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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친구가 죽었습니다. 빗길에서 일어난 사고였습니다. 하수구가 막혀 물이 고여있던 좁은 골목길을 걷다가 미끄러지면서 머리를 부딪쳤다고 했습니다. 늦은 밤이었고, 누군가가 빨리 발견하였다면 살았을지도 모르는 그 친구는 혼자 어두운 길에서 죽었습니다. 아침에 발견한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주변이 피와 빗물이 섞여서 붉은 연못처럼 보였다고 합니다. 사고 후 금방 숨이 끊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차가운 빗 속에서 천천히 죽어갔을 친구를 생각하며 저와 친구들은 한참을 울었습니다.
그 친구와 마지막으로 통화한 사람이 저이기 때문에 저는 경찰과 이야기를 나누어야 했습니다. 경찰은 친구의 행적이 이해가 안되는 면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친구가 사고를 당한 곳은 집에서 좀 떨어진 곳이었는데, cctv에서 나온 바로는 친구가 집에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길에 사고를 당한 것이었거든요. 왜 폭우가 쏟아지는 밤에 집에 갔다가 다시 돌아나왔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아는 이야기를 해야만했습니다.
죽은 친구는 결벽증이 있었습니다. 더러운 것을 못참는다거나 벌레를 보면 기겁을 하는 그런 결벽증이 아닌, 도덕적인 면에서의 결벽증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성인군자같은 좋은 성격을 가진 것은 아니었고, 그저 자신이 싫어하는 행동이 있다면 자신이 그 행동을 하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못하는 성격이라고나 할까요. 예를 들자면 누군가가 욕하는 것이 듣기 싫으면 죽어도 욕을 하지 않는… 그런 성격 말이지요. 스스로에게 도덕적 잣대를 갖다대는, 욕먹기를 싫어하는 건 사람이라면 흔한 편입니다. 보통 정상적인 생각을 가지고 자란 사람이라면 그런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것이 당연합니다만 이 친구는 그게 좀 심각할 정도였습니다.
사고가 있었던 날 친구는 야근을 했습니다. 엄청나게 쏟아지는 빗속을 걸어 돌아오며 저와 통화를 했지요. 통화 중의 친구는 매우 짜증이 난 상태였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인간이 내 우산을 가져갔단 말이야.'
"비가 오니까 다들 큰 우산을 오랜만에 들고 나와서 헷갈렸나보지. 우산통에 꽂힌 골프우산들은 비슷비슷하잖아. 큰 우산들은 잘 안들고 다니던 거니까 더 그랬을 거 같은데."
'그래, 비슷한 우산들이 많으니까 혼동할 수도 있어. 한참 고민하다가 비슷한 걸로 나도 들고 나왔는데 영 찜찜해. 기분이 더러워. 내가 남의 우산을 훔쳐가는 기분이라고.'
"내일 다시 갖다놓고 니 우산도 찾아봐. 잘못가져간 사람이 다시 가져다 놓았을 수도 있고."
'아이씨, 내가 가져온 우산이 내 우산 가져간 사람 거 아니면 주인이 엄청 욕할거 아냐, 나를. '
"방법이 없잖아? 오늘은 그냥 참아봐~."
'.....집에 가서 다른 우산 가져오고 지금 우산은 다시 가져다놔야겠어.'
"비가 이렇게 쏟아지는데 다시 간다고? 야, 좀 작작해라..."
'어쩔 수 없잖아. 모르는 남한테 욕 먹는 거 정말 싫다구. '
"아이구… 못 말린다."
'골목에 물이 넘쳐서 발목까지 잠기는 거 통과해서 왔는데 다시 가야한다고 생각하니까 기분이 더럽다, 야. 그래도 갖다 놔야 잠을 편히 잘 거 같아.'
"....누가 이기겠냐, 너를…. 니가 가져온 우산 주인은 벌써 다른 우산 가지고 가버렸을 수도 있을텐데. 에휴. 암튼 조심해서 다녀와."
'그래. 내일 보자.'
그게 친구와의 마지막 통화였지요.
집에 들러 기어이 다른 우산을 가지고 나온 친구는 다시 갖다놓을 우산 하나는 손에 들고, 하나는 펴서 쓰고 미끄러운 골목의 고인 물 속을 걷다가 결국 사고를 당했던 겁니다.
친구가 그렇게 떠나버리고 나서도 장마는 계속 되었습니다. 오랜 가뭄 끝에 내린 비는 국지성호우가 되어 미친듯이 쏟아졌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소문이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친구가 사고를 당했던 그 골목에 이상한 일들이 생긴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두운 골목 끝의 가로등 아래에 우산을 쓴 사람이 쭈그리고 앉아있는데, 이상해서 다가가 보려고 하면 피투성이 사람이 고개를 들어 쳐다보고는 사라져 버린다거나, 빗속을 혼자 걸어가는데 자꾸 바로 뒤에서 누군가가 따라오는 발자국 소리가 난다더라 하는, 그런 소문들이 마구 퍼지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무서워 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벅저벅 발소리에 뒤를 돌아보면 아무도 없는데, 다시 앞을 보면 검은 우산을 든 피투성이 사람이 빤히 쳐다보며
“이 우산 당신 거에요?”
라고 물어보고 사라진다는데, 아무리 강심장일지라도 그건 정말 무서운 일일 겁니다.
겁에 질린 사람들은 구청에 가로등을 더 세우고 하수구를 정비하라고 민원을 넣는다고들 합니다만, 계속되는 장마가 끝나고 나서야 무슨 수를 쓸 수 있겠죠.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 그 친구의 결벽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고, 그리고 비록 무서운 모습일지라도 다시 한 번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마 그것은 저희 집 한쪽 구석 우산통에 꽂힌, 제 것이 아닌, 친구의 우산 탓도 있겠지요.
친구를 만나 친구가 저에게 질문을 할 때 제가
“응, 그거 내 우산이야. 그 때 내가 잘못알고 니우산을 가져왔었어.“라고 대답을 한다면,
친구는 뭐라고 할까요?
출처 | 발목까지 잠기는 빗길을 세번이나 걸어야해서 열받은 내 腦內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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