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도쿄대 강연, 고이즈미에 직격탄
[오마이뉴스 김당 기자]
▲ 김대중 전 대통령은 23일 오후 일본 도쿄대 야스다 강당에서 '한반도 공존과 동북아시아 지역협력'을 주제로 한 특별강연을 했다.(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이종호
퇴임 후 처음으로 일본을 방문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최근 일본 정부와 여당의 지도자를 포함한 상당수의 사람들이 과거의 침략행위를 정당화하고 심지어 시혜적인 업적으로 주장하고 있다"면서 "이것은 '오부찌-김 공동선언'을 무의미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해 일본 정부와 여당 지도자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김 전 대통령은 또 "과거사에 대해서 일본 국가를 대표한 총리(오부찌 전 총리)가 통절한 반성을 했으면, 적어도 지도자들은 이에 역행하는 말을 하지 않아야 할 것"이라고 말해 사실상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를 비롯한 여당 지도자들을 겨냥해 직격탄을 날렸다.
김 전 대통령은 23일 오후 일본 도쿄대 야스다 강당에서 '한반도 공존과 동북아시아 지역협력'을 주제로 한 특별강연에서 "동아시아의 미래는 한·일·중 동북아 3국이 어떻게 그 역할을 다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전제하고 "한·일·중 3국은 하루 속히 현재의 역사인식에 대한 갈등을 해결하고 21세기 동아시아 공동체의 견인자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할 것"이라면서 이같이 말했다고 최경환 비서관이 전했다.
"일본 국민들도 그릇된 지도자들 때문에 한·중 못지 않게 고통과 희생 겪었다"
그는 이날 연설 말미에 "마지막으로 한·일간의 갈등에 대해서 몇 말씀드리겠다"면서 과거사 문제, 독유 영유권 갈등,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 등에 대해 이례적으로 길게 언급했다.
김 전 대통령은 우선 "저는 1998년 대통령에 취임한 후 5년간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서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면서 "98년 10월 일본을 방문하여 당시 오부찌 수상과 한일 신시대를 여는 매우 성공적인 회담을 가졌다"고 회고했다. 이어 "오부찌 수상은 한국에 대해서 일본이 행한 과거사에 대해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표시했다"면서 "저는 오부찌 수상의 역사인식을 평가하면서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일궈 나가자고 화답했다"고 상기시켰다.
김 전 대통령은 또 "사실 저의 임기 5년 동안 한일관계는 전례 없는 우호협력의 관계였다"면서 "저는 일본문화 개방에 대한 과감한 조치를 취했고, 그러한 결과는 일본에서의 한류열풍과 연결되었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그러나 "이러한 역사정리가 명확히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일본 정부와 여당의 지도자를 포함한 상당수의 사람들이 과거의 침략행위를 정당화하고 심지어 시혜적인 업적으로 주장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이것은 '오부찌-김 공동선언'을 무의미하게 하는 것"이라며 "과거사에 대해서 일본 국가를 대표한 총리가 통절한 반성을 했으면, 적어도 지도자들은 이에 역행하는 말을 하지 않아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김 전 대통령은 "저는 일본의 일반국민들도 그릇된 지도자들 때문에 한국이나 중국, 그리고 동남아 사람들 못지 않게 고통과 희생을 겪었다고 생각한다"면서 "국민을 오도하고 억압한 집권층, 지도층과 이들 때문에 고통을 당한 일본의 국민들을 같이 생각해서는 안된다"고 말해 사실상 고이즈미 총리를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김 전 대통령은 특히 과거사 문제를 국민을 오도(誤導)하는 '그릇된 지도자'와 '양식이 있는 사람들'과의 대결 구도로 분석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과거사 문제는 한·일간의 나라와 나라, 혹은 국민과 국민간의 문제만이 아니라, 과거의 불행한 경험에서 올바른 교훈을 터득하려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의 갈등이며, 양식이 있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사이의 대결"이라고 지적했다.
