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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lovestory_93004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3
    조회수 : 389
    IP : 14.58.***.139
    댓글 : 0개
    등록시간 : 2022/03/11 23:33:15
    http://todayhumor.com/?lovestory_93004 모바일
    [BGM] 너의 마음과 이렇게 오래 싸우고 있다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1.jpg

     

    임승유, 나무가 하는 일




    가겠다는 사람을 보내고 난 아침에는

    손을 어디에 둬야 하는지 몰라서

    손은 모르겠다는 자세로

    더 많이 위로하기 위해서라면

    위로 더 위로

    예감은 미래를 껴안은 지금의 통증이라서

    미리 아프고 결국은 아팠으니

    감각을 나눌 수 있는 만큼은 나누고

    흐르는 혈액을 투명하다고 우기고

    조금씩 없어지는 쪽으로 바람의 날개를 뒤적이다

    손바닥에 묻어나는 흰색 가루에 놀라게 되면

    희망 때문에 점점 나빠지고 있구나

    환기하는 쪽으로

    의자의 의지에 가까워지는 사람을 보다가

    위의 더 위의 의자에 앉아

    가장 먼저 예감한 손이

    가장 늦게까지 남아 있는 사람의

    어깨를 건드리는 모양으로 그랬는데

    흔들렸다

    아예 흔들렸다

    아흔아홉 개의 계단을 올라가 줄을 흔드는 종지기처럼

    종지기를 따라 내려온 아흔아홉 개의 계단처럼

    아래로 더 아래로

    무성해지면 그늘이구나

    흔들리려고 흔드는 세상의 모든 그늘은

    그렇게 그늘이구나

    가장 멀리 보낸 손의 의지로 하는 일이라

    관여할 수 없는 나는 거기 남겨놓고

    나무는 천천히 걸어 나왔다

    아래로 더 아래로

     

     

     

     

     

     

    2.jpg

     

    이장욱, 독심




    너의 마음을 읽었는데

    그랬기 때문에 너와 멀어졌다

    나의 잘못인가


    오늘은 나의 의지가 아닌 것들과 화해하려고 했다

    일기예보

    먼 도시의 우연한 사고

    잘못 걸린 전화


    너는 이상한 옷을 입고 낯선 발음으로 부정하는 말을 했다

    심지어 우리는 국적도 인정도 달라진 것 같았는데

    나의 잘못인가


    너는 비 내리는 거리도 아니고

    상하이의 교통사고도 아니며

    거기 중국집 아니냐고 묻는 한밤의 전화도 아니다


    나는 식물들을 모르고

    펭귄과 거미를 모르고

    반도체나 합성수지에 대해 평생 무지하겠지만


    나는 우산도 없이 낯익은 목소리로 수긍하는 말을 했다

    그것은 독한 마음이었다가

    고독한 마음이었다가


    오늘의 날씨가 급하게 바뀌었다

    모르는 번호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내가 모퉁이를 도는 순간 달려온 자동차가


    밤하늘은 폭력적인 기호들로 가득하다

    그것은 너무 멀어서

    이토록 가까이


    너의 마음이 거대해진다

    나의 잘못인가

    너의 마음과 이렇게 오래 싸우고 있다

    나의 잘못인가

     

     

     

     

     

     

    3.jpg

     

    이원, 모두의 밖




    의자의 편에서는 솟았다

    땅속에서 스스로를 뽑아 올리는 무처럼


    마주해 있던 편에서는 의자가 수직으로 날아올랐다

    그림자의 편에서는 벽으로 끌어 올려졌다


    벽의 편에서는 영문도 모르고 긁혔다

    얼른 감춰야 했다

    의자는 날았다 그림자는 매달렸다 속은 알 수 없었다


    그림자는 옆을 본 채 벽에

    의자는 앞을 본 채 허공에 정지했다

    의자와 그림자는 모양이 달랐다

    의자의 다리 하나와 그림자의 다리 하나를

    닿게 한 것은 벽이었다


    의자와 그림자의 사태를 벽은 알 수 없었다

     

     

     

     

     

     

    4.jpg

     

    안웅선, 내일




    숲에는 계속 비가 내렸고

    비 내린 날보다 많은 사람이 목을 매었다

     

     

     

     

     

     

    5.jpg

     

    심보선, 오늘 나는




    오늘 나는 흔들리는 깃털처럼 목적이 없다

    오늘 나는 이미 사라진 것들 뒤에 숨어 있다

    태양이 오전의 다감함을 잃고

    노을의 적자색 위엄 속에서 눈을 부릅뜬다

    달이 저녁의 지위를 머리에 눌러 쓰면 어느

    행인의 애절한 표정으로부터 밤이 곧 시작될 것이다

    내가 무관심했던 새들의 검은 주검

    이마에 하나 둘 그어지는 잿빛 선분들

    이웃의 늦은 망치질 소리

    그 밖의 이런저런 것들

    규칙과 감정 모두에 절박한 나

    지난 시절을 잊었고

    죽은 친구들을 잊었고

    작년에 어떤 번민에 젖었는지 잊었다

    오늘 나는 달력 위에 미래라는 구멍을 낸다

    다음 주의 욕망

    다음 달의 무(無)

    그리고 어떤 결정적인

    구토의 연도

    내 몫의 비극이 남아 있음을 안다

    누구에게나 증오할 자격이 있음을 안다

    오늘 나는 누군가의 애절한 얼굴을 노려보고 있다

    오늘 나는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됐다


     

     

     

     

     

    통통볼의 꼬릿말입니다
    kYOH2dJ.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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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2/03/11 23:58:51  222.117.***.178  볼빵빵고양이  581201
    [2] 2022/03/12 10:33:56  59.2.***.158  사과나무길  563040
    [3] 2022/03/14 22:50:08  175.114.***.59  renovatiost  277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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