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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panic_94631
    작성자 : Dementist
    추천 : 15
    조회수 : 3021
    IP : 118.223.***.58
    댓글 : 2개
    등록시간 : 2017/08/07 18:37:21
    http://todayhumor.com/?panic_94631 모바일
    [고전] 일본에서의 공포 (스압)
    옵션
    • 펌글
    사람들은 보통 어두운밤 누군가 모르는 사람과 단 둘이 동행하게 되는 인적없는 골목길을 무서워 한다. 그 생면부지의 누군가가 어느순간 악한 마음으로 덮칠지도 모르고 또한 그순간 어둠이라는 것에 익숙치 못한 시계속에서 피할 길을 내다 볼수 없기 때문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난 인적없는 길을 무서워 한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이든 불량스러운 젊은 사람이든 세상 다 산 듯 자포자기한 얼굴을 한 사람이든...아무도 없는 길을 혼자 걷는 것 보다는 나는 그들과 함께 걷기를 희망한다. 

    그건 나의 일년간의 일본생활에서의 몸서리 처지는 경험이 인적없음을 무섭게 느끼게 했기 때문이다. 육년간의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인생의 휴가를 다녀 온다는 생각으로 떠났던 언어 연수는 나의 일생을 겁쟁이로 살게 하기에 충분 했다. 

    과연 그 경험들이 집에서 떨어져 나와 생활하면서 약해진 심신으로 인한 환상이었는지 아니면 존재하는 어떤것에 대한 오감으로 느낀 공포 였는지 지금으로서도 확실치 않다...하지만 난 지금도 생생하게 그때 그 소리들 감촉들 그리고 눈으로 확인할수 있었던 형체들을 잊을수 없다. 

    지금부터 아주 조금씩 몸속 깊은곳에 숨겨 두었던 공포를 다른이들에게 말하려 한다...기억속에서 잊혀지기 보다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더욱더 커지는 그 공포를 더 이상 내 안에 가두어 놓을수가 없다... 

    조금씩...아주 조금씩 다른 이들과 이 공포를 공유하려 한다. 


    내가 일본 오사카에 도착한 것은 한참 벚꽃이 피려하는 삼월이었다. 조금 짭짤음한 내음이 풍기는 한국의 삼월 온도와는 다른 후덥지근한 습기먹은 공기가 내가 처음으로 느끼는 일본 이었다. 조금은 암울한 듯한 저녁노을과 함께 바람한점 없던 일본의 바다,,,나는 다른 나라에 와 있다는것도 그리고 일년이란 기간을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 한다는것도 실감하지 못하고 그저 마냥 들뜬 마음으로 처음보는 풍경에 정신이 팔려 있을 뿐이었다. 

    온통 속삭이는 듯한 잘 알아듣지 못하는 일본말들의 홍수 그리고 애니메이션에서나 듣던 안내원의 목소리 좀 색다른 차림새의 젋은이들과 역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여고생... 반갑게 느껴지던 맥도널드...좀 다른 버스와 좀 좁은 지하철 그리고 몸을 부딪치지 않고 걷는 인파...그리고 부담스럽게 큰 짐을 들고 있던 우스꽝스러운 나와 내 일행들...처음으로 내가 있던 일본의 풍경은 그때까지만 해도 폭소를 터트릴 만큼 새로운 즐거움 이었다. 


    마중 나온 은영언니는 회사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본에 파견나가 일년정도 생활하고 있었던 일본생활 선배였다. 같이 일어를 공부했던 한국에서의 인연도 있고 언니의 권유도 있었기 때문에 일단 그집에 신세를 지기로 하고 몸과 짐만 달랑들고 언니네 집에 들어갔다. 

    언니의 집은 12층 건물로 한층에 6가구 정도가 들어가는 그래도 제법 큰 맨션으로 작은 욕실이 딸린 화장실과 전기랜지가 달린 작은 싱크대와 냉장고가 있는 주방 그리고 침대와 책상으로 꽉찬 방이 전부인 혼자 살기에 딱좋은 1DK (방과 부엌 화장실이 하나씩 있는집)의 집이었다. 

    남향으로 난 창으로 오전 오후로 햇볕이 들어와도 좋았건만 앞건물의 공사로 인한 안전보호막으로 그집에서 살았던 육개월 동안 햇살이 방안으로 들어온 적은 한번도 없었다. 

    주변에 오사카 벤텐쵸의 유명한 돔 운동장이 오분 거리에 있어 가끔가다 일본의 유명 구단들이 이쪽으로 와서 경기를 하고는 했다. 강이 많은 오사카라 운동장을 끼고 큰강이 있었고 오사카의 가이유칸(해양관...수족관)과 멋진 항구축제와 불꽃놀이를 볼수 있었던 오사카 항구가 있었다. 

    일본의 특성상 항상 조용했고 가끔가다 들려오는 아이들의 목소리와 최소한의 소음을 내는 공사장이 이 동네가 움직이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는 유일한 것이었다. 크게 웃는 소리도 시끌벅적한 동네사람들의 모임도 그리고 차의 클렉션 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았다. 유일하게 크게 들리는 소리는 정적을 깨고 등줄기를 훌터내리듯 날카롭게 울리는 사이렌 소리였다. 일본이 조용했기 때문에 그렇게 느낀 것 인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유독 자주 울리는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는 일본에 있는 내내 조용한 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일본에서 처음으로 소유한 것은 자전거 였다. 생활 필수품은 언니네 집에 구비되어 있었고 필요하다 싶은 것은 생활하면서 차차 구입하면 되었지만 교통비가 비싼 일본에서 자전거는 필수 였다. 
    구입을 하자면 오천엔 팔천엔(오만원에서 팔만원)이 필요 했지만 다행이 언니가 사용하지 않은 사용기간 이년의 분홍색(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때도 분홍색에 대한 거부감은 대단했다...하지만 공짜라는 생각에 감수하고 받기로 했다.) 부인용 자전거를 물려 받을수 있었다. 
    그 자전거를 타고 한국으로 들어오기 삼개월전까지 오사카를 구석구석 돌아 다녔을 뿐만 아니라 과속 광폭운전에 날씨를 생각지 않고 몰고 다녔으니 자전거가 망가질 대로 망가져 폐기 처분하기 전 마지막 타이어 빵구 수리 때는 더 이상 고무를 붙힐 곳이 없을 정도 였다. 

