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글로 달려다 길어질 것 같아 따로 올립니다.
게임에서 제노사이드를 사용하는 것이 옳으냐 그르냐는 문제... 간단하다면 간단한 문제지만 어렵다면 또 매우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래서 우선 문제를 단순화해 보겠습니다.
문제는 '제노사이드'에 대한 두 가지 관점이 서로 충돌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제노사이드'는 나치의 홀로코스트나 르완다, 코소보 사태를 떠올린다. 고로 사용을 금지하자.
'제노사이드'는 단순한 단어다. 우리가 어떻게 이해하고 사용하느냐에 달린거다. 사실 영어라 좀 있어보여서 사용하는 거잖나? 고로 사용하자.
님께서는 제노사이드에 인종학살의 의미가 있으니 사용을 반대한다는 입장이고요.
문제는 현재 별 뜻 없이 잘 사용하고 있는데 무슨 문제냐는 주장일 겁니다.
다들 나름대로 할 말 많겠지만... 저는 우선 소쉬르부터 설명하겠습니다.(장광설은 저도 힘듭니다. 간단하게 가겠습니다.)
소쉬르는 언어(단어)와 실제세계가 다름을 이야기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사과를 '사과'라 부르지만, 일본에선 リンゴ, 중국에선 苹果, 미국에선 apple, 프랑스에선 pomme라 부릅니다.
다 같은 사과를 말하는데 누구는 사과, 누구는 애플이라 부르는 겁니다.
이거 별거 아닌 것 같지만 큰 문제입니다. 우리에겐 사과가 '사과'인게 너무나 당연하지만 미국에 가면 '사과'가 사과가 아니게 되니까요.
물론 반대도 마찬가지 입니다. 미국에선 당연히 apple이지만 이 당연한 apple이 중국에 가면 결코 당연한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사실 우리가 사과를 '사과'로 불러야 할 본질적인 이유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사과를 '닝고'나 '피구아'로 불러야 할 이유도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저 나름대로 부르고 싶은대로 누구는 사과, 누구는 닝고, 누구는 피구아, 누구는 애플, 누구는 뽐이라 부를 뿐입니다.
이는 사과(실제 세계)와 '사과'(언어로 표현된 사과)의 관계가 '자의적'이기 때문입니다.
사과여서 '사과'라 부르는 게 아니라, 닝고라서 '닝고'라 부르는 게 아니라...
굳이 사과를 '사과'로 불러야 할 이유는 없지만, '배'나 '감'과 구별하기 위해, '배'나 '감'이 아닌 단어 '사과'가 만들어져 사용되고 있는 겁니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이렇게 됩니다.
기호(언어) : 기표(언어로 표현된 사과)≠기의(실제사과)
데리다는 여기에 '차연'의 개념을 덧붙여 사용하기도 합니다.
간단히 말해 모든 것들이 쉬지 않고 변하고 그 의미가 새롭게 정의되는데 어떻게 절대불변의 정의를 내릴 수 있고, 믿을 수 있느냐는 겁니다.
잠깐 '시간'이란 걸 생각해 보죠. 시간은 과거-현재-미래로 나아가거나 미래-현재-과거로 흘러갑니다. 끊임없이 흐릅니다. 멈추질 않습니다.
하지만 난 언제나 현재를 살아갑니다. 현재에 붙박혀 살아갑니다.
나는 세상이 이렇다 저렇다 정의하지만, 정의한 세상은 끊임없이 과거로 흐릅니다.
내가 무엇을 정의하든, 그 정의는 끊임없이 과거로 흐르며 의미의 변화를 겪게 됩니다.
반대로 나는 현재에 붙박혀 끊임없이 과거로 흐르는 세계를 바라보며 이 세계를 끊임없이 새롭게 정의해야 합니다.
의미라는 거, 정의라는 거는 끊임없이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코 완성된 의미를 가질 수 없는 겁니다.
