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 레지오 에밀리아 라는 마을이 있었어요.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부모들은 살아야 했기에 아이들을 탁아소에 맡기고 일을 나가야 했어요.
아이들에게 수업을 해야 하는데, 지금처럼 거창한 무슨 법 ,
무슨 교육방법이라고 지칭하기 보다는
아이들을 오랜시간동안 맡길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맡겨졌고, 아이들이 모이면서, 아이들은 하루종일 붙어있게 되면서
딱히 무슨 프로그램이 주어져서 놀은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스스로 교류하고,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들을 가지고 놀게 되면서
(실제로 그들이 수업에 쓴 재료들은 버려진 고철, 폐품, 등 주변에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
아이들은 그 재료를 다양하게 활용하였습니다.
두명이 세명이 모여 뭔가 만들다 보니 만들기가 커져갔습니다. 그걸 옆에서 본 선생님들은 그 과정을 그냥 놀고 없애버린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연속적으로 해나갈 수 있도록 조금씩 손을 봐주었습니다.
당연히 전쟁직후여서 딱히 정해진 학년제나 공공 교육기관이 없던 그들은 아이들을 몇 년씩 같이 키우게 되면서,
아이들은 어제했던 활동에 살을 보태고 보태서 2년에서 3년짜리 프로젝트도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선생님들이 프로젝트 과정을 엶심히 기록하고 그걸 부모들과 공유하면서, 부모들은 아이들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도와주기 시작했고,
점차 우리엄마, 친구 엄마, 아빠들, 마을 공무원 할 것 없이 아이들의 활동에 필요한 것들은 모두가 한 마음으로 함께 해주었습니다.
그렇게 아이들을 키워나가고 만들어 간 교육법이
우리가 알고 있는 비싼 유치원에서 한달에 100만원 주고 한다는 그 레지오 에밀리아 접근법의 시작입니다.
레지오 에밀리아 접근법 수업의 100만원 수업의 가치는 거창하고 뭔가 있어보이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 함께 키우며 오랜시간
유대관계를 가지고 장기 프로젝트가 가능하게 하는 공동체 입니다.
그 안에서 아이들은 안전하게, 자신들이 하고 싶은 프로젝트를 능동적으로 모두의 지지 속에서 건강하게 자라나가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유아교육 전공했던 사람으로
멀리 이탈리아에서 비싼 개런티 주며 유아교육을 할것이 아니라
예전 한국적 교육방식 역시 저것과 다를 봐 없다고 여기며, 한국적 공동체를 유아교육에 녹여서
아이들을 함께 잘 키워나가는 방법을 공부해보고자 했었습니다.
아주 예전 농사가 전부였던 시절, 마을단위로 부모들이 모내기 공동체를 하며, 아이들 역시 함께 키워나갔습니다.
그 때 옆집 엄마가 젖이 부족하면, 다른집 애기 엄마가 젖을 물려주기도 하며,
아이들 만큼은 헌신적으로 키워나갔더랍니다.
왜냐면, 아이들은 후대이고, 그 후대들한테 자신들이 희생하더라도 잘 살게 물려줘야게 겠다는 생각들 때문이었겠지요.
요즘 김치녀이니, 맘충이니 하는 말이 참 마음이 아프게 들립니다.
왜 그럴까요.
저 역시 30대의 젊은 엄마이지만, 뭔가 시간이 흐르면서, 사회가 많이 '이기적' 이라는 생각
나만 살아야 한다는 생각, 사고 나면, 나만 피해보게 된다는 생각 등등
뭔가 사회적으로 각박해졌다는 생각에 모든 부분에서 참 슬프게 상황이 돌아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들 교육도 그러합니다.
독일에서는 아이들이 야외활동으로 시장방문을 한다고 하면,
그 날에 지역사람들이 함께 아이들이 잘 방문할 수 있도록 경찰부터, 시장상인들 모두가 함께 아이들이 즐겁게 시장활동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해준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는 아이가 시장 프로그램을 한다고 하면, 요즘 분위기에서는 가능할까 싶습니다.
아마도 애들 성가시고 정신없게 왜 데리고 오냐는 한 마디의 말을 안들을 수가 없지요?
처음부터 엄마는 엄마가 아니었습니다.
어린 여자는 학교에서 배워야 할 도덕과 윤리 수업에서 단지, 시험에 패스해야 하는 중요부분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생활 전반적인 부분들을 함께 배울 수업이 반드시 있었다면, 그 여자 아이는 커서 엄마가 되어서 아이를 어떻게 키워나갔을까요?