    일본에 들어가 삼일후 처음으로 입학하기로 한 어학원을 방문했다. 오사카 텐마에 위치한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평판을 듣고 있는 생각보다 작은 어학원이었다. 그때까지도 아직 자신의 입장이 외국인 이라는 걸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선생님과의 단한번의 대면으로 이곳이 일본이고 더 이상 어눌한 일본말로 잘난척 할수만은 없다는 것을 실감하고 좀 의기소침해 졌었다. 하지만 일주일도 안돼 외국인이어서 일본말이 서투를 수밖에 없다는 뻔뻔스러움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아르바이트와 학교 그리고 자전거를 타고 오사카를 점령하겠다는 계획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날...난 조금씩 평상시와 다른 무언가를 느끼기 시작했다. 

    한참의 더위로 진을 빼놓던 7월의 밤 

    전기세가 아까워 언니가 돌아오기 전에는 에어컨을 켜지 않는다. 작은 선풍기 한대가 길게 누워 있는 몸위를 간신히 훓고 지나간다. 덥고 나른하다. 
    검은 줄무늬로 위장을 한 일본 모기가 소리를 내며 방안을 날아 다닌다. 
    순간 짜증이 난다. 
    녀석에게 당하면 결국 염증으로 번진다. 붉게 변한 피부안쪽에서부터 노란 고름이 흘러나와 검붉은 딱쟁이가 생길때 쯤 또다른 상처가 늘어난다. 

    11시가 지나 뉴스가 시작한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나오는 살인사건. 
    여과없이 피투성이의 살인 현장이 나오고 살해된 피해자의 신상명세가 흘러나온다. 
    어떤 때는 어린아이로 또 어떤 때는 무슨 무슨 회사의 간부로 또 어떤 때는 임산부로 살인은 상대를 가리지 않는 잔혹함으로 뉴스를 지배한다. 

    "今日石橋の商店街で殺人事件が発生しました。事件は午後5時半。。。" 

    오늘 일어난 살인사건 이시바시에서 있었던 살인사건 
    동남아시아계 여자가 저녁을 먹는중 살해됐다고 한다... 같이 있던 일본인 남자가 괴한의 습격에 집을 뛰쳐 나와 주변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해 다시 집으로 돌아갔을때는 이미 여자는 살해된 후였고 그 짧은 시간에 살인자는 여자의 목을 잘라갔다고 한다. 뉴스는 사건을 단순히 가난한 나라에서 온 외국인의 치정살인사건쯤으로 치부한다. 
    목을 잘라간 엽기적인 사건이지만 단순한 치정사건이다...이게 일본이라는 생각을 한다. 
    살인은 끝은 토막으로 이어지고 경찰들은 토막난 사체를 여기저기에서 찾아내 직소퍼즐을 맞추듯 맞추어 나간다. 손가락 하나 쯤 없어도 상관없다. 머리와 몸통 손과 발만 있으면...그림은 완성되는 것이다. 

    누군가가 했던 말이 머릿속을 맴돈다. 
    “신문에도 뉴스에도 나오지 않은 많은 실종자들이 다 어디 있을꺼라구 생각하니? 집을 찾아올수 있는 아이들...행복한 가정의 주부... 정신지체의 장애인들...어딘가에 잘살구 있을꺼라구 생각하니? 아니!! 틀렸어...모두 토막 나서 야산의 어딘가에 묻혀 있을 꺼야...아니면 바다속 물고기에게 눈알을 뜯어 먹히고 있을지도 모르지...우리가 모르는 어느 곳에서는 길거리에서 걷고 있던 사람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악의에 찬 살인에 갈갈이 찟기고 있을거야....괜한 생각이라구?...그럼 그 사람들이 다 어디에 있니?...” 

    “띠리리리리~띠리리리” 
    아직 익숙해지지 않은 새 핸드폰 소리에 벌떡 일어나 앉는다. 
    서울의 가족이나 친구의 전화이기를 바라며 통화버튼을 누른다. 

    “もしもし?" 

    “어쭈 일본사람 다됐네~” 

    은영언니다... 
    바보 같으니라구...액정에 떠있는 번호가 국제전화가 아니란 것을 알려주지만 난 매번 액정의 번호를 확인하기보다는 기대감으로 먼저 전화를 받는다... 
    그리운 이들의 전화가 아님에 순간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다. 

    “뭐야 서울에서 전화 왔는줄 알았냐? 크크크 벌써 향수병에 시달리면 어쩌냐?” 

    “왜요? 오늘 늦어요?” 

    “어떻게 알았어?” 

    놀랍다는 듯 한톤 높혀 대꾸한다....놀리는 거다...술 한잔 한듯하다. 

    “왜 이래요...11시 넘어서 집에 안 들어 오구 전화 하는 거 보면 뻔하지...” 

    “응...좀 늦을 꺼야...집에서 늦는다는 전화 받아 주니 정말 좋다...” 

    “전 그런 전화 받아서 정~말 싫어요...먼저 잘 테니깐 들어올 때 저 밟지 말아요!!!” 

