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 내가 겨울산에서 체험한 공포 이야기입니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나는, 산악부에 들어가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사이 좋은 친구도 생기고 충실한 대학생활이었죠.
산악부 중에서도 특히 사이가 좋았던 A와 B라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들하고는 동아리 활동말고도 평소에도 친하게 지낼 정도로 깊은 사이가 되었죠.
당시 대학교 2학년.
취업 활동이나 졸업 논문까지 아직 시간 여유가 있었기에, 2학기가 끝나면 셋이서 여행을 가기로 했습니다.
당연히 산악부 인연이니만큼 등산을 떠나기로 했죠.
몇번인가 겨울산을 올라본 경험은 있었지만, 아직 우리는 스스로 산을 탈 수 있을 거라는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A네 고향집 근처의 K산을 오르기로 했죠.
3박 4일 예정으로, 첫날은 A네 고향집에서 묵고, 그 후 이틀간 산에서 야영을 하며 지낼 계획이었습니다.
A네 고향에 도착한 저희는, 시내 관광도 할 겸 A의 안내를 받아 신사로 향했습니다.
등산의 안전을 비는 기도를 하기로 했죠.
지역에서 가장 크다는 신사에 참배를 하러 가서 경내로 들어가려는데, B가 갑자기 발을 딱 멈췄습니다.
왜 그러나 의아하게 쳐다보는 우리에게, B는 [기분 나쁜 시선이 느껴져... 좋지 않은데 이건... 좋지않아... 정말.] 하고 말했습니다.
겨울인데도 땀을 뻘뻘 흘리면서요.
B는 이른바 "보이는" 사람입니다.
평상시에는 딱히 그런 기색을 드러내지 않지만, 무언가 큰 위험이나 기분 나쁜 것을 느끼면 이런 모습을 보이곤 했죠.
실제로 B가 [내일은 나쁜 일이 있을거야.] 라고 말한 다음날, 학교 천장이 무너져서 사망자가 나온 적도 있었습니다.
친한 친구 사이인 우리는 당연히 그걸 알고 있었기에, [그럼 이제 돌아가서 온천이나 들어가자.] 는 A의 제안을 따라 집에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A네 집은 온천 여관이었거든요.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에도 B는 영 어두운 얼굴로 무언가 [으음 오지마라... 음.] 하고 중얼거리고 있었습니다.
A도 B가 걱정됐는지, [괜찮아. 우리 할아버지한테 나쁜 걸 쫓아내는 방법을 물어볼테니까!] 라고 말하며 B를 북돋아주었습니다.
정작 A가 집에 돌아와 할아버지에게 들은 방법은 큰 소리로 [가아아아아아아알!] 하고 외치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바보 같았기에 오히려 분위기는 누그러졌고, 우리는 온천에 몸을 담궜다가 다음날을 대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다음날 날씨는 쾌청해서, 등산하기에는 절호의 조건이었습니다.
우리는 K산을 올려다보며 흥분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전날에는 걱정이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던 B도, 그때만큼은 빨리 산에 오르고 싶다는 감정이 얼굴에 드러날 정도였죠.
우리는 아침 8시에 출발해, 순조로이 등산을 개시했습니다.
겨울산은 얼핏 살풍경해보이지만, 시간이나 고도에 따라 공기가 바뀌는데다, 흰 눈 위에 점점이 보이는 생명의 흔적 등, 보통 등산과는 다른 즐거움이 있습니다.
나는 취미로 사진도 찍고 있었기에, 멋진 풍경이 나올 때마다 사진도 찍어가며 무척 충실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우리 셋은 오전 동안 각자 자유로이 산을 즐기며 계속 걸어가, 산 중턱에 있는 오두막까지 가기로 하고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분위기가 바뀐 것은 막 오후가 될 무렵이었습니다.
날씨는 여전히 맑았지만, 공기가 고정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움직임이나 분위기 같은 게 아니라, 아예 사라져 버린 느낌이었달까요.
그때까지는 A가 선두에 서고, B와 나는 꽤 느긋한 페이스로 그 뒤를 따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정지된 공기를 내가 느끼자마자, B의 페이스가 갑자기 빨라졌습니다.
눈 덮인 산은 그냥 봤을 때는 텅빈 죽음의 세계입니다.
나는 이대로 A, B와 떨어지면 큰일이다 싶어 서둘러 뒤쫓았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흰색 공간에 혼자 남겨져 방황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요.
다행이 금세 따라잡을 수 있었지만 B의 모습이 이상했습니다.
A도 걱정이 됐는지, B의 상태를 보러 조금 내려온 터였습니다.
B는 창백한 얼굴로 [안돼, 우리한테 붙어버렸어. 안돼... 좋지 않아... 안돼, 안돼, 안돼...] 라며 중얼거리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어제 그것 때문인가 싶어 서로 얼굴을 마주봤습니다.
B는 갑자기 고개를 들더니 [뒤를 보면 안돼! 뒤를 보면 안된다고!] 라고 소리쳤습니다.
[미안해! 어제 그게, 날 쫓아오고 있는 것 같아... 나 무서워. 위험해...]
그리고는 완전 울상이 되었습니다.
나한테는 영감 따위 하나도 없기 때문에, 그때는 뒤를 봐도 아무 것도 안 보일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B의 충고를 무시하고 뒤를 봐 버렸죠.
그러자 "그게" 있었습니다.
우리가 있는 곳에서 500m 정도 떨어진 거리에, 사람은 아닌 무언가가 우리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A를 보자, A도 같은 걸 봤는지 얼굴이 굳어있었습니다.
