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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panic_94913
    작성자 : Dementist
    추천 : 27
    조회수 : 1698
    IP : 108.162.***.234
    댓글 : 21개
    등록시간 : 2017/08/18 10:17:38
    http://todayhumor.com/?panic_94913 모바일
    죽은 멤버의 베이스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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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겪은 영적인 현상 같은 거다.
    무서운 얘기는 아닐듯. 약간의 소름 정도.

    2천년대 초반의 일이다.
    그 당시에 음악에 관심이 있는 애들 중에,
    힙합을 좋아하는 애들은 보통 비보잉을 했고, 나머지는 밴드를 했다.
    미사리나 통기타 카페에 가서 노래를 부르거나, 오부리 (가라오케처럼 노래
    연주를 해주는 것)를 하며 짭짤하게 돈을 버는 애들도 있었지만 그런 애들은
    약간 사파 취급을 받곤 했다. 이쯤 되면 내 나이가 대충 짐작 되리가 본다(아재).

    그 당시에 버스킹 같은 문화도 없었고, 나는 밴드에서 기타를 쳤었다.
    보컬, 드럼, 나(기타) 그리고 영재(가명 / 베이스)라는 친구로 이루어진 4인조 하드록 밴드였다.
    말이 하드록이지 그냥 하드록을 좋아하는 꼬맹이들 모임이었지. 연주 다들 못했다(ㅋㅋㅋ).

    신기한 건 다들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의 친구들이었는데,
    보컬이 자기 밴드하고싶다고 하니까 보컬의 친구들이 어, 내 친구 기타치는데 소개해줄까?
    내 친구는 베이스치는데 소개해줄까? 해서 4명이 모이게 된 것이었다.

    보컬이 그나마 활발하고 나머지는 다 내성적이고 좋아하는 음악이 음악이다보니
    성격도 모난 부분이 있어서, 어느새 이 4명은 밴드 멤버이자 가장 친한 단짝 친구가 되었다.

    홍대 같은 곳에서 공연을 하고 같이 동네에 가서 밤새 술을 퍼먹거나 당구를 치고,
    각자 집으로 가거나 서로의 집에 가서 같이 자거나 하고, 일어나서 알바뛰러 가고..
    참 행복한 나날들이었다.

    그 당시에 거의 다 카피곡이었고 자작곡은 딸랑 2개있었는데, 그마저도 다른 음악에서 따오고,
    말도 안되는 구간들 이어붙이고 해서 만든 난장판 수준이었다. 그래도 그 당시엔 워낙에
    '인디밴드' 라는게 적은 시대여서 그랬는지 홍대에서 같이 공연하는 형들이 참 예뻐했었다.
    야! 니네 얼른 자작곡 더 만들어서 우리 레이블 들어와야지! 같은 얘기들. 솔직히 멤버 모두
    직업으로 음악을 할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그런 말들을 들으며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을
    조금씩 키워나갔다.

    그러다 사고가 났다.
    영재가 죽어버린 것이다.
    음주운전 차량이 어마무시한 속도로 영재를 치었고, 호프집에서 서빙 알바를 마치고 돌아가던
    영재는 목부터 떨어져 어찌 손 쓸 사이도 없이 그대로 즉사했다. 지금도 음주운전에 대한 처벌은
    개판이지만 그 당시엔 더 개판이어서, 피의자는 얼마 되지도 않는 형량을 받았다.

    영재나 나나 둘 다 말이 없는 성격이어서, 멤버 모두가 친했지만 우리 둘은 특히 더 친했다.
    같이 밤에 알바를 하는 것도 컸고, 끝나는 시간이 비슷해서 둘이 같이 돌아가기도 했으니까.

    나는 너무 큰 충격을 받은 나머지 멍하니 장례식 3일 간을 지키다 집에 돌아갔다.
    물론 밴드는 그대로 활동 중지였다.

    그리고 한 3개월 흘렀을 때였나.
    같은 합주실을 쓰던 다른 밴드의 두살 어린 동생놈에게 문자가 왔다.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는데 그 당시엔 합주실을 당구장이나 피씨방처럼 시간별로 렌탈해서 썼다.
    1시간에 얼마... 그런식으로. 그러다 보니 같은 합주실을 쓰는 다른 팀들끼리 친해지는 경우도
    많았고, 오래 다니다보면 사장님이 시간 서비스를 주거나 가격을 좀 깎아주거나 그런 경우가 있었다.
    문자 내용은 이랬다.

    [형 우리 합주실에서 영재형 귀신나온대요. 합주실에 아무도 없는데 베이스 소리 난다던데ㅋㅋ 
    ㅇ팀 보컬 여자애도 들었대요. 개무서움]

    그땐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너무 화가 나서
    문자를 받자마자 전화를 해서 쌍욕을 퍼부었다.