    “오케이~오케이~와카리 마시다~~후후후후” 

    요번 담당하던 일이 마무리 되어 간다고 하던데 늘상 말하던 팀원들과 회식자리라도 갖고 있는 것 같다. 아마도 잔뜩 취해서 침대 밑에서 자고 있는 날 질겅질겅 밝고 지나갈게 뻔하다. 

    TV에서 어느 금발미녀의 실종사건에 대해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벌써 몇 개월째 하루도 빠지지 않고 듣고 있는 뉴스다. 
    금발의 루시... 

    영국에서 유학 왔다던 그녀... 술집 같은 데서도 아르바이트를 했었던 거 같다. 하지만 일본의 뉴스앵커들은 그녀를 마치 성녀처럼 표현한다. 
    그들이 타이틀에 내걸었듯 그녀의 머리칼이 금발이라 그런가?... 
    오늘 머리가 없어진 여자는 무슨 색의 머리칼을 갖고 있었을까? 
    잘려 나가 없어 졌으니 알수가 없다...... 
    아마도 지금 내 어깨로 내려와 있는 반곱슬의 머리카락과 같이...검은색 이었겠지... 
    지금은 그 윤기를 잃고 잘려진 목으로부터 뿜어져 나온 피로 덩어리져 더 이상 미소 짓지 못하는 생명 잃은 검푸른 얼굴에 붙어 있겠지... 
    그녀는 숨이 끊어진 다음에 목이 잘렸을까?...아니면 목이 잘리면서 숨이 끊어 졌을까? 

    “젠장...더워죽겠네...” 

    혼자 있는 작은 방의 공기가 갑자기 답답하게 느껴진다. 
    더운 선풍기 바람에 습기 먹은 열기가 폐 가득이 몰려 든다. 
    모든 가구들이 모두 열을 내고 있는 듯 느껴진다. 
    침대...TV...책상...다다미... 
    아지랭이가 이는 듯 하다... 

    현기증이 느껴진다. 
    집중해서 듣지 않으면 웅웅거리듯 들리는 TV소리... 경쾌한 CF의 음악이 흘러도 인기척 없는 이 아파트에 살아 숨쉬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손가락 끝마디가 저릴정도의 초조함이 엄습한다. 

    뭘해야 할지 모르겠다... 

    뭘하지?... 

    익숙해질 만도 한데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는 일본의 고요함... 
    열린 방문 저편으로 현관문이 보인다. 
    누군가가 저 문을 밀고 들어오면 어떻하지? 
    문넘어 검은 복도... 
    내가 소리를 지르면 누군가가 듣고 달려와 줄까? 
    여자는 비명을 질렀을까? 
    잘리는 목에서 품어져 나오는 피로 비명소리가 쿠루룩 쿠루룩 하고 끓어 올랐겠지... 

    “뭐야 바보같이...” 

    한참 망상에 젖어 드는 나를 추스르려 혼잣말을 해본다. 
    더운 공기로 꽉찬 작은방은 산소가 부족해진 듯 머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이렇게 혼자 있을때 망상에 빠져 드는 것은 위험하다...자칫 작은거에 놀래 심장마비를...크크크크 
    나는 언제나 내가 넘어지거나 실패하는 상상을 하고는 혼자 웃고는 한다... 
    꽉찬 교실에 답안지를 재출하려 나가다가 책상사이로 넘어지는 내모습... 
    길을 걷다가 돌틈에 결려 대로에 넘어져 있는 내모습... 
    그건 참으로 유쾌한 상상이다. 

    하지만 오늘은 어쩐지 현관문을 열다가 넘어지는 나를 상상해도 웃음이 나오지 않는다... 

    차라리 소름이 끼친다... 


    (몇달후 금발의 루시는 치정관계에 있던 일본인의 집 근처 해변동굴에서 토막난체 반쯤 마른 콩크리트에 묻힌 상태로 발견된다. 완전범죄를 노린 범인이 바다에 버리려 했다고 증언했다... ) 

    아...사람이 보고 싶다...말하고 싶다... 
    언제나 시끌벅적하던 집이 그립다. 
    전화를 걸어 그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다...하지만 전화를 끊고 난 후의 공허함과 외로움을 견뎌야 하느니 그냥 참기로 한다. 

    방안을 뿌옇게 맴도는 듯 하는 열기를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에어컨을 작동시킨다. 
    타이머를 한시간 정도로 돌려 놓는다. 
    풍만한 가슴을 내놓고 줄넘기를 하고 있는 여자들이 나오는 저질 심야 프로가 시작한 TV를 신경질 적으로 끈다. 
    토요일 밤 12시부터 시작하는 저 프로는 여자를 아니 인간을 허연 고기 덩어리로 여기게 한다...저런 프로가 있기 때문에 일본인들이 사람을 죽여 토막내는게 아닐까? 

    ‘엄마...오늘은 기분이 나빠....천장이 빙글 빙글 돌아 가는거 같아...가끔 들리던 옆집의 TV소리도 들리지 않아...오늘은 정말 이상해...싸이렌 소리도 한번도 안 울렸어...여기는 엄마... 차도 소리없이 달리고 같고... 사람들은 모두 수화를 쓰는거 같아...청각이 마비된거 같아...’ 

    몸이 무겁다...귀가 멍하다.... 

    아...뭐야... 

    뭔가 있어...건물앞 화단에서부터 무언가가 검은것이... 

    빠르게 뛰기 시작한 심장의 박동이 느껴진다... 

    올려다 보고 있어....무얼? 뭘 보고있는거야? 

    안돼...들어 오지마 건물로 들어 오지마... 

    왜 그렇게 걸어? 왜 다리를 질질 끌며 걷는 거야? 

    소름이 양어깨에서부터 온몸으로 퍼져나간다. 

    이것봐요...다들...뭔가가 건물로 들어오잖아요... 

    안돼...엘리베이터에 타지마...오지마... 

