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재수했었습니다.
수능은 끝났구요.
수기 쓸 정도로는 열심히 했습니다.
하루에 대부분을 썼었고..사회생활을 아예 단절하고 입도 거의 열지 않고 살았었으니까요.
사정상 한여름에 학원을 나오게 됬지만 9월중순 전까지는 정말 뿌듯한 마음을 가지면서 잠이 들었어요.
10월달부터는 끔찍했네요. 글씨를 보는 것만으로도 토할 꺼 같고, 속이 답답하고..한 4~5시간밖에 집중못했던 거 같아요.
지나갔고, 선택이었으며, 변명이지만.
목표는 두 개였어요. 사실상 하나라고 봐도 되지만.. 연세대,고려대 경영.
중학생때부터 가고 싶은 학과였고, 현실성 없는 목적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현실을 찾기 위해
제2외국어, 한국사를 선택하지 않아도 갈 수 있는 곳인데다, 누구나 인정하고 나도 뿌듯한 그런 학교니까요.
제일 듣기 싫고 찝찝한 '애매하다', '그 정도면 좋은 곳', '나름 괜찮은 곳'이 아니라서
과외도 구하기 쉬울 것이고, 평균보다 그나마 나은 공부를 극대화할 수 있는 목표였죠.
지금 현재로는 불가능한 목표네요.
작년기준으로 20점 정도..올랐으니까요.
작년에는 지방사립대 경영 탈락, 자율전공만 합격했는데
20점 올랐으니 꿈과는 아직 50점~60점 넘게 차이나는 거죠.
제가 수시를 지방국립대 경영학과를 냈어요. 서울쪽에 4년장학금 주는 곳도 내봤는데 그건 최저도 못 맞췄고.
제가 사는 지역의 유명한 재수학원에서 논술 특강이 열리는 그런 대학인데
저는 기출문제만 풀고 풀어서 붙었고, 논술 준비는 이게 평생해 본 모든 준비었어요.
그 곳에 지금 덜컥 붙었네요.
정시배치표 기준으로 소신을 넘은 위험,모험,불가라는 말이 뜰 정도로 못가는 곳이고,
제 소망과 집안 형편을 생각을 생각하면 사실상 가장 완벽한 대학이에요.
원하는 과, 집이랑 가깝고, 형편에 딱 맞는,그리고 준비도 비교적 적게 했는데 붙은 아주 완벽한..곳이요.
합격결과를 딱 봤을 때, 저는 별로 기쁘지 않았어요.
남들은 고생했던 순간이 다 떠오르고 가족들이랑 부둥켜 운다는데..
그냥 멍하게 아 붙었네..하고 끝.
목표가 너무 높았나봐요.
부모님이 미친거 아니냐, 니 지능이랑 이때까지 공부해온 성적 봤을 때 이게 최선이다, 양심이 없냐, 이게 다 니 운인데 그걸 걷어차냐
이런 소리를 하시네요.
삼수 생각은 돈 지원도 아예 없으니까 생각하지 말라고.
실제로도 불가능합니다. 제가 20년동안 같이 살았으니 잘 알아요. 재수도 겨우 한거고..
'현실적'으로 맞아요. 수능성적을 기준으로도 대박인거고,
삼수를 한다는 건 성공한다는 보장도 너무 낮아보이고 나이도 있고..알바하면서 공부시간에도,효율에도 문제가 있으니까.
그런데 도저히 낮춰지지가 않아요.
학벌이 중요하지 않다, 니 실력을 키워라 이런 소리를 계속 하시는데
그러면서 은연 중에 대학 간판으로 사회적 레벨이 어느정도 결정되는건 어쩔 수 없다 인정해라 이런 소리가 툭툭 튀어나와요.
예를 들면 결혼이라던지..이건 생각도 안했었는데 처음 알게 된거고.
이때까지 가끔 받아왔던 무시나 차별이 제 가슴속에 남아있어서 도저히 지워지지가 않습니다.
부모님이 교육면에서 매우 너그러운 편인데 가끔 '니가 공부해봤자 얼마나 한다고?' '반에서 몇등하는데' 이런 소리가 나옵니다.
물론 전교에서 손에 꼽히고 그런 건 아니였죠. 그래도 반에서 손 꼽혔고 모의고사로는 20등 안팎을 했던 애였는데..