사과는 지금 '사과'라 불리지만, 언젠가는 '샤꽈'나 '쇼코'가 될 수도 있고, 여전히 사과라 불린다 해도 배가 감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제노사이드도 마찬가지입니다.
제노사이드의 의미는 사용되는 시대나 장소에 따라 각기 다른 의미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나에겐 당연한 의미가 타인에겐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제노사이드의 의미는 사용하기 나름이고 마음먹기 나름입니다.
그렇다면 제노사이드를 마구잡이로 사용해도 좋은가?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제노사이드에 관련된 인종청소의 개념을 무시해도 좋은가?라고 물을 수 있는 겁니다.
데리다는 '차연'을 이야기하지만 또한 '흔적'을 이야기합니다.
모든 의미는 변하지만 의미들이 만들어낸 사건, 과거로 흘러가 멈춰버린 고정된 사건, 그 흔적은 변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역사관은 변할 수 있습니다. 한일합방을 민족사관에 근거해 비판할 수도 있고, 식민지근대화론에 근거해 합리화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일합방 자체는 변하지 않습니다. 일어난 사건은 일어난 사건입니다. 단지 일어난 사건에 대한 현재의 해석이 달라질 뿐입니다.
친일매국노는 언제까지고 친일매국노일 뿐입니다.
이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기에 문창극 같은 사태가 일어나고 있는 겁니다.
우리는 종종 포스트모더니즘의 함정에 빠지곤 합니다. 모든 것이 변하고, 모든 것이 자유롭다면 옳고 그름, 선과 악도 변하는 것 아니냐는 겁니다.
하지만
앞의 논의는 의미의 자의적 결합을 말할 뿐입니다. 절대불변의 정의가 없다는 것이 옳고 그름마저 없어진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다르다 해서 나라는 존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양성과 상대성을 인정한다고 해서 제노사이드를 자랑스러워 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짓, 수백만 수천만을 도륙하는 짓을 정당화할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인간이 인간을 판단하고 단죄할 수 있다는 생각은, 그 자체가 범죄입니다.
몰랐다면 상관이 없으되... 알게 된다면 무시할 수 없습니다.
여기껏 제노사이드=영어, 뭔가 좀 있어보이는 단어, 나의 폭력성을 충족시켜줄 만한 마초적 단어로만 받아들였던 사람이라도
제노사이드=인종학살임을 깨닫게 된다면 분명히 변화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무조건 나쁘니 쓰지 말라고 지적하기보다는
님께서 제노사이드의 의미를 게임유저들에게 널리 알리고, 사용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꾸준히 알리셔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제노사이드를 학살로만 해석하는 사람들, 학살을 의미하는 영어단어로만 이해하겠다는 사람들에게
무조건 제노사이드가 잘못되었다고 비판하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제노사이드의 용법을 잘못사용하고 있어요를 니가 잘못하고 있어요로 받아들일 사람들, 그런 오해의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입니다.
나쁘다고 정의내리고 비판하기보단... 스스로 나쁘다는 것을 인지하고 이해하게 만드는 설득이 더 효과적이라고 봅니다.
물론 반대편에서도 새로운 의미와 해석을 제시하며 제노사이드를 계속 사용하겠다고 반론할 수도 있습니다.
이들과 끊임없이 논쟁하며 제노사이드 사용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 그것이 님에게 요구되는 행동이라 생각됩니다.
제노사이드=학살을 의미하는 영어단어로만 받아들이겠다는데 뭐가 문제냐는 사람들이라 해도,
제노사이드라는 단어에 홀로코스트 같은 인종청소의 의미가 담겨있음을 꾸준히 알린다면... 그 누구도 이 문제를 무시하지 못할 겁니다.
당신이 그 의미를 이미 알려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절대불변의 정의는 없습니다. 정의는 만드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모든 것이 옳다는 의미가 아니라 옳은 것, 선한 것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
옳은 것, 선한 것을 만들어가야 한다, 투쟁해야 한다는 의미라 생각됩니다.