    뭐야!!! 뭘 중얼 거리는거야? 

    아...들려...엘리베이터가 멈추는소리... 

    팅~하며...엘리베이터가 멈추는 소리... 

    여기야? 6층에 멈춘 거야? 왜 6층에 멈추는 거야? 

    나한테 오는 거야? 왜? 

    심장이 손끝에서 뛰기 시작한다... 

    검은 복도 저편에... 

    아냐...이쪽을 보지 마... 

    이쪽으로 오지 마... 

    왜 그렇게 걸어? 왜 그렇게 구부정하게 있는 거야? 

    히익...현관문 앞이야!!! 아냐...손잡이에서 떨어져!! 뭐하는 거야... 

    문이 열릴려구 하잖아... 

    도망가야해 

    도망가야해...왜...몸이 안움직여... 

    왜 아무도 없는거야!!! 

    발꿈치 있는곳까지 왔어... 

    느껴져...날 내려다 보잖아!!! 

    흐힉!! 

    숨이 턱 막히면서 가위눌림에서 벗어난다. 
    하지만 다시 잠에 빠져 들 꺼 라는 걸 안다. 
    언제나 가위에 눌리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악몽을 맴돌게 된다. 
    안돼...오늘은 좀 틀려...다시 잠이 들면 안될꺼 같아.. 
    보통때 하고 좀 틀려... 
    보통 때는 가위 눌릴 거라는 걸 알잖아... 
    매번 가위 눌릴 때 마다 들려오는 하루 종일 날 부른 사람들의 목소리... 
    친구의 목소리,,,부모님의 목소리...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들이 웅웅 거리며 들리는 날은 가위에 눌리잖아... 
    하지만 오늘은 들리지 않았어...좀 틀려... 

    손가락에 힘을 주고 겨우 정신을 차린다. 

    추워... 

    손가락도 발가락도 동상이라도 걸릴 정도로 차갑다. 
    에어컨 때문이야... 
    무거운 적막감에 TV리모콘을 찾는다.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그리 성능이 좋지 못한 에어컨인데... 

    기분이 나쁘다. 그저 ‘나쁘다’ 라고 표현할수 없을 정도로 불쾌하다. 
    그거 하기 전이라 이렇게 기분이 안좋은가? 

    그런가? 

    소름이 돋는다. 
    에어컨을 꺼야 겠어... 
    다시 잠들면 또다시 가위에 눌릴꺼야 
    언니가 돌아 올때까지 잠들지 말아야지... 

    “띠리리리리...띠리리리리” 

    ‘ 힉!! ’ 

    전화 벨 소리에 온몸에 피가 싸늘하게 얼어붙을 정도로 놀란다. 
    머리가 빙빙돈다...목에 있는 동맥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이 벌컥 벌컥 피를 토해낸다. 

    오늘은 너무 조용해... 

    액정에 뜬 번호는 은영 언니다. 

    “언니?” 
    “저은아~히히히히...나 지금 가구 있는데...” 

    따뜻한 피가 몸에 다시 돌기 시작한다. 

    “언니 술 많이 마셨어요?” 
    “아니 쪼금~나 마중 나와라...” 
    “.......” 
    “마중 나와라...혼자 가기 싫어...오사카 돔에서 기다릴래” 

    오.늘.은....집에 혼자 있는것도 싫지만 문을 열고 나가는 게 더 두렵다. 

    “언니 너무 늦었어요 빨리 들어와요...자전거루 5분도 안 걸리는걸...” 
    “빨리 나와아~여기서 안 움직일 꺼야...심심하지? 나오면 내가 맥주 사줄게...맥주사서 여기서 마시자...사람들 구경도 하고” 

    사람들? 

    그래 거기라면 아직도 사람들이 있을꺼야... 
    일본이라고 다 잠들어 있는건 아니겠지...나가자...나가서 숨쉬자... 

    “그래서 어디에요?” 
    “응!! 돔 중앙광장!!! 빨리와아~~~” 
    “예 어디 가지 말고 거기 있어요...제가 찾아 갈 테니깐” 

    입가에 웃음이 흐른다... 
    왜 집에서 궁상맞게 혼자 있었을까... 
    나가서 언니랑 수다 떨고 사람들 구경하고 맑은 밤하늘도 보고 에어컨 바람이 아닌 선선한 바람도... 
    슬리퍼를 챙겨 신다. 갑자기 오한을 느낀다. 
    나가면 안될꺼 같아... 
    온몸이 나가기를 거부 하잖아... 
    토할꺼 같아... 

    현관문을 벌컥 열고 나간다. 

    복도를 지나... 

    마침...마침 6층에 서있는 엘리베이터를 탄다. 

    일층을 누르고 엘리베이터 벽에 바짝 기대 선다. 

    뭔지 모를 두려움에 모든 것을 시야에 넣고 싶다. 

    왜 이러지? 

    왜 오늘은 이렇게 불안하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열린 문사이로 로비 넘어....밖이 보인다. 

    희미한 가로등 불빛에 어릿하게 빗줄기가 보인다. 

    비? 

    비...가...오...잖...아...!!! 

    실 없이 웃음이 나온다... 

    ‘무슨...공포 영화 같어...’ 

    열기와 습기와 빗줄기가 마치 분위기를 조성하듯 드라이 아이스처럼 스물스물 다가온다. 
    순간 밀려오는 짜증에 핸드폰에 저장된 언니 전화번호를 찾아 통화를 누른다. 

    “........뭐야...전화도 안받구....쯧...” 

    우산을 찾으러 올라갈려다 만다. 
    구석에 몰린 쥐가 이런 기분일까?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일수 없는... 
    조금의 미동으로도 치닫을 대로 치닫은 긴장이 터져버릴듯한... 
    이놈의 열기다...이 열기가 사람을 미치게 한다... 
    그리고 이 습기...옷이 축축해 질 정도의 이 습기... 

