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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대에게 드리는 꿈
7. 결의형제들(2)
“내가 제일 존경하는 분 중의 한 분이 장호우 장군님이니 아우와 내가 형제가 된 게 더없이 기쁘다.”
“빨갱이놈의 새끼들!”
장이 주먹을 부르쥐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무엇때문에 그러는지 짐작했지만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스라소니 형님한테 이야기는 들었겠지?”
“예. 형님.”
“어떻게 하겠느냐?”
“당연히 싸우겠소.”
“그래, 고맙다.”
둘은 다시 손을 잡았다. 이제부터 장은 철저하게 깨뜨러져야 했다.
“지금까지는 너도 부왜파였다!”
“뭐라고?”
술이 몇 순배 돌고나서 그가 선언하듯이 하는 말에 장이 고함을 지르면서 술상을 내려쳤다. 우지끈, 술상이 갈라져 버렸다. 술잔이며 안주그릇들이 깨지고, 엎어지면서 어지럽게 나뒹굴었다. 그래도 그는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여자들이 우르르 달려와 방을 치웠다. 술상을 다시 올린 뒤에도 장은 두 눈을 부릅뜨고 씩씩거리고 있었다. 여차하면 당장이라도 다시 주먹을 휘두를 기세였다.
그가 조용하게 물었다.
“지금 네가 데리고 있는 아우들이 몇이냐?”
“내가 직접 데리고 있는 아우들은 70이오.”
“그중에서 징용이나 징병 간 아우들이 있느냐?”
“없소.”
“없지?”
그가 쓴 표정으로 웃었다. 그러고 보니 뭔가 좀 이상하긴 했다. 그래도 그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장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이땅의 젊은 사람들은 지금 거의 모두 이런저런 명목으로 왜놈들에게 개처럼 끌려가고 있다. 모르지는 않겠지?”
“......”
“그런데 너희들은 왜 하나도 안 끌려갔느냐?”
“우리는 힘이 있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장은 별로 자신이 없어지고 있었다. 부르쥐고 있던 주먹에도 스르르 힘이 빠져나갔다.
“힘이 있다고? 그 힘은 누가 준 힘이냐, 총독부가 준 힘이냐, 아니면 우리 동포들이 준 힘이냐?”
“우리 스스로 뭉쳐서 얻은 힘이오.”
“그러면 너희들이 총독부와 싸워도 이긴다는 말이냐?”
“......”
“지금 왜놈들은 코흘리개 소녀들도 끌고 가 병사들의 노리개로 삼고 있다. 한 사람이라도 더 전장으로 끌고 가려고 발악하고 있단 말이다. 최후의 발악을 하고 있는 것이야. 그런데 허우대 멀쩡한 너희들은 끌려 가지 않고 있다. 누구보다 신체적 조건이 좋은 너희들이 끌려가지 않은 이유를 너희들이 내세우는 그런 힘 때문이라면 말이 되나?”
할말이 없음을 장은 깨달았다. 사실 거기에 대해서 별로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너는 부왜파놈들이 주도하는 집회에 몇 번이나 나갔지?”
“나는 한 번도 간 적이 없소.”
“그러면 아우들도 안 보냈단 말이냐? 군중 동원하는 일은 안 거들고?”
“아우들은 보낸 게 사실이오. 사람들 동원하는 일도 거들었지만 다른 행동은 못하게 했소. 단지 참석만 하라고 시켰을 뿐이오.”
“단지 참석만 했다?”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너희들은 깡패냐, 협객이냐?"
"우리는 협객이오!"
"협객이란 정의를 위해서라면 폭력도 불사하는 사람들이야. 너희들이 과연 옳은 일에만 주먹을 휘둘렀나?"
"우리는 왜놈들하고만 싸웠소."
"동포 상인들에게는 돈을 뜯지 않았나?"
"말은 바로 하시오. 우리는 그 사람들이 장사하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보호해주고 수고비를 받았을 뿐이오."
"그 사람들은 뜯긴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을 텐데 말이야. 수고비도 받지 않으면 안 되었나? 잘 버는 왜놈들에게는 더 많이 뜯고."
"......"
“모르고 있었겠지만 너희들은 이용당하고 있었던 거야. 조선인 순사놈들이 더 악독하다는 이야기는 너도 들었겠지? 마찬가지야. 너희도 왜놈들 등만 쳐먹은 건 분명 아니고. 바로 그거야, 왜놈들이 노리는 게. 조선놈들 중에도 깡패가 있다. 조선놈들 중에도 악독한 부왜파가 있다. 그렇게 생각하게 만들어서 우리는 안 돼, 우리는 할 수 없어, 하면서 자포자기하고 저항을 포기하게 만들려는 거지. 실제로 우리들의 입에도 ‘조선놈들은 맞아야 돼!’ 라는 말이 익어 있지. 아닌 말로 총칼로 무장한 경무국이, 조선군이 너희들이 무서워서 그냥 뒀을까? 왜놈들이 그런 식으로 선전하는 데에 너희들은 도움을 주지 않았냐 말이지. 부왜파놈들이 주도하는 집회에 사람들을 동원해 주고, 가서 박수를 친 것만 해도 결국 왜놈들에게 도움을 준 거지. 너는 한 번도 안 갔다고? 그래서 너는 부왜파가 아니라고?”
