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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가라국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이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 가라국이라 하는 나라의 풍습에 대해 짧게라도 소개를 하고 가야 할 것이다. 가라국이란 나라는 동과 북으로는 서라벌, 서로는 백제와 맞닿아 자리잡고 있었으며 남으로는 해안가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가라국 안에서도 여섯 개의 나라가 서로 연맹을 이루고 있어 오래 전부터 금관가라, 대가라, 아라가라가 주도권을 다투며 서로 하나된 나라의 틀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때문에 왕이라고 하는 것은 있으나마나, 깊은 산골 섬의 마을마다 저마다의 토호들이 권력을 잡고 왕처럼 세를 누리고 있었으며 따라서 중앙의 법보다는 그 지방의 풍습이 우선시 되는 게 당연시 되었다. 이쪽 개울 너머의 호인(好人)이 저쪽 개울 너머에서는 둘도 없는 악인(惡人)이 되고 말며, 산 아래 마을의 효자효녀가 산 꼭대기 마을에서는 천하에 못쓸 패륜아가 되어 버리는 게 일상이었다.
이제부터 얘기하고자 하는 곳은 그런 수십의 마을 중 하나이다.
지금 얘기하고자 하는 곳은 마을의 권역 안에 바다와 산이 함께 있어 그 풍습 또한 다른 곳과 다르게 독특한 곳이다. 이곳은 오래전부터 산에서는 사냥을 하거나 약초를 캐고, 바닷가에서는 몰고기를 잡거나하여 물산이 풍족하였으며 마을에서 쓰고 남은 것은 서라벌에 내다팔곤 하였다. 자주는 아니나, 이 마을은 동쪽 바다 건너 왜와도 교류를 하곤 했다. 자연스레 왜의 문화도 건너왔고, 그중 하나가 소위 신녀라 불리는 무당의 존재다. 이것은 북쪽에서 넘어온 무당과 바다에서 건너온 무당의 성격이 동시에 섞여 있는데, 보통 전자의 것은 제사장의 의미를 지니나 후자는 신통력을 지닌 신의 대변자 역할을 한다. 동쪽 바다 왜에서는 신사라고 하는 토속신을 모시는 사당이 있고 그런 사당에는 미고(巫女)라고하는 계집이 하나씩 있어 신을 모시고 신자들을 관리한다고 한다. 가락국은 불교를 믿고 나라이고, 때문에 도처에 절이즐비했으나 앞서 말했던 지리적인 이유로 이쪽 지방에는 절보다 왜의 그것과 비슷한 신사의 수가 더 많았다.
그런 마을에 어느 날 떠돌이 무녀가 찾아왔다. 무녀가 자신을 가로되, 왜에서 영험한 노사(老師)를 만나 그 밑에서 수년 간 신통력을 익혀 이제 가라국에서 명성을 떨치고자 하던 차에 배를 건너던 중, 요상한 소문을 듣고 마을에 당도하였노라 하였다.
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서는 10년마다 산신령에게 마을 처녀를 하나 산제물로 바치는 것이 법도였습니다. 슬픈 일이기는 하나 그렇지 않으면 산신령이 마을로 찾아와 마을 사람들을 열 명 잡아먹어 버리지요. 어느 부모인들 딸자식 잃은 슬픔이 크지 않겠습니까만, 대신 제물로 바쳐진 처녀의 가족에게는 그 해 나온 작물을 모두 주고 사는 데 어려움이 없게 하였습니다. 최소한의 도리였던 것이지요. 제물로 바쳐진 처녀들도, 그 가족들도 마을 사정을 알기에 불만 없이 산제물로써 마을을 위해 희생한 겁니다. 올해가 다시 그 10년째 되는 날입니다. 그런데 제물로 정해진 처녀가 산 너머 남자와 정을 통해 야음을 틈타 도망을 가버린 겁니다. 하여 다른 처녀를 산신령에게 바치겠노라 읍하였지만 산신령께서는 들어주질 않으셨어요. 그 처녀가 아니면 마을 사람 열 명을 바쳐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으신 거지요. 그래서 지금 마을 사람들은 제발 자기만 먹히지 않게 해달라고 빌고 있는 중이랍니다.”