    자전거의 자물쇠를 풀어 빗속으로 내닫는다. 
    빗줄기가 미직지근 하다. 

    “언니!!!” 
    건널목 저편에 서있는 비를 맞아 후줄근한 은영언니를 발견하고 신호를 기다 렸다 건너간다. 
    “어! 언니 왜이래요?” 
    “응...비와서 그냥 들어 올려다가 넘어졌어...” 

    흰 브라우스와 치마가 흙으로 더러워져 있다. 

    “어! 이 무릎에 피좀봐...어떻게 넘어졌길래 이래요? 자전거 바퀴도 휘었잖아...” 
    “다리 넘어오다가 뭐에 걸렸는지...칫...술 다깼다...근데 너는 왜 비 맞고 왔어...비 오면 그냥 집에 있지...” 
    “언니 기다릴까봐요...전화도 안받고...언니...가방은요?” 
    “가방?...어!...아...아까 넘어질때 거기다 흘리고 왔나 보다...” 
    “증말...술마셨으면 집까지 배웅해달라고 하지, 뭐 한다구 자전거를 끌고와요!!” 
    “그러게 말이다...잠깐 가방 갖고 올 께...” 
    “그냥 여기 있어요...그 다릴 하고 어딜 간다구 그래요...제가 갔다 올테니깐 저기 간판 밑에 있어요” 

    돔에서 집까지 오기 위해 건너야 하는 다리는 하수구가 연결된 작은 강위를 가로 질러 서있다. 아무런 장식도 되어 있지 않는 돌로 난간이 되어 있고 이차선의 도로와 두사람 정도가 걸어 갈수 있는 인도가 양쪽으로 있다. 
    학원이나 아르바이트에서 돌아올때 가끔 강저편에서 부터 오는 강바람을 맞으며 강속의 검은 물길속에서 혹시라도 있을 물고기나 거북이를 찾고는 했었다. 하수구로 나오는 거품섞인 폐수로 뭔가 살아 있는 생명체를 기대하기 어려웠지만 말이다. 

    불꺼진 거대한 돔을 배경으로 비속에 뿌옇게 다리가 서있다. 
    주택가마저 멀어져 점점이 있는 가로등에 검은 빗소리만이 귓속으로 들어온다. 

    끔찍한 정적... 
    오늘 하루동안 따라다니는 끔찍한 정적... 
    바람 한점 없고 머릿줄기를 타고 내리는 빗방울이 눈앞을 가린다. 
    흐릿하게 보이는 가로등에 길게 달려 있는 현수막이 마치 사형대에 걸려 있는 시체 같다는 생각을 한다. 

    바보 같으니라구...바보같은 생각... 

    눈을 질끈 감는다. 

    '빨리 가방을 찾아서 언니한테 가야지...’ 
    후회가 되기 시작한다. 
    왜 내가 가방을 찾겠다고 했을까... 
    이런 바보같으니라구!!! 
    언니를 보내던가 같이 왔었어야 했다... 
    계속 그 고독감에 못이겨 두려워 했었는데... 
    무슨 생각으로 다시 혼자가 되려 했을까... 
    다시금 온몸으로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 


    다리 중턱 즈음에 난간에 걸쳐 있는 눈에 익은 갈색 가방이 보인다. 
    얼른 다가가 자전거에서 내리지도 않은 채 가방쪽으로 손을 내밀어 가방을 낚아챈다. 
    그리고 고개를 드는 순간... 

    소름끼치는 촉수에 휘감켜 돌려지듯 

    알 수 없는 공포로 얼룩져 있던 눈동자가 

    다리밑 하수도 관 아래 검은 그림자에 가려진 턱에서 

    그림자보다 더 어두운 검은 그것을 보았다. 

    눈이 마주쳤다!!!! 

    아니지...어떻게 눈이 마주쳤다고 생각을 할 수가 있지? 저것을 보고... 
    형용할수 없는 불쾌감이 소름과 함께 온몸을 달린다. 
    여름밤 열기속에서 느껴지는 한기... 
    순간 느껴지는 단순한 놀라움이 아닌 조금씩 온몸을 지배해 가는 충격... 
    저것 때문이었어...오늘 하루종일 느낀 그 불안감... 
    움직이지 못한다. 
    감히 움직이지 못하고 그것을 바라만 본다. 
    내가 움직이면 저것도 움직인다. 

    순간 바로 옆을 요란한 소리와 진동을 남기며 지나가는 덤프트럭 덕에 균형이 깨진다. 
    자전거를 들다시피 돌려 오던 방향으로 달린다. 
    흐힉... 
    늦으면 잡아 채인다... 
    뒤로 휘날리는 머리카락을... 
    옷줄기를... 
    저것에게 잡아 채인다. 
    빨리 달려야해... 

    비를 피해 서있는 은영 언니가 보인다. 

    “언니!!!” 

    목에서 쇠소리가 난다. 
    순간 울컥 쏟아져 나오는 안도감에 눈앞이 흐려진다. 

    “왜그래? 그렇게 빨리 달리고...” 

    빗물에 얼룩진 얼굴에서 언니는 내가 울고 있다는 걸 알지 못한다. 
    언니를 앞에 두고 나는 참지 못하고 뒤를 돌아 확인해본다. 
    그것이 쫓아 왔는지... 
    어둠속의 가로등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소름끼치는 한기는 아직도 몸에 남아 있다. 

    “언니 자전거 여기다 두고 가요...어차피 타고 가지 못하니깐...제 뒤에 타고 가요...집까지...” 
    “응?...그래 그러자...근데 왜 그래...얼굴색이 안좋다...” 
    “아니에요 아무것도...빨리 가요...” 