한참 문화가 부흥하는 시절에는 그런 세세한 것들까지 교육의 참여를 통해 알지 못하는 부분들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문화라는 건, 단순히 있어서 즐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생활을 하나로 드러내는 보이지 않은 지금의 모습이라고
전 생각합니다.
엄마들이 엄마교실에 가는 것 안에서 무엇을 요즘 배울까요? 엄마, 아빠의 역할의 중요성? 그래서 아이의 성장마사지, 어떤 기저귀가 좋다더라 하는
상업적인 홍보의 수단 밖에 더 있나 싶습니다. 얼마나 엄마로서의 준비를 지금 교육들에서 담아주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물론 좋은 곳도 많습니다. 그런것들을 다 비난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
그리고 만약 사회구성원들이 아이들 키워나가는 부분에 대해서 시설이 부족하다면, 끊임없이 민원을 넣어서 아이가 편히 기저귀를
갈 수 있는 공간을 의무적으로 모든 사업체에 만들고, 아이를 위한 혐오가 아니라, 함께 긍정적인 방법을 찾아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너가 잘 못했으니 너가 책임져라.!!!
아이들이 정리시간에 엄청 벌려놓고 놀이를 끝낸다음, 치우라고 하면, 울거나, 어쩔 줄 몰라 돌출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그 정리를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에 부담감에 겁나고, 안치우면 혼날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리시간에 선생님들은 작은 장치들을 해놓습니다. 구역을 나눠놓거나, 정리 바구니에 그 물건을 넣어야 하는 그림을 표시해 놓습니다.
아니면, 너무 많을땐, 친구들이 도와주자! 라고 해서 함께 치워줍니다.
아이들 역시 작은 사회인입니다. 아이들 사회 속을 보면 어른들 사회를 그대로 볼 수 있습니다. 재밌지만, 저는 사실이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아이나 젊은 엄마들이나 그 사람이 감당하기 힘든 것들을 니가 해놨으니, 니가 해결해라 라고 한다면, 끝일까요?
끝이라고 한다면, 저는 이기적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지금 현상도 인터넷상에서 그 엄마들을 지적질하고 욕하고, 심지어 맘충이라고 붙여버렸더군요.
욕할 수 있고, 잘 못 한 것에 질타할 수 있지만,
그들을 도울 방법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는 방법들이 있었다면 좋지 않을까 했습니다.
맘충이라고 욕하고 혐오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갈 게 아니라 함께 고민하는 분위기가 만들어 간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럽이나, 북미에서는 어린 시절부터 인종차별을 위해 교육을 합니다.
교육에서 끝나지 않고, 법적인 처벌도 만들어 놓았습니다.
법적인 처벌까지만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교육을 받는 과정의 아이들은 인종차별을 하는 분위기를 서로가 조심하는 모습입니다.
교육은 하되, 보이지 않은 차별은 존재하겠고 그것이 지금 문제이겠지만,
최소한 장치는 해놓은 것은 우리가 생각해 볼 문제인듯 합니다.
머리아픈 글이겠지만,
제 이야기를 줄여 말하고 싶은 건,
맘충이라는, 개념없는 엄마를 그냥 혐오하는 분위기를 만들게 아니라,
그들을 어떻게 하면 도와줄 수 있을지 하는 분위기가 오유에서 만큼은 만들어졌으면 합니다.
아이를 키우는 건 생각 보다 어렵습니다.
엄마도 아직 미숙하고, 지치고 보호받아야 할 대상입니다.
엄마도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당황하고 난감한 하루들이 연속적인데,
그걸 도와줄 어른들이 사람들이 요즘은 없습니다.
힘든 시댁생활이지만, 그래도 옛 시절에는 할머니, 할아버지께 잠깐 이라도 아이들을 맡기며, 숨을 돌릴 수 있었습니다.
지금 엄마들은 모든 걸 혼자 다 해야 합니다.
저는 엄마의 힘듬을 먼저 보듬어 주고, 이해해 주고, 잘 한다고 칭찬해주고, 그 다음에 아이를 어떻게 개념있게 키워야 할지 많은 사람들한테
들을 수 있도록 사회적인 장치나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같이 키워갔으면 좋겠습니다.
당신들이 혐오하는 그 아이들이 그 혐오적인 분위기를 받으며 커가서 자라면,
그 아이는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더 큰 혐오감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불쾌함을 가져도 혐오까진 가지 않았으면 합니다.
저는 오유에서 만큼은 맘충이라는 단어를 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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