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 부터 7년전.. 2010년의 어느날.
그 당시의 나는 5년차 소방관으로서 경기도 XX소방서 XX119안전센터에서 구급차 운전 업무를 맡고 있었다.
당시의 XX소방서는 경기도에서 가장 많은 구급출동 건수를 자랑하고 있는 소방서였었고
물론 여전히 지금도 다른 소방서와는 넘사벽의 출동수를 자랑하고있는 중이다.
이쯤되면 경기소방의 일원이라면 어느 소방서인지는 대충 눈치는 챌 수 있을 듯 ㅋㅋㅋ
당시의 나는 그 소방서의 가장 더러움 컨셉을 담당하고 있는 XX119안전센터에서 근무중이었다.
여기서 더러움이라는건.. 뭐 노숙자 많고 만취자 많고, 못사는 영세민들 많고, 조선족들 많고, 사건사고 많아서 등등 바람잘 날 없는..
소방관으로서 구급대원으로 별로 근무하고싶지 않은 곳이었다라고 이해하면 대충 파악이 될 것이다.
잘 모르는 일반인에게 설명을 덧붙이자면.. 소방관들은 야간근무를 시작하는 18시부터 교대시간인 다음날 아침 9시까지는
대기근무라는 걸 하게 된다. 그 시간에는 공식적인 행정 업무는 하지않지만 화재,구조,구급출동만을 위해 출동태세를 갖추고
5분 대기조 처럼 대기하고 있는 근무체계인 것. 군대갔다 오신 분들은 5분대기조의 역할이라면 잘 알고 계실 듯 하니까 설명은 끝.
출동이 없다면 자유롭게 대기실에서 쉬면서 출동대기를 하게 되는데, 틈틈히 쪽잠을 자게 된다.
보통 대도시의 구급대원들은 워낙 출동이 많아 많은 시간을 잘 순 없지만.. 보통 자다 깨다 자다 깨다 밤새 비응급 뻘출동에 시달리다가
절대 안뜰 것 같은 해가 떠오르고 교대해서 퇴근을 하는 풍경이 펼쳐진다.
뭐 잡설이 길었는데.. 그 당시의 나는 힘들게 근무를 버텨내고(말 그대로 버틴다는 의미..일하기 힘들었다..지금도 별반..ㅋㅋㅋ)
비번날은 파김치인 몸을 이끌고 귀가해서 잠을 자거나.. 아님 전날 만취자,개진상 구급수혜자 등에게 시달린 스트레스를 푸느라
아침부터 신나게 소맥에 막걸리를 말아서 나홀로 파티를 하며 위안하는 그런 멋진 삶을 살고 있었다.
당시 센터 남자 구급대원 대기실은 창문이 아예 없었던 약 2평짜리 좁디좁은 골방이었다.
들어가서 문을 닫으면 그야말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세계가 펼쳐지곤 하는 그런 방이었다.
또한 굉장히 습했고 늘 퀴퀴한 냄새가 났으며(남자대원의 방이라서?ㅋ) 어두웠기 때문에
쪽잠을 자기 위한 용도가 아니면 별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던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2010년은 내 인생 최고의 전성기였던 30살의 물올랐던 싱싱한 체력을 자랑했지만..
스트레스와 수면부족에는 장사가 없는 듯.. 오랜기간 시달리는 강도높은 업무에 몸과 마음이 찌들어가고 있던 중이었다.
그 때문이었는지 다른 이유가 있는지는 잘 알 수 없지만.. 나는 내 일생중 그 골방에서 가장 많은 가위를 눌렸다.
하지만 오랜 기간 가위에 눌려온 터라 익숙했던 나는 왠만한 가위는 무시하고 깨어나서 다시 자버리는 쿨함을 보유중이었고
골방에서의 가위도 별반 다르지 않았기에 무시해버리고 악착같이 쪽잠을 자기 위해 나름 발악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은 조금 특이했다. 아니 가위였는지 실제였는지.. 분명 내가 생생히 겪었던 일이다.
당시 골방의 바로 옆에는 여자 구급대원 대기실이 있었다. 처음 들어가는 입구를 공유했고
입구에 들어가면 문제의 골방의 문이 처음에.. 안쪽으로 여자구급대원 대기실의 문이 위치하고 있었다.