    언니가 등뒤에 앉자 무방비 상태였던 등쪽이 안심이 된다. 
    내가 잘못본걸꺼야... 
    오늘 하루종일 기분이 안좋았는걸... 
    하지만 손끝의 아릿한 저림과 땀구멍 하나하나 남아있는 긴장감이 단순한 착각은 아니었을꺼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언니와 한자전거를 탄 적은 많았다... 
    그런데 이렇게 무거웠었나... 

    내 자전거의 끽끽거리는 체인 돌아가는 소리가 오늘따라 크게 들린다. 

    달그닥 거리는 소리에 눈을 뜬다. 
    벽에 걸려 있는 회사 상사에게 얻어 왔다던 둥근 센스없는 시계의 바늘은 벌써 8시를 훨씬 넘어 있었다. 
    집에 들어와 잠을 어떻게 잤는지 정확히 기억이 안난다. 
    비를 맞아 흠뻑 젖은 옷만 갈아 입고 씻지도 않은 채 쓰러져서 잠이 든거 같다. 

    “으윽.....” 

    일어 날려고 몸을 뒤척이자 온몸이 쑤셔 온다. 
    드릴로 머리통을 갈라내는 듯한 두통이 엄습해 온다. 

    “정은아 그냥 누워 있어...너 열나는거 같더라...땀도 많이 흘리구...오늘 학원은 쉬어...계속 안 좋으면 아르바이트도 쉰다고 하고 어제 얼마나 끙끙 앓던지 내가 잠을 다 설쳤다...” 

    부엌에 서있던 언니가 서랍에서 흰 봉지를 찾아 안에 있던 약봉지 몇 개를 골라 내더니 물 한잔과 같이 들고 온다. 

    “일단 이거 먹어...한국에서 들어 올 때 지어 온 건데...일본 감기약은 너무 약해...이거 먹고 그래도 계속 안 좋으면 병원에 갔다 와...내 의료보험증 놓고 갈테니깐....” 

    “언니 오늘 회사 가요? 일 끝나서 하루정도 쉬는 거 아니에요?” 
    “그 끝났다던 일이 문제가 생겼단다...” 
    “예...” 
    “그럼 갔다 올테니깐 약먹고 누워 있어” 
    “예...” 

    언니가 부엌 바닥에 있는 갈색가방을 손에 드는 모습을 보며 눈을 질끈 감는다. 
    어제 잃어 버렸던 가방... 
    잘못 본거 였을까? 
    머리가 깨지는 듯 하다... 
    머리를 움직일 때 마다 한 박자 느리게 움직이는 듯한 뇌가 머릿속에서 아우성을 친다. 
    감고 있어도 뜨고 있어도 부자연스럽고 무거운 눈동자가 머리통 속으로 점점 더 빠져 들어 가는듯하다. 팔다리 마디마디가 쑤시고 사용할리 없는 가슴뼈며 엉덩이 뼈도 줄 톱으로 갈아내는 듯 아프다. 
    몸살이 단단히 걸렸다. 

    “어.....정은아...” 
    언니가 가방을 주어 일어나다 말고 마루 바닥에 무언가를 바라보며 나를 부른다. 

    “에이...우리 어제 비 맞고 젖은 발로 들어와서 다다미에 자국 남았다....물이 아닌가?” 
    “뭔데요?...끄응~” 
    “아냐...일어 나지마...마르겠지 뭐.....” 
    “뭔데 그래요?” 

    무거운 몸을 상반신만 일으켜 세워 언니 있는데 까지 슬슬 기어 간다. 

    ‘발자국?’ 

    다다미 바닥에 누군가의 발자국이 남아 있었다. 
    물로 찍어 낸 듯 현관에서부터 방까지 남아 있는 발자국... 

    “언니...이거 물이 아니에요...뭔가...” 

    미끈 거리는 점액질의.... 
    ...언니...물이라면...벌써 말랐어야지요... 
    ...그리고 언니...둘이 같이 비를 맞았으니깐...발자국이 남는다면...두개가 남아야지요... 
    ...게다가...언니...언니도 나도 발이 이렇게 작지는 않아요... 

    온몸의 털이 곤두선다. 

    “언니이!!!!” 
    “그냥 놔둬 마를꺼야...” 

    신발을 신다 말고 건성으로 대답하더니 우편함에 들어 있는 전단지 들을 꺼내 구겨 쓰레기통에 던져 넣는다. 

    “언니!!! 오늘 안가면 안돼요?” 

    “왜 그래? 몸이 많이 안 좋니? 너 어제부터 좀 이상해...” 

    열린 현관문 저편으로 복도에서부터 들어오는 아침 햇살이 눈부셔 언니를 바로 쳐다보지 못한다. 

    “갖다 올게...내일은 쉴 수 있을 거야...약먹고 푹자...되도록이면 일찍 들어 올게” 
    “언니....” 

    더 이상 잡지 못하고 현관문이 닫힌다. 

    갑자기 찾아오는 정적.... 
    어제와는 또다른 정적이 방안에 흐른다. 

    어제 내가 본건? 
    그리고 지금 이 발자국은? 

    아침 출근하는 사람들의 소리도 학교에 등교하는 아이들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아침의 새소리도... 
    햇살이 들어오지 않는 방... 
    낮의 형광등은 밤과 틀리게 어둡다. 
    갑자기 두통이 머리를 들고 있을 수도 없을 정도로 심해진다. 
    다시 이불이 있는 쪽 으로 기어 간다. 
    에어컨이 너무 세게 틀어져 있는 거 같다. 
    이불을 몸에 둘둘 말아 눕는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다. 
    그냥 잠에 빠져든다. 

    잠이 든지 얼마나 지났을까.... 

    뭔가가 움직인다... 
    뺨에 냉한 냉기를 남기며 뭔가가 옆을 지나쳐 간다. 

