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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상사의 전사를 확인한 우리 함장은 주위에 또 다른 605함의 동료들의 시신이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인근 함정에 황 상사의 인양 사실을 SSB를 통해 즉시 통보하도록 지시했다. 군 통신이 아닌 민간 통신인 SSB를 이용하는 것은 혹시 북측 함정들이 우리 교신 내용을 도청할 수 있으니 비밀채널을 통해 우리끼리만 교신하는 것이다. 동해의 햇살은 점점 강하게 바다 위를 내려 째기 시작한다. 바다 위에 떠 있을 부유물들은 쉽게 눈에 띌 수 있는 청명한 날씨였다.
현 위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다른 동료들의 존재 여부를 파악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해군 상황실에서는 공군에 지원 요청을 하였는지, 우리 공군의 정찰기가 우리 함정들이 수색 중인 대화퇴 어장 주변을 저공비행으로 날아다니고 있다. 긴장 속에서 포신에 오전 시간을 내내 죽어라 잡고 매달렸더니 팔에 쥐가 나는 것 같다. 12시가 되어 우리 팀은 오전 당직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휴식 시간을 갖기 위해 함 내의 침실로 이동하여 침상에 눕자 모든 긴장이 풀려 곧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김 수병, 김 수병” 하고 누군가가 나를 죽어라 부른다. “나 좀 살려줘, 나 좀 살려줘.” 이 소리에 나는 벌떡 일어나 그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막 달려갔다. 진해 경화 해군 훈련소 동기 정민식이었다. 그 친구가 바닷물 속에서 머리가 들락날락하면서 막 소리를 지른다. “ 나 좀 살려줘, 나 좀 살려줘.” 그 친구는 이 차가운 동해 바닷물 속에 있고 나는 우리 배 후미에서 견시를 보고 있는 그런 상황이다. 파도는 5m 이상 큰 파고로 다가오는데 그 친구가 큰 파도에 휩쓸리면서 머리가 물 밖으로 나올 순간에 나에게 소리를 지르니 어찌할까? 나는 즉시 선미에 부착되어있는 구명대를 그 친구에게 있는 힘을 다해 던졌다. 그 친구에게 정확히 맞추어 떨어지려는 순간 집체보다 더 큰 파도가 그 친구를 확 쓸어가 버렸다. 순간 내 눈앞에서 사라진 것이다. 그 집체만한 파도는 나를 집어삼킬 듯 우리 함정의 후미를 거세게 치고 있다. 그 파도에 나도 뒤로 넘어지면서 ‘쿵’ 하면서 함정의 중간 지점에 뚝 떨어졌다. 간신히 기관실 위 굴뚝 옆의 손잡이를 잡고 대롱대롱 매달리는 처지가 되었다.
함교에 있던 갑판장이 소리를 지른다. “야, 김수병, 죽으려고 거기 있냐? 빨리 함내로 들어와.” 하고 소리를 지른다. “황천 1급이야, 이 상황에 갑판에 있다가는 그대로 미끄러져 바다에 떨어져 고기밥이 된단 말이야. 이 골통아!” 하는 악쓰는 소리에 나는 꿈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 꿈이구나.’ 물속에서 나를 구해달라 소리친 친구와의 만남이 현실이 아니었다.
아니 그럼 내 친구 정 일병은 어디로 간 것일까? 왜 그 친구가 내 꿈에 나타나 살려달라고 하는 것일까? 이런 의문 속에서 멍하니 내 침상에 앉아 있는데 아래층의 김 병장이 나에게 “ 야, 꿈꾸었지? 막 소리를 지르더라. 무슨 일 있냐?” 하고 묻는다. 그래서 “제 동기 정 일병이 제 꿈에 나타나 살려달라고 하잖아요.” 하니. “야, 그거 다 개꿈이야. 그 뱃사람들 다 전사한 것이 분명해, 그 밤에 공격당했다면 꼼짝달싹 못 하고 죽는 게 이 바다의 현실이잖아.” 하며 나를 달랜다.
그의 말은 그냥 건성으로 들리고 무슨 말인지 잘 생각도 나지 않고 그저 내 동기 정일병의 얼굴이 내 눈 앞에 선하다. 그렇게 멍하니 앉자 있는 동안 전투배치 벨이 다시 요란하게 울린다. “왱 왱 왱, 전투배치.” 우리는 구호를 외치며 “전투배치, 전투배치, 전투배치.” 하면서 각자의 전투 위치로 뛰어가기 위해 급히 배의 계단을 부서져라 밟으며 위로 뛰어 올라가 각자의 전투배치로 달라붙었다. 동이 트니 북한 장전항에서 북한이 근위해군 함정들이 “남조선 아바이들 배가 우리 지역에 이렇게 많이 모여들었어! 오늘 몸좀 풀어볼까?” 하면 대규모로 출동을 한 것이다. 위도상 이곳은 북방한계선 위의 북한 바다에 해당하니 언제 그들의 배가 출현할지 모르는 해역이다. 북한 장전항이 우리의 대진항보다 더 가까운 곳이었다. 우리 함정의 수는 8척이었다. 그런데 북한 해군의 출동함은 10척이란다.
함장이 방송한다. “적함이 출현했다. 발포 명령이 떨어지기 전에는 절대 발포해서는 안 된다.” 우리 배보다 더 많은 북한 측의 함정이 출동했다. 이것은 한 판 붙자는 심사이다. 함장의 방송에 우리는 “야, 이제 정말 말로만 하던 남북의 한판이 시작되는구나!” 하면서 포의 조종간을 꽉 잡은 손가락을 가볍게 움직여 긴장을 풀고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발포 명령에 신속하게 방아쇠를 당겨 간나들 옆구리에 왕창 구멍을 내주어 이 동해 속으로 물고기 밥을 만들어주어야지 하고 다짐하며 요동치는 배의 롤링에 몸을 맡기며 차가운 동해 겨울 바다 소금물을 뒤집어 쓰면서 북조선 아바이 배들이 나타나기를 숨죽이며 기다리고 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저쪽 바다에서 ”촤“ 하는 소리와 함께 날렵한 북한함정들이 우리 쪽으로 다가온다. 재수없게 우리 배가 가장 북쪽에 떠 있다. 우리 배를 향해 두 척의 북한함정이 다가온다. 우측, 좌측에 한 척씩 우리 배를 들여 받겠다는 심사로 배의 옆을 짖누르며 ‘우지직, 우지직”하면서 배의 측면에 있는 홴다를 짓이기니 양쪽에서 배와 배가 부딪히며 내는 쇠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난다. 배가 옆구리를 ’부지직‘하고 부딪히는 순간 내 몸도 부지직하고 만볼트짜리 전기에 타는 느낌이다.
이 상황에서는 먼저 쏘는 쪽이 승자다. 배는 구멍만 나면 바로 바닷물의 밀려 들어와 평형상태가 무너지면 복원력을 잃어 홀랑 넘어가면 끝이다. 함장의 발포 명령만을 기다리며 함포의 방아쇠를 꽉 잡고 바닷물을 뒤집어쓰고 있다. 우리 배는 3미터 이상의 파도에 롤링과 피칭을 거듭하면서 전속으로 우현 좌현으로 치고 빠지고 하는 작전을 수행하면서 현 상황을 최대한 피하려고 하고 있고 북한함정 두 척은 우리 배를 잡아먹으려고 달려드는 하이에나들처럼 2월의 겨울 동해 위를 휘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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