어지셔서 아부지가 무슨일이 있냐고 물었더니, 모든 사람이 고달픈 나날들이 자꾸만 닥쳐올것이라며, 특히 젊은이들이 사고를 조심해야 한다며 그래서 기도를 많이 다니신다고 했대요.
그리고 다시 겨울이 돌아왔고, 저는 본가에 잠깐 가족행사가 있어 들렀는데 김쌤이 소박하게 짐을 꾸려서 저희집에 들르셨어요.
또 기도를하러 산으로 가신다고 했어요.
그리고는 저에게 신신당부하시기를
“구너구야, 앞으로 위험할것 같은 일이있으면 하지말아라. 하물며 건너는 다리가 돌다리어도 꼭 두드려봐야해.“ 하셨어요.
저는 우리 동네에서 칠칠맞기로 한 이름 해서 그런 신신당부하는게 보통나날 같았지만, 산에 기도하러가시는데 그런 말씀을 당부하시는게 이상했어요.
그렇게 김쌤이 산으로 떠나고 한달여후 신문에 일이 터졌어요.
한 대학교 학생들이 신입생 오티를 갔다가 건물이 붕괴했다는 소식이었어요.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절에가서 기도를 올리는일 밖에 없는게 속상했어요.
특히 제또래의 친구들이 사고를 당한게 너무 안타까웠어요.
정말 참담하고 속상했는데 정말 제가 할수있는게 없더라구요….
그렇게 가슴아픈 방학이 끝나고 새학기를 시작하는 봄에… 또 사고가 일어납니다….
네, 맞아요. 세월호 침몰사건…
말로 다 표현이 안돼죠..
지금도 세월호라는 세글자를 입밖으로 꺼내기만해도 가슴이 먹먹해져서 말을 할 수가 없어요.
이후, 학교에 갈때마다 가방에 꼭 리본을 달고다녔는데 리본은 항상 다 뜯어져있었고 ‘빨갱이년’이라는 글씨를 누가 제 전공책에 쓴 후 버려서 찾다찾다 쓰레기통에서 전공책을 발견하기도했어요.
당시에는 리본하나 달고다니는 일 조차도 손가락질 받을 때였죠.
그래도 제가 할수있는건 리본달고다니는거, 절에가서 기도하는거밖에 없었어요.
책을 두고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면 욕이 가득써져있는 쪽지가 제 책에 꼿혀있거나 물건이 야예 분실되는 일도 많았죠.
세월호사건을 슬퍼하고 비통해하며 눈물흘리는 사람들에게 말도안되는 이유들로 욕하고 나중엔 지겹다는 소리까지 해대는 미친자들에게 지고싶지않았어요.
그래서 제 강의 프린트물이 갈기갈기 찢어져있을때도 눈물 꾸역꾸역참고 일일히 다 찾아다니며 오래걸렸지만 범인찾아내서 인실좆해줬어요.
자꾸 뜯어내서 노란 리본끈 아예 한통 사다놓고 집에서 제작해서 다녔더랬어요.
그래도 절에 가면 세월호 때문에 가슴아파 오셔서 기도하시는 분들이 많더라구요… 이걸로 나만 슬퍼하는게 아니구나, 하고 각종 일들을 겪은걸 위안했죠.
슬픔만으로도 정신적으로 감당하기 힘들었는데….
지금은 세월호리본을 붙여도 손가락질 안받고 오히려 손가락질하는사람들을 큰소리로 욕해줄 수 있어서, 정상적인 사회적 분위기를 만드는데 얼마나 오래걸렸나 느끼며 제가뽑은 대통령에게 감사를 느껴요.
처음으로 참여했던 대통령 선거였는데 선거결과보고 그래도 정말 행복했어요.
죄송해요 얘기가 자꾸 새네요. 의식의 흐름이네요..ㅜ
무튼 김쌤은 세월호사건이 일어 난 후에 하산하셨어요.
조금 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팽목항에 다녀오셨어요.
그리고 아이들위해 기도 참 많이 하셨어요.
위령제, 천도제, 등 무속인으로서 할수 있는 일들을 다 하셨어요.
김쌤은 일어나서는 안될일이인데 본인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다는 점에 대해서 많이 힘들어 하셨어요.
세월호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꿈을 꾸셨는데 제 동생포함 그 또래로 보이는 많은 학생들이 동아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는데 하늘쪽에서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들이 동아줄을 칼로 끊어내는 꿈이었대요.
김쌤은 떨어지는 아이들을 다 받아낼 수 없었고, 꿈에서 깨고나서는 ‘내가 힘을 어예 보태줄 수 없는 일이 일어나려는가 보구나’ 하고 비통해하셨대요.
꿈에 제 동생이 있는건 제 동생이 97년생이라그런지 나이 또래라 그런것같아요(이건 제 추측이에요)
무튼 김쌤이랑 저는 같이 위령제와 천도제를 지내줬어요. 저는 옆에서 그냥 심부름하며 일을 도와드린것 뿐이지만 그래도 이런 방식으로라도 세월호 희생자 분들의 영혼을 위로해드리고 싶었어요.
(세월호 희생자 분들과 가족분들 위로의 말씀 드립니다. 제가 이 얘기를 써도 될런지 아직도 잘 모르겠네요..)
………
해가 뜨지 않는 극야의 대한민국이 지금은 다시 새로운 태양이 떠서 참 다행이에요.
사회가 정상적이게 분위기가 그때와는 참 많이 바뀌었어요.
당연해야할 일이지만 그렇지 못했던 과거를 생각해보면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은 참 감사할 일이에요.
이야기의 내용도 무겁고 저 또한 제 인생사 가장 충격적이고 슬픔의 시간을 보냈던 나날들이기에 이야기의 마무리를 어찌 지어야할지 모르겠네요..
오늘으 썰은 여기서 끝이났네요.
마지막으로 제 글을 읽어주신 여러분들!
따뜻한 마음으로 댓글도 달아주시고…
취업준비 때문에 피폐해진 제 정신에 새로운 활력이 되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글 쓰는동안 여러분들 덕분에 즐겁고 행복했어요.
이야기 보따리는 일기에 더 있지만
밥은 벌어먹고 살아야 하기에ㅜㅜ
여기서 시리즈를 마무리 하려고 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고 즐거운 나날들 보내시길 바랄게요!
절에가는 날이면 때마다 여러분들의 행복을 기도하겠습니다 ㅎㅎ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ㅅ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