    -찌이익...찌이익....- 

    아주 느리게... 
    감은 눈꺼풀에 어렴풋이 비치던 빛이 슬쩍 어둠에 잠기며 
    무언가가 옆을 지나간다. 
    갑자기 내 숨소리가 크게 느껴진다. 
    평소에는 아무런 느낌없이 자연스레 삼키던 입속의 침이 거북하게 느껴진다. 
    움직일수 없다... 

    -찌이익...찌이익...- 
    뭔가 끈적이는 것이 방바닦에 붙었다 떨어지는 소리... 

    -찌이익...- 
    흐헉...심장이 덜컥 내려 앉는다. 
    몸에 말고 있던 이불이 아주 천천히 강한 힘에 의해 당겨지는게 느껴진다... 

    으으으으으....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쇳소리를 지르며 일어나 앉는다. 

    “꺄아아아아악!!!!” 

    마치 백미터 달리기를 한것처럼 숨이 차오른다. 

    “헉...헉....헉...” 

    머리속이 심장소리에 맞춰 쿵쿵 거리며 울린다. 

    흐트러진 이불...웅웅거리는 벽걸이 에어컨...흰 침대보의 침대...작은 화장대...책이 몇권 어지러이 올려져 있는 책상...문넘어의 어두운 부엌...그리고 미약하게 깜박이는 현광등... 재깍거리는 시계... 
    어느 것 하나 살아 움직이지 않는 무채색의 방 

    없다.... 

    분명히 기괴한 소리를 내며 누워있는 내 옆을 지나갔을 그 무언가...분명 어제 보았던 그것일게 분명한 그 무언가가 이 작은방 뒤로 물러 날수도 없는 이 작은 방에 바로 내 옆에 있었다. 하지만 숨을 곳 없는 방 어느 곳에도 그것은 없었다. 

    “읍....” 

    순간 참을수 없는 지독한 냄새에 이불을 끌어당겨 코를 막는다. 

    방학때 시골 할머니 댁에 놀러가 한참의 호기심과 왕성한 어린아이만의 활동력으로 온 동내를 뛰어 놀던 때에 비틀거리며 도랑을 지나가는 작은 고양이 만한 큰 들쥐를 발견한 적이 있었다. 
    아마도 어딘가에 놓여져 있던 쥐약을 먹거나 병에 걸렸으리라 생각하며 보통때는 민첩함으로 절대 내 손에 잡힐리 없는 그 기괴하게 큰 동물을 잡을수 있다는 기대감과 잔혹함으로 주변에 있는 큰 장돌을 주어 힘껏 던졌다. 
    럭키!!! 한방에 머리를 맞은 녀석은 데굴데굴 굴러 도랑 밑 쓰레기 더미로 떨어졌다. 
    그 큰놈을 잡아 가면 날 무시하던 동내 꼬마녀석들을 기죽게 할 수 있으리라... 
    허겁지겁 달려가 쓰레기 더미를 들추어 내어 녀석을 찾았다. 

    순간 훅 끼쳐오는 지독한 냄새... 
    들쥐는 장돌에 머리를 맞아 머리가 터져 있었고 그 깨진 머릿속에서 바글바글한 작은 구더기들이 머리통의 압력에서 해방되어 밖으로 기어 나오고 있었다. 

    아직 살아 버둥거리는 팔다리... 
    돌아 맞아 벌어진 입속 작은 빼쪽한 이빨사이에 미약하게 움직이는 벌건 혓바닥... 
    병들어 부풀어 오른 복부... 
    붉은 피와 범벅이 되어 꾸물꾸물 기어 나오는 흰 구더기... 
    그늘 없는 들판에 잔인하게 내려 쬐는 태양의 직사광선... 
    지면에서 올라오는 열기의 아지랑이... 
    쇠를 긁어 내는듯한 매미 소리... 
    그리고... 

    지 . 독 . 한 . 살 . 썩 . 는 . 냄 . 새 .... 

    내 유년의 가장 큰 충격이었던... 
    그때 그 냄새다... 
    무언가 살아 있던 것이 썩어가는 냄새... 
    작은 방안에서 갑자기 의식하게 된 냄새 때문에 구역질이 난다. 

    “우욱...” 

    더 이상 이방에 있을수가 없다. 
    이 지독한 악취도... 
    에어컨의 찬 바람이 아닌 이상하리만치 뼈 속에 스며드는 이 한기도... 
    그리고 방금 까지 이방에 있었던 그 무언가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 

    이 세상 것이 아닌 듯 느껴지는 이방을 빠져 나가자... 

    오래된 관절인형처럼 삐그덕 거리는 고통을 온몸의 마디마디에서 느끼며 몸을 일으켜 주저 주저 열쇠를 찾아 들고 방을 빠져나온다. 

    헉....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다. 
    그것이다... 
    등이 켜져 있지 않은 대낮의 어두컴컴한 부엌 구석에 어제 빗속에서 보았던 그 검은 무언가가 웅크리고 있다. 
    온몸에 전기가 통하는 듯 느끼는 이질감... 
    심장의 강한 펌프질이 머릿속에 울린다. 
    죽는다... 
    이러다가 저것한테 죽는다... 
    머릿속에 몸이 느끼는 공포로 인한 죽는다 라는 생각만 맴돈다. 
    부들부들 떨리며 맘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 다리를 가까스로 움직여 본다. 
    도망 나가야해... 
    이곳에서 빠져 나가야해... 

    순간 그것이 움찔 하며 움직인다. 
    검은 젤리가 움직이듯 작은 덩어리였던 그것이 물컹물컹 기형적으로 조금씩 일어나기 시작한다. 
    “찌이익...찌이익...” 