“그 산신령이라는 게 어떤 것인가?”
“백년, 못해도 이백년을 산 이무기입지요.”
그러자 무녀가 크게 폭소하였다.
“마침 잘되었다. 노사께서도 사람을 해치는 요물을 물리치면 단번에 명성을 올라가 왕이 먼저 찾으려 할 것이라 하였으니, 여기서 내 그 요물을 죽여 이 마을의 근심을 없애고 내 입신의 보양으로 삼겠노라.”
촌장은 기뻐하며 이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날 밤 마을에서는 잔치가 벌어졌다. 고기를 잡고 모아둔 술을 꺼내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주거니 받거니 하였다. 가장 넓고 깨끗한 집에 자리를 깔고 음악과 가무가 오고갔다. 무녀도 흥에 겨워 왜에서 배워왔다는 춤을 보여주자 생전 마을 밖으로 나가본 적 없는 사람들은 신기해 하면서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이렇게 어느 정도 술이 들어가자, 무녀는 문득 촌장과 독대하여 한 가지 물었다.
“오다보니 마을 입구에 거적데기로 덮어놓은 주검은 누구의 것인가?”
촌장은 조금 망설이다 입을 떼었다.
“도망간 처녀의 가족들입니다. 딸자식 하나 간수 못하였으니 마땅히 가족이 죄값을 치루어야죠.”
무녀가 잠시 생각에 빠진 듯하였으나 이내,
“내 알바 아니로다.”
개의치않는다는 식으로 응하며 다시 술잔을 들었다. 곧 이어, 무녀는 주의를 주듯 나직히 촌장에게 말했다.
“산신령과 대적하기 위해서 나는 주문을 욀 것이다. 다만 산신령은 신통력이 뛰어나, 내가 입을 움직이는 것을 보기만 해도 내가 무슨 주문을 외울지 보고 도망쳐 버릴 것이니, 대나무를 깎은 통을 입에 물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면 능히 산신령을 대적할 수 있으나, 나도 주문을 외는 동안에는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을 뿐더러 성패의 소식조차 알릴 수 없으니, 그대들은 부디 사흘 낮과 밤이 지나도록 내 목소리가 산 정상에서 들리지 않거든, 마을에서 장정들을 데리고 와 나를 구해주도록 하라.”
무녀는 촌장의 다짐을 몇 번이나 받고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무녀는 마을 사람들의 환송을 받으며 산신령이 똬리를 틀고 있다는 골짜기로 향했다.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 손모아 무녀의 귀환을 기도하였다. 그 날 밤, 청청하던 하늘에서 갑자기 마른 벼락이 떨어지더니 때에 맞지 않은 우박이 우수수 쏟아졌다. 그러자 이번에는 돌풍이 몰아치며 온 마을을 휩쓸었다. 바다에서는 거센 파도가 몰아치고 고깃배가 부서졌다. 사람들은 무녀가 산신령과 싸우고 있는 것이라 여기고 벌벌벌 몸을 떨었다. 그러기를 사흘째, 돌연 하늘이 맑아지며 온 산과 바다가 조용해졌다. 촌장은 이 날이 그때라 확신하여, 건장한 청년을 여럿 데려다 무녀가 향한 골짜기를 따라갔다.
한참을 올라간 그 곳에서, 촌장은 물론 청년들은 생전 처음보는 끔찍한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청년 중 한 사람은 바닥에 주저앉으며 분뇨를 지리기도 하였다. 몸통의 굵기가 통나무 만하고 머리 끝부터 꼬리 끝까지 길이가 5척이 넘는 거대한 뱀이 무녀를 입에 물고 있었으며, 무녀는 그 하체가 뱀에게 거의 삼켜진 상태였다. 무녀는 두 팔로 뱀의 코를 안간힘을으로 밀어내려 했으나 점점 힘이 빠지는 듯했다. 입에는 대나무 통을 물고 있었는데, 하체가 삼켜지는 와중에도 주문을 외고 있는지 볼 안쪽이 계속해서 볼록볼록 움직였다. 무녀의 눈에 마을사람들이 들어왔다. 언지했던 것처럼 자신을 찾아온 촌장과 마을 사람들을 본 순간, 사흘간 사투를 벌이며 비질땀을 흘려 머리칼이 지저분하게 얽힌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이제 곧 마을 사람들이 자신을 구해주리라 믿으며 눈빛 한 가득 구원을 바랐다.
