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훈아, 그 꽃신 이야기는 이래저래 비슷한 이야기들이 내려오는 데 다른 건 다 몰라도 그 이야기를 왜 하는 지는 분명한 목적이 있어. 라고 하더라고.
그렇게 얘기하길래 그게 뭐냐고 했더니,
이야기를 듣는 사람을 저주하는 거라네.
나는 너무 화들짝 놀라서 그걸 어떻게 아냐고 했더니. 이런 민속학 하는 사람들 한테는 좀 알려진 이야기라면서 꽃신, 옷고름, 머리 빗 등등 사물에 빗대서 하는 지방마다 다른 이야기가 있는데, 다 저주를 위해서 하는 이야기라고.
그래서 내가 그게 왜 저주를 내리는 이야기인지 모르겠다고 말했지. 뭐 때문에 저주를 내리는 지도 말이야.
누나가 하는 말이,
그 이야기는 조선시대 때 부터 내려오는 이야기래. 마치 구전설화처럼. 그리고 그때는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는 일들이 비일비재 했다더군. 노비와 평민, 평민과 양반의 신분차이가 하늘과 땅이었기 때문에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아도 윗 계급의 심기를 조금이라도 불편하게 하면 목숨이 달아 날 수 있는 그런 시대였기 때문에 그 분노를 풀고 싶어도 풀 수가 없었다고 해. 그래서 그 중 가장 억울하게 죽은 누군가의 가족이었는지 친구였는지 모르겠지만 그 억울한 사람들 중 아주 영감이 뛰어난 누군가가 복수를 하기 위해 만든 주술 같은 것이 바로 이 꽃신 이야기라고 하더라고.
그런데 누나는 자기도 설화나 비망록 같은데서 지나가는 얘기로 기록 되어 있는 것만 봤지 실제로 그 이야기가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지는 처음 알았대. 그런데 그 이야기를, 그러니까 그 주술적인 저주의 주문을 끝까지 듣고 살아남은 사람이 없다고 했어. 그래서 우리한테 그 이야기를 끝까지 들었냐고 물었었고.
내 기억 속에는 무언가 주문 같기도 한 이야기를 막 읖조리길래 술 취했나 보다 그만 가자라고 했던 게 확실히 남아있었어. 술버릇 이상하네. 그런 얘기도 했었고, 그런데 지금 얘기를 수현이한테 했더니, 우리 나올 때 누가 한 명 남아있지 않았어? 라고 하는 거야. 그랬나? 하면서 생각해보니 분명 누가 한 명이 그 선배? 형?의 이야기를 듣고 앉아있었던 게 불현듯 떠오르는 거야. 신기하게도 딱 한 장면이.
우리가 다른 방으로 갈 때 잠깐 돌아봤는데, 무언가 눈빛이 바뀐 그 선배와 우리 동기 중 한 명의뒷모습.
분명 끝까지 누가 듣고 있었다. 그건 분명하다. 하는 생각이 든거야. 그래서 수현이한테 물어봤는데 한참을 생각하더니 기억난다고 하더라고. 그런데 누구였는지는 확실히 모르겠다고 했어. 나도 그렇고.
그래서 그 친구가 누구였지 생각해 내는데 거의 이틀 걸렸어. 둘 다 서로 잠도 제대로 못 자고 하는 상황이었으니 더 힘들었지. 그렇지만 누가 끝까지 있었는지가 제일 궁금했어. 꼭 만나야 했고,
그 혼자 남아 있었던 사람은 덕형이었어.
너는 기억해? 덕형이. 사실 그렇게 친한 건 아니었지만. 뭐 우리들도 전부 대학 와서 알게 되었지만 말이지.
그래도 초반에 좀 친해졌었는데... 덕형이가 기억이 안났었어. 정말.
문제는 그 이야기를 끝까지 들었던 사람은 분명 덕형이었어. 우리는 정말 덕형이가 걱정되기 시작했어. 그 꽃신 이야기를 다같이 들을 때, 먼저 일어난 너는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았고,
중간에 잠깐 딴생각을 하느라 이야기의 흐름을 살짝 놓친 수현이는 가로등 일을 겪고. 그 보다 살짝 집중해서 들었던 나는 이렇게 밤마다 지옥같은 고통을 겪는데, 집중해서 이야기를 끝까지 들었던 덕형이는 어떤일을 당하고 있을지 엄청 걱정이 되는 거야. 아니 살아는 있을까?
우리가 덕형이에 대해 알고 있는 건 핸드폰번호 하나뿐이었는데, 전화를 해도 받질 않았어. 며칠동안. 그리고 다음날에는 배터리가 없다는 답만 들리더라고.
그러는 와중에 개강날이 왔고, 혹시나 덕형이 핸드폰 번호가 바뀐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지. 그렇다면 개강 첫 날 파티는 오겠지. 웬만하면 다들 참석하니까. 그런 생각하면서 와 본 거야.
덕형이는 어떻게 됐을까. 큰 문제가 있는 거 아닐까? 설마 잘못 되진 않았겠지? 오늘은 안 왔지만 나중에 수업은 들어 오겠지? "
[ 9 ]
긴 인생을 살아온 건 아니지만 이 이야기들은 내가 대학교 새내기 때의 이야기니 지금으로 보면 거의 15년이 지난 것 같다. 그 때의 그 어렴풋한 기억들을 와인을 한 잔씩 마시며 조금씩 되살려서 소설 같은 느낌으로 써 보았다.
앞의 친구들의 이름은 내가 가상으로 대충 붙였다. 왜냐하면 그 2학기 개강파티 이후로 그 친구 두 명은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2학기가 끝나고, 2학년에 올라갈 때는 군대를 갔다. 그리고 몇 해가 흐른 뒤에 복학을 했었기 때문에 학부생이었던 시절에 사람들은 까마득 하게 된 것도 있다.
하지만 아직도 내 기억 속에 아직도 자리 잡고 있는 건, 그 꽃신 이야기를 들을 때의 오렌지 색 조명이 비춰진 방안의 분위기였다. 이야기의 내용은 잘 모르겠지만, 아직도 그 광경이 생각하면 떠오른다. 어쩔 때는 가끔 꿈에서 그 상황이 나타나긴 하지만 어쩐 일인지 같이 이야기를 듣고 있는 사람들은 오래 전에 죽은 위인들로 나왔다.
나는 정말로 누군가를 저주하기 위해서 조선시대 때부터 전해 내려오는 구전설화가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가끔 생각날 때면 여러방면으로 검색을 해 보긴 했지만 그런 이야기는 없었다.
태어나면서 부터 신분이 정해지고, 나의 생사여탈권이 내가 아닌 누군가가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한 공포였을까.
아니면 아무런 이유도 없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생명을 누군가가 뺐어간 것에 대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는 자책이었을까?
아직도 그 때의 초여름날 기억이 같은 계절이 오면 떠오른다. 그리고 집에 가는 길에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