    걸어다니며 발바닥이 땅에 붙어서 나는 소리라고 생각했던 그 소리는 몸과 몸이 살과 살이 떨어지는 소리였다. 

    “찌이익...찌직...찌지직...” 

    검은 덩어리에서 다리부분이라 생각 되는 것이 떨어져 나와 땅에 무릎 꿇듯 구부려 상체를 일으킨다. 

    “찌이이이익...” 

    작은 손가락이 달린 손이 쑤욱 불거져 나와 땅을 짚는다. 
    움직일 때마다 참을 수 없는 악취가 풍겨져 온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영원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천천히 움직이는 저 검은 덩어리가 순식간에 내 목숨을 앗아갈 거라는 공포로 몸을 떨고 있을 수밖에 없다. 

    순간 그게 머리를 들어 올린다. 
    무게를 감당 못하는 듯 삐딱하게 들어올린 머리통의 두 구멍이 무언가를 찾듯 두리번 거린다. 

    나다... 
    지금 나를 찾고 있다... 
    이방에 내가 있음을 알고 있으면서 나를 찾는다... 

    찾았다... 
    나를... 
    정면으로 바라본다... 
    조금씩 꿈틀거리던 움직임을 멈추고 나를 바라본다. 
    점점 선명해 지는 검은 덩어리... 

    노파다... 
    저 검은 덩어리는 사람이 나이 먹어 쪼그라 들대로 든 노파이다... 
    굽은 등...비쩍마른 팔다리...그리고 썩어 들어간 두 눈... 

    “찌이익....” 

    땅에 붙어 있던 손을 앞으로 내밀어 몸을 당겨 앞으로 나온다. 
    내민 손에서 썩은 덩어리가 뚝뚝 부엌 바닥에 떨어진다. 
    그리고 순식간에 
    “ 찌찌지지지지직!!! 

    내 앞까지 기어와 그 썩은 손으로 내 발목을 잡아 챈다. 
    내 심장이 멎는다. 








    내가 정신을 차린 곳은 병원이었다. 
    병명은 지독한 독감이었다. 
    한동안 정신을 잃고 있었고 또 한참을 말 할 수 없는 공포로 좀처럼 퇴원을 하지 못했다. 
    그렇게 병원에서 12일을 입원하고 퇴원을 할 수 있었고 퇴원하고 곧장 간곳은 언니네 집이 아닌 친구네 집이었다. 
    입원 내내 언니에게 집에 뭔가 있다고 절대 들어가지 말라고 절규어린 비명을 질렀지만 언니는 그 집에 아무것도 없다는 말만 되풀이 하며 병든 몸으로 아마도 헛것을 봤을 꺼라고 나를 이해시키려 했다. 
    언니는 그 참을 수 없는 한기도...악취도...그리고 그 이상한 분위기도 느끼지 못했다. 다만 그 작은 발자국...노파의 발자국만 마르지 않은 채 아직 부엌에 남아 있다는 것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난 언제나 친구들로 북적대는 친구의 집에서 한국에 들어 올때까지 지내게 되었다. 
    그리고 집에 남아 있던 언니도 일을 도쿄쪽으로 맏아 그 일이 있고 한달후 도쿄로 이사를 했다. 

    초조함과 공포로 얼룩져 있던 나의 일본에서의 유학은 일년을 넘기지 못하고 끝나버리고 말았다. 
    한국으로 들어와 다시 취직을 하고 공부하고 싶다는 욕심에 방통대의 일본학과에 입학을 했다. 
    바쁜 생활속에 그때의 일은 참으로 지독한 악몽이나 헛것을 본 것이라 스스로 납득하게 될 때 쯤 난 소름 끼치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현대일본사회에 대한 보고서 작성을 위해 인터넷으로 일본의 방송매체를 뒤지고 있었다. 
    그리고 1998년도의 기사들... 내가 그 일로 인해 세상 돌아가는 것에 관심이 없었던 7월의 사건 사고 속에서 어떤 한 노파의 죽음에 대한 기사를 찾아냈다. 

    그 집이 있던...오사카 벤텐쵸의 그 다리 밑 강에서 죽은 체 발견된 노파의 시체... 
    강 속에 중간 중간 박혀있던 철심에 걸려 한 여름의 더위와 더러운 물에 썩어서 발견된 노파는 검시후 장속에 들어 있던 내용물로... 강에 떨어져 철심에 매달린 채 강에서 흘러오던 더러운 음식물을 먹으며 삼일에서 사일정도 목숨을 부지 했었던 것으로 발표가 났다. 

    살고자 하는 몸부림으로 하수구에서 흘러나온 더러운 찌꺼기들을 먹으며 그녀는 얼마나 살고 싶었을까?... 
    그곳에 매달려 얼마나 구원의 손길을 기다렸을까? 

    혹시 그 노파는 강의 그 철심에 걸려 죽어가며 더러운 강의 풍경 따위 돌아볼 겨를 없는 다른 일본인들과 틀리게 가끔 무심히 강쪽을 바라보던 날 보고 절망에 소리치지 않았을까? 

    제발 날 봐줘... 

    날 살려줘... 

    그 소리를 듣지 못하고 그냥 지나가는 날보고 죽음에 대한 공포로 날 원망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그 날밤 날 불러내고 날 따라 집에 온게 아니였을까? 

    아무도 그때 내가 본 것이 그 노파라는 걸 증명해줄 사람은 없다. 

    그저 내가 그런 게 아니 였을까? 하고... 

    세월에 이기지 못하고 작게 쪼그라든 그 썩어 문드러진 몸뚱이... 

    아직도 혼자 길을 걷지 못하고...혼자 집을 지키지 못하는... 

    내 머릿속에 담겨있는 공포... 

    평생 짊어 지고 가야할 노파로부터의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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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8/07 18:47:17  119.193.***.158  뱡뱡  1967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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