    이 씨x놈아 장난쳐?
    영재가 어떻게 갔는데... 그따위 장난들을 쳐.
    이딴 문자 한번만 더 보내면 다 죽여버릴 줄 알아.

    걔는 연신 죄송하다며 사과를 했다.
    그리고 며칠 후에 그 괴소문의 진상을 확인할 날이 왔다.

    합주실 사장님이 마누라랑 결혼기념일 여행을 간다고, 나한테 하루만 합주실을 봐달라고 한 것이다.
    연습해도 좋고 잠도 여기서 자도 좋으니 오는 손님만 받아달라고. 일급은 그 당시에도 엄청 쎈 10만원이었다.
    나야 뭐 설렁설렁 손님만 받으면 되는 거고, 오랜만에 손도 풀고 싶어서 콜을 했다.

    손님들 다 받아서 보내고. 나는 거기서 잘 요량이었으므로 맥주를 몇캔 비우고 카운터에서 기타를
    치고 있었다. 2시쯤 됐나. 기타를 치고 있는데 합주실에서 진득한 저음이 울려퍼졌다.

    둥, 두둥... 두두둥...

    나는 이미 그때 문자 건은 완전히 잊어먹고 있었고(머리가 나쁘다), 별로 영감이 있거나
    겁이 많은 편도 아니어서, 누가 자기 연주를 녹음한 카세트를 틀어놓고 갔나, 싶은 생각에
    '에휴 시x' 하면서 합주실로 들어갔다.


    카세트는 꺼져있었다.
    베이스 엠프에서 희미하게 둥, 두둥 하는 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물론 우리가 밴드 합주를 할 때의 베이스 소리와는 달랐다.

    밴드 합주할 때의 베이스소리가 엠프를 뚫고 튕겨져 나오는 느낌이라면
    이 소리는 엠피스피커를 간신히 두드리는 느낌... 굉장히 희미하고 작고, 힘이 없었다.

    한참동안 멍하니(약간은 쫄아서) 그 소리를 듣자니 어딘가 익숙했다.

    그 진행이, 어설프게 귀로 들리는 그 코드가.
    우리가 결성 초부터 쭉 연주해오던 어떤 카피곡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누가 시킨것도 아닌데 눈물이 줄줄 흘렀다.
    그리고 나도 자리에 앉아서, 들고온 기타로 그 곡에 맞춰 연주를 시작했다.

    사실 우리가 카피한 그 노래는 원곡과 좀 달랐다.
    중후분쯤의 베이스 연주가 굉장히 어려운 곡이었는데, 사실 영재가 베이스를 그닥
    잘치는 애가 아니어서, 곡을 편곡했기 때문이었다.

    '야, 거기 어려우면 걍 루트음 위주로 찝어. 내가 솔로 한번 더 후릴게ㅋㅋ'
    '아 진짜? 땡큐ㅋㅋㅋㅋ'
    '시x 락커 가오가 있는데 못 쳐서 쪽팔 순 없잖냐ㅋㅋㅋ'

    그 부분이 똑같다.
    희미하게 들리는 저음 소리가.
    현란하지 않고, 단촐하다.
    루트음만 간간히 들린다.
    그때부터는 정말 꺼이꺼이 울면서 기타를 치다 혼절하듯 합주실 바닥에서 잠들었다.

    그날 꿈에 영재가 나왔다.
    영재랑 나는 아침에 집 앞 공원에서 종종 운동을 하곤 했다.
    락커는 체력이란 말과 함께. 뜀뛰기를 하거나 철봉을 하곤 했는데,

    푸른 아침의 그 공원에서, 영재가 벤치에 앉은 채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나에게 뭐라 자꾸 말을 하는데, 주파수를 잘못 잡은 라디오처럼 잘 들리지가 않았다.

    내가 몇번이나 뭐라고?! 뭐라고?! 하자 그제야 목소리가 살짝 들리기 시작했다.

    같이 놀아줘서...고마워...
    다음에 또... 같이... 밴드하자....

    자고 일어나니 얼굴이 온통 눈물 투성이였다.
    나는 그렇게 영재를 마음 속에서 떠나보냈다.

    난 이제 밴드를 하지 않는다. 
    그냥 평범한 직장인 아재일뿐.

    그래도 내 방 거실 뒷켠엔 아직도 영재와 밴드할때 쓰던 기타가
    넥도 다 휘고, 줄도 다 녹슨 채로 세워져 있다.

    영재가 또 같이 밴드를 하자고 하면 그거라도 들고 나갈 수 있도록...

    역시 다 쓰고 다니 무섭진 않네...ㅎㅎ 그냥 신기한 경험이었어. 아주 옛날의..
    출처 웃긴대학 공포게시판
    계르륵 님
    http://m.humoruniv.com/board/read.html?table=fear&pg=23&number=75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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