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편 : 가족의 비밀
배에서 내린 것도 억울한 데 내리자마자 헌병대 대장한테 다리가 부러지도록 조인트 까이고, 다른 부대장들로부터 눈치란 눈치는 다 받으며, 육상근무자들 내무반에 가서 대기하라는 호통 소리에 끽소리도 못 하고 개인 사물도 하나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하선하여서 할 일 없이 내무반에 가서 대기하다가 육상 요원들이 먹는 밥 그야말로 눈칫밥, 간신히 두 그릇 얻어먹고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끽소리도 못 하고 내무반에 죽치고 있다. 내무반 들락날락하는 육상병들이
“야, 제야?, 저 자식은 왜 배에서 내리는 그 난리를 쳤대?”
“몰라, 무슨 뻗칠 일을 하고 다른 해역사로 뛰려고 하다가 뒷다리 잡힌 거 아니야?”
육상근무 수병들이 나 들으라고 일부러 큰소리로 떠들며 나간다. 그렇게 멍하니 앉아있는데 갑자기 헌병대가 들이닥쳐
“귀관이 김혁일 중사인가? ”
“네, 그렇습니다.”
하는 나의 대답으로 나의 신분을 확인하더니 덜컥 쇠고랑을 채우고 연행하여 방첩대로 끌려와 취조실로 밀어 넣으니, 알지도 못하는 조폭 같은 놈한테 한창 정신없이 얻어맞았다. 그러고는 이렇게 영창에 처넣어 버렸다. 대낮에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없다. 참 억장이 무너질 일이다.
같은 배의 동료들은 다 죽었으니 이제 내 편인 사람은 이 바닥에는 아무도 없다. 올해 연초 기관장님이 올해 신수를 보아준다고 할 때 복채를 든든히 드리고 좀 보아둘걸. 그랬으면 분명 올해 운세가 나쁘다는 것을 알려주었을 텐데.
“그런 거 다 미신입니다.”
하고 면박을 주면서 거절한 것이 이제와 후회가 된다.
“아 그년은 나는 싫다는데 새벽 댓바람부터 나타나 그 지랄을 해, 내 꼬락서니가 이렇게 되게 만드나?“
속이 부글부글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지금 이 상황에서는. 차가운 영창 안에서 밤을 보내고 있자니 춥기도 하고 얻어맞은 곳이 다 쑤시고 아프지만, 내가 간첩 혐의로 체포되었다는 생각에 그런 아픔을 생각할 여유가 없다. 얼마 전 뉴스에 중앙정보부에서 동해안 지역 고정간첩 망을 검거했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다. 그중에 해군도 몇 명 검거되었다는 뉴스가 생각난다.
그럼 나도 그들의 끄나풀로 엮어 들어가는 것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들었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내가 깨끗해도 고문에는 장사가 없는 법이다. 고문하면 무조건 자백하게 되어있으니 없는 죄도 다 뒤집어쓰게 되리라 생각하니 참 이제 모든 것이 다 끝났구나!' 하는 절망감밖에 없다.
한 방에 있는 다른 놈들은 세상모르고 코를 골고 자고 있다. 참 태평한 놈들이다. 저런 놈들이 지금, 이 순간에는 부럽다. 세상 제 생각대로 살다가 사고치고 영창 오고 그러다 또 시간 보내고 나가면 언제 그랬냐는 태도로 막 살아가는 놈들. 참 너희들 신세가 부러울 때가 있구나 참 세상 요지경 속이다 하는 생각과 앞날에 대한 두려움으로 잠이 오지 않는다. 내일은 또 어떤 일이 전개될 것인가?
김 중사가 방첩대에 구속이 되어있는 상황에 김 중사의 가족들도 무사할 리가 없다. 묵호 경찰서에서는 사찰계 형사들을 동원하여 김 중사의 가족들은 모두 체포하여 경찰서 유치장에 처넣었다. 유치장에 갇힌 가족들은 영문도 모른 채 잡혀 와서 갇혀 있으니 미칠 지경이었다.
”우리가 왜, 이렇게 잡혀 와야 하냐.“
김 중사의 아버지가 호통을 치며 따져 물으니, 경찰서 담당 형사는 이렇게 답한다.
”우리도 몰라. 방첩대에서 당신 아들이 고정간첩이라고 하여 가족 모두를 잡아 가두라는 지시가 내려서 당신들을 체포하였으니 잡말 말고 기다려, 이 빨갱이 족속들아. “하면서 새파랗게 젊은 형사 녀석이 노인에게 반말한다.
이 말에 김 중사 아버님은 소리를 지른다.
”빨갱이라니, 나는 국군으로 빨갱이를 저 압록강까지 쫓아가 물리친 역전의 용사야? 내가 빨갱이를 알면 얼마나 알아? ”
이 말에 담당 형사도 질세라 소리를 지른다.
“당신 거짓말하고 있어. 당신 원래 인민군 장교로 있다나 국군에게 포로가 되니 전향하여 국군이 된 자, 아니야. 거짓으로 귀순하여 남한에 북한 간첩망을 조직하려고 그렇게 한 것 아니었어? 당신 과거 기록을 우리가 다 가지고 있어. 헛소리하지 말고 조용히 있어?”
이 말에 질세라 아버지는 소리를 친다.
“ 이 종간 나 자식이 화랑무공훈장을 개떡으로 아나, 내가 비록 해방 후 남쪽 사람이 아니라 북쪽 사람이라 어쩔 수 없어 북한군이 되어 6.25에 참전했지만, 나는 공산주의가 그런 것일 것을 모르고 평양에서 자란 사람이야. 내가 민주주의가 어떤가 공산주의가 어떤가를 다 겪어보고 남측을 선택한거야? 네가 자유가 어떻고 민주주의가 어떤 것인지를 제대로 알고 그런 소리를 하냐? 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자식아” 하고 소리를 지른다.
경찰서가 떠나가도록 소리를 지르니 담당과장인 듯한 자가 나와 중재를 한다.
“영감님, 사연을 잘 알겠으니 조용히 계십시오. 우리도 자세한 내막은 모르고 지시받은 대로 처리를 하는 중이니 협조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강 형사, 어르신한테 무슨 말버릇이 그래,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필요한 조사만 간단히 하고 유치장에서 되도록 편히 계시게. “하는 지시를 내리고 안으로 들어간다.
일단 담당과장의 중재로 아버지의 화는 조금 가라앉았지만, 사정을 모르는 경찰이나 가족이 다 똑같은 처지이니 그렇게 이 밤을 보내는 방법밖에는 없다.
시간은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 채 이틀을 김 중사 가족들이 유치장에서 보내게 했다. 경찰도 특별히 할 수 있는 아무런 지시도 받지 못하고, 김 중사 가족들도 맥없이 유치장에 붙들려 있는 그런 상황이었다. 삼 일째 되는 날 아침 김 중사의 아버지는 무엇인가 결심을 한 것인지 과장을 불러 달라고 했다. 과장이
”무슨 하실 말씀이 있습니까? “하고 물으니 ”내 당신네 경비 전화를 한 통 써도 되겠습니까? “하고 말한다. “그렇게 하시지요.” 하고 전화기 앞으로 모시니 전화를 들더니, “ 교환, 서울 중앙정보부 기조 실장실을 좀 대주시오.” 하고 전화를 건다. 이 말에 그 방에 있던 경찰 관계자들이 모두 사색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