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사귀고, 동거까지 했던 남자친구가 바람을 피웠습니다.
그가 다른 여자에게 향해, 집에 돌아오지도 않을 무렵 이야기입니다.
집에 오지도 않았던 게 확실한데도, 그는 [야근 때문에 일하고 있어. 네가 나간 다음에 집에 들어갔다가 네가 돌아오기 전에 다시 나왔다고.] 라며 거짓말을 치곤 했죠.
당시만 해도 집에 오지 않았다는 건 알았지만, 바람을 피우는지 확신하지는 못했습니다.
그저 나에게 질려서 헤어지려 하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이 생긴 것인지 꽤 고민을 했죠.
밤에는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식욕도 떨어졌습니다.
뭘 할 기력도 없어, 회사에 다니는 것 말고는 그냥 누워 천장만 바라보는 나날을 2달 가량 보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회사에 꼬박꼬박 나간 건, 그 사람의 거짓말이 사실이라는 걸 알아차리고 싶지 않아서였습니다.
정말 그가 말한대로, 내가 없는 사이 돌아왔을지도 모른다고 믿고 싶었던 거죠.
그와 동시에, 싫으면 싫다고, 다른 사람이 생겼다면 생겼다고 말해줬으면 하는 마음도 생겼고요.
기분은 서서히 변해가, 내가 이렇게 괴로워하고 있는데도 즐겁게 살고 있을 그에 대한 원망과 증오가 쌓여갔습니다.
그러는 사이 이상하게 그와 함께 있는 여자의 존재가 분명하게 느껴졌습니다.
얼굴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머리 모양이나 체형, 그리고 그와 둘이서 한 이불을 덮고 자고 있는 모습까지.
모든게 선명하게 머릿 속에 떠올랐습니다.
그렇게 되고나서 며칠 지났을까요.
그가 반쯤 울며 전화했습니다.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다른 여자의 집에서 자고 있었다, 집에는 돌아가지 않았었다, 미안하니 부디 용서해달라.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왜 갑자기 사실을 말했는지 나는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끝까지 거짓말을 쳐서 다른 여자가 있다는 걸 숨기지 않은 이유를 물어봤죠.
그러자 그는 놀라운 말을 했습니다.
매일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내 모습이 나타난다는 것이었습니다.
낮에는 시야 한편에 보인답니다.
놀라서 바라보면 어느새 사라져 있고.
잠을 잘 때면 어느새인가 곁에 나타나고 가위에 눌린다고 했습니다.
귓가에서 계속 [거짓말쟁이, 거짓말쟁이, 거짓말쟁이...] 라고 되뇌인다고 하더군요.
그러는 사이 거짓말이 들켰다는 것과, 더는 숨길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고 합니다.
[좋아하는 여자가 새로 생겼지만, 오래 사귄 너와 어떻게 헤어져야 할지 모르겠어서 이별을 말하지 못했던거야. 하지만 더는 네 곁으로 돌아갈 수 없어. 네가 너무 무서워. 모두 내 잘못이지만 무섭다고. 제발 용서해줘...]
그렇게 말하고 그는 울었습니다.
솔직히 그의 죄책감이 내 모습을 보게 한 건 아니었나 싶었습니다.
나를 생령 취급하며 몰아가는 것 같아 어떻게든 책임을 떠넘기려는 수작 같아 화가 났지만, 문득 무언가 궁금해졌습니다.
나는 내 머릿 속에 떠오르던 여자의 특징을 말해봤습니다.
밝은 갈색 단발머리, 155cm 정도 키에 살짝 통통한 체형.
쇄골 주변에 점이 두개 있고, 왼팔에 화상 흔적이.
그렇게 말하자, 그는 통곡하며 미안하다는 말을 되풀이 했습니다.
나는 그날로 이별을 결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