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외톨이었다. 원래 애주가였던 아버지는, 어머니가 긴 병치레 끝에 운명을 달리한 초봄의 어느 날 이후로 끝내 알콜중독자가 되었고, 술을 마시다가 취하면 소년을 때리다가 지쳐서 잠들고 잠에서 깨면 소년에게 미안한 마음에 술을 마시고 그 술에 취하면 또 소년을 때리다가 지쳐서 잠드는 일상만을 반복하였다. 소년은, 어쩌면 당연하게도, 학교에서도 왕따가 되었다. 소년의 존재 자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우함의 기운은 급우들 뿐 아니라 선생들에게마저 영향을 미치는 듯 했다. 소년은 아버지를 피해 등교를 하고 선생님의 무관심 속에 학교를 나와 해질녘까지 집 주변의 산과 들을 쏘다니다가 땅거미가 질 무렵에야 마지못해 집에 돌아가는 생활을 했다.
여름이 되었다. 소년의 유일한 즐거움 - 이라기보다 그나마 아사餓死를 면하는 방편 - 은 산 속 덤불 여기저기 열린 산딸기를 따서 먹다가 산딸기 나무 옆 풀밭에 누워 하늘을 보며 어머니를 그리워 하다가 간혹 낮잠도 자곤 하는 것이었다.
그날도 소년은 산딸기로 대충 허기를 면하고, 산딸기 덤불이 간신히 만든 그늘 아래 몸을 뉘었다.
자기도 모르는 눈물이 뺨을 적시는 동안, 소년은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아직도 한낮이었다. ...또 다시 돌아오고 말았구나. 잠들 때마다 소년은, 다시는 깨지 않기를, 혹여라도 깨어난다면 누군가 곁에 있어주기를, 소원했었다. 그리고 그날, 그 소원은 이루어졌다. 산딸기 나무 그늘 아래에서 깨어났을 때, 소년은 바람 한 점 없는 가운데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는 산딸기 나뭇가지를 발견했다. 어라, 이게 뭐지. 소년이 잠기운을 털어내려 도리질을 했을 때 나뭇가지가 갑자기 날아올랐다 -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뭇가지 끝에서 나비 한 마리가 날아올랐다. 나뭇잎과 꼭 닮은 초록의 날개는, 다섯 개였다.
다섯 개의 날개를 가진 나비인 것으로도 모자라, 나비는 강아지처럼 소년을 쫓았다. 잠에서 깨어난 소년에게 반갑다는 듯 무릎 위에 앉아 작은 더듬이를 끄덕끄덕 흔들더니, 날아올라서 소년의 주위를 몇 바뀌 선회한 다음 다시 무릎 위로 앉아 날개를 접었던 것이다. 나비는 급기야 소년의 생각에 반응도 했다. 저리 가, 하는 말에 날아올랐던 나비는, 잠시 소년의 주위를 맴돌다가, 소년이 계속 나비를 바라보며 참 예쁘다,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마치 소년에게 장난을 걸 듯 그 코끝에 살풋 앉았다가 가볍게 날아오르더니 다시 무릎 위에 내려앉았던 것이다.
소년은 기뻤다. 비로소 "친구"가 생겼던 것이다.
소년이 집으로 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나비는 다시 날아올라 소년의 어깨 위에 내려앉았다. 그리하여 나비는 소년의 집으로 함께 가게 되었다.
소년이 집에 도착했을 때, 아버지는 마침 긴 잠에서 깨어나 찬물을 한 잔 마시고 간만에 맨정신인 상태였다.
소년은 기쁜 마음으로 아버지에게 나비를 선보였다. 뜨악해 하던 아버지도 점점 나비를 무슨 강아지나 되는 듯 여기기 시작했다.
특이한 점은, 나비는 오로지 소년에게만 반응을 하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나비가 오던 날부터 술을 끊었다. 그렇지만 소년은 여전히 학교에 가지 않았고, 아침 등교로 눈도장만 찍은 이후에는 나비와 함께 들판을 쏘다니다가 집으로 돌아가 나비와 시간을 보냈다. 같이 보내는 시간 동안 소년은 늘 나비와 대화를 했고, 소년은 더 이상 외롭지 않았다.
그런 생활이 몇 주쯤 계속 되어 드디어 가을 막바지에 접어들던 어느 날, 집에 낯선 사람들이 찾아왔다. 아버지가 부른 사람들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아버지는 본인이 술을 끊은 이후 경비원으로 취직하여 근무하던 모 농업연구소에서 이 신기한 나비에 관한 이야기를 했고, 연구소장인 모 박사가 그 이야기 흥미를 보여 연구원들 두엇을 대동하고 직접 집으로 찾아온 것이었다.
긴 이야기를 줄여, 나비는 결국 박사와 연구원들 손에 들어갔다. 그들은 그 나비에게 오각나비라는 이름을 붙였다. 소년은 또 다시 외톨이가 되었지만, 아버지는 그들로부터 적지 않은 액수의 돈을 받고는 또 다시 술과 환각의 세상으로 돌아가버렸다.
세계 유일의 오각나비를 손에 넣은 박사와 연구진은, 나비를 커다란 유리상자 안에 넣고 연구를 시작했다.
한창 관찰이 이어지던 어느 날, 나비는 상자 속 나뭇가지 위에 앉더니 몇 시간 째 그대로 움직이질 않았다.
연구진들은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 곧 겨울이고 - 성충으로 겨울을 보내는 나비 중에는 겨울잠을 자는 녀석들도 있으니까.
그러고도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아침, 평소처럼 출근하자마자 나비를 들여다보던 막내 연구원이 갑자기 작은 비명을 내질렀다.
"이거... 뭔가 이상해요!"
진녹빛이던 나비의 몸이 갈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뿐 아니라 나무껍질 같은 결이 생겨나 있었다.
박사는, 과연 세계 유일의 오각나비라 겨울맞이도 남다른 데가 있군, 하는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변화가 생기고부터 이틀 후 아침, 막내 연구원은 이번에는 진짜 비명을 질렀다.
나비는 더 이상 나비가 아니었다. 그것은, 시들어가는 잎사귀가 다섯 개 달린, 산딸기 나뭇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