조용하면서도 단호한 그의 추궁에 장은 ‘끄응!’하고 된 신음을 물었다. 틀린 말은 하나도 없었다. 자신들은 협객이라 믿고 살아왔건만 깡패라고 욕을 하는데도 할말이 없었다. 제기랄! 장은 완전히 풀이 죽고 말았다.
오래전부터 조선 주먹잡이들의 배후에는 박충금이 있었다. 박가는 최초로 조선인들의 분열이간 책동에는 주먹잡이들이 필요하다고 본 자였다. 박가만큼 주먹잡이들의 행태와 생리를 잘 아는 자도 없었다. 그 자신 깡패여서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주먹잡이들은 박가가 자신들을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박가가 왜국에서 중의원 의원을 두 번이나 지냈고, 왜국 낭인 세계에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인물이라는 정도를 알고, 만나면 주먹계 선배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정도였다. 그리고 박가가 요청하면 돈을 받고 부왜단체의 집회에 사람들을 동원해 주고 같이 가서 박수를 쳐주는 정도였다. 그 이상은 없다고 단순하게 생각해 온 그들이었다.
“...... 더구나 너는 우리 역사에 길이 남을 장호우 장군님의 아들이다. 그런데 왜놈 앞잡이 박가놈이 시키는 대로 하고 살았다고?”
“잘못했수, 형님!”
“잘못했다는 말로 될 일이 아니다. 지금부터 행동으로 사죄해야 한다. 장호우 장군님과 우리 동포들에게. 너희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백배 더 용감하게 싸워야만 한다, 알겠지?”
“알겠수.”
생각대로 되고 있는 것에 그는 적이 만족을 느꼈다. 완전히 기를 꺾어놔야했다. 그래서 사정없이 몰아친 것이었다.
“너는 지금부터 우용이 형님하고 힘을 합해서 너희들과 같은 청년들을 조직해라. 전국적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는 그런 조직이라야 돼. 그래서 우리나라의 독립에 너희들이 제일 큰 공을 세웠으면 좋겠다.”
“알았수.”
장의 머릿속에도 해방의 기쁨에 출렁이는 인파와 함성이 가득했다. 왜놈들을 원수로 삼아 온지 오래였다. 이제 정말 원수를 갚을 기회는 오고 있었다. 주먹에 그 어떤 싸움에서보다 더 강한 힘이 주어졌다.
술잔을 주고받으면서 둘은 한참을 술만 마셨다. 제법 불콰해진 장이 어린애같은 호기심으로 눈을 반짝였다.
“왜놈왕하고 찍었다는 그 사진들 좀 봅시다!”
여운형을 만난 강성종은 김구가 따로 쓴 편지를 전했다.
존경하는 여운형 동지시여!
왜적치하에서 얼마나 노고가 많으시나이까? 소생은 동지의 염려지덕에 타국에서 아무런 위험도 없이 잘 지내고 있나이다. 동지의 은혜를 무엇으로 다 갚을 수 있을지......
허나 이제 똘똘 뭉치고 있으니 조국해방도 멀지 않았나이다. 조국 땅에서 동지를 뵈올 날도 멀지 않은 듯 하나이다.
여기 김대철 동지를 보내오니 전적으로 믿으시고 도와주소서. 뵈올 때까지 강녕하소서.
중경에서 김구 올림
편지를 접는 여운형에게 그는 다시 한번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김동지, 보잘것없는 부왜파를 찾아서 여기까지 오시느라 고생하셨소.”
환하게 웃으며 여운형이 그를 끌어안았다. 그 품이 넉넉하게 느껴졌다. 자리에 앉아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여운형이 껄껄거리고 웃었다.
“조국이 독립되면 그깟 주의들이 무슨 소용 있겠소? 그런 주의들도 다 독립투쟁의 한 방편이 아니겠소? 그렇지 않소, 김동지?.”
과연 거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여운형을 보면서 계획에의 막연한 기대가 아닌, 확신이 서고 있었다.
“나도 주석 각하와 마찬가지로 이 한목숨 조국해방에 바치리라 마음먹은지 오래요. 김동지, 우리 힘차게 싸웁시다.”
손을 꽉 잡는 여운형이었다. 크고 따뜻한 손이었다.
최우용과 장태식을 매개로 한 청년조직 규합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들은 여운형은 다시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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