DJ가 파악한 과거사 문제의 대결 구도
그는 또 평소의 지론대로 "과거사 문제에 있어서 일본은 독일의 태도에서 배워야할 점이 있다"면서 "독일은 과거사에 대해서 철저히 사과하고 모든 국민들에게 확실하게 교육을 시켜왔으며, 피해자들에게 적극적으로 보상을 했으며, 나치범행의 유적들을 보존하여 후세의 교훈으로 삼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러한 독일의 철저한 자기반성과 과거를 다시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결의의 표시에 주변국가들은 감동했고, 독일을 자기들이 신뢰할 수 있는 이웃으로 받아들여 독일은 NATO와 EU의 중심국가가 되었으며, 동서독 통일에 있어서도 주변국들은 전폭적인 지지를 아끼지 않았다"면서 "어떻게 보면 독일은 적게 주고 더 큰 보상을 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또 "일본의 일부 인사들 중에는 독일의 경우는 일본과 다르다고 말하지만 나는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면서 "한·일간 역사인식에 있어서 합의가 없는 한 앞으로도 계기만 있으면 지금과 같은 갈등은 되풀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김 전 대통령은 독도 영유권 문제에 대해서도 일본 정부의 결단을 촉구했다.
그는 "1905년 초 일본 정부가 각의에서 독도의 편입을 결정한 것에 대해 당시 한국 정부가 아무런 문제제기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근거로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더욱 인정할 수 없다"면서 "당시 우리나라는 사실상 일본의 지배하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일본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A급 전범은 전쟁에서 전사한 것이 아니라 전범 재판에서 심판을 받은 사람들"
김 전 대통령은 특히 최근 고이즈미 총리의 발언을 겨냥해 "나라를 위해 희생한 영혼에 참배하는 야스쿠니 신사참배에 외국이 간섭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일본 일부의 주장이 있다"고 지적하고 "그러나 우리는 일반 전몰자에 대해 참배하는 것을 시비하는 것이 아니다"면서 "범죄적 침략전쟁을 일으켜 무고한 이웃나라와 그 국민에게 형언할 수 없는 희생을 강요한 A급 전범을 참배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A급 전범은 전쟁에서 전사한 것이 아니라, 전범 재판에서 심판을 받은 사람들"이라며 "그것은 침략의 정당화라고 볼 수 있다"고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비판했다.
이어 "일본은 2001년 상하이에서 개최된 APEC 정상회의에서 한국과 정상회담을 갖고 한·일간 현안 7개항에 합의했다"고 전제하고 "그 합의에서 야스쿠니 신사참배 문제에 대해서 일본은 '세계 모든 사람들이 부담없이 참배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약속했다"면서 "이 약속이 실천되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전 대통령은 마지막으로 "한국 국민은 일본과의 관계를 매우 중요시하고 마음을 열고 대화할 수 있는 친구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면서 "일본은 한국 사람의 이러한 충정을 잘 이해하고 여기에 적극적으로 호응하는 결단을 내려주실 것을 바라마지 않는다"고 당부했다.
그는 "저는 비록 정치를 떠났지만, 한·일 양국이 98년에 합의한 '오부찌-김 한일 파트너십'의 정신으로 돌아가 역사 앞에 책임질 수 있는 협력관계를 구축해 나가고자 한다"면서 "다시는 갈등 없는 진정한 우호협력의 한일관계를 실현시키는 대열에 여러분과 함께 동참하고자 한다"고 연설을 끝맺었다.
김 전 대통령은 이날 이밖에도 ▲북한 핵문제는 해결될 수 있는가 ▲남북간의 평화공존은 가능한가 ▲동북아 협력과 동아시아 공동체의 전망은 어떠한가 등을 주제로 연설하고 청중들과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이날 강연에는 고미야마 도쿄대 총장과 주일 외교사절, 그리고 교수·학생 등 1천여명이 참석했다. 전·현직 외국 국가원수 가운데 도쿄대에서 강연을 갖는 것은 이번 김 전 대통령이 종전(終戰) 이후 처음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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