고등학생 때 서울에 있는 대학교 탐방일 뿐인데 내신이 3~4등급이라서 그냥 엄마나 아빠 손 잡고 가라는 담임 선생님을 만난적도 있구요.
재수설득할 때도 모든 결정과 판단이 제 과거 모의고사로 판단되었죠.
사실 안된다는 거 한이 될까 무서워 시켜준다는 식이었지 인정은 아니었어요.
모두 현실적인 사례고 이성적인 판단인걸 제가 모르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그래서 앞으로 나갈 길이 꺼림칙합니다.
제 20살,21살이전의 학교생활은 제 대학교 이름으로 판단될꺼니까요.
정말 사소하다는 거, 성공할 확률이 높을 뿐이지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는 건
사회생활 많이 하신 분들보다야 적겠지만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저 애매한 위치가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나기도 하며, 허무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했는데, 방법이 잘못된건지 정말 머리가 나쁜건지..아니면 10월에 재수 초기만큼 못했던게 이렇게 발목을 잡는건지..정확한 원인을 모르겠네요.
근데 정말, 시간투자가 모자랐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재수시작하기전에 현역 재수 삼수 n수 수기를 다 읽어봤을 때 구본석님같은 특수상황이 아니라면 저보다 적었었거든요
저보다 더 낮은 성적이었음에도..
이제 제 능력에도 슬슬 의문이 생기기 시작해요.
저렇게 했는데 왜 그렇게까지 했냐..이런 말이 나오기도 했구요.
친구도 안 만나고 폰 정지하고 사회돌아가는 걸 한번도 못 느끼고 살아갔는데 이정도라면
학교가서 열심히 할 수 있는 시간이 명백히 적을텐데..
내가 만족할만한 성과를 낼 수가 있을까 하는 그런 걱정.
재수,삼수는 정말 확고하게 하겠다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재수보다 하고 싶다는 맘이 돈문제든, 경험상에 있어서든 약해진게 사실이에요.
근데 앞으로 살아가야할 길에 발걸음을 당당히 내딛기가 힘들어요.
학벌 좋은 애들은 솔직히 보기도 싫고 뭔가 좀 부끄럽고..
걔들이 절 안 깔보는것도 알아요. 근데 괜히 보기가 싫네요.
저보다 학벌 안좋은애들이 그저 놀기만 한것도 아니고, 지적 능력이 모자란게 아닌것도 알고,
좋다고 해서 다 성공하고 잘난것도 아니라고 말은 하지만, 부러운게 어쩔 수가 없어요.
못 바꾸는게 계속 한으로 남을꺼고..
진짜 간단하게 현실적으로, 자신감,목표를 낮춰서 여기서 만족하면 괜찮을지도 몰라요.
형편상 한국장학재단에서 주는 장학금으로 절반 가까이 해결하고 집세도 안 들고..성적보다도 높고...
지방할당받으면 왠만하면 그 대학으로 정원이 가더라..이런 소리도 있고..
도박중독인 사람이랑 비슷한 심리로 조금만 더, 내가 쏟은 돈(노력)이 얼마인데 이런 생각으로 돈,시간을 버리는게 아니냐,이게 내꼴인가..
정말 가족들이랑 의절할 생각이냐..이런생각으로요.
그럴려고도 했구요.
근데 수능 끝나고 하루도 새벽 6시전에 자본 적이 없고 동트는 걸 봐서야 깜빡 잠이 듭니다.
앞으로 그 부러움과 찌질한 열등감에 6~7년동안 직접적인 영향아래 살게 뻔해서 너무 먹먹하고 한심합니다.
저도 이제 자고 싶습니다..
삼수비용을 벌려고 알바를 구하려고 해도 3주동안 정말 자리가 하나 없네요
편의점 카페 음식점 다 알아봐도 구했다는 말 뿐이고..
점점 입학날짜가 가까워질 수록 점점 포기하려는 마음이 강해져서 한심하고 미치겠네요.
계속 부러워하고 그럴꺼에요. 다들 그렇다고 해서 저도 그러고 싶지 않고,
1년 재수할 돈이 뚝 떨어진다면..그렇게 다시 살 수 있어요. 아예 서울대를 목표로 잡아버리고.
정말 열심히 하면 실패해도 뭐든지 남는다던데..
뭐가 남는지 모르겠네요. 다크서클? 패배감? 피곤함? 좌절감? 이걸 남는다고 표현하나요?
자존감을 낮춰서 현실감각을 되찾는 방법..없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