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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신미나, 옛일
해마다 잊지도 않고 공양하나
저 꽃들, 보노라니
어쩌나
죽어도 나를 못 잊는다는 약속은
거짓이었어라
너 없어도 찢어진 살 위에 새살 돋고
밑이 젖는 내 몸 봐라
어쩌나
향불 한 올 피우지 못하고
너는 이제 강가에 던진 돌이나 되었는데
내 슬픔만으로 꽃 모가지 하나 꺾을 수 있느냐
산비알에 돌짝 하나 굴릴 수 있겠느냐
내가 너를 어찌 잊어
어찌 잊을 수가 있어
지글지글 타는 자갈밭 맨발로 걸으며
울던 내 낯도 옛일, 다 옛일
송재학, 밤을 위한 정물
지붕의 눈을 핥으면서
고양이 몇 마리 엎드려 있다
처마 아래로
눈과 고양이처럼 기묘하게 뭉친
어둠
데생을 위한 정지 화면이지만
얼굴은 어딘가 기웃거리고 있다
고양이가 사라지고
눈이 더 내리고
고양이도 눈도 아닌
얼룩들이
손바닥이 조금씩 살찐 후에
정물화가 시작되었다
신동집, 목숨
목숨은 때묻었다
절반은 흙이 된 빛깔
황폐한 얼굴엔 표정(表情)이 없다
나는 무한히 살고 싶더라
너랑 살아 보고 싶더라
살아서 죽음보다 그리운 것이 되고 싶더라
억만 광년(億萬光年)의 현암(玄暗)을 거쳐
나의 목숨 안에 와 닿는
한 개의 별빛
우리는 아직도 포연(砲煙)의 추억 속에서
없어진 이름들을 부르고 있다
따뜻이 체온(體溫)에 젖어든 이름들
살은 자(者)는 죽은 자를 증언(證言)하라
죽은 자는 살은 자를 고발(告發)하라
목숨의 조건(條件)은 고독(孤獨)하다
바라보면 멀리도 왔다마는
나의 뒤 저편으로
어쩌면 신명나게 바람은 불고 있다
어느 하많은 시공(時空)이 지나
모양 없이 지워질 숨자리에
나의 백조(白鳥)는 살아서 돌아오라
장석남, 분장실에서
오늘은 사람이 되는 것으로 족해
중얼거리며 거울을 보네
분 뚜껑을 열고 조용히
나를 지우기 시작하네
오늘 하루
걷고 먹고
말한 모든 것이
나를 지워가던 일
귀가 길에서 모란의 몰락을 보았네
오늘은 아주 조금 나를 걷어낸 것으로 족해
거울 앞에서
얼룩진 부분부터 지우네
저녁은 지워지지 않네
이훤, 미아
당신은 후하게 나의 슬픔을 챙겨 사라진다
오래 듣는 자에게 복이 있고
나는 달아나려 했다 전부
갚지 못할까봐
도망치는 골목마다 기다린다 당신을, 어차피 또
달아날 거면서
나를 꺼내는 일에 인색한 나더러
당신은 매번 고맙다고 했다
미아처럼 몇 단어 앞뒤로 오가기만 반복하고
아무도 모르는 미소를 닦는다
큰일이다
달아나는 곳이 자꾸 당신으로 변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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