두방 사이의 벽이 얇았기 때문인지 인기척이 다 들리는 구조였고, 옆 방에서 하는 대화내용이 잘 들리진 않지만
웅웅거리며 들리곤 했다. 말소리가 들리긴 하지만 웅웅거려 무슨 말을 하는지는 정확히 잘 모르는 그런 느낌이라면 이해가 될 것이었다.
정확한 일시는 모르지만 늦여름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날도 초저녁부터 새벽 늦게 동틀때까지 계속되는 출동에 쩔어서.. 귀소하자마자 게거품을 물고 골방안의 침대 속으로
풍덩 뛰어들었을 때였다. 나는 한번 깨어나면 다시 잠들때까지 시간이 조금 걸리는 편이지만 그 날은 밤새도록 출동에 시달렸던 탓인지
눕자마자 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그러던중 갑자기 귓가에서 들리는 또렷한 여자 목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당시 옆방에는 나랑 같이 짝을 이뤄 출동을 나갔던 대체인력(정식 공무원이 아닌 계약직 공무원. 정직원의 출산,육아휴직등의 공백을 대체인력들을
고용해서 운용하고 있다) 여직원이 자고있는 상황이었고.. 그 여직원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호호호~ 반장님! 반장님! 제가 예전에 출동나갔을 때 있었던 재밌었던 이야기 해드릴까요? 호호호~"
옆으로 누워 눈을 감고 있던 내 귀에 들리던 굉장히 명량한 목소리.. 그 여직원도 피곤해서 파김치가 되었을 터인데 왜이리 힘이 넘치지?
굉장히 재밌는 이야기니깐 들어봐란 느낌의 그 명랑한 말투에 나도 모르게
졸린데 귀찮은데.. 뭐 응 그래~ 라고 속으로 대답했고 잠에 취해 기운도 없이 축 늘어져서 누워있었지만
내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았다는 듯이 그 여직원은
여전히 명량한 목소리로 내 귓가에서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그 순간..
졸려서 헤롱헤롱대고있던 그 순간이 팍 깨어날 만큼 굉장한 위화감을 느껴졌다..
아니.. 얘가 도대체 왜 이 시간에 이 상황에 왜 내 옆에 와서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거지?!
옆방에서 얘기한 것이라면 이렇게 또렷히 들리지도 않을텐데..?
이건 그 애(직원)가 아니다! 라고 확신을 한 순간..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온몸에 소름이 끼치며 갑자기 온 몸이 거짓말처럼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리고 또렷히 들리며 재잘대던 그 직원의 목소리가 그걸 인지한 순간 갑자기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가 되는 게 아닌가.
반장님! 예전에 제가 왣레륖궤뎌톧쳗룿솓쥽퉫잽춛젭츄댑쥅~
이런 식으로 갑자기 도저히 알아먹을 수 없는 얘기로 바뀌어 내 귓가에 계속 들리기 시작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름끼치는 소리는 내 귀를 가득 채웠고 몸은 움직이지도 않는
이 기괴한 상황에 가위가 눌렸다고 판단한 나는 원래하던 대로 손끝에 힘을 주어 깨어나려고 하였고
식은 땀을 흘리며 깨어난 나는 벌떡 일어나 방의 불을 켰지만 당연하게도
텅빈 방 안엔 적막함이 감돌뿐 나 외엔 아무도 없었다.
가위라고 생각이 들었지만 너무도 생생히 귓가에 들렸기에 깨어나도 믿기지 않았던 그 애의 목소리..
그 후에도 많은 가위에 눌려봤지만 그처럼 목소리가 또렷히 들렸던 적은 없었다.
골방은 그 후에도 몇번 감동없는 가위를 누르다가 인사이동으로 떠난 이후로 한번도 그 센터의
골방엔 가본적이 없었다. 최근에 갔을땐 창고로 쓰다가 다시 사회복무요원의 대기실로 쓰이는 것 같더라.
쓰고나니 글재주가 없어서 그런가 한개도 안무섭네. 어쨋든 개인적으로 참 신기했던 기억.
음.. 결론은 구급대원 화이팅!
비응급은 택시,자가용으로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