그러나 뱀이 더 빨랐다. 죽통을 입에 물고 있느라 말을 할 수 없는 무녀와 다르게, 뱀은 이미 오래 전 신통력을 얻은지라 입을 쓰지 않고도 사람의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들어라. 나는 땅의 아들(土子)로 이 산에서 삼백년이나 살아온 산신령이다. 지금 여기서 이 계집을 나에게 바치고 나를 놔준다면 너희 땅에 두 번 다시 발을 들이지 않을 것이나, 만약 여기서 나를 죽여 가죽을 벗긴다면 대대손손 너희 자손들은 손과 발이 없는 뱀 같은 꼴을 하고 태어나게 될 것이다.”
앞서 말했다만, 이 마을의 족속들은 사냥꾼이기도 하며 채집꾼이기도 하거니와, 어부인 동시에 장사꾼이었다. 이들은 계산이 빨랐고 자기에게 득이 된다 싶으면 그게 무엇이든 그대로 행해버리는 족속이었다. 애초에 열 명을 살리기 위해 한 명을 산제물로 바쳐오던 마을이 아니었던가.
이들은 얼굴이 파래진 무녀가 힘겹게 고개를 가로젓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을에서 낫과 도끼를 가지고 와 무녀의 팔을 댕겅 잘라버렸다. 걸리적 거렸던 팔이 없어지자 뱀은 보다 편하게 무녀의 상체를 꾸역꾸역 목구멍으로 넘길 수 있었다. 그러나 무녀도 아직 그 생을 포기하지 않은 듯, 어떻게든 들어가지 않으려 몸을 비비적 거리며 밖으로 나가려 애를 써댔다. 그러나 양팔에서 피가 철철 흘러대는 고통 속에서 무녀의 발악은 헛된 것이었다. 무녀의 배꼽이 안으로 들어가고, 그 위로 젖가슴이 빨려들어가고, 마침내 목 위로만 남게 되었다. 그때까지도 무녀는 입에 대나무 깎은 통을 물고 있었는데 때문에 팔이 하나, 팔이 둘, 잘려나갈 때는 물론 자기 몸이 서서히 먹혀들어갈 때에도 비명 한번 신음소리 한번 지르지 못했다. 다만 고통에 못이겨 저도 모르게 턱에 힘이 들어가 물고 있던 대나무통에 이빨이 박히고 구멍이 뚫렸는데, 그로 인해 생긴 구멍 사이로 격통에 힘겨운 숨소리가 흘렀다. 크게 숨을 몰아쉬고 내뱉는 무녀의 숨결이 대나무 통과 물어댄 구멍 사이로 흘러나오는 소리가 흡사 뱀의 혓소리 같았다. 그리고 생의 마지막 순간에, 뱀의 목구멍 너머로 넘어가기 직전 촌장과 마을 사람들을 노려보는 그 눈빛에는 더없는 노기와 원망이 빛을 띠었다.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이다. 무녀를 잡아먹은 뒤 뱀은 약속했던 것처럼 마을을 떠났다. 듣기로는 바다를 건너 왜로 넘어가, 그곳에서 다른 이름으로 불리운다고 한다. 또한 사실인지 알 수 없으나, 그 뱃속에는 아직도 무녀가 살아있어, 뱀의 뱃속에서 소화되지 않기 위해 밤이고 낮이고 계속해서 주문을 외고 있다는 말이 전해져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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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픽션입니다. 일본 츠치노코 이야기는 전혀 사실이 아니며, 한반도 유래 설도 없습니다.
츠치노코가 우리나라에서는 "땅의 아들"이라 불린다고 하는데 그것은 "츠치"를 "땅土"자로 오역한 결과라고 합니다. 츠치노코 이름의 유래는 망치와 생김새와 비슷한 요코즈치란 농기구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 정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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