나는 처음 보는 심령현상에 놀라면서도, 그것을 잘 관찰했습니다.
머리는 길고, 검은 머리카락이 얼굴 전체를 뒤덮고 있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조금 큰 사람 같지만, 흰 털이 온 몸에 나 있는건지, 아니면 몸이 퇴색된 건지 희미하게 밖에는 보이질 않았습니다.
무엇보다도 기척이나 존재감이 분명히 사람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변 세계나 분위기에서 완전히 둥 떠 있다고 할까요.
"그것"은 움직이지도 않고, 가만히 우리를 올려다 볼 뿐이었습니다.
이상하게도 나는 그 시선에서 초록색을 느꼈습니다.
설명은 어렵지만, 녹색의 시선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B는 [안되겠지? 이제 끝인거겠지?] 라며 반쯤 착란하고 있었고, 거의 울고 있었습니다.
B의 공포가 전염된 것인지, 나도 A도 울어 버렸습니다.
다들 우는 얼굴로 [포기하지마!] 라던가, [도망치자!] 라며 서로를 질타했죠.
다행히 그것과 우리 사이에는 아직 거리가 있었기에, 우리는 서둘러 산 중턱의 오두막으로 향했습니다.
오두막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을 뿐 아니라, 하산하려면 "그것" 옆을 지나쳐야 한다는 게 너무 무서웠기 때문입니다.
3명이서 30여분간 페이스를 끌어올려 산을 올랐지만, "그것" 과의 거리는 전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딱 50m 정도 거리를 유지하며 우리를 뒤쫓듯 천천히 따라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것은 걷는 게 아니었습니다.
내가 뒤를 돌아볼 때마다, 반드시 그것은 양 다리를 세워 똑바로 서 있었거든요.
아마 쫓아온다고 하기보다는, 등 뒤 50m 거리에 계속 "있었다" 고 하는게 더 옳은 표현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점점 정신적으로 쫓기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걸었을까요.
A는 [이쪽으로 가면 지름길이야!] 라며, 평범한 등산로를 벗어나 조금 가는 옆길로 들어섰습니다.
하지만 이게 실수였습니다.
가는 길은 여름철에는 관리인이 다니는 길로 이용되고 있었답니다.
하지만 겨울산에서는 눈이 쌓여, 안 그래도 가늘고 좁은 길을 더 지나가기 힘든 상태였습니다.
우리는 어느새 길을 잃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설상가상, 그토록 맑던 날씨가 2시를 지날 무렵부터 갑작스레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끝내 눈이 마구 쏟아지기 시작했죠.
시간은 어느덧 오후 4시를 지나, 우리는 약 3시간 가까이 "그것" 을 피해 도망치고 있었습니다.
겨울산은 해가 빨리 집니다.
이미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고, 기분 탓인지 눈은 더욱 격렬하게 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미아가 된 우리는 어느새인가 30도를 넘기는 급사면을 옆으로 걷다시피하며 도망치고 있었습니다.
이제 더는 오두막이니 길을 찾을 생각 같은 건 뒤로 하고, 단지 어떻게든 뒤에서 쫓아오는 존재를 피하려는 본능만으로 움직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무리한 행군과 스트레스는 우리를 점차 침식하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중간에서 걷던 B가 다리가 꼬여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나도, A도 서둘러 달려갔습니다.
B는 [안돼, 난 이제 안돼. 걸을 수가 없어. 먼저 가. 따라잡히기 전에.] 라고 헛소리를 중얼거렸습니다.
아마 "그것" 의 기척을 B는 전날부터 느껴왔던 거겠죠.
B의 피로는 심상치 않아 보였습니다.
페이스 배분을 잘못했던 것인지, 탈수증상까지 보이고 있었습니다.
현실적으로 B를 더 걷게 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나와 A는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나는 혹시 이대로 멈춰서 있으면 "그것" 도 계속 50m 뒤에 가만히 있는 건 아닐까 하는 희미한 기대를 품었습니다.
나 자신도 슬슬 체력의 한계였으니까요.
하지만 그 희미한 기대는 바로 배신당했습니다.
"그것" 이 처음으로 한발 내디딘 것이었습니다.
매우 느린 걸음이었지만, 우리를 절망시키기에는 충분했죠.
가장 체력이 남아있던 A마저, 결국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그것" 은 한걸음 한걸음 이쪽으로 걸어옵니다.
이미 거리는 50m 차이가 아니었습니다.
나는 절망에 휩싸여, 이런 곳에서 죽는 걸까, 동사로 취급되는 걸까, 아니면 시체조차 발견되지 못하는 걸까 하고 암울한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무언가 중얼중얼거리고 있던 A가 일어섰습니다.
[젠장! 해볼테다! 죽여버리겠어! 누굴 얕보는거야, 괴물 자식이! 젠장!]
이성을 잃었나 싶었던 순간.
[가아아아아아아알!]
A는 할아버지에게 들었던대로 큰 소리로 기합을 날렸습니다.
그 기합에 "그것" 은 전혀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기합이 먹힌 걸까요, 아니면 큰 소리 때문이었을까요.
"그것" 위에 있던 잔설이 눈사태를 일으켰습니다.
그것은 수십톤은 족히 될 눈에 휩쓸려, [우아아아아아...] 하는 소리와 함께 눈사태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그대로 아래로 흘러가버렸죠.
남겨진 우리는 망연자실해서 뭐라 말도 못했습니다.
그날은 눈으로 이글루를 만들어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 하산했습니다.
이 사건은 아직도 내게 트라우마로 남아있습니다.
아직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모르겠어요.
혹시 "그것" 에 관